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소식 (평화란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외면한 ‘중동 평화’라는 허상, 전 세계를 흔들다

by 무궁화9719 2023. 10. 17.

팔레스타인 외면한 ‘중동 평화’라는 허상, 전 세계를 흔들다

등록 2023-10-14 10:00수정 2023-10-14 16:25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에서 짐을 챙겨 더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하고 있다. 가자시티 AFP/연합뉴스
 
중동은 다시 과거로 돌아갔는가? 그보다는, 숨겨졌고 가리고 싶던 현실이 폭로됐는가? 팔레스타인 분쟁이 중동분쟁의 핵심이고 그 해결 없이는 중동은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은 과거사인가, 아니면 숨겨진 현실인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면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번 사태는 2020년 9월15일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연합 및 바레인과 수교하면서 가시화된 중동의 새로운 역내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동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딴 아브라함조약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시켜, 중동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2020년 12월에는 이스라엘-모로코, 2021년 1월에는 이스라엘-수단 수교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급제동’
 
아브라함조약의 백미는 이슬람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이고, 이는 최근 급진전됐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9월20일 미국 폭스뉴스와의 회견에서 “(두 나라가) 매일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진지한 것 같다”며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거래”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가 추진한 아브라함조약은 애초부터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목표로 했고, 이는 중동의 지정학을 바꿀 대형 이벤트다.
 
아브라함조약은 이란의 이슬람혁명(1979년)부터 시작돼 미국의 이라크전쟁(2003~2011년)으로 완전히 바뀐 중동분쟁의 판도에서 나왔다. 그 이후 중동분쟁 구도는 사우디 중심의 수니파 아랍 세력 대 이란 주도의 시아파 연대 사이의 대결로 바뀌었다.
 
애초 전후 중동분쟁의 큰 축은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되면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분쟁이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이 1973년까지 4차례 전쟁을 벌였다. 그 이후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던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1979년에 수교했다. 바로 그때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발발했다. 시아파 이슬람공화국으로 변신한 이란은 미국의 동맹에서 이탈해,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왕정을 위협했다. 또, 아랍민족주의를 대신해 이슬람주의가 아랍 대중들을 휩쓸었다.
 
이란을 견제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몰락하자,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왕정 국가들은 이란을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중동은 ‘이란-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팔레스타인의 하마스’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 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대결 구도로 재편됐다.
 
수니파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시아파 연대에 낀 것은 팔레스타인의 고립과 분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집트 수교와 이란 혁명 이후 팔레스타인은 잊혔다. 1987년에 결국 팔레스타인에서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발발해, 이슬람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부상했다. 국제사회는 다시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재개해, 1993년 9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약속하는 오슬로협정이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이에 체결됐다. 그러나 가자와 서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는 오슬로협정서는 휴지 조각이 됐다. 이스라엘과 협상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서안에서 허울뿐인 자치정부를 구성했고, 이스라엘을 부정했던 하마스는 가자에서 둥지를 틀었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팔레스타인 분쟁 잊히고 협상카드로만

지난 1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고 가자를 봉쇄하는 정책으로 선회했다. 팔레스타인 분쟁을 가자에 가둬두는 정책이다.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도 하마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주적이 된 이란 및 연대 세력들이 가자의 하마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2006년부터 가자에서는 이스라엘이 침공하는 4차례의 전쟁을 포함해 17년 동안 분쟁이 계속됐다. 3500명이 죽고, 1만5천명이 다쳤다.
 
서울의 절반 크기에 220만명이 봉쇄된 삶을 사는 가자는 창살 없는 감옥, 노천 감옥,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다. 그런데도 서방, 아랍 국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분쟁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봉쇄 상황에서 분쟁과 전쟁이 가자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2018년 출범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란과의 국제핵협약을 다시 파기하고,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와의 동맹을 다졌다. 사우디도 이제 이란을 견제하는 데 이스라엘과 손잡을 생각을 했다. 이는 아브라함조약으로 추진됐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스라엘과 수교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내세웠으나,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다른 것을 따내려는 카드로 사용했다.
 
이란은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수교를 회복했으나,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는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였다. 미국이 사우디에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데다, 수교가 되면 이스라엘은 이란을 거침없이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지난 4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하마스 대표단은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만나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의 축”으로 양자 협력을 논의했다. 8월 말 하마스의 2인자 살리흐 아루리는 레바논 언론과 한 회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극우 정권 출범 이후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이스라엘 쪽의 도발을 지적하며 “우리는 전면전을 준비한다”며 “모든 관련 당사자들과 이 전쟁의 전망을 긴밀히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난 7일 방송에서 “저항자들 앞에서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실체는 어떤 안전 보장도 해줄 수 없다. 당신들(아랍 국가들)이 이들과 서명한 모든 관계 정상화 합의는 (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마스에 공격당하는 이스라엘과 수교해봤자, 중동분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을 뺀 중동평화 노력은 무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2일 하마스가 잡아간 이스라엘 인질들을 석방할 때까지 가자에 전기·가스·물 등을 전면 차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은 ‘불에 달궈진 돌멩이’인 가자를 삼켜야 한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외면한 대가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중동과 세계 전체에 미칠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이란, 이스라엘에 경고장…“폭격 계속하면 새 전선 열릴 것”

등록 2023-10-13 14:47수정 2023-10-14 01:24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지난 11일 테헤란에서 핵과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란의 외무장관이 레바논과 이라크를 방문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폭격을 계속한다면 새 전선이 열릴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12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왼쪽)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해 시아 알수다니 이라크 총리(오른쪽)과 회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이란 외무장관은 12일(현지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과 가자 지구의 물과 전기를 차단하는 것은 전쟁 범죄”라고 이처럼 발언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 범죄가 계속되면 나머지 ‘축’들로부터 대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이 나머지 ‘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란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같은 시아파인 헤즈볼라 그리고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에 속하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왔다. 아미르압돌라히안이란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과 레바논과의 관계를 과시하며 “시온주의 단체(이스라엘)와 그 지지자들이 이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도 말했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이후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모든 시선은 이스라엘 북쪽 국경에 있는 헤즈볼라에 집중되고 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헤즈볼라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참여하는지에 따라 중동 정세를 재편할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뉴라인정치전략연구소’의 분석가 앤서니 엘고세인은 에이피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심각한 무력 충돌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한쪽이 오판하고 일반적 교전 규칙을 넘어선다면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 공격 없이도 확전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지만, 서방은 오랜 기간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이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중동 국가들과의 연대에 힘쓰는 모양새다. 아미르압돌라히안이란 장관은 12일 오전 이라크도 방문해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이라크 총리와도 회담했다. 이라크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곳이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은 “일부 국가들에서 우리에게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새 전선을 열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왔다”며 “우리는 미래에 관한 모든 가능성이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해 “모든 이슬람 국가와 아랍 국가들이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온주의 정권의 범죄를 저지하는 길에서 진지한 협력에 도달할 것”을 호소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가자지구 전면봉쇄 반대…집단처벌은 부당” 미국과는 다른 EU

등록 2023-10-11 17:54수정 2023-10-12 02:30

중·러, 이스라엘-하마스 양쪽에 자제 요구
EU “이, 지상 방어권 있지만 국제법 지켜야”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이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맨발 상태로 긴급 대피하고 있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후 이스라엘의 보복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자지구/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한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러시아도 양쪽 모두의 자제를 당부하며 팔레스타인 갈등의 최종 해결책으로 ‘두 국가 해법’을 재차 강조하는 등 ‘중립’을 유지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적극 지원’ 입장을 밝힌 미국과 가자지구 봉쇄에 반대하는 유럽연합, 중립을 고수하는 중국·러시아 등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모습이다.
 
주제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0일(현지시각)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 유럽연합 27개국 외교장관 비공식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심각한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다시 한번 규탄한다”며 “이스라엘이 지상에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확실히 있지만, 이는 국제인도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하마스의 “테러 행위”가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다”면서도 이스라엘이 국제법에 따라 가자지구에 “식량·물·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앞선 9일부터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식량·물 등 생필품의 공급을 차단하고 있다. 보렐 대표는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을 만나서는 회원국들 중 “압도적 다수”가 유럽연합이 해오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원조 지속에 동의했다며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집단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전날 물·식량·전기 차단은 “매우 고통스러운” 행위라며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10일(현지시각)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 유럽연합(EU) 27개국 외교장관 비공식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고립’ 상태에 빠진 러시아는 이번 비극을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0일 ‘러시아 에너지 주간’ 포럼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무함마드 수다니 이라크 총리와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에서 만나 이 갈등이 “중동에서 미국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독점하려고 했고, 실행 가능한 타협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처럼 평가하는 근거로 “서방은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근본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를 만들어 공존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1993년 ‘오슬로 합의’를 통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경계선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된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합의했다. 하지만 2014년 이후 평화협상은 열리지 못하는 중이고, 합의 내용도 사실상 사문화됐다. 유럽연합과 중국 역시 이번 충돌 이후 ‘두 국가 해법’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김미향 기자 zone@hani.co.kr

이스라엘, 가자지구 원천 봉쇄 “인질 석방 때까지 수도·전기 차단”

등록 2023-10-12 11:37수정 2023-10-13 10:49

유일한 발전소 멈춰 ‘생존 벼랑’
팔 “민간인 학대 최악의 범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보안 요원이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다친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다. 가자시티/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모든 인질을 석방할 때까지 가자지구의 물·가스·전기 등 생필품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220만여명에 이르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피할 곳도, 탈출할 곳도 없다”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시 비상 내각을 꾸린 이스라엘 정부는 봉쇄 강화를 외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12일(현지시각) 인질들이 석방될 때까지 가자 봉쇄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에너지부 장관은 12일 엑스(트위터)를 통해 가자지구에 “어떠한 전력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물 공급 파이프도 열리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연료 트럭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과 세계에 위협이 되는 하마스가 제거될 때까지 봉쇄를 계속 강화할 것”이라며 “누구도 우리에게 도덕을 설교할 수 없다”고 적었다.
 
가자지구 에너지청은 이날 성명을 내어 “가자기구에 있는 유일한 발전소가 이날 오후 2시 가동을 멈췄다”고 밝혔다고 알자리라 방송 등이 보도했다. 에너지청은 “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가자지구 전체가 암흑에 빠져들고 전력에 의존하는 생활 필수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런 재난 상황은 가자지구 주민 전체를 인도주의적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너지청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은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학대하는 현대사 최악의 범죄”라며 국제 사회에 “인륜에 반하는 범죄와 집단 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한 행동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가자지구와 자국 사이에 분리 장벽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통행을 제한해왔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엔 주민의 통행을 아예 금지시켰다. 이어 9일에는 전기·가스·수도·식량 공급을 차단하는 등 완전한 봉쇄를 선언했다.
 
 
전력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병원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현지 활동 요원 마티아스 케네스는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의 발전용 연료가 3일치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가자지구에서 운영하는 두개의 병원 모두에서 수술 장비와 항생제 등 의약품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병원의 재건외과 의사인 가산 아부 시타는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가 50명에 이른다며 “우리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중으로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호단체 적신월사는 다른 병원들의 발전기들도 앞으로 5일 내에 연료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사업 기구(UNRWA)의 타마라 알리파이 대변인은 25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피란처를 찾아 유엔이 세운 학교들로 몰려들고 있다면서 구호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유엔에겐 약 18만명에게 12일 동안 식량과 식수를 제공할 여력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호사업 기구의 현지 부 책임자 제니퍼 오스틴은 “도로가 막히고 전화도 끊겼으며 통신망도 폭격으로 차단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며 “난민들을 돕기 위해 다른 난민들의 손에 의존하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학교로 몰려든 주민 가운데 일부는 건물이 폭격으로 무너질 것을 우려해 밖에서 뜬눈으로 지새우는 등 주민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고 전했다. 4명의 자녀를 둔 야멘 하마드(35)는 “과거에도 전쟁과 급습을 겪으며 살았지만, 이번 전쟁만큼 끔찍한 사태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국경에 가까운 북부 지역에 살던 알라 알카파르네흐(31)는 안전한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7일 임신한 아내와 자신의 아버지 등 가족들과 국경에서 더 먼 해변가 난민 캠프로 갔으나 그곳도 폭격을 당해 또 다시 피란에 나섰다가 10일 폭격으로 모두 숨졌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을 피했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한탄했다.
 
유엔과 이집트는 인도주의적 지원에 필요한 통로 개방을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생명을 구하는 데 중요한 필수품 공급이 허용되어야 한다며 “즉각적이고 방해 받지 않는 접근이 당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시민들은 보호받아야 한다. 가자 주민의 대규모 탈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집트 보안 담당 관리는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라파흐 검문소 근처에서 식량과 연료 수송대가 대기하고 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한겨레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섹션별 뉴스 기사, 포토, 날씨 정보 등 제공.

www.hani.co.kr

 

 

🤟 <S-레터>를 구독해주세요.

🎧 주말 뉴스를 정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한겨레> 토요판부가 만드는 뉴스레터. <한겨레 S-레터>에서 토요일 배달되는 신문 수많은 콘텐츠를 손쉽게 볼수 있습니다. <한겨레 S-레터>에는 뉴스

page.stibee.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