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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보수정권 들어설 때마다 ‘4·3 흔들기’…“특별법 개정해야”

by 무궁화9719 2023. 4. 20.

보수정권 들어설 때마다 ‘4·3 흔들기’…“특별법 개정해야”

등록 2023-04-03 05:00수정 2023-04-03 12:29

[제주4·3 그 뒤, 75년]
제주시, 정당 허위 사실 유포 펼침막 철거
4·3 학살 주범 ‘서청’ 이름 달고 집회 신고도

제주4·3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정당의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펼치막이 내걸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허호준 기자
 

 

 
지난 21일 제주도 곳곳에는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펼침막이 우리공화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등 1개 단체의 명의로 내걸렸다. 게시 기간은 오는 4일까지다. 대통령의 잇따른 사과와 국가 보상금이 지급되는 시기에 4·3을 헐뜯는 펼침막이 버젓이 도심지 곳곳에 내걸린 것이다.
 
4·3유족들은 물론 제주도민들까지도 이런 펼침막이 내걸린 것을 두고 행정기관에 항의했지만, 현행법상 정당의 펼침막을 강제로 철거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라는 이름을 내건 단체가 4월3일 제주4·3평화공원 부근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4·3유족들은 분노한다. 4·3 관련 단체들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대응집회를 열기로 했다.
 
4·3 폄훼의 물꼬를 튼 것은 정치권이다. 지난 2월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가 “4·3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4·3 흔들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2003년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4·3을 헐뜯는 세력들이 나타나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재를 뿌리기도 했다. 이후 명예회복이 가시화되면서 4·3 폄훼는 수그러드는 듯하다가 정권이 바뀐 뒤 다시 나타났다.
 
맞불 펼침막도 곳곳에 내걸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한규·송재호· 위성곤 의원은 “4·3 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 입 다물라”는 문구를 담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현행법상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경우 펼침막을 철거할 수 없다. 제주도가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해당 펼침막 내용에 대해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를 요청한 결과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4·3유족회와 4·3평화재단, 4·3연구소 등 관련 단체들이 성명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4·3 헐뜯기 중단을 촉구하는 등 반발이 커지자, 강병삼 제주시장은 30일 “법률적으로 검토한 결과 ‘해당 현수막 내용은 국가가 정한 제주4·3특별법의 정의에 반하는 허위사실이어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이라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며 철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주4·3특별법에 희생자의 명예 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 집행위원장은 “4·3 당시 대량학살과 패륜적 행위를 한 당사자인 서청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것이 4·3 75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법적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고 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검찰과 법원의 4·3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 요청과 무죄 선고가 이뤄지는 시기에 과거의 4·3 헐뜯기가 일어나는 데 분노한다. 제도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재호 의원은 “최근에 색깔론, 역사 왜곡 등으로 진실을 부정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에 먹칠을 하면서 사익을 얻으려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4·3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하거나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해 희생자와 유족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75년 통곡의 세월 버텼는데 4·3 왜곡·폄훼 살갖 찢기는 고통”

  • 기자명 조현호 기자 
  •  입력 2023.04.03 14:02

유족회장, 제주4‧3 제75주년 추념식서 호소
“‘속슴허라 살암시민 살아진다’ 모진 세월 견뎌왔는데…”
한 총리, 윤 대통령 대독 “아픔 잊지 않겠다”면서
‘공산폭동…김일성 사주’ 망언엔 침묵
‘정의로운 해결’ 대신 ‘폭동’ 현수막, 서북청년단 등 활개
민주당 “대통령, 당지도부 불참…선거때만 4·3 이용하는 이중성”

"속슴허라 살암시민 살아진다"

 

제주도민이 지난 1948년 4‧3 이후 75년 동안 입에 담기조차 공포스러운 4‧3에 대해 입다물고 견뎌온 삶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이후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 명예회복과 배보상이 이뤄가는 ‘정의로운 해결’을 추진해 왔으나 최근 4‧3을 공산 폭동이었다거나 김일성 사주를 받고 벌인 일이라는 망언이 공개적으로 쏟아져나와 제주도민이 다시 상처와 고통을 호소했다.

 

김창범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장은 3일 오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5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지난 75년의 시간을 두고 “생존 희생자와 유족에게는 누구나 할 것없이 저마다의 가슴에 가늠하기조차 힘든 응어리를 간직한채 살아야만 했던 한맺힌 세월이었다”며 “‘속슴허라 살암시민 살아진다’며 그 모진 통곡의 세월을 견디며, 평화로운 제주공동체를 일궈내신 도민과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 모진 질곡이 세월 속에서도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금기의 역사로 묻힐 것을 강요당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역사로 드러내기 위한 애끓는 외침이 있었다”며 “그렇게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제주 4‧3은 진상규명 명예회복과 보상이라는 대 명제를 순차적으로 실현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그러나 “4‧3의 역사적 진실에 대한 왜곡‧폄훼로 인하여 우리 유족들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살갗이 찢어지듯 깊은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 회장은 “제주 4‧3은 진보와 보수진영의 역사가 아니라 인권유린에 관한 대한민국의 당당한 역사”라며 “이제는 4‧3에 대한 이념적 공세에 종지부를 찍고 진정한 국민 대화합의 시대로 향해 가는데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회장은 “제주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통하여 다시는 제주공동체를 넘어 대한민국에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창범 제주4·3 희생자 유족회장이 3일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5주년 4·3 추념식에서 75년 간 한맺힌 세월을 견디며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최그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망언을 일삼는 이들에 의해 유족들이 다시 살을 찢기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오영훈 제주지사도 이날 기념사에서 “산천마다 실록이 우거지는 4월이 오면 소중한 이들을 두고 눈감아야만 했던 4‧3 영령님들을 떠올린다”며 ‘속슴허라’(말하지 말라)할 수밖에 없던 세월을 회상했다.

 

오 지사는 △지난해부터 이뤄진 4‧3희생자 국가보상 △사법부의 직권재심을 통한 희생자의 명예회복 △뒤틀린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 등을 실현해오고 있었다면서도 “무엇보다 4‧3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에 흔들리지 않고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4‧3 정신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이날 75주년 추념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희생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겠다면서도 이 같은 4‧3의 진실 왜곡과 망언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 메시지 대독을 통해 “무고한 제주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아픔을 국민과 함께 어루만지는 일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정부는 4‧3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존희생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고 보듬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희생자와 유가족을 진정으로 예우하는 길은 자유와 인권이 꽃피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이곳 제주가 보편적 가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며 “그 책임이 저와 정부, 그리고 우리 국민에게 있다”고 대독했다.

 

한 총리는 제주를 “세계인들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품격있는 문화관광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IT기업과 반도체 설계기업 등 최고 수준의 디지털 기업이 제주에서 활약하고 세계의 인재들이 제주로 모여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 한 총리는 “여러분께서 소중히 지켜오신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승화시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대표와 원내대표 등 주요 지도부는 취임 첫 4‧3 추념식이자 75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5주년 4·3 추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그러나 최근 제주도 현지에서까지 벌어지고 있는 진실 왜곡과 망언 행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위원장은 이날 오전 제주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주 곳곳에 ‘4.3 공산폭동’ 현수막이 걸리는가 하면 극우단체는 오늘 추념일 행사장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며 “4.3을 폄훼하고 왜곡시키려는 시도가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대표도 이날 회의에서 “정부여당의 극우적인 행태가 4‧3정신을 모독하고 있다”며 “‘4.3은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는 여당 지도부는 아직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고, 4‧3은 공산세력의 폭동이라고 한 사람은 아직도 진실화해위원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대통령의 약속은 부도났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정권의 퇴행적 모습 때문에 4‧3을 부정하는 극우세력까지 활개친다”며 “‘4‧3은 공산 폭동’ 현수막 뿐 아니라 서북청년단을 모방한 재건 서북청년단까지 등장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태”라며 “역사의 법정, 진실의 심판대에 시효란 없다. 반인권적 국가폭력범죄 시효폐지 특별법 처리를 서두르겠다”고 강조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선거에 도움될 때만 잠깐 이용하고 마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권의 행태가 5‧18 민주화운동때부터 제주 4‧3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며 “국민을 기만한 이중적 행태에 제주도민과 함께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 역시 제주 4‧3 관련한 망언과 행태에 대한 언급 없이 희생자‧유족에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3일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논평에서 “모든 제주 4·3 희생자를 추모하며 비극적인 기억과 함께 현재까지 고통받고 계시는 유가족 및 제주도민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제주에서는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극단의 이념대립이라는 현대사적 아픔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셨다”고 해석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31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희생자 78명과 유족 5610명을 추가하기로 결정한 점을 들어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이 유족의 아픔을 해소하는 조그마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제주 4·3’에 대해 합당한 보상과 지원 등 아픔을 치유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모든 제도적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 수석대변인은 “다시는 제주 4·3과 같은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희생자 위패 앞에 다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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