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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한 나라들

by 무궁화9719 2023. 10. 26.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한 나라들

등록 2023-10-26 15:12수정 2023-10-26 15:27

지난 22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폭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엄청난 불행 뒤에는 엄청난 책임이 있다. 흔히 누구 책임인지 가리는 데 몰두하지만 골고루 나눠 가지고도 남을 책임이 있는 일도 많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근원적 배경이 그렇다. ‘유대인 문제’는 2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뿌리가 이렇게 깊은 갈등은 흔치 않다.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적인 공격 직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그 명단은 역사적 책임이 있는 국가와 민족들의 커밍아웃이라는 느낌을 풍겼다. 이들은 쌓이고, 얽히고, 뒤틀린 문제를 만들고 키우는 데 기여한 세력이거나 그 후예들이다. 2천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이 얼마나 살뜰하게 비극을 만들고, 지금도 이어지는 참극의 기반을 만드는 데 일조했는지 대략 살펴보자.
 
1번 이탈리아. 이 나라가 뿌리로 삼는 로마제국은 1세기에 더는 죽일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해 ‘유대인 디아스포라(이산)’라는 신화의 주요 장을 썼다.
 
2번 프랑스. 유럽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각지에서 추방당하고 학살당했다. 흑사병 시대에는 우물에 독을 탔다는 헛소문 탓에 도처에서 떼죽음을 당했다. 이 학살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1394년 샤를 6세는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
 
3번 영국.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후원했다. 특히 1917년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민족적 거처”를 마련하는 것에 찬동한다는 ‘밸푸어 선언’이 결정적이었다.
 
4번 독일. 반유대주의는 나치 홀로코스트로 절정을 이뤘다. 더는 유럽에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갔다.
 
5번 미국.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가장 먼저 승인했다.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돕는 한편 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한 국제적 비판과 저항에 맞서 보호막 역할을 해왔다.
 
서구가 이스라엘의 건국과 존립을 도운 것은 과거에 저지른 막대한 죄악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이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방식이었다. 히틀러가 유대 민족을 절멸시키려는 방식을 택했다면 다른 세력은 이들을 유럽 밖으로 내보내는 ‘인도주의적’ 해법을 택한 셈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전부터 제기됐다. 동아프리카로 보내자는 제안도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유대인들을 연해주로 보내 비로비잔 자치주를 만들었다.
 
유대인들은 결국 팔레스타인 땅을 택했고,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쫓겨났다. 그런 면에서 유럽은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했고, 유대인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유럽 기독교인들 죄악의 대가를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이 치르는 꼴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처럼 이스라엘인들도 끔찍한 희생을 겪는다.
 
이 비극에 역사적·도의적 책임을 느끼는 국가와 문명이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는 가자지구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를 주고 그곳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빵을 주겠단다. 이 무슨 해괴한 행태인가.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으라는 말인가.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만 양쪽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다시 적극 나서야 할 때다.ebon@hani.co.kr

‘가자 학살’ 이후의 세계 [아침햇발]

등록 2023-10-26 11:30수정 2023-10-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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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가자지구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부상당한 남성이 아기를 꼭 안은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칸유니스/AFP 연합뉴스
 
박민희ㅣ논설위원

2023년 10월18일은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쇠락을 상징하는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포옹하고,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지지했다. 같은 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자지구 구호품 전달을 위한 ‘인도주의적 전투 중지’를 촉구하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브라질이 제출한 이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14개국 중 미국이 유일했다.
 
다음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집트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 휴전을 촉구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스라엘의 대응은 자위권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온 것은 수십년 된 ‘관행’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 경쟁과 맞물리면서 길고 강력한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이중잣대’를 들이대면서 ‘두 개의 전선’ 모두에서 명분을 잃었다.
 
이스라엘 방문에서 돌아온 바이든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적들의 위협을 받는 민주주의’라 부르며 대규모 군사지원을 다짐한 것은 참으로 기묘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빼았고 가혹한 식민 지배를 해왔다. 미국은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과 학살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제재해왔다. 이스라엘은 벌써 20일째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의 물과 식량, 전기, 의약품 공급을 끊고 무차별 공습으로 6500명 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살해와 인질 납치에 함께 분노하고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어떻게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학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 정치가인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점령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지하면서, 중동에서는 우리를 계속 점령하고 있는 점령자를 지지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함께 막아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지키자며 동맹을 규합해온 미국 외교의 토대는 무너질 것이다.
 
둘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인 ‘글로벌 사우스’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즉각 휴전 촉구” 발언 이후 자이쥔 중국 중동문제 특사가 중동을 방문해 “민간인을 해치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면서 ‘중재자’로 나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후원자로 비판을 받아온 중국이 ‘피스메이커’ 이미지로 변신하고, 중동에서 친중국 여론을 넓히려는 계산이다.
 
중국이 자국 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무슬림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순이 분명하다. 중동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중동 국가들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중국의 능력과 외교력은 제한적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 미국의 위선에 대한 분노가 커질수록, 중국을 대안으로 받아들이려는 흐름은 확대될 것이다.
 
셋째, 미국 외교 정책이 국내 정치의 한계에 매몰되는 현실이 분명해졌다.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쟁터를 직접 누비는 외교전문가 바이든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친이스라엘 세력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외교·안보 담당자들은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편들기가 큰 역풍을 일으키고 미국의 외교 전략에도 심각한 손실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유럽연합 지도자들까지 연일 이스라엘의 과도한 행태를 비판하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지상전을 중단시키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존을 향한 대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없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세력과 유대인 로비단체의 막강한 영향력과 국내 정치적 이해득실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년 이스라엘에 33억달러(4조4335억원)의 군사 원조를 해왔으며, 이번 하마스 공격 이후 즉각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공격용 무기들을 아무런 제한 없이 공급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다. ‘하마스 제거’를 내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최대한 쫓아내고 가자지구의 땅을 차지하려 한다. 아니, 세계가 ‘지상전은 언제’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 민간인들이 죽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을 빼앗는 것을 막는 것이 국제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던 미국은 이 학살을 멈추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자지구 아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더욱 참혹한 지옥도를 만드는 데 무기와 돈을 지원하고, 분노에 불을 붙이면서, 그 고상한 ‘국제질서’가 도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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