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나이스 먹통·오류에 정답 유출까지
“사전 시연 요구했는데, 무리한 도입”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연합뉴스
“시험은 차분하게 출제해도 오류 발생 가능성을 무시 못해요. 당장 시험이 다음주 수요일(28일)인데, 이렇게 촉박하게 고치다가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지난 21일 개통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4세대 나이스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교육 현장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답안지 유출 우려까지 커지면서 교사들은 1학기 기말고사를 코앞에 두고 시험 문항과 보기의 순서를 뒤섞는 중이다. 시험 일정까지 연기한 학교도 나왔다.
앞서, 교육부는 교육정책의 변화와 태블릿·스마트폰 등 이용환경 변화를 반영해 총 2824억원을 들여 4세대 나이스 시스템을 구축해 지난 21일 개통했다. 나이스 시스템은 학생의 성적과 생활기록, 출결사항, 교원의 인사정보 등을 입력·관리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시험 답안지 입력과 출력도 이뤄진다. 그런데 개통 첫날부터 업무 집중 시간대에 시스템 속도가 느려지는 등 접속 오류가 속출했고 급기야 지난 22일 서울과 경기 지역 일부 학교에선 과목별 답안지를 출력하는 중 다른 학교의 답안지가 출력되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부는 같은날 답안지 인쇄 기능을 중지하고 시험 문항과 답안의 순서를 변경해달라는 공문을 전국 초·중·고교에 보냈다. 교육부는 이날 장상윤 교육부 차관 주재로 ‘4세대 나이스 개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총 10건의 오류 사례가 접수됐다”며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출력물을 생성해주는 소프트웨어에 부하가 걸려 오작동했다”며 “동일한 시점에 출력 요청이 들어오면서 회신을 하는 과정에서 헷갈려서 (답안지를) 잘못 전송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중·고교 성적처리 기간인 6월 무리하게 시스템을 개통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교사노조는 “사전에 개발된 화면시스템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연을 지속적으로 교육부에 요구했으나 끝내 받지 못했다”며 “시행 시기가 성적처리 기간에 맞물려 학교 현장의 혼란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강력하게 전달했으나 사전 오류 테스트를 하겠다며 거부했다. 결국 평가와 성적에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켜 기말고사를 앞둔 중고등학교에서 시험 문항을 재배치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실천교육교사모임도 “수천억이 들어간 학교 프로그램이 개통하자마자 먹통에 들어가고 정답 유출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안사고까지 터지고 말았다”며 “가장 바쁜 학기말 성적 처리 시즌에 불완전한 프로그램을 개통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번 일이 발생하기 전부터 학기말 업무처리 기간을 피해서 개통할 것을 요구했다"며 "4세대 나이스의 전면 중단, 대통령의 사과, 교육부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26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이주호 부총리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발표
절대평가 고교학점제로 자사고로 상위권 쏠림 불가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넷째)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자사고는 이 부총리가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임 때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도입됐다. 당시 고등학교 체계를 특목고·자율고·일반계고·특성화고로 정비하자, 고교 서열이 고착화하고 입시 경쟁으로 인한 사교육이 팽창하는 등 부작용이 뒤따랐다. 문재인 정부 땐 자사고·외고·국제고를 2025년에 일괄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을 밝혔다. 이 부총리도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고교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날 발표에서 “고교유형 단순화는 공교육의 다양성과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제한하며, 소모적 서열화 논쟁으로 고교교육의 혁신을 저해한다”며 고교다양화 정책으로의 회귀를 공식화했다.
교육계에선 자사고·특목고 존치와 공교육 강화는 모순적 정책이란 반응이 나온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한겨레>에 “공교육 약화와 사교육 폭증의 몸통이 되는 상대평가와 고교 서열 체제를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자사고·특목고를 존치한다는 건 진단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여기에 절대평가를 하는 고교학점제가 2025년에 전면 시행되면, 상위권 학생들의 자사고·특목고 쏠림 현상이 더욱 심각해지고 결국 일반고 황폐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자사고 등 존치는 ‘킬러 문항 없애 사교육 잡겠다’는 당정의 방침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자사고·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입시 전형에서부터 진학 이후까지 상위권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며 “(킬러 문항을 없애) 사교육을 잡겠다면서도, 핵심적인 사교육 유발 요인인 자사고·특목고를 그대로 두겠다는 건 이중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5000원이지만 자사고 진학을 준비하는 중학생은 월평균 69만여원, 외고·국제고 진학 희망 중학생은 64만여원을 사교육비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도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면 월평균 33만여원, 자사고는 57만여원, 외고·국제고는 53만여원을 사교육비로 쓴 것으로 집계됐다.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자사고 놔둔 채 고교학점제 ‘절대평가’…일반고 학생들 어쩌나
등록 2023-06-21 18:00수정 2023-06-21 21:02
자사·특목고에 ‘플러스알파 작동’ 우려 커

지난해 11월 서울 경복고등학교에 마련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안에서 평가 방식을 고1 공통과목은 9등급 상대평가, 고2·3학년은 절대평가(성취평가 방식)라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현재 고교 내신 평가에서 1학년은 A~E등급 성취평가와 9등급 상대평가 병행 실시, 2·3학년은 성취평가만 시행하는데, 대체로 이 같은 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애초 전문가들 사이에 맞춤교육이라는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게 고1~3학년 전체에 절대평가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내신 공정성 확보와 대입 변별력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육부가 이날 자사고·특목고 폐지 방침을 뒤집고 ‘존치 방침’을 공식화함에 따라, 고교학점제의 절대평가 방식이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에게 플러스알파로 작동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상대평가 제도에서 일반고 학생들은 자사고·특목고 학생들과 견줘 내신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했는데, 이를 절대평가로 바꾸면 입시에서 결국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란 지적이다.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킬러 문항’ 없애 ‘암기형 수능’되면 사교육이 번성한다
등록 2023-06-21 16:39수정 2023-06-22 02:05

윤석열 대통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난이도를 지적한 뒤 교육부 대입국장 교체, 출제기관 감사 등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이 화제다.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라 불리는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을 수능에 출제하지 말라는 요지다. 이를 두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당장 수능이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이러한 변경을 요청한 것이 당황스럽다는 입장과, 수능의 변별력 상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따르더라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에 있다. 오히려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저 둘이 사라졌을 때 사교육은 더욱 번성하리라고 예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을 없애면서도 변별력을 유지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이 두 유형을 없애면서도 변별력을 유지하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비문학이 사라진 ‘국어 영역’은 문학이 새로운 ‘킬러 문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어렵게 나오게 되면, 학생들은 교과서와 연계 교재의 문학 작품들을 전부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문학의 ‘해석’을 어렵게 묻게 되면,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과도한 해석이 개입해 복수 정답 시비도 뜨거워질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바람직한 수능이 아니다. 비문학이 암기로 해결되지 않는, 학생들의 독해력과 이해력을 묻는 영역이었던 것과는 상반된다.
애초에 저 두 유형을 없애면서 변별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수능이 변별력을 잃게 되면 수시가 수능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거나 ‘대학별 본고사’가 재림할지도 모른다. 수시의 공정성과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이는 바람직한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대학별 본고사가 등장하게 되면 이를 공교육으로 대비하기는 불가능하다. 각 대학은 기출 문제나 채점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문제 은행’을 보유한 대형 사교육 업체의 입지는 훨씬 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1일 경북 구미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연 ‘인재양성 전략회의’에서 “암기형 인재가 아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창의적 수능’이 아닌 ‘암기형 수능’을 만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문학과 융합형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에는 정말 암기형 문항만 남게 된다.
시급하게 고칠 것은 수능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능을 대하는 우리 사회에 있다. 수능이 사라지더라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대학으로 사람을 가르고 평가할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인생이 망할 것처럼 말하고, 의대만 가면 인생이 성공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세태에 대한 해결책 없이, 당장 건드리기 쉬워 보이는 수능만 손대는 것은 본말전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조치대로 ‘암기형 수능’이 도래한다면 ‘창의적 인재’의 등장만 더욱 요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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