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이득 보는 자가 진짜 ‘전범’이다
등록 2023-10-23 18:55수정 2023-10-24 02:37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미국의 대중동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 무슬림들이 21일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다시, 세계에 ‘전쟁의 도미노’가 시작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아프리카 국가들의 쿠데타, 중국의 영토 분쟁 그리고 이제 전선은 중동에까지 확대됐다. 지난 10월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통치 세력인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하늘만 뚫린 감옥”인 가자지구의 물과 전기, 연료마저 완전히 차단했다. 제주도 3분의 1 면적의 땅에 무려 230만명이 갇혀 사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어디로도 재앙을 피할 곳이 없다. 양쪽 민간인 사망자 수는 4천명을 넘었고, 지난 17일에는 가자지구 병원 폭격으로 500여명이 한꺼번에 숨졌다. 그런데 미국은 이스라엘에는 적극적인 무기 지원을 하는 반면,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촉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은 부결시켰다. 이 전쟁은 이미 “하마스 파괴”가 아닌 ‘가자지구 파괴’로 돌입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재차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칠 보복”과 “매우 긴 전쟁이 될 것”을 공언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은 총을 든 비즈니스”다. 대부분의 전쟁은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에 의해 벌어졌다. 이번 가자지구 사태를 ‘전면전’과 ‘장기전’으로 끌어가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에게도 자원 독점과 세계 패권 질서 재편의 의도가 깔려 있음을 주목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있는 동지중해 연안에는 엄청난 매장량의 천연가스가 있다. 이스라엘 전력 발전량의 70% 이상을 이 지역의 가스전이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자원 독점을 위해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박탈해왔다는 것이다. 1998년에 발견된 가자지구 해안의 ‘가자 마린’ 가스전에는 팔레스타인을 에너지 독립 국가로 만들고도 남을 매장량이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초대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는 가자 마린이 “신의 선물”이라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의 견고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2000년부터 팔레스타인의 가스전 접근을 금지했고, 가자지구 해안의 봉쇄 구역을 넓혀 왔다. 최근에는 미국의 후원을 받아 이스라엘-키프로스-그리스를 잇는 해상가스관까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해당 가스관은 유럽연합(EU) 수요의 10%가량의 천연가스를 운반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고 이스라엘산 천연가스 수입량을 늘리고 있다.
미국에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해안은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은 지난 9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인도와 중동(UAE·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유럽을 잇는 철도·해운 수송로 구축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선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 계획이다. 구간 중간에는 이스라엘 북부의 항구 도시 하이파가 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위험 요소가 있다. 하이파 남쪽에는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북쪽에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2020년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를 통해 그간 대립해온 아랍국가들과 ‘아브라함 협약’으로 수교를 맺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중동을 창조”하자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다. 따라서 적대적인 이슬람 저항 세력들만 최대한 약화시킨다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천연가스 자원 독점 및 물류 통제가 훨씬 더 수월해질 수 있다. 이런 시점에 가자지구를 완전히 파괴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드는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영토 분쟁의 관점에서도 이-팔 분쟁의 근본 원인을 만든 책임은 영국과 이스라엘에게 있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이 유대인 금융가 로스차일드에게 “유대 민족의 나라 건설을 지지한다”는 공개 서한을 보낸 ‘밸푸어 선언’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78%를 점령하고 75만명을 내쫓으며 1948년 건국됐다. 그로부터 무려 75년간의 점령이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불법 정착촌 건설로 점령지를 확대하고 거대한 분리장벽을 세우고 있다. 무차별 총격, 민간인 납치, 주택 철거와 추방이 일상이 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저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복되는 전쟁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지만, 이-팔 분쟁 해결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불법점령 종식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임을 끈질기게 말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패권 대결이 전 세계를 전쟁 속으로 몰아넣고 동북아시아로도 전선이 확대될 조짐이 있는 지금, 가장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부터 평화를 요구하는 세계 시민의 저항이 강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남부 칸유니스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앞에 모여 있다. 칸유니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6월 포린폴리시에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평화협정은 가치 없다’는 기고에서, 그 협상은 심각한 전략적 오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역내의 어떤 나라도 공격을 꿈꿀 수 없는 강대국이고,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 견제에 나서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미국의 우방 포트폴리오를 가장 망치는 나라들인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들의 안보를 챙겨주려고 외교·군사 자산을 낭비한다고 그는 비판했다. 미국은 두 나라가 수교하면 이들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합의를 무력화하는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해서 ‘이스라엘의 변호사’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사우디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과 러시아·중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고, 중동에서 러시아·중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스팀슨센터의 에마 애시퍼드 선임연구원도 세계정치평론(WPR)에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협상은 미국에 득이 안 된다’는 기고에서 “이 협상의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사우디 안보를 책임지고, 중국은 그 왕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남는 것”이라며 “이는 형편없는 거래”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월트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임으로써, 바이든과 블링컨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팔레스타인 봉쇄와 고립)를 공고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당신들이 서명한 모든 관계 정상화 합의는 (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소외와 분노, 팔레스타인 분쟁을 모르는 척하던 미국의 전략적 오류가 다시 중동 전체에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은 길을 잃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나자, 미국의 네오콘들은 9·11 테러와는 상관이 없던 이라크를 찍어서 침공했다.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타도되면 친미민주주의 도미노 효과가 중동에 퍼진다는 백일몽을 꿨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제거되자, 거대한 세력 공백이 생겨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슬람국가(IS)로 발전했다. 이란의 영향력도 커졌다. 이란의 동맹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던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러시아의 진출을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이란과의 국제핵협정을 파기하고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수교인 아브라함협정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승계·발전시켰다.
지금 중동을 보자. 팔레스타인 분쟁은 가자에서 벗어나 주변으로 넘쳐흐른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상군 침공을 감행하면,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세력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해 봉쇄하고는,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팔레스타인 봉쇄 강화를 위해서였으나, 이스라엘은 군사적·전략적으로 패배했다. 헤즈볼라는 가자의 하마스를 순망치한 관계로 생각하게 됐고,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개입할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재점화된 중동 역내의 분노에 놀란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중단하고,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을 냉대했다. 대신에 이란과 대화하며, 분쟁 확산을 막으려는 독자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러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미국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 중·러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시켜왔는데, 이번 사태가 발발하자 ‘친팔레스타인 중립’으로 돌아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중동 전쟁은 유럽에는 특히 악몽이다. 에너지와 난민이라는 사활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큰 줄기는 중동 탈출과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 대결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전운이 몰려온다. 미국 전략가 중 하나인 이보 달더 전 나토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만 방위에 대해 “우리는 걸으면서 껌을 씹을 수 있다”며 “세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글로벌 강대국이다”라고 자신했다. 미국의 그런 능력에 대한 자신보다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를 먼저 숙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 사흘째 지상작전…가자지구, 인터넷·통신 끊겼다 (0) | 2023.10.29 |
---|---|
비극을 중동으로 수출한 나라들 (0) | 2023.10.26 |
전쟁에 기름 붓는 미국, 제정신인가? (0) | 2023.10.25 |
가자지구, 전쟁 직전 이미 3천명 사상…툭하면 맞고 있었다 (0) | 2023.10.19 |
가자지구 병원 참사에 팔 대규모 항의시위…국제사회 분노 (0) | 2023.10.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