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인 방중 놔두고, 한국은 압박...지나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일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상하이=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주 중국을 방문하자, 중국 측은 딩쉐샹(丁薛祥) 부총리를 비롯해 실력자들이 잇따라 만나며 극진하게 대우했다. 이에 머스크는 “중국 공급망과 디커플링(탈동조)에 반대하며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 확장할 것”이라고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에 정면으로 맞섰다. 미 최대 금융사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애플의 팀 쿡, GM의 메리 바라 등도 중국을 방문해 중국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대중국 견제 핵심인 반도체 업종에서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조만간 중국을 찾는다.
미국 주요 기업 경영자들이 줄줄이 중국을 찾아 투자 확대를 약속하는 것은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과 공급망을 포기하고서는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정부와 정치인들은 자국 기업인의 방중은 막지 못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 하원의 외교위원장과 중국특위 위원장은 미 상무부에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중국의 미국 마이크론 반도체 중국 내 판매 중지로 인한 공백을 한국이 메우지 못하도록 공조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정부, 의회와 기업인들의 상반된 행보는 대중국 견제에 대한 미국민 설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론이 그렇다면 향후 대선 정국에서 정책의 연속성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작 미국의 이중적 행태에도 우리 기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소극적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양쪽을 감안해 잘 판단하지 않을까”라며 부담을 기업에 돌렸다. 물론 우리 정부는 미국 일본 대만과 함께 ‘칩 4’에 참여해 대중국 압박에 동참한 상태이긴 하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40%, SK하이닉스는 D램 40%와 낸드플래시 20%를 중국에서 생산, 단기간 내 중국과 단절할 수 없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길어질수록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적극적 투자와 중장기 계획 수립이 힘들어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에 '반중' 압박하더니…미국 기업은 '친중' 행보[베이징 노트]
- 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메일보내기
- 2023-06-03 07:00
머스크의 화려한 방중…최고지도부 잇따라 회동 '이례적'
"디커플링 반대, 중국 사업 계속 확장" 발언에 중국 환호
JP모건.스타벅스 등 미국 대표기업 CEO 중국에 '러브콜'
미국 정치권, 한국 기업에는 '중국 요구 거절하라' 강요
한국 정부도 기업도 미국 이중적 행태에 문제제기 못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2박 3일간 중국 방문으로 중국 전역이 들썩였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개별 기업인과 회동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그것도 4명의 최고지도부가 이틀 만에 연쇄적으로 한 기업인을 만나는 것은 머스크가 아무리 스타 CEO라 하더라도 파격적인 대우다.
이런 중국의 환대에 보답이라도 하듯 머스크는 친강 외교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테슬라는 (공급)망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반대하며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 확장하고 중국의 발전 기회를 공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중간 공급망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측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CEO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이 환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머스크는 현재 가동중인 세계최대 전기차 생산기지인 상하이 기가펙토리 외에 상하이에 메가팩(산업 설비용 대용량 에너지저장 장치)를 짓겠다고 최근 발표하는 등 중국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여기다 이번 방중 기간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의 쩡위췬 회장과 만나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합작으로 짓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미국이 중국 기업의 제품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조항을 우회하는 것으로 미국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 만나는 머스크 테슬라 CEO. 연합뉴스
그런데 최근들어 대중국 견제를 주도하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 그리고 정치권을 긴장시키며 '친중 행보'를 벌인 미국의 기업인이 머스크 만이 아니다.
미국 최대 금융사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도 지난달 31일 중국을 찾았는데 첸지닝 상하이 당서기를 만나 "해외 기업이 상하이에 투자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JP모건이 하겠다"고 말했다.
여기다 미국을 대표하는 커피체인 업체 스타벅스의 랙스먼 내러시먼 신임 CEO도 지난달 30일 중국에 도착해 "중국이 스타벅스의 최대 시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오는 2025년까지 중국 전역에 9천개의 매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밝힌 내러시먼은 "이는 이정표에 불과하다"면서 중국 투자 확대를 공언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과 법안을 각각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해외 기업의 투자를 중개하고, 직접 투자를 늘리겠다니 미국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앤비디아의 젠슨 황 CEO도 곧 중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는 앞서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법이 실리콘밸리 기업의 손을 등 뒤로 묶어 놓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 견제를 비판한 바 있다.
그밖에도 앞서 중국을 찾은 팀 쿡 애플 CEO,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등도 중국과의 디커플링 불가론을 편 바 있다.
정치인이 주도하는 미국의 대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국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잇따라 중국을 찾아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제재로 인해 중국이 과거와 같이 미국 기업들의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 가운데 한 곳은 분명한 만큼 중국을 손절하는 것은 기업이 돈벌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연합뉴스
미국 정부도 이런 상황을 잘 아는지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머스크 등의) 이번 방문이 경제적 경쟁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자국 기업의 친중 행보에 대해서는 이렇게 '지켜보겠다' 외에 뾰족한 대응 방안이 없는 미국이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반중' 행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계기로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국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체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국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국 기업이 제재를 받았다고 중국의 요청이 오더라도 한국 기업이 물건을 팔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한국 기업에 노골적으로 중국에 등을 돌리고 미국의 편에 서라는 요구다.
또, 마르코 루비오 연방 상원의원은 지난달 30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삼성전자와 같은 다른 반도체 제조사들은 로비를 통해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한 1년간의 특별 적용유예를 받아내고 중국 내 시설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규제적용 유예 조치를 문제 삼았다.
전문가 그룹도 가세했는데 로버트 앳킨슨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회장은 1일 "중국이 우리를 응징하는 상황을 한국 기업들이 이용하면 한미 간에 신뢰를 무너뜨려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특히, 그는 "한국은 우리가 중국을 견제해 한국에 큰 친절을 베푼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인들은 대놓고 자국 정부의 방침과 배치되는 행보를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유독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 이중적인 행태임에도 우리 정부나 기업이나 누구하나 미국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일 공조강화를 통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선에 스스로 발을 들였고,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지원금을 빌미로한 미국의 반도체법(CHIPS Act) 등에 이미 코가 꿰인 상태다.
지난 3월 3년여 만에 중국을 찾은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대외적으로 남긴 유일한 말은 "북경(베이징) 날씨가 너무 좋지요?"이다.
당시에도 함께 방중한 팀 쿡 CEO의 적극적인 행보와 대비됐는데, 중국에 와서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얘기가 뜬금없는 날씨 얘기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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