헌재 "유산상속 강제하는 '유류분',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종합)
"패륜 가족에게도 상속, 상식에 반해"…법 개정 시한 주며 헌법불합치 결정
'형제자매 유류분'은 위헌으로 즉시 효력 잃어…1977년 제도 도입 후 첫 위헌
패륜 저지른 자식 '유산상속' 못 받는다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요구권리 없어"
헌재 "일부 유류분 조항 위헌"
자녀·배우자 '상속분 2분의 1' 등
유류분 비율 규정한 것은 합헌
앞으로 고인의 상속재산에 대한 형제자매의 유류분 청구 권한이 사라진다. 또 학대 등 패륜 행위를 한 가족은 유류분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부모를 장기 부양한 가족의 기여도를 더 많이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된다.
헌법재판소는 25일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한 민법 제1112조 4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상속재산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한 유류분 조항과 관련한 헌재의 첫 위헌 판결이다.
민법 제1112조 4호는 고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경우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재는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헌 결정으로 4호는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헌재는 부모를 장기간 학대하는 패륜적인 행위 등을 유류분 상실 사유로 별도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1~3호와 피상속인을 오래 부양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8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관련 내용은 국회 법률 개정안에 반영될 예정이다.
헌재 '유류분 상실사유 미규정' 헌법불합치 결정
부모 학대에도 유류분 인정은…일반 국민 법감정·상식에 반해
헌법재판소는 25일 유류분 제도 시행 45년 만에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을 결정했다.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유류분 제도의 헌법적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변화한 세태에 맞게 세부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로 인정한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으며, 패륜적인 행동을 일삼은 유족에게 무조건 유류분 권리를 인정한 것도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1) 유류분 비율 규정은 합헌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제1112조는 사망한 사람의 유증이나 유언이 있더라도 자녀·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상속 재산으로 보장한다. 헌재는 이 같은 일률적 유류분 비율은 현행법상 정당하다고 봤다. 헌재는 “법원이 재판에서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유류분 권리자와 각 유류분을 개별적으로 정하도록 할 경우 심리의 지연 및 재판비용의 막대한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형두·이영진 재판관은 별개 의견을 통해 “사망한 사람의 배우자가 생존권을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은 자녀보다 더 절실하다”며 “자녀와 배우자의 유류분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2) 형제자매 유류분은 폐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제1112조 4호는 위헌으로 결정했다. 사망한 사람의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유류분권을 부여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독일·오스트리아·일본 등 대부분 국가는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3) 패륜 등 유류분 상실 규정 생긴다
헌재는 제1112조 1~3호에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점은 불합리하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사망한 사람을 생전에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는 취지다. 다만 헌재는 이 조항에 대해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 효력을 유지한다”고 결정했다.
(4) 유류분 산정 시 기여분 고려해야
헌재는 기여분을 유류분에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1118조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고 입법 개선을 요구했다. 민법 1008조 2호에 따르면 오랜 기간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특별히 기여한 자는 상속분에 기여분을 가산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유류분 제도에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탓에 유류분 반환청구에 의해 기여분의 대가로 받은 증여재산을 반환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2013년 663건이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이 지난해 2031건으로 급증하는 등 불분명한 기준이 유족 간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 돼 왔다. 이번 결정을 통해 기여분도 유류분 반환청구에서 고려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5) 가업승계, 공익기부한 경우는
기업 오너들이 후계자에 지분을 몰아준 경우 사후에 배우자와 다른 자녀들 사이에서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어 가업승계 ‘걸림돌’로 여겨져 왔다. 헌재는 사망한 사람이 생전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유류분에 가산하는 민법 제1113조 조항에 대해 합헌 판단하며, 공익 기부와 가업승계 등을 목적으로 증여한 재산도 유류분에 예외 없이 포함된다는 기존 법리를 유지했다.
다만 김·이 재판관은 위헌 취지의 보충 의견으로 “피상속인이 공익단체에 증여한 경우 또는 가업승계를 위해 가업의 지분을 증여한 경우까지 유류분 산정 기초재산에 산입한다면 궁극적으로 피상속인의 의사에 배치되고, 공익에도 반할 수 있다”며 입법의 필요성을 밝혔다.
민경진/허란 기자 min@hankyung.com
헌재, 형제자매·패륜가족에 ‘무조건 유산 상속’ 제동
“유류분 제도 위헌, 형제·자매 유산 상속 요구할 권리 없어”
- 수정 2024-04-25 21:17
- 등록 2024-04-25 14:40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부모 사망 뒤 나타나 ‘재산 달라’…위헌심판대 오른 ‘불효자 상속권’
유류분 제도 17일 첫 공개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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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는 어머니가 72살이었을 때부터 107살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35년 동안 제주에서 홀로 부양을 맡았다. 어머니 치료비로만 1억2000만원을 썼고, 아버지의 빚 45만원도 대신 갚았다. 자신의 부양을 도맡고,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준 것이 미안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땅을 ㄱ씨에게 물려준 뒤 사망했다. 그러자 평소 왕래가 없던 다른 자녀들이 ㄱ씨를 상대로 ‘유류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어머니가 ㄱ씨에게 생전에 땅을 증여하면서 자신들에게 돌아갈 유류분이 부족해졌으니 땅의 일부를 자신들의 유류분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유류분 제도는 사망한 사람, 즉 피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상속해줘야하는 유산을 뜻한다.
ㄱ씨는 형제·자매에게 땅을 나눠줘야 할까? 민법 제1112조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유언보다 우선해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불효자여도, 형제·자매 사이가 나빠도 유산을 상속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ㄱ씨 역시 형제·자매들에게 상속받은 땅의 일부를 넘겨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ㄱ씨한테 증여한 땅은 “부양에 대한 대가”라며 “다른 자녀들의 유류분 계산에 이 땅이 산입돼선 안 된다”고 판결했다. 기계적인 유류분 적용에 제동을 건 법원의 첫 판결이었다.
이처럼 재산 형성에 기여한 정도, 부양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은 현재의 유류분 제도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헌법재판소가 오늘 17일부터 유류분 제도와 관련된 법 조항의 위헌 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을 연다. 이번 변론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장학재단에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자 자녀들이 유류분을 침해당했다며 재단을 향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과 사망한 어머니가 생전에 손자 등에게 부동산을 증여하는 바람에 딸들의 유류분이 침해당했다는 사건이 병합돼 변론이 진행된다.
■피상속인 재산권 침해 여부 쟁점
헌재 심판대에는 유류분 관련 민법 조항의 위헌성을 따지는 사건이 모두 40건 올라와 있다.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1112조 등 6개 조항이 심사 대상이다. 핵심 쟁점은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냐는 것이다. 자신을 더 부양한 자녀나 공익재단에 전 재산을 넘기겠다고 유언을 남기더라도 유족의 유류분이 유언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헌재 변론을 맡은 정호영 변호사는 “가업에 더 많은 기여를 한 자녀나 제3자에게 증여를 한 경우, 사망 뒤 가족들이 증여받은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며 “과거 산업화 세대의 사망이 늘면서 유류분 소송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위헌심판제청 결정문을 보면, 일부 판사들은 사회가 급변하면서 유류분 제도의 입법 목적이 대부분 상실됐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20년 2월 서울중앙지법 이동연 부장판사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결정하면서 ‘평균수명의 연장’을 위헌 근거로 들었다. 부모가 사망할 당시 자녀가 40~50대라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다고 해서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유류분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여성 차별이 만연했던 과거엔 여성 배우자나 여성 자녀가 상속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이 또한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의견도 있다.
1인가구의 급증도 유류분 제도의 변화에 힘을 보탠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1인가구가 사망하게 되면 그의 형제자매는 유류분을 물려받을 1순위가 되는데, 사실상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제자매에게 유류분을 남겨줘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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