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가 깔고 앉은 남산 순성길 숨길을 트라
제1봉수대 터에 자리 잡은 미군 통신기지
한양도성 순성길 막고 흉물처럼 경관 훼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위해 철거 시급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서울 남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두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그 가운데 성곽 따라 걷는 한양도성(漢陽都城) 순성(巡城)길은 최근 20여 년 사이 거세게 불어닥친 문화유산 답사 열풍과 둘레길 걷기 붐을 타고 높은 인기를 누린다.
남산 동쪽의 순환버스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북측 둘레길과 만나는 지점을 지나면 성곽이 나타난다.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이기도 한 성벽 바깥을 따라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까지 650개나 된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성벽 안쪽이다. 성곽은 마루금을 따라 위로 이어지지만 길은 엉뚱한 쪽으로 나 있다. 400여m를 지난 뒤 순환버스 도로에 이르러서야 성곽과 다시 만난다.
남산 정상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순성길을 걸으면 더욱 헷갈린다. 무심코 성곽을 따라가다가 이정표를 못 보고 지나치면 헤매기 일쑤다. 성곽이 도로로 끊긴 지점에서 옆으로 치워진 바리케이드를 지나 성벽 안쪽으로 올라가면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다. 성벽 바깥을 따라 걸으면 얼마 가지 않아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순성길 이정표 옆에 우회 구간을 그려놓은 안내판도 있지만 왜 돌아가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18.6㎞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멸실 구간이 여러 군데 있다. 이 중 일부는 러시아대사관, 이화여고, 창덕여중, 반얀트리 호텔 등으로 막혀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성곽이 남아 있는데도 통행을 막아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미군 통신기지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1953년부터 70여 년째 성곽 훼손한 채 점거
기지는 남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600m쯤 떨어진 봉우리에 흉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남산에 설치한 봉수대 다섯 군데 가운데 제1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가 불빛과 연기로 연락을 주고받는 원거리 통신망이니 그 터에 통신기지가 들어선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정상의 팔각정 옆에 복원해놓은 것은 제3봉수대다)
정문에는 '미 육군 네트워크엔터프라이즈센터(USANEC) 제1통신여단 제41통신대대 캠프 모스(CP Morse)'라고 적힌 영문 표지판과 출입 및 촬영 제한구역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영문과 한글로 붙어 있다. 기지 별칭은 모스 부호를 고안한 미국 발명가(새뮤얼 모스) 이름에서 따왔다. 중구 장충동과 용산구 용산동에 걸쳐 있고 면적은 2만9000㎡(약 8770평)에 이른다. 1951년 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가 국유지인 땅을 기지용 부지로 미군에 공여했다. 1953년 송신탑을 비롯한 통신시설이 들어서 용산 주한미군 사령부를 중심으로 전국의 미군 기지, 미국 본토, 일본의 미 극동사령부를 연결하는 종합통신센터이자 주한미군방송(AFN) 송신소 기능을 담당하다가 2006년 폐쇄됐다. 기지의 시설과 성곽 현황은 미군이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상에서 내려다보거나 정문 부근에서 올려다보면 초소와 막사 여러 동과 송신탑이 들어서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2009년 발간한 '서울 남산 봉수대지 발굴조사 보고서'는 "한양도성 성곽이 3m가량 훼손된 상태"라고 밝혀놓았다. '서울성곽 육백년'의 저자 유근표 씨가 2004년 답사한 기록에 따르면 여장(女墻·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체성(體城·성의 몸체 부분)만 일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장을 헐어내고 체성을 축대 삼아 그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2004년 이전 협정 후에도 반환 소식 없어
한국과 미국 정부는 2004년 7월 23일 '서울지역 미군기지 이전 협정'(YRP)을 체결했다. 한국 정부의 요청과 미군의 주둔기지 재배치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용산의 주한미군 사령부 등을 경기도 평택(캠프 험프리스)으로 옮겼다. 당시 작성된 이행합의서에 따르면 캠프 모스의 반환 시점은 2006년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협정 체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장 간 협의를 통해 경기도 연천 감악산 통신기지와 인천 부평구 제빵공장(캠프 마켓) 등 5개 미군기지 약 29만㎡(약 8만7700평) 규모의 부지 반환에 합의했다. 이로써 반환 대상 미군기지 80개 가운데 69개를 돌려받았으며 △ 서울의 용산기지(잔여), 수송부, 캠프 모스 △ 경기도 의정부시의 캠프 스탠리 △ 경기도 동두천시의 캠프 모빌(잔여), 캠프 케이시, 캠프 호비 본체 △ 경기도 평택시의 가상방역 훈련장(CPX) 잔여지, 험프리 소총사격장, 알파탄약고 △ 전북 군산시의 군산비행장(일부) 등 11개 기지가 남은 상태다.
정부는 "나머지 반환 예정지에 대해서도 지역사회에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문제와 환경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속히 반환될 수 있도록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1년 1월 뉴스타파가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반환 대상 미군기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캠프 모스는 '일부', 반환 면적은 '협의 중'이라고 돼 있다. 협정서 하단에도 "캠프 모스에 있는 통신시설을 유지한다"고 적혀 있어 기지 전체를 반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제는 민족정기 끊으려고 남산 짓밟아
서울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이다. 목멱은 '앞산'이란 뜻의 우리말 '마뫼'의 이두식 표기다. 조선 태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때 안산(案山)이자 주작(朱雀)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이었다. 도성도 좌청룡 낙산(124m), 우백호 인왕산(338m), 북현무 북악산(342m), 남주작 남산(271m)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태조는 남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 북악산을 진국백(鎭國伯)에 봉한 뒤 꼭대기에 각각 목멱신사와 백악신사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왕 뒤에 있는 북악산보다 왕이 마주보는 남산의 벼슬이 더 높았다.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던 목멱신사는 무학대사 화상을 모셨다고 해서 국사당(國師堂)이라고도 불렸다. 애국가 2절 노랫말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으로 시작하듯이 남산은 동해, 백두산, 무궁화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이자 민족혼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 남산을 일제는 철저하게 짓밟았다.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내쫓고 그 아래 일본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를 짓는가 하면, 을미사변 때 희생된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奬忠壇) 자리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위한 일본 절 박문사(博文寺)를 창건했다. 조선왕조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한양도성 성곽도 도로와 전차 길을 내고 근대 체육시설 등을 지으며 군데군데 허물었다. 한민족의 정기를 끊고 식민지 백성에게 패배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광복 후 신사 등은 철거됐지만 후암동 등지에 무허가 판자촌이 들어서고 호텔과 학교를 비롯한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자리 잡으면서 남산의 신음은 계속됐다. 한양도성도 한국전쟁으로 성문과 성벽이 파괴된 데 이어 인구 밀집과 도시 개발 등으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남산 훼손-일제는 과거완료, 미군은 현재진행
정부와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 모습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를 철거하고, 국가정보원과 수도방위사령부를 서울 외곽으로 옮겼다. 한양도성 복원 공사도 1975년 창의문과 숙정문 복원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청와대 경비를 위해 통행을 막았던 인왕산과 북악산을 차례로 개방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지 않는 돈의문(서대문)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등재 목록에 올랐으나 서울시가 자진 철회한 뒤 경기도, 고양시와 함께 북한산성, 탕춘대성과 묶어 다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2022년 12월 우선등재 목록에 올라 첫 관문을 통과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남산 제 모습 찾기와 한양도성 복원을 추진하면서도 캠프 모스 반환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캠프 모스를 이전하고 그 터에 있던 성벽과 봉수대를 복원하는 것은 남산 제 모습 찾기의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할 것이다.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제가 남산을 훼손하고 한양도성을 파괴한 것을 두고 분노와 비판을 퍼부으면서도 미군이 남산의 경관을 망치고 시민들의 통행권을 막아온 것에는 언급을 꺼려왔다. 일제의 행위가 과거완료형이고 미군의 행위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당당히 말해야 한다. 그동안 몰라서 말하지 못한 시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시 당국도 군사 보안 등을 들어 감추려고만 하지 말고 미국과의 협의 과정이나 훼손 상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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