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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최초좌초'

by 무궁화9719 2022. 9. 17.

각종 의혹이 난무한 것은 군이 스스로 판 무덤

 

                      까나리떼

 까나리 어장에 원인미상으로 파공, 침몰한 <천안함>

 

<천안함>은 까나리떼의 공격을 피해 육지쪽으로 급거 이동하다 좌초를 당한 이후

이함 과정에서 잠수함 등 괴물체와 추돌한 게 분명해 보임.  

어느 美 육군이 촬영한 천안함의 진실

12.09.01 12:51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00분 경 백령도 앞 바다 까나리 어장 까지 진출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스크루 샤프트에 휘감긴 그물이 당시 천안함이 처한 상황을 엿 보게 해 주는 것이다. 천안함이 까나리 어장 까지 진출한 상황은 <아시아경제>에 게재된 '최초 좌초' 장면과 같거나 비슷한 장면으로, 까나리의 서식 환경 내지 생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 관계라 할 수 있다.

 

백령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인 까나리 어업은(자료사진 참조) 썰물 때 어민들이 그물을 쳐 두었다가 그물을 건져 올리며 까나리를 수확하게 된다. 바다 수심이 까나리 서식 환경과 무관하지 않게 수심이 20~30m 정도 밖에 안 되는 저수심인 것이다. 천안함의 스크루 샤프트에 휘감긴 그물이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고 <최초 좌초> 사실이 기록된 아시아경제에 표기된 저수심(6.4m)이 당시 천안함이 처한 난감했던 상황을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2010년 4월 1일, 천안함의 희생자 46명이 백령도 앞 바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된 채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백령도에서는 어민들의 생생한 증언이 기록되고 있었다. 천안함 침몰사고 해역이 평소 해군 초계함(천안함)이 기동하지 않는 '어장'이라는 백령도 어민들의 주장이 잇따라 제기돼, 천안함이 당시 어떤 긴급상황에서 사고지점을 지났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민들의 주장은 이랬다.

 

"남포리의 한 주민은 "천안함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까나리어장 안쪽인데 바다 위에 흰색 부표를 띄워 어장을 표시하기 때문에

 

해군 함정은 항상 어장 남쪽으로 다녔다"라고 1일 말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해군도 사고해역에 조류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사실을 잘 몰랐을 것"이라며 "암초가 많은 해역은 사고지점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암초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가을리의 한 어민은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까나리어장 근처로는 큰 함정이 다닌 적이 없다"면서 "작은 상륙선의 경우는 어장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어 어촌계에서 인도해 그물을 피해 빠져나가게 하고

 

천안함처럼 큰 함정은 어장 근처로 접근하지도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어민은 "큰 배는 섬에서 까나리어장보다 훨씬 먼 쪽으로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게 보통"이라며 "사고가 다른 해역에서 난 뒤 선체가 조류 때문에 어장으로 흘러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해역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도 어선들은 물 위에서 엔진시동을 걸어 놓은 상태에서도 조류에 밀릴 정도"라면서 "특히 바닷속은 뭍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엄청나게 빨리 돌고 있기 때문에 조류가 무거운 선체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10&newsid=20100401125920544&p=yonhap >

 

 

인양된 천안함의 잔해에서  어느 미 육군이 촬영한 사진 속에서 천안함은 까나리 어장을 배회 했거나 이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천안함의 항적이 지문 처럼 스크루 샤프트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미 육군은 그 흔적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는 한편, 그의 홈피를 통해서 본 관련 자료들은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한 샷을 날리고 있었다. 자료를 참조하면 천안함은 최초 까나리 어장 근처에서 좌초를 당한 이후 이함 과정에서 잠수함 등 괴물체와 추돌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는 천안함의 항적과 함께 천안함이 침몰에 이른 결정적인 원인을 연속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둔 것이다. 신상철 전 합조단 민간위원이 주장한 좌초 이후 잠수함 추돌설에 부합하는 기막힌 샷이었다. 글쓴이를 놀라게 한 장면은 천안함 스크루 샤프트에 휘감긴 그물에 이어 세 동강 난 천안함의 잘려진 부분이었다. 적지않은 분들이 자동차 추돌 사고 흔적과 마주쳤을 텐데 천안함이 잘린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곳에는 (잠수함 등) 괴물체와 수중에서 추돌한 흔적이 역력해 보이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시료를 채취해 추돌한 괴물체의 정체 까지 대입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장면이었다.

 

 

이런 장면 등이 <북한에 의한 폭침>으로 정리될 수 있는 나라 또는 반민족적 비민주적인 정권 또는 나라라고 어느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북한의 잠수함 내지 잠수정 조차 천안함을 폭침 시키기 위해서는, 까나리 어장에 쳐둔 그물에 걸려들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조 때 라고 해 봤자 겨우 20m 남짓한 까나리 어장에서, 북한의 중어뢰가 폭발하면서 화약 냄새도 풍기지 않고 수평으로 버블제트를 일으키며, 천안함을 세 동강으로 격침 시켰다는 주장은 까나리 조차 놀랄만한 일 아닌가.

 

천안함의 잔해가 전시된 현장에서 어느 미 육군의 1인이 기록해 둔 천안함의 사고 당시 흔적은, 이명박 정부와 군 당국자 등 이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이 '사고 해점'을 왜 수심 40~45m의 깊은 바다로 옮겼는 지 가늠해 줄 중요한 단서이자,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줄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범법자들은 범죄현장에서 지문 등 흔적을 남긴다고 해야 할까.

 

 

 

천안함의 잔해에 남겨진 사고 당시 흔적들이 과학을 빙자한 한 사이비 교수 등을 고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에서 속개된 천안함 사건 공판에서, 이러한 과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최원일 함장은 천안함의 항적 등을 생략한 채 통신장 허순행에게  "어뢰 피격! 어뢰피격이라고 보고 해!…!"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증인으로 출두한 허순행 통신장의 증언이었다. 최 함장 등은 최초 까나리 어장에서 발생한 천안함의 항적 모두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혹...여러분들께서는 이 장면들이 어뢰 폭발로 폭침된 장면이라 판단되시는가. 사람들 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고 동일한 사물을 봐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서로 다른 느낌을 받게 되겠지만, 최소한의 상식이  아니라 본능적인 판단 만으로도 천안함은 폭발에 의한 침몰이 아니라 추돌에 의한 침몰로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에 조금만 관심만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미 육군 1인 뿐만 아니라 글쓴이 조차 천안함의 잔해 앞에 서면 본능적으로 두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올 것이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그곳에 새겨져 있었으므로...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137869 
    
http://www.seoprise.com/etc/u2/793532    

 

천안함이 어뢰에 맞았다고 하는데, 어뢰 맞으면 이렇게 됩니다.

두동강이 나서 서서히 침몰하는 모습은 없습니다.

https://youtu.be/2k0U80X_l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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