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기관보고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늑장 대응’을 지적하는 야당 의원에게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냐”고 되받아쳐 빈축을 샀다.이날 국조특위 회의에서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이 참사가 일어난 10월29일 오후 11시20분 첫 보고를 받았는데 85분이 지난 0시45분에 참사 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현장 도착이 늦어진 배경을 묻는 윤 의원에게 이 장관은 ‘수행하는 기사가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 압구정의 자택까지 오는 걸 기다렸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에 윤 의원이 “통상적인 사람이라면 택시라도 타고 지시를 내리면서 간다. 80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 거다”라고 지적하자 그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시간은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다”고 되받아쳤다. ‘이미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넘겼으니 늑장 대응이 아니다’라는 취지다. 정부는 119에 압사를 우려하는 첫 신고가 들어온 밤 10시15분을 참사 발생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 장관의 발언에 회의장에선 야당 의원들의 항의와 비판이 쏟아졌다. 이 장관은 그럼에도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시라”며 거듭 반박했다. 그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는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해명에도 논란이 거듭되자 이 장관은 결국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이날 밤 기관보고가 속개되자 “제가 골든타임을 판단할 능력과 자격이 없는데 성급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며 “이 점에 대해서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기관보고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서 야당은 재난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의 부실대응 책임을 따져 물었고 여당은 대통령실이 신속하게 대응했다며 엄호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늑장 대응 지적에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라며 자신의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우선 이날 기관보고 대상(대통령실 국정상황실,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행정안전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중 대통령실을 집중 겨냥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행안부 현장조사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국가위기관리 기본 지침을 제시하며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는 국가안보실과 대통령 비서실이라고 명시돼 있다”며 재난 컨트롤타워가 어디냐고 물었다. 기관 증인으로 출석한 한오섭 국정상황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초기에 명확히 했다. 재난 컨트롤타워는 자신이라고 했고 그 이후 여러 회의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다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재난안전기본법상 행안부 장관이 재난에 대해 총괄 조정하게 돼 있다”며 “(제가) 실무적인 선에서 컨트롤타워”라고 답했다.
여당은 참사 당시 “대통령실 프로세스는 어떤 정부보다 빨랐다”(조은희 국민의힘 의원)며 반박했다. 조 의원은 2019년 강원도 산불 사례와 이태원 참사를 비교하며 “윤 대통령의 첫 지시는 강원도 산불 발생 당시 문재인 대통령보다 3시간이 빨랐다”고 말했다. 박형수 의원도 “각 기관의 보고가 늦어져 그 기관이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못 한 것과 국정상황실·대통령실 대응이 부적절했냐는 다른 문제”라고 일축했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뒤에도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상민 장관은 이날도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이 장관이 사고를 인지한 뒤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점에 대해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냐. 택시라도 타고 가며 지시를 내려야 했다”고 하자 이 장관은 “제가 그사이에 놀고 있었겠냐. 나름대로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것”이라고 맞받았다. 윤 의원이 “참사 현장에서는 많은 국민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하자 이 장관은 “그 시간은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고 의원하고는 생각을 조금 달리한다”고 응수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참사 당일 현장으로 출동하던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 ‘닥터카’를 자신의 집 근처로 불러 동승한 신현영 민주당 의원을 국정조사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난의료지원팀) 자격이 없는 신 의원이 위중한 사람들의 구급을 방해한 것이 아니냐’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기관보고를 방청하던 유가족들이 ‘참사 대응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내놓은 이 장관의 답변과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동승 비판에 집중하는 여당 의원들의 태도에 항의하며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신현영 하나 물고 늘어지는 국정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판했고, 참사 희생자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회의장에 들어와 이 장관 앞에 가서 “내 아들이 죽었다고요”라고 외치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원한을 밝혀달라고 했는데 외려 국민의힘 의원들이 정부 고위 공직자들을 대변해주고 있다”고 반발하며 회의장을 나갔다.
한편, 이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자 기관보고가 속개된 뒤 “제가 골든타임을 판단할 능력과 자격이 없는데 성급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며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 명단을 세 번에 걸쳐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이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2차 기관보고에 참석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명단을 행안부에 줬느냐는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정확하게 10월31일부터 세 번에 걸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지난 27일 1차 기관보고 당시 이 장관은 "서울시에서 명단을 갖고 있는데, 넘겨주지 않았다. 안 주겠다고 하는데 저희가 강제로 뺏어올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유족들은 만나기 위해 명단을 확보하라고 했는데, 실무자들이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서울시에서 명단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여러차례 답변했다"라는 말도 보탰다.
서울시의 설명은 다르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2022.12.27. scchoo@newsis.com
김 실장은 "장례식장에서 사망자의 신원과 유가족 연락처를 정리해 행안부에 자료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이 "그제 행안부 장관이 서울시에서 주지 않아 모른다고 답변했다"고 언급하자 김 실장은 "어떤 취지로 답변을 그렇게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면 처음 명단 전달 날짜를 참사 발생 이틀 뒤인 10월31일로 특정했다. 연락처를 공유한 근거를 제출해달라는 요구에도 "알겠다"고 답했다.
김 실장이 발언대에 서기 전 '명단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갖고 있는 서류는) 제목이 사망자 명단으로 돼있다"고 "(유가족) 연락처는 갖고 있는데 이름이 없는 것이 많았다"며 착오가 있을 수도 있는 취지로 설명했다.
10월30일 중대본 지침 전 서울시 모바일 상황실서 “인명사고·사망자·부상자로…다른 표현은 삼가라”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10월30일 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보다 먼저 ‘피해자’ 등의 용어 단어 대신 ‘사망자’라는 용어를 쓰라고 지시한 사실이 29일 확인됐다. 앞서 중대본의 용어 통일이 참사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바 있는데, 서울시도 참사 희생자를 ‘사망자’나 ‘부상자’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 다른 용어 사용을 삼가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태원 참사 명칭도 ‘인명사고’라고 통일하며 ‘압사’ 등 용어 사용의 여지도 막았다.
<한겨레>가 윤건영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위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 주요간부 모바일 상황실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30일 오전 9시33분 김아무개 서울시 기획담당관이 “동사고 지칭이 다양한데 일단 [용산 이태원 인명사고]로 통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사망자, 부상자, 사상자로 용어 사용을 해주시고 기타 다른 표현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초 용어 통일은 10월30일 오전 10시에 열린 중대본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본은 회의를 통해 사고 명칭은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등의 용어가 아닌 ‘사망자’, ‘사상자’ 등 객관적 용어를 쓰라는 지침으로 정했고 이를 각 기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대본의 지침 전달에 앞서 이태원 참사 수습을 담당하는 서울시도 이같은 용어를 통일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10월30일 서울시 주요간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모바일 상황실)에 공유된 메시지 내용.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서울시 쪽은 10월30일 새벽 2시(1차)와 3시9분(2차), 7시(3차) 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재대본)를 진행했고, 당시 회의에서 나온 얘기를 모바일 상황실에 전파했다고 설명한다. 김의승 행정1부시장 주재로 열린 재대본 회의에는 서울시 주요간부들이 참석했다. 모바일 상황실에 메시지를 남긴 김 기획담당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나 ‘희생자’라고 하면 사망을 한 건지, 다친 건지 초기 상황을 파악하는 데 혼선을 준다(고 봤다)”며 “사상자들의 숫자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망자’와 ‘부상자’를 명확히 구분해달라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외 출장 중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지시였냐는 질문에 김 기획담당관은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이야기하거나 한 것은 아니고 재대본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답했다. 또 10월29일 새벽 2시44분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주재 중대본 회의에서 논의된 것이냐는 물음에는 “그것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기획담당관은 “(용어 통일은) 서울시 차원의 판단이었을 뿐이고, 이를 (용어 통일 지침이 정해진 오전 10시) 중대본 회의에 건의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서울시가 10월30일 오전 7시 재대본 3차 회의를 마친 직후 배포한 보도참고자료를 보면, ‘사망자’라는 표현만 있다. 같은 날 오후 12시23분 주요간부 모바일 상황실에 박아무개 언론담당관이 공유한 자료에 ‘피해자’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자 김의승 행정1부시장이 “피해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도록 해주세요. 사상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선택적인 용어 사용을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0월30일 오후부터 대통령실이나 정부의 이태원 참사 관련 브리핑에서 ‘압사’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참사 수준의 사고”라고 표현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싱크로율 100%라더니…‘버티는’ 이상민 ‘감싸는’ 윤 대통령
등록 :2022-12-25 07:00수정 :2022-12-25 22:21
성한용 기자
[한겨레S]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60
국민·야당에 안 지겠다는 대통령 독재 때도 국회 해임안 받았는데 “막연한 책임 안돼” 되레 방어막 참으로 기괴한 정권이라고밖에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참으로 괴이한 정권입니다. 150명 넘는 국민이 사고로 한꺼번에 숨졌는데 두달이 다 되어가도록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윤희근 경찰청장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1965년생으로 전북 익산 출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서울대 법대 4년 후배입니다. 사법시험 9수를 한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해 오랫동안 판사를 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뒤에는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해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했고,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사회위원장을 거쳐 인수위원회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취임 뒤 “국민이 재난과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선진화된 재난 안전 관리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10·29 이태원 참사가 터졌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보수 언론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없다”
저는 텔레비전 생중계로 이 장면을 보면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정도 대형 사고가 터지면 해당 장관은 사고 수습과 진상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무조건 머리를 숙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도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라는 사람이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고 발뺌부터 한 것입니다. 민심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이때 물러났어야 마땅합니다. 저는 윤석열 대통령이 곧 이상민 장관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이상민 장관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선 수습 뒤 사퇴 수용’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 상식과 양식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아니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했는데도 제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장관의 퇴로를 막았습니다.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일선 경찰을 강하게 질책하며 그 유명한 ‘딱딱 발언’을 했습니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저는 이 말을 수십번 다시 듣고 다시 읽어봤습니다.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법률가의 좁은 식견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발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 뒤 정부 여당에서 이상민 장관 경질론이 쑥 들어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1일 동남아 출국 때 배웅 나온 이상민 장관의 왼쪽 팔을 두 차례 두드려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11월16일 귀국 때는 이상민 장관에게 악수를 청한 뒤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습니다. 이상민 장관도 <중앙일보>와의 문자 메시지 인터뷰에서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었습니다. 11월23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고,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를 의결했습니다. 민주당은 11월25일 이상민 장관을 28일까지 파면하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했고, 11월30일 해임건의안을 발의했습니다. 해임건의안은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고, 12월11일 재석 의원 183명 중 찬성 182명 무효 1명으로 가결됐습니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여야 합의 직후에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를 추진한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참사 직후에 해야 했을 일을 뒤로 미루는 바람에 모양새가 구겨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해임건의를 의결한 이상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 장관을 해임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른바 보수 신문 논객들도 이상민 장관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그게 상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아는 상당히 보수적인 지인들도 대통령이 왜 그토록 ‘이상민 보호’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무슨 인과관계가 있어서 자르냐’고 생각한다면 아직 정치를 잘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을 자를 수 없으니 장관을 자르는 거다.”(<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시민 158명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이 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난 인사가 없다.”(<중앙일보> 사설)“
아리스토파네스가 조롱한 소피스트들은 오늘날로 치면 법률가들이다. 법률가들은 본능적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처음에는 예방 불능론을 들먹이더니 돌연 일선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법은 일선의 책임은 무한하고 고위층으로 갈수록 책임을 묻기 어렵게 돼 있다. 이런 책임 전가야말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딱 맞는 재료가 아닐까.”(<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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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에 책임 분간 못 하는 대통령
이상민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와 언론의 경질 요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해임은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국회의 해임건의는 이상민 장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동문서답을 한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상민 장관을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 것일까요?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장관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편하게 전화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상민 장관입니다.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두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싱크로율’이 거의 100%라고 증언합니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자존심 때문입니다. 국회 해임건의 직후 정부 여당발 ‘1월 개각설’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상민 장관을 슬쩍 끼워넣은 개각 전망입니다. “내가 판단해서 바꾸고 싶을 때 바꾸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과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국정의 동반자인 야당을 어떻게든 이겨먹겠다고 심술을 부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행정안전위원회 관련 법안 처리 결과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1969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사례도 조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1년 국회가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공동 여당이었던 자민련이 가세했습니다. 임동원 장관은 사퇴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민련과의 공동 정권을 포기했습니다. 뒷날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9월3일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자민련의 가세로 통과되었다. 이로써 자민련과의 공동 정권이 무너졌다. 3년8개월 만이었다. 정국은 1여 2야의 구도로 재편되었다. 우리에게는 소수 정권의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지만, 이는 햇볕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나라 안팎에 천명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에는 국회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김두관 장관 재임 기간 행자부는 부처의 업무수행 평가와 혁신 평가에서 1위를 할 정도로, 그는 장관직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장 출신 군수’라며 끊임없이 비아냥거리고 멸시하더니, 끝내 학생시위를 이유로 국회에서 해임권고 결의를 했다. 나는 워낙 부당한 결의인데다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결의여서 계속 버텨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정국 경색이 장기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김 장관이 스스로 사직을 청해왔다. 결국 대통령이 사직을 수리했지만,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의 횡포가 그와 같았다.”
대통령과 장관이 답 내놓을 때
그렇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이 주도한 해임건의를 수용했습니다. 사유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임동원·김두관 사례에 견주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상민 장관 해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20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이 유가족들에게 간담회에서 이상민 장관 해임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유가족 대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민 장관이 파면되든 스스로 사표를 멋있게 던지든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마음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저희 갈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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