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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부디 영면하소서"…'노동시민사회장' 양회동 열사 잠들다(종합)

by 무궁화9719 2023. 5. 1.

"부디 영면하소서"…'노동시민사회장' 양회동 열사 잠들다(종합)

분신 51일만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양회동 열사 발인식 엄수
"노동존중 참세상으로 가세"…경찰청 앞까지 2시간 가량 운구행진
오전 11시 노제 진행…"염원을 이루겠다" 다짐
서울 세종대로서 영결식 진행…야6당 대표·노동시민단체 참석

건설노조 고 양회동 열사의 장례절차가 시작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양 열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장례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양 열사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황진환 기자

정부를 향해 과도한 '건폭몰이' 수사 등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故) 양회동(50) 열사의 발인식이 서울 도심에서 엄수됐다.
 
노동절이었던 지난달 1일 분신했던 양회동 열사가 다음날인 2일 끝내 숨진 이후 50일 만에 발인이 이뤄졌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장례위원회(장례위)는 2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일대에서 양 열사의 영결식을 치렀다.

오전보다 빗줄기가 거세졌지만 시민들은 영결식에 참석해 양 열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상임장례위원장인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는) 자신은 생계를 위해 대출을 받아도 조합원 고용이 행복이었던 사람이었다"며 "그의 행복이자 자부심이었던 조합원 고용은 정권에 의해 공갈로 협박으로 매도당하고 짓밟혔다"고 분노했다.

이어 "양회동 열사의 억울함을 푸는 길은 윤석열을 끝장내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을 끝내는 것에 멈추지 말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자"며 양 열사의 유지를 받들자고 호소했다.

정치계·종교계 등 사회 각계 인사들도 영결식을 찾아 고인을 향해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향한 열사의 꿈을 살아남은 우리가 함께 이뤄가겠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그의 영정 앞에 오늘 놓은 한송이 국화꽃을 노동존중 사회의 환한 들꽃으로 피어나게 만들자"며 "고인의 유가족이 외롭지 않게 손을 잡겠다"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네거리로 운구행렬이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에헤 에헤, 에헤에야. 못 가겄네, 못 가겄어. 인간 대접 받고 싶었을 뿐인데, 양회동이 억울해서 못 가겄네. 서울시민 여러분, 건설 노동자도 집에 가면 평범한 아빠, 남편, 우리 이웃인데."

21일 오전 비 내리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상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흰 삼베 옷을 입고 트럭에 오른 선소리꾼의 상여 소리 뒤로 검고 긴 장례 행렬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부터 종로, 경찰청 앞을 지나 서소문로, 세종대로로 이어졌다.

수천 명의 건설노동자들에게 둘러싸인 운구차는 걱정스런 얼굴로 지켜보는 종로 귀금속 거리의 상인들, 담배를 문 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태평로의 양복쟁이들 앞을 천천히 지나쳤다. 차도 위에서 클랙슨을 울리며 욕을 해대는 자동차들, 서소문 고가 밑 누워 자는 노숙자들을 지나갔다. 덕수궁 앞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맞딱뜨렸다.

상여 행렬 맨 앞의 운구차 안에는 지난 5월 1일 노동절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하루 만에 숨진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시신이 누워있었다. 유가족들은 3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양 지대장 뒤를 따라 걸었다. 양 지대장이 사망한 지 50일만인 이날에서야 노동시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영원한 빛을 내리소서"... 운구차에 실린 아빠 보며 엉엉 운 자녀들
 

양 지대장이 안치돼있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건설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오전 8시 발인 미사에서 흰 옷을 입은 신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나쁘고 비참한 것은 약자들의 평범함에,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삶에 있지 않다"라며 "정녕 나쁘고 비참한 것은 평범함을 상대로 불의를 일삼는 권력에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사과하지 않으며, 되레 불의를 당한 이들을 겁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쁘고 비참한 것입니다. 주여, 억울한 이들의 피를 소중히 여겨 주소서. 오늘의 빗속에서도 양회동 미카엘에게 영원한 안식과 빛을 내려주소서. 아멘."

상복을 입은 양 지대장의 부인은 성호를 긋고 아멘을 되뇌며 오열했다. 차분한 표정으로 감정을 추스르던 중학생 쌍둥이 자녀는 운구차에 아버지의 시신이 실리는 걸 보고서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장례 행렬 중간에 끊은 경찰... "마지막까지 이러냐"

 

https://youtu.be/o8GmovJkAYU

 

운구는 오전 9시께 시작됐다. 장례식장을 빠져 나온 행렬은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으로 향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200일간 1계급 특진 포상을 걸고 대대적인 건설노조 수사를 벌여왔다. 양 지대장 역시 경찰 수사를 받다 분신했다. 노조활동 일환으로 건설사에 조합원 고용과 노조 전임자를 요구한 것이 '공갈' 혐의를 받았다. 양 지대장은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 "먹고 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다. 윤석열 검사독재 정치에 제물이 됐다"고 썼다.

장례 행렬 도중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서였다. 앞서가는 상여 차량과 운구차를 먼저 보낸 경찰이 갑자기 뒤따르는 건설노동자들의 행진을 제지하면서 상여 행렬이 중간에 끊어진 것이다. 앞에 있던 유가족들과 노동자들이 돌아와 "마지막까지 이러냐"고 강하게 항의한 뒤에야 경찰은 길을 비켜섰다. 일부 충돌이 있었지만 큰 몸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창경궁 앞 장례식장부터 서대문구 경찰청까지 행진은 두 시간이 걸렸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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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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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앞에서 노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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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건설노동자들은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허근영 건설노조 사무처장은 "이곳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충견을 키우는 곳, 양회동 열사를 죽게 만든 강압수사의 총본산인 경찰청"이라고 했다. 양 지대장의 친형이자 상주인 양회선씨는 한참이나 경찰청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유가족들과 건설노조는 그간 정부의 공식 사과와 윤희근 경찰청장의 파면 등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뤄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동지만 보내고... 쌍둥이 아이들에게 알려질까 무섭다는 게 그저 푸념이 아니었는데. 평생 지킨 아빠의 자존감이었는데. 그걸 몰랐습니다. 그날 악수가 작별의 악수였음을 몰랐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양 지대장의 동료 김정배 강원건설지부 지부장이 경찰청 앞에서 추도사를 읊었다. 마이크를 쥔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유가족, 영길식서 "원희룡 장관 발언 가슴 찢어졌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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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엄수된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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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 행렬은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멈춰 섰다. 오후 1시, 다시 굵어진 빗줄기 속에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양회동 동지는 우리에게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자존을 지킬 수 없다고 온몸으로 보여줬다"라며 "양회동 동지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영결식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6개 정당 대표들도 참석했다.

양 지대장의 형 양회선씨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언급했다. 양씨는 "세상에 남아있지도 않은 동생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라며 "얼마 전 원희룡 장관은 제 동생의 죽음을 두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양씨는 "그 순간 저희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 소식을 들었던 순간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고인의 친형 양회선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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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생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지키며 살아왔는데, 왜 비난 받아야 할까요. 정권의 말을 들으면 국민이고 다른 의견을 가지면 죽음도 외면 받아야 하는 겁니까."

젖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자리를 깔고 앉은 건설노동자들은 비를 맞으며 훌쩍였다. 노동자들은 "양회동을 살려내라", "윤석열 정권 퇴진하라", "건설노조 탄압 중단하라"를 외쳤다. 유가족과 노동자들은 눈물을 닦으며 마지막으로 영정에 흰 국화꽃을 바쳤다.

이윽고 곳곳에서 울음 소리가 났다. 양 지대장의 쌍둥이 자녀가 쓴 편지가 대형 화면에 송출되면서였다. "아빠, 열심히 살게. 미안해. 고마워"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차는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떠났다. 

[관련기사] 양회동 쌍둥이 자녀의 편지 "나 요즘 아빠 꿈을 조금씩 꾸고 있어"
https://omn.kr/24h2i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된 가운데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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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쇠고기 사 먹이고 분신…한 달마다 실직하는 현실 끊도록

등록 2023-05-15 12:30수정 2023-05-15 22:15

[한겨레21] 검찰 수사에 분신 저항 양회동 건설노조 지대장
1년 10번 실직하는 현실이 낳은, 월 100만원 떼는 ‘똥떼기’

2023년 5월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분신해 치료 끝에 숨진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양회동씨의 빈소가 5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조문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0여 명의 ‘머리띠 부대’가 병원 앞 광장을 순식간에 메웠다. 상복 대신 이마에 검정 머리띠를 질끈 묶고서 손에는 저마다 노란 촛불을 들고 있다. 머리띠의 글자는 ‘열사 정신 계승’. 2023년 5월1일 노동절에 목숨을 끊은 건설노동자 양회동(50)씨의 동료들이다.
 
양씨의 빈소는 5월4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동료들은 그곳에서 매일 밤 촛불추모제를 연다. 첫날 추모제 단상에 오른 양씨의 동료가 외쳤다. “정부는 어찌 건설노동자들을 삥이나 뜯고 다니는 시정잡배 취급합니까.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합니다!”
 
그날 양씨는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했는데 공갈이라고 한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지역 간부로서 조합원 채용 요구와 관련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한겨레21>이 노동조합 장례가 치러지는 서울대병원을 찾아 양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소개료 ‘똥떼기’ 끊으려 시작한 노조

화려한 꽃에 둘러싸인 남자의 표정은 결연하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이마에 두른 빨간 머리띠에는 ‘단결·투쟁’이라 쓰였다.
 
“(사진처럼) 그렇게 진지하고 엄숙한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 웃겨주는 거 좋아하는 개구쟁이 형이고요. 추모제도 이렇게 진행하는 거 안 좋아할 텐데….”
 
양씨와 함께 강원건설지부 노조 활동을 한 김현웅 사무국장이 말했다. ‘양회동 열사 추모 촛불문화제’의 사회를 맡은 그는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자제하고 차분하게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이러면 형이 좋아하려나 모르겠지만” 하고 덧붙였다.
 
양씨는 철근공으로 평생을 살았다. 아내와 강원도 속초에 살며 두 자녀를 키웠다. 건설노동자로 일한 지는 오래됐지만 건설노조에 가입한 것은 마흔이 넘은 2019년 10월이다.
 
노동절인 2023년 5월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분신해 치료 끝에 숨진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양회동씨의 빈소가 5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노조를 꼭 신념으로만 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건설 쪽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중간착취가 워낙 심한데 노조 하면 처우가 훨씬 나으니까, 생계 때문에 오는 경우도 많죠.”(김현웅 사무국장)양씨도 그랬다. 속칭 ‘오야지’라는 일감 소개업자가 불법 재하도급을 알선해 한 달에 100만원가량의 임금을 떼어갔다. 이른바 ‘똥떼기’다. 똥떼기가 유독 심하던 소개업자 밑에서 일하다 그는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불법’ 없애자고 시작한 채용 창구

그리고 2년여가 지난 2022년 1월, 자신이 활동하던 영동 지역의 노조 대표를 맡았다. 그 이름도 긴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속초·고성·양양·강릉 담당)이 양씨의 직함이었다. 양씨와 간부들의 노력으로 영동 지역 조합원은 1년여 사이 50여 명에서 17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 일로 양씨는 ‘모범조직상’을 받았다.
 
노조 지대장의 주요 임무는 조합원의 일감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용직이 대부분인 건설노동자는 1년에 열 차례 내외로 구직한다. 짧으면 2주, 길면 2~3개월 일하고 실직한다.
 
일감이 이어지지 않으면 생계를 위협받는다. “일 있을 땐 쓰고 없을 땐 쓰레기처럼 내버리는”(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구조다. 자연히 불법 재하도급과 중간착취가 판친다. 둘 다 건설산업기본법과 근로기준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행위지만 사실상 감독이 안 돼 불법이 성행한다.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 창구를 도맡은 건 ‘불법’을 없애보자는 고육지책이었다. 노조 간부들이 조합원을 대신해 일감을 구하고 ‘오야지’가 받던 소개료를 조합원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유급휴일수당 등 그간 무시됐던 법적 권리의 보장도 이끌어냈다.

“나 억울한 건 내가 탄원서 쓰면 돼”

양씨 성격상 일이 잘 맞지는 않았다. 동료들은 양씨가 “싫은 소리 하길 어려워하”고 “식당에 가면 먼저 모자란 반찬을 나르는 유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양씨는 꾸준히 공사현장을 돌았다. 다음 일터가 정해지지 않았을 때 건설노동자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지 양씨 역시 노조에 오기 전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양씨의 집 앞으로 경찰의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양씨의 노조 지대장 활동이 폭력행위 등 처벌법에 의한 ‘공동공갈’이라는 내용이었다. ‘공갈’은 재산상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 죄다. 경찰은 2021~2022년 양씨 등 노조 간부들이 하청업체에서 받은 임금 7900여만원을 모두 불법 갈취한 돈으로 판단했다.
 
양씨를 포함한 강원건설지부 간부 세 명은 2021~2022년 조합원 채용 요구가 난항을 겪자 공사현장에서 집회를 열고 하청업체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신고하겠다고 압박한 적이 있다. 이후 사 쪽과 다시 협상해 조합원을 채용하고, 노조 간부 임금 지급에 관한 단체협약도 하청업체 쪽과 체결했다.
 
지부장 1명은 노조전임비(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 전임자가 받는 임금)를 받고 다른 간부들은 철근·해체팀장 등 현장관리 업무를 하면서 일상적인 노조활동을 보장받기로 하청업체들과 합의한 것이다. 양씨도 이 합의에 따라 철근팀장과 노조 지대장을 겸임했다.
 
경찰은 이 모든 과정이 노사 협상이 아니라 건설노조의 일방적인 협박이라고 봤다. “(건설노조가) 집회의 자유를 악용해 공사업체를 굴복시키고 그들 뜻대로 요구해 수천만원의 노조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을 지급받았다.”(양씨 구속영장) 임금을 받으면서 업무와 무관한 노조활동을 함께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경찰은 또 “이들의 주된 목적은 단체협약으로 받는 노조전임비와 무노동 임금일 뿐 근로자 권익 보호는 아니다”라는 판단도 덧붙였다.
 
그러나 건설노조는 조합원 채용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요구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으며 이는 정상적인 노조활동이라고 설명한다. 또 노조전임비 등은 이미 법에서 보장한 대로 노사와 합의한 것이어서 집회를 열어 따로 받아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건설노조는 2021년 11월 하청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철근콘크리트 서·경·인 사용자연합회’와 단체협약을 맺고 노조전임비 지급에 합의했다. 또한 전임자가 아닌 간부들은 노조활동을 하더라도 주된 업무는 현장관리직이었기 때문에 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건설노조는 반박한다.
 
2023년 5월4일 양회동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광장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촛불을 들고 양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자녀에게 공갈범으로 비치는 건 못 견뎠을 것”

경찰이 구속영장에서 “노조가 힘으로 굴복시켜 겁을 먹었”다고 표현한 하청업체들은, 4월26일 구속영장 청구 이후 오히려 양씨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5월1일 법원에 낸 15개 업체의 처벌불원서와 탄원서를 보면, 하청업체 ㅈ사의 대표는 “민주노총 소속 팀장이 조합원 근무를 관리해주고 회사와 근로자의 다리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노동조합 전임비나 팀장 수당을 큰 문제 없이 지급했다. 인력 수급도 별다른 마찰 없이 교섭을 통해 논의했다”고 썼다.
 
또 다른 하청업체 ㅅ사 대표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고용한 것은 건설현장 관행상 팀·반으로 고용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조합원들의 집회로 겁먹거나 업무에 방해된 사실은 없다”고 썼다.
 
양씨는 평소 동료들에게 ‘(영장에서) 공갈이란 단어만 좀 빠지면 좋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것도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에게 공갈범으로 비치는 건 죽기보다 더 싫었을 것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말이다.
 
노동절인 5월1일, 공교롭게도 양씨는 그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있었다. 전날까지 아내와 동료들이 그를 위한 탄원서를 쓰려고 분주한데 양씨는 왜인지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전화해서 ‘형, 탄원서를 더 모아보려 한다’고 했더니 형이 별안간 ‘이젠 괜찮다, 나 억울한 것 내가 탄원서 쓰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이지 싶었어요.”(김현웅 사무국장)
 
양씨가 쓴다던 탄원서는 유서였다. 그는 자녀들에게 소고기를 사 먹인 다음날 아침,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자기 몸에 스스로 시너를 뿌려 분신했다. 그 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 만인 5월2일 끝내 숨졌다. 가족과 노동조합, 4개 정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앞으로 쓴 유서 세 통이 그의 차에서 발견됐다.
 
2023년 5월4일 양회동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 광장에 양씨를 추모하는 촛불이 놓여있다. 신다은 기자

업계 불법 눈감고 노조에만 ‘준법’ 요구할 수 있나

“제가 (분신) 현장에 갔습니다. 화단에 심은 나무가 족히 3~4m는 되는데 잎사귀가 노랗게 다 탔더군요. 담뱃불만 몸에 닿아도 뜨거운데 양회동 동지는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그 뜨거운 불 먹어가면서 몸부림쳤을 동지를 생각하면 책임자들 다 잡아 죽여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추모제 연단에 오른 이양섭 건설노조 강원지역본부 본부장이 분을 삭이며 말했다.
 
어떤 이는 노조의 역할이 조합원 일감 찾아주기에 그쳐선 안 된다고, 비조합원의 고용안정도 함께 고민하도록 노동운동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조 간부가 관리직 업무와 노조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변칙을 만든 토양은 그대로 둔 채 자라난 풀만 탓하긴 어렵다. 건설노동자는 집회를 열거나 하청업체와 싸우지 않아도 일감을 구할 수 있게 제도적 틀을 마련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폭’(건설업 폭력배)을 뿌리 뽑겠다면서도 이런 현실에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건설노동자가 왜 임금체불에 착취까지 당하면서 일할까 잘 이해가 안 되죠? 그게 다음 일자리가 없는 사람의 숙명인 거예요.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나 노조활동 보장은 10여 년째 방치해놓고 채용 강요니 뭐니 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닌가요?” 송주현 건설노조 정책실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업무 방해없어, 양씨 선처해달라” 분신노동자 사망 전 업체들 탄원

등록 2023-05-09 23:02수정 2023-05-1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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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50)씨 빈소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조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회사와 노동자들의 원만한 다리 역할을 해주고 전임비 등도 원만하게 지급되었습니다. (…) 이들의 처벌을 원치 않습니다.”
 
지난 1일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강원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양씨 등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양씨가 건설현장에서 업체들을 상대로 민주노총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했다는 등의 혐의(공동공갈)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정작 해당 업체들은 “업무에 방해된 사실이 없다”며 처벌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강원지역 건설업체 여러 곳의 관계자 15명은 지난달 말 법원에 양씨 등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ㄱ업체 현장소장은 양씨가 숨지기 3일 전인 지난달 28일 “인력투입 협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집회를 한 사실은 있으나 그로 인해 업무에 방해된 사실은 없다”며 “전임비 지급은 단체협약이라는 중앙 임단협과 노사간의 약속과 현장관례에 의한 지급이었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로 알고 있다”고 적었다. 이 현장소장은 “민주노총 소속 간부들을 구속하거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 바, 위 사람들에 대해 선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강원 지역 건설업체인 ㄴ건설사의 현장소장 역시 “민주노총 소속 팀장이나 노조 전임자라는 사람들이 조합원들의 근무를 관리해주고,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노조 활동으로 보아 노조 전임비나 팀장 수당도 큰 문제 없이 지급했다”며 “별다른 마찰 없이 교섭을 통해 인력수급에 대해 논의했고 현장공사를 원만히 진행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와 같은 처벌 불원서를 적은 이들은 수사기관이 양씨로부터 피해를 받았다고 보고 있는 업체 3곳의 관계자를 포함한 15명이다.
 
앞서 양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피해자 ㄱ업체를 공갈하여 이에 겁을 먹은 ㄱ업체로부터 노조전임비와 무노동 임금 명목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양씨는 노동절이던 지난 1일 강원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했다. 양씨는 분신 전 동료들에 남긴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혐의가)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는 내용을 남겼다. 
 
노동계는 “윤석열 정권과 검찰·경찰의 노조 탄압이 건설 노동자의 분신을 부추겼다”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배 건설노조 강원지부장은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작 업체들이 나서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수사기관의 무리한 ‘기획수사’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H6s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속보] 분신한 건설노조 간부 숨져

등록 2023-05-02 14:07수정 2023-05-02 15:05

 

 

건설 노동자,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 분신... "의식 없어"

양아무개 지대장... 오늘 오후 영장실질심사 앞둬

www.ohmynews.com

분신한 건설노조 간부 중태…“오랜 압박수사 힘들어해”

등록 2023-05-01 17:24수정 2023-05-01 20:27

장현은 기자 

노동절인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을 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양아무개씨가 입원한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을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노동절인 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 때리기’에 맞서 분신해 중태에 빠진 가운데, 가족들은 오랜 수사로 해당 간부가 힘들어했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자 탄압이 노동자 분신으로 이어졌다고 반발했다.
 
이날 분신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 양아무개 지대장은 강릉 아산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헬리콥터를 이용해 낮 12시50분께 서울 화상전문병원인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 도착했다. 전신화상을 입은 양 지대장의 온몸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양 지대장은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가족이 양 지대장 곁을 지키고 있다.
 
병원에 도착한 가족들은 무리한 수사가 수개월간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양 지대장의 가족은 “계속 압박수사를 받아왔다. 화물노조 파업 이후부터 몇 개월을 계속 시달렸는데,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압박수사를 하면 어떻게 버티겠냐”며 “(가족에게 말도 않고) 혼자 앓으며 무척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는 “쌍둥이가 이제 중학교 2학년 밖에 안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양 지대장은 이날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조합원 채용 강요와 현장 간부의 급여 등을 요구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양 지대장은 이날 오전 분신을 시도하기 직전 건설노조 간부들이 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검찰이 적용한 혐의가)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라며 “(검찰이 이 같은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고 적었다.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동시다발 결의대회에 참여하고 있던 건설노조 조합원 80여명은 양 지대장의 분신 소식을 듣고 오후 2시30분께 병원으로 모여들었다. 이승헌 서울건설지부 서남지대장은 “(양 지대장의) 생명이 위독하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겠다”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이날 저녁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향후 대책과 투쟁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은 이날 결의대회에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구속사유가 되고, 노조활동이 불법으로 매도됐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도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이 결국 노동자 분신을 불렀다”며 “노조 파괴를 위해 검찰, 경찰, 국정원 등 모든 권력을 동원한 권위주의가 부른 참극”이라고 이번 사태의 성격을 규정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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