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상대 '소부장 독립운동' 절반 성공…불화수소 수입액 85% 줄어
2020. 6. 29.
[중앙일보] 입력 2020.06.29 15:34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한국을 수출관리상 일반포괄허가 대상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공포하며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을 공개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룸에 전시된 반도체 웨이퍼의 모습. 뉴스1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시작된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독립운동'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9일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를 열고 지난해 일본 정부가 수출을 규제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입액을 공개했다.
불화수소는 올해 1~5월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액이 403만 달러(48억원)로 지난해 동기(2843만 달러) 대비 85.8%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산 수입 비중도 확 줄었다.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 비중은 지난해 43.9%를 기록했으나 올해는 12.3%로 줄었다.

자료: 전경련
반면 포토레지스트는 지난해 1~5월 일본 수입액이 1억1272만 달러(1353억원)를 기록했지만, 올해(1~5월)는 수입액이 1억5081만 달러(1811억원)로 오히려 늘었다. 수입액 기준으로 1년 사이 33.8%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포토레지스트의 일본산 수입 비중은 지난해 91.9%에서 올해 88.6%로 소폭 감소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큰 변화가 없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지난해 1~5월 일본 수입액이 1214만 달러를 기록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1301만 달러로 7.4% 늘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전체 수입 중 일본산 비중은 지난해와 올해 93.7%로 차이가 없었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을 맡은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국내 기업이 소부장 국산화 및 해외 공급처 다변화에 대응한 결과”라면서도 “불화수소는 일본 수입 비중이 빠르게 줄어들고 국산화가 진행됐지만,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오히려 작년 동기 대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액이 늘어나는 등 품목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료: 전경련
이날 세미나에선 소부장 독립을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다. 박 교수는 “반도체 소재 기업의 연간 평균 연구개발비는 일본이 1534억원인데 비해 한국은 130억원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사업화 연계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 국내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일본과의 산업 협력이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한국동북아경제학회 회장)는 “한국과 일본의 소부장 산업은 강력한 분업 체제를 통해 2018년 기준 약 811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며 “국내 소부장 산업이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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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日 상대 '소부장 독립운동' 절반 성공…불화수소 수입액 85% 줄어
불화수소 수입 줄었지만 일부 소재는 되레 늘어.. '산 넘어 산' [日 수출규제 1년]
이우중 입력 2020.06.30. 06:02
(상) 한국 소부장 자립 계기로/ 삼성·SK, 에칭가스 국산화 테스트 마쳐/ 작년 10월 액화수소 이어 공정 투입 계획/ 소재기업들도 1년 만에 기대 이상 성과/ 솔브레인·램테크놀러지 공장 증설 박차/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정부 지원 한몫 톡톡/ 포토레지스트 등은 수입규모 대폭 확대/ 전경련 세미나.. "한·일 협력이 더 이득" 주장/ "중소업체 M&A 독려·국산화 지원 늘려야"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조건인 수입선 다변화가 이뤄졌고, 일부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국산 비중이 일본산을 역전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부 품목은 국산화에 성공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대체가 이뤄졌지만 첨단소재의 경우 일본 수입액이 늘어나는 등 품목별 수출규제 결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에 따라 이제 시동을 건 국내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에서 일본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지난 1년 동안 편의점에선 일본 맥주가 자취를 감췄고, 유니클로 매장에는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불매운동은 현재진행형이고 한·일 관계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결국 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출규제가 다변화 촉진… “전화위복 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SK머티리얼즈가 생산하는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 테스트를 마치고 연내 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투입한 데 이어 더 세밀한 에칭(식각) 공정에 쓰이는 기체 형태까지 국산화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중 불화수소 수입은 일본산이 43.9%(지난해 1∼5월 기준)를 차지했다.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도 일본산이 91.9%에 달했다. 불화수소 재고가 많지 않았던 반도체 업계는 국산화 등에 속도를 내 소재 조달처를 변경할 때 진행하는 테스트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고, 빠른 시일 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졌다.
소재 기업들도 1년 만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솔브레인은 올해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했다. 램테크놀러지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액체 불화수소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불화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을 내년 준공 목표로 하고 있다. 동진쎄미켐도 올해 초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이 같은 성과는 정부의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것이 업계 공통적인 평가다. SK머티리얼즈의 경우 정부가 특례 적용을 통해 기술 검토 및 안전업무 진단 처리 기간을 단축해 공정 허가가 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7월 불화수소 등 6종의 유해화학물질 영업 판매업 허가 승인을 받았고, 솔브레인은 화학물질 조기 인허가 지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1년 우리는 기습적인 일본의 조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생산차질도 일어나지 않았고, 소부장 산업의 국산화를 앞당기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 핵심품목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난 1년의 성과에 머물 형편이 못 된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이기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공세적 대응을 주문했다.

◆“소부장 강해졌지만 한·일 협력은 필수”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부장 강화에 기회로 작용한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한·일 협력 강화가 양국 경제에 더 이득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날 개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국내기업들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소부장 국산화와 해외 벤더 다변화로 대응했다”며 “그 결과 올해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 비중은 12%로 전년 동기(44%)보다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일본 수입이 오히려 더 늘어나는 등 대응 결과가 달랐다”고 말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진정한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분업체제에서는 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잘하기 쉽지 않다”며 “조선·전자를 비롯한 거의 모든 업종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은 글로벌가치사슬(GVC)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홍배 동의대 교수(무역학과)도 “한·일 소부장 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역설적으로 일본과 긴밀한 협력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일 소부장 산업은 분업체제로 2018년 약 811억달러 규모 부가가치를 창출했고, 전체 제조업으로 확대하면 이는 1233억달러로 늘어난다”며 “양국의 GVC 붕괴는 그만큼의 이익 손실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업체 간 인수·합병(M&A)을 독려하거나 잠재력 있는 기업의 국산화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재근 교수는 “일본의 기업별 평균연구개발비는 1534억원인데 한국은 13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며 “글로벌 기업 연구·개발(R&D)센터 및 생산기지 국내유치를 추진하고 국산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전경련은 ‘한일재계회의’ 등으로 일본 경제계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수출규제와 한국 기업인 일본 입국 금지 조치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우중·박현준 기자 lol@segye.com
소·부·장 ‘탈일본화’ 절반의 성공…비전략물자 ‘2차규제’ 대비할때
등록 :2020-07-01 04:59수정 :2020-07-01 07:14
[일 수출규제 1년, 핵심부품 경쟁력 현주소]
공급 자립화·수입선 다변화
불화수소 일본산 비중 42%→9.5%
SK 초고순도 불화수소 양산 돌입
‘포토레지스트’도 국산화 본격화
정부 “공급 안정화 뚜렷한 진전”
일 ‘2차 수출규제’ 위험성 여전
100대 품목 대일 수입 의존 70%
무협 “일 수출규제 일회성 아냐
향후 추가 규제대상 가능성 커”
한국, 기술·품질력 향상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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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면서) 그간 시도조차 어려웠던 벽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됐고, 막상 해보니 되더라라는 경험과 자신감도 얻었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5월11일 ‘제2차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 대화’)
일본의 핵심 부품·소재 수출규제 이후 지난 1년간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100대 핵심품목에 걸쳐 ‘탈일본’ 국산 공급 자립화를 위한 총력전을 펴온 결과 “실질적인 공급 안정화에 뚜렷한 진전이 있었다”는 게 정부의 공식 평가다. 다만 일본의 도발 이후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여전히 격화하고 있는 터라 ‘대일 의존형 비민감 전략물자’에 대해 일본이 2차 추가 수출규제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불화수소 가스 일본산 비중 9.5%
30일 정부와 무역협회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선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애초 우려했던 큰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 무역협회 집계를 보면,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불화수소 가스는 지난해 7월~올해 5월(규제 후) 일본산 수입액(700만달러)이 2018년 7월~2019년 5월(규제 전·6300만달러)에 비해 89.4% 감소했다. 불화수소는 해외 의존도가 100%로, 일본 이외 지역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총수입액 중 일본산 비중을 규제 전 42.4%에서 9.5%로 대폭 낮췄다. 중국산(규제 후 수입 비중 66.0%) 및 대만산(21.9%) 수입을 늘려 일본산 수입 감소분을 대체한 것이다. 국산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에스케이(SK)머티리얼즈는 불화수소 시제품 개발에 성공한 뒤 이달(6월)부터 경북 영주 공장에서 초고순도 불화수소 가스 양산(생산규모 15t)에 들어갔다.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감광재 ‘포토레지스트’에서도 국산화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에스케이머티리얼즈는 2021년까지 생산시설을 준공해 연간 5만갤런 규모의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듀폰으로부터 충남 천안에 포토레지스트 개발·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도 이뤄냈다. 삼성전자는 당장 급한 대로 수입선을 벨기에산으로 우회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거래선의 제3국 합작법인이다. 벨기에산 포토레지스트 수입 비중은 규제 전 0.6%에서 규제 후 7.0%로 10배 남짓 늘었다. 일본산 수입액은 규제 전(2억6500만달러·수입 비중 92.8%)과 규제 후(2억7500만달러·86.7%)에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이 소재를 특정포괄허가 대상으로 변경해 규제를 일부 완화한 바 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일본산 수입액이 규제 전(2200만달러·수입 비중 92.7%)과 규제 후(3000만달러·92%)에 큰 변동이 없다. 정부와 업계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국산화에 나서는 가운데, 일본도 비록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했지만 자국 수출업체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한국 시장 수출을 전면적으로 틀어막지는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한-일 분업 체제가 구조적으로 훼손되고 있다고는 해도 우리가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에서 갑자기 탈피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정도 드러낸다.
■ 일본의 2차 보복 위험은 남아
관건은 기술·품질에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일본산을 몇년 안에 추격·대체할 수 있느냐다. 정부가 선정한 ‘소부장 100대 전략품목’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평균 61%에 머물고 있고, 반도체부품(38%)과 디스플레이부품(50%)은 더 낮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도 장비(6.4년)·기계(4.9년)·전기전자부품(4.8년)·탄소나노소재(7.0년)·섬유소재(6.5년) 등에서 뒤처져 있다.
일본이 ‘수출 불허’ 칼날을 돌발적으로 빼 들어 2차 보복 도발에 나설 위험이 여전하다는 점도 변수다. 무역협회는 이날 ‘일본 수출규제 1년’ 보고서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특정 품목에 대한 일회성 조처가 아니라 제도적·포괄적으로, 국내 생산이나 대체가 쉽지 않고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집중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대일본 수입규모가 100만달러를 웃돌고 대일 수입의존도 70% 이상인 ‘100대 품목’에서 향후 추가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현재는 전략물자 1120개(민감품목 263개, 비민감품목 857개) 중에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특별규제하고 있는데, 또 다른 ‘비민감 전략물자’ 품목을 특별규제 대상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본 공격에 일본이 당했다..수출규제 1년, 韓 놀라운 변화
2020. 6. 24.
장주영 입력 2020.06.24. 00:05 수정 2020.06.24. 07:08
일본 핵심소재 수출규제 1년

SK머티리얼즈의 경북 영주 반도체 소재 통합분석센터. [사진 SK머티리얼즈]
지난해 7월 4일. 일본은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한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전격 단행했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은 직격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거의 1년이 지난 23일 반·디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의 취재를 종합하면 “걱정은 그저 걱정이었을 뿐, 오히려 국산화를 높이는 전화위복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은 발 빠르게 소재 공급처 다변화와 소·부·장 국산화에 나섰고, 정부는 핵심소재 육성 정책으로 뒷받침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 ‘국산화·다변화’로 체질 개선 성공
일본은 지난해 7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불화 폴리이미드 등 첨단소재 3종의 수출을 묶었다. 3개 품목을 ‘포괄수출허가’에서 ‘건별 허가’ 대상으로 전환했고, 8월에는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인 ‘화이트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3개 품목은 반·디 산업의 핵심소재이지만 일본 의존도가 90%나 됐다. 일본이 한국 반·디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날카롭게 겨냥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오히려 변하지 않던 국내 기업을 변화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일본에 의존했던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의 박재근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일본이 잠자고 있던 한국을 깨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박 회장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국산화와 다변화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수출규제 3대 품목 국산화·다변화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불화수소 국산화 성공 … 100% 대체
우선 일본 수출 규제 1년 만에 소부장의 국산화 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해외 의존도가 100%였던 기체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이미 순도 99.999%의 양산을 시작했고, 연간 15t 규모로 시작해 앞으로 3년 안에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에 그려진 회로도에 따라 기판을 깎아내는 식각(蝕刻·에칭) 공정에 쓰인다.

소재·부품·장비 대일 교역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액체 불화수소는 이미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솔브레인·램테크놀로지가 공장 증설을 통해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업계는 1년 만에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100% 국내 기업 제품으로 대체한 상태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액체 불화수소는 국산 제품 사용 비중을 늘렸고, 기체 불화수소는 미국 등을 통해 수입 다변화로 대응했다.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감광액(感光液)인 포토레지스트(PR)는 한때 일본 의존도가 92%에 달했다. 현재는 벨기에·독일 등으로 공급처가 늘었다. 국내 기업 중에도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동진쎄미켐이 올 초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SK머티리얼즈도 ArF 포토레지스트 개발을 위해 내년까지 공장을 완공해 2022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EUV용 PR는 미 듀폰 공장 천안에 유치
5㎚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당장 국산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워낙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듀폰이 올 초 EUV용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충남 천안에 짓기로 결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듀폰과 협의해 투자를 유치했다. 순수 국산화까지는 못 갔지만 일본이 아닌 해외 기업 유치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셈이다.

소재·부품·장비 일본 수출 규제 주요 일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다른 규제 품목인 불화 폴리이미드는 국산화가 한창이다. 불화 폴리이미드는 주로 폴더블 스마트폰이나 롤러블 TV 등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에 사용한다. 국내 업체 중에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SKC도 연간 100만㎡를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충북 진천에 갖추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닛케이 “일 기업 매출·영업이익 감소”
일본 수출규제의 타격은 오히려 자국 업체들을 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세계 불화수소 1위 업체인 스텔라케미파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각각 12%, 32%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의 고순도 불화수소 출하량은 같은 기간 30%나 감소했다.
닛케이는 “기업들은 정부에 한국 대기업에 대한 납품 물량을 원상 복귀시켜 달라고 요청 중이지만, 한국 기업들이 다시 일본산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공급처를 바꾸기도 어렵지만 다시 일본제로 돌리는 일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도 한몫 “민·관 협력 계속돼야”
소재 공급 안정화와 국산화가 이뤄질 수 있던 배경에는 정부의 역할도 한몫했다. 산업부는 불화 폴리이미드는 2010년, 포토레지스트는 2002년부터 기술개발 과제로 지원해왔다.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기업의 애로사항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한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를 운영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박동일 산업부 소재부품정책관은 “지난해 8월부터 100대 핵심 품목을 공급 안정화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소·부·장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며 “동시에 대·중소기업 간 협력모델도 빠르게 구축했다”고 밝혔다.
일 수출규제의 여파는 극복했지만 민관 협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반도체용 정전척(ESC)과 히터 전문업체인 ㈜미코의 전선규 회장은 “정부나 기업의 분위기가 다시 흐지부지돼선 안 된다. 특히 소재 경쟁력을 키우려면 정부 지원이 꾸준히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日 수출규제 1년, '소부장 국산화' 잇단 성과
양태훈 기자 입력 2020.06.22. 17:46 수정 2020.06.23. 14:41
[이슈진단+] 소부장 국산화 성과와 과제 조명
(지디넷코리아=양태훈 기자)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나선 지 1년이 다 됐지만, 한일 양국의 무역분쟁은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이 추가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 제소 재개 검토로 갈등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가 국내 산업의 새로운 위기요인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나온다. 지디넷코리아는 이에 한일 무역분쟁 1년의 성과와 과제를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됐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좀처럼 갈등해결의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수출규제 문제(한일 무역분쟁)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패널 설치 요청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하면서 WTO 분쟁 절차를 본격화한 데 따른 것이다. 패널은 WTO 분쟁 당사국 간 재판절차로, 최종심까지 통상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한일 무역분쟁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노역 배상판결과 관련해 일본이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을 '포괄수출허가' 대상에서 '건별허가' 대상으로 전환, 같은 해 8월 우리나라를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국(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시작됐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시행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1년을 맞았다. (사진=뉴스1)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일본과의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대화에 나서왔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유예하고, WTO 제소 절차를 중단하는 등 무역분쟁 해결을 위한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이 수출규제 이유로 거론한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미흡 ▲수출관리 조직·인력 불충분 ▲한일 정책대화 등과 관련해서는 수출관리지원조직인 전략물자관리원 인력을 25% 증원하고, 무역안보 업무를 전담하는 무역안보정책관 신설하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3개 사유를 모두 해소했다.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우리 정부의 노력에 비해 일본 정부에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WTO에 제소해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런 상황에도 일본 정부는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현안 해결을 위한 논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의 상황이 애초 WTO 분쟁해결절차 정지의 요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 日 수출규제 1년, 달라진 한국 소부장 경쟁력
우리 정부는 그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을 수립하고 ▲예산 ▲금융 ▲세제 ▲규제 특례 등에 걸쳐 국내 소부장 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수출규제 3대 품목에 대한 국산화에 성공, 주요 대기업들은 공급선을 다변화하는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 불화수소의 경우, 솔브레인이 기존 대비 두 배 이상 생산량을 늘려 공급능력을 확대했고, SK머티리얼즈도 경북 영주에 15톤 규모의 생산공장을 준공해 제품 개발에 돌입하는 등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포토레지스트는 유럽산 제품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 미국 듀폰의 국내 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해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했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가 독자기술을 확보해 주요 대기업과 시제품 테스트에 돌입하는 등 국산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나아가 3대 수출규제 품목은 아니지만, 대일 의존도가 90%에 달했던 반도체 블랭크 마스크 역시 SKC가 제품을 국산화하고, 국내 수요기업과 시제품 테스트에 돌입하는 등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소재부품장비 관계자들이 화학소재솔루션센터의 화학소재 공정 및 클린룸 제조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산업부)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핵심 소부장에 대한 국산화 움직임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줄고, 국내 기업의 공급물량이 늘어나는 성과가 나타났다"며 "특히 소부장 업계에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대기업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문화가 조성됐다.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산업계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로 소부장 국산화 정책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국내 대기업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자 우리나라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해외 기업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양팽 전문위원은 이에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오히려 일본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늘어나는 등 글로벌 공급체인이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 소부장 업계가 이번 기회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만큼 지속적인 정부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韓 소부장 경쟁력 강화 더 강화하려면 세제 개편 필요"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촉진세제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국내 소부장 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세제지원 실효성 강화를 위한 세액공제 방식 개선 ▲소부장 R&D 투자확대 및 제품화 유인을 위한 조세지원제도 마련 등을 제시했다.
정부가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고,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및 인력확보 지원을 위한 세제개편안을 마련했지만, 더욱 정밀한 조세지원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은희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입법조사관은 "소부장 국산화 촉진을 위해서는 소부장 기업의 R&D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R&D 활동에 지출하는 비용 중에서 정부이 세제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3.93%로 주요국가 대비 낮은 수준인 만큼 기업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R&D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해야한다. 예컨대 미국의 세제지원 비중은 3.69%로 우리나라보다 낮으나 보조금 형식을 통한 직접지원 비중이 높아(2017년 기준 한국 4.7%, 미국 6.1%) 전체 정부지원 비중은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근거를 들었다.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또 "기업의 R&D 투자 활성화를 위해 먼저 R&D 투자 조세지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R&D 개발비 세액공제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며 "조특법 제10조의 연구개발 관련 경상비에 대한 조세지원제도는 신성장·원천기술 연구개발비와 일반연구·인력개발비로 크게 구분되고, 각 구분에 대해 기업규모에 따라 세액공제율에 차이가 나는데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방식으로 차등적으로 설정돼 있다.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의 경우 중소기업은 당기분의 25% 또는 전년 대비 증가분의 50%를 선택해서 공제받을 수 있는 만큼 증가분을 활용하기 위해 전년 대비 100% 이상 투자를 증가시켜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는 전년 투자비가 10억원인 경우, 전년 대비 증가분에 따른 공제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전년 대비 100%(10억원) 증가한 20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데 재정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 중 전년 대비 연구개발비용이 증가한 기업은 전체의 52%에 불과한 실정이다.
문은희 조사관은 "국내 소부장 기업의 98%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소부장 산업의 연구개발투자 세제지원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현재 중소기업에 대한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제도를 소부장 기업에 대해서는 당기분 세액공제율을 상향하거나 현재의 당기분 또는 증가분의 선택 방식에서 당기분에 증가분을 추가 세액공제하는 혼합형 공제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소부장 R&D 투자확대 및 제품화 유인을 위한 조세지원제도 마련과 관련해서는 투자 성과물의 사업화율 제고 측면을 고려해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식재산을 사업화해 발생한 제품 매출 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특허박스 제도는 기업 경쟁력 강화와 지식재산권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문 조사관은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OECD 국가 중 높은 편인 것을 감안하면, 특허박스제도를 통해 법인세 실효세율을 낮춰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유인과 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최근 학계와 산업계에서 특허박스제도의 국내 도입 유형으로 세원감소 및 대기업에 집중되는 혜택 등 부정적 효과를 감안하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제품매출형 특허박스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향후 세수와 다른 산업에의 파급 효과 등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소부장 중소기업에 대한 제품매출형 특허박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태훈 기자(insight@zdnet.co.kr)
사무라이의 일격, 받아친 삼성.."韓 반도체 잠깼다"
심재현 기자 입력 2020.06.28. 09:00 수정 2020.06.28. 09:03
[일본 수출규제 1년]
[편집자주]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재료를 무기화하면서 기습적인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년이 됐다. 사태 초반의 우려와 달리 일본의 강공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일본이 추가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지난 1년의 성과와 한계를 되짚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구매담당 A전무는 지난해 이맘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1년 전 주말이었던 6월30일 산케이신문의 보도로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규제 방침이 알려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내부검토 결과 최악의 경우 3개월 안에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보고됐다.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묶은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감광액)·불화 폴리이미드는 그만큼 대일 의존도가 높은 소재였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보고를 받자마자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A전무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차질 없이 라인 가동을 유지하느냐가 당시 최대 현안이었다"며 "1년만에 공급망을 재정비하고 이만큼 국산화 성과까지 거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지난 1년 동안의 적극적인 국산화와 공급 다변화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며 "일본이 잠자고 있던 한국을 깨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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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세에 체질개선 속도…국산화·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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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서 국산화 성과가 속속 나오면서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 규제가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년의 성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일부 대기업의 성공 신화에 젖었던 업계와 정부, 학계가 일본 아베 정부의 선전포고를 계기로 기술 자립과 공급망 다변화에 나선 결실이라는 얘기다.
특히 지난 반세기 가까이 일본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자조했던 소·부·장 업계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 게 성과로 꼽힌다. 최근의 성과는 지난 17일 공개된 SK머티리얼즈의 고순도 불화수소 가스(반도체 기판인 실리콘웨이퍼에 그려진 회로도에 따라 기판을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 필수적인 소재) 국산화다. 순도 99.999%를 뜻하는 '파이브나인' 이상의 불화수소 가스는 그동안 해외에 전량 수입했다. SK머티리얼즈는 연생산량 15톤 규모로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도체 기판의 불순물을 씻어내는 데 쓰이는 액체 불화수소도 지난해 수출규제 조치 직후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로리지가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를 국산 제품으로 100% 대체한 상태다.
반도체 기판을 만드는 데 쓰는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는 벨기에·독일 등으로 수입선이 다변화됐다. 국내에서는 동진쎄미켐이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라인을 올초 증설하기로 했다. SK머티리얼즈도 내년까지 공장을 완공, 2022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5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는 아직 국산화 전이지만 미국 듀폰이 충남 천안에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했다.
또 다른 규제 품목으로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불화 폴리이미드도 국산화 성과가 나왔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경북 구미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SKC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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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꾀에 넘어간 일본…"삼성 마음 돌릴 선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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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는 대일 수입현황에서도 숫자로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5월 일본에서 수입한 불화수소 규모가 403만3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43만6000달러보다 85.8% 줄었다. 일본산 포토레지스트 수입 비중은 지난해 91.9%에서 올해 88.6%로 낮아졌다.
일본 현지에서는 수출규제의 타격이 오히려 자국 업체를 향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세계 불화수소 1위 업체인 일본 스텔라케미파의 경우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12%, 32% 줄었다. 이 업체는 지난해 결산보고서에 "수출규제 영향으로 한국업체에 공급하던 물량이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도쿄신문은 지난 23일 서울 특파원 칼럼에서 "수출규제가 일본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비싼 가격에도 수율 저하를 우려해 고품질의 일본 소재를 써왔는데 수출규제가 이를 흔들었다"며 "한국 기업이 다시 일본산 소재로 돌아가기 쉽지 않게 됐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우 재료나 소재에 맞춰 공정을 조정하고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다시 일본제로 돌아가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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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학 삼각공조…"협력 고삐 늦춰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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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 공급 안정화와 국산화가 이뤄질 수 있던 배경에는 업계의 신속한 대처 외에 정부의 과감한 정책 지원과 학계의 연구 성과라는 삼각공조가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향후 7년 동안 7조8000억원+α 규모의 재정을 투입키로 하는 등 기업의 원활한 물량 확보를 위한 세제·금융·통관·인허가 단축 패키지 정책을 냈다. 올 들어서도 새로 편성한 소·부·장 특별회계 2조725억원 중 1조2850억원(62%)을 지난 5월말까지 조기집행했다.
정부는 올해 소·부·장 산업 핵심관리 품목을 100개에서 338개로 확대하고 2022년까지 연구개발(R&D)에만 5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등의 추가 지원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지난 1년은 위기 상황에서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수세적으로 공급안정화에 주력했다"며 "앞으로의 대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공세적으로 전환, 소·부·장 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워내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액체 불화수소 중국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수출규제의 여파를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민관 협력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산업계의 급소가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전 하이닉스반도체 전무·극동대 석좌교수)는 "특히 반도체 투자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 분야의 자립이 시급하다"며 "일본과 미국에 의존하는 장비 국산화는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권혜민 기자 aevin5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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