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시작 수산물시장 직격탄…손님 끊기고 일부 사재기 상인 "IMF, 코로나보다 힘들어" 걱정에서 불만으로 "중국은 수입 거부, 우리는 뭐하나?"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이후 손님이 끊긴 안양 수산물 도매시장. 정성욱 기자
"어제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 뒤로 손님이 뚝 끊겼어요."
25일 낮 12시쯤 경기도 안양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정진수(70)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장을 보기 위해 찾은 손님들도 붐빌 시간이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매대 앞에는 손님 대신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상인들만 하염없이 서 있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면서 시장을 찾는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정씨는"어제 십수년 다닌 단골손님이 와서 쟁여두겠다며 생선 20만원어치를 사갔다"며 "단골도 이 정도인데, 일반 손님은 어떻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 손님들이 오긴 하는데, 대부분 가격만 물어보고 돌아가고 있다"며 "손님이 안 오니 상인들도 다 앉아있다"며 시장 한편을 가리켰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한 둘째날인 25일 안양 수산물 도매시장 모습. 손님들이 찾지 않자 일부 상인들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정성욱 기자
정씨네 가게는 입구쪽에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시장 구석 쪽 가게로는 손님이 오지 않아 업주들은 반쯤 포기하고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상인 한민수(58)씨는 "보통은 여름 휴가철부터 매출이 붙기 시작해 추석 연휴까지 꾸준히 늘어난다"며 "하지만 오염수가 방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출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드문드문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오염수가 국내로 도착하기 전에 미리 수산물을 사기 위해 시장을 방문했다. 이안나(66)씨는"오염수가 방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금이나 간장은 이미 많이 사놨다"며 "이제 생선을 사두려고 오늘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야 이미 나이가 들었지만, 앞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수산물 금지하는데…우리 정부는 왜"
25일 수원 수산물 도매시장에 진열돼 있는 생선. 정성욱 기자
이처럼 원전 오염수 방류로 수산물 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상인들의 걱정은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20년 넘게 수산물을 판매한 김모(58)씨는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게 알려졌을 때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방류를 하고 나니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김씨는 "결국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방치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라며"중국은 곧장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눈치만 살살 보고 있으니까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다른 상인 박모(50)씨는"과학, 과학 소리만 하고 있는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뭘 알겠나"라며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염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언론이 자꾸 불안감을 만들어서 먹고 살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국민으로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진화 나선 정부 "국민 건강 영향 없도록 조치할 것"
이같은 우려와 불신이 이어지자 정부도 연일 진화에 나서고 있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우리 정부는 도쿄전력 등이 제공하는 실시간 데이터, 외교·규제당국 간 이중의 핫라인 등을 통해 방류 상황을 점검 중"이라고 밝혔다.
박 차장은 "모니터링 상황을 지속 주시하고국민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적시에 최선의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민생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오염수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24일 오전 11시께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종합어시장.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던 곳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때문에 사실상 개점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승욱기자
24일 오전 11시께 수도권의 대표적 수산물 시장인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 종합어시장은 이미 ‘폐장’을 한 듯 썰렁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상인들은 “국내산이요, 1㎏에 1만원” 등을 외치며 호객행위를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손님이 있는 가게보다 손님이 없는 가게가 더 많았다. 일부 점포는 아예 불을 끈 채 시작도 하지 않은 영업을 접었다.
포구 인근 횟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 다 됐지만, 상당수 가게는 파리만 날렸다. 일부 횟집은 아예 영업을 접고 가게 앞에서 수산물만 팔았다.
이곳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ㄱ씨는 “그동안 꽃게 바꿔치기 등 다른 논란도 많았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선 손님이 정말 많이 끊겼다”며 “아무리 평일이라도 이 시간에 이렇게 손님이 없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수산물을 판매하는 최정순(60)씨는 “오염수를 방류도 하지 않은 며칠 전부터 손님마다 ‘안전한 수산물이냐’고 묻고 또 묻는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일본에 반대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꽃게 등을 파는 50대 상인 ㄴ씨도 “새벽 6시에 문 열어도 손님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 11시가 다 돼 개시했으니 말 다한 것”이라며 “이제 장사는 틀렸다”고 했다.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24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종합어시장에서 시름에 쌓인 한 상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개시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인천지역 정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오염수 방류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천시의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일관계를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던 일본이 핵 오염수 해양 투기로 양국 관계를 후퇴시키고 세계의 민폐국이 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주판알만 튕기며 핵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해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지역연대·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민주노총인천지역본부 등도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바다를 핵폐기장화 하려는 일본 정부의 핵 오염수 해양 투기 결정과 이를 방조하고 용인하며 공범이 되길 자처한 윤석열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이승욱 기자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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