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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국내여행

수원화성(세계 문화 유산) . 고양시 행주산성

by 무궁화9719 2022. 9. 13.

2010. 12. 20

 

수원화성 

세계 문화 유산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1794년 1월에 착공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八達門과 옹성(甕城) (보물 제420호)

팔달문은 수원성의 남문으로 규모와 형태면에서 중국의 장안문과 거의 같다

 

 

 八達門과 옹성(甕城) (보물 제420호)

 

 

長安門

이 문은 화성 4대문의 북쪽 문으로서 정조 18년(1794년) 건축되었으며

중국의 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이를 정조가 북문의 이름으로 정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중국 漢,唐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

이름을 장안문이라 하였다. 

 

 

華西門  (보물 제 403호)

화서문은 화성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조선 정조 20년(1796년)에 완공되었고

동쪽에 있는 창룡문과 같은 규모이며 문을 보호하는 옹성도 같은 형식이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유지하 여[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蒼龍門

                                 동문인 창룡문은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다.

                                                조선 정조 19년(1795년)에 건립되었다.

  

 

 西將臺

장수가 좌정하여 군사를 지휘하는 장소이다.

1795년(정조 19년) 원행시에 정조는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훈련과 야간 훈련을 시행하였다

 

 

 西將臺

 

 

  東將臺

 

 

華陽樓  (西南閣樓 )

 

 

 西弩臺

 

 

       西南暗門

 

 

 西北空心墩

서북공심돈은 우리 나라에 유일하게 조성된 예로서

수원성을 인상깊게하고

수원성축조를 주도한 18세기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건물이다.

서북공심돈은그 독특한 구조로 인하여 수원시의

심볼 마크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西北空心墩

 

 

 東二砲樓

 

 

東南角樓 

 

 

 烽墩 (봉화대)

 

 

 화홍문 (華虹門)

화홍문은 수문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만든 주각으로 아름다운 일곱개의 무지개 홍예 돌다리 위에 문루를 세웠으며

홍예다리 위에는 빗물이 배수되도록 7개의 누조를만들었다

 

 

 訪花隨柳亭

절벽아래의 용연과 함께 경치 또한 좋은 곳으로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하기 적합한 곳이다.

 

 

華城行宮

 

고양시 행주산성

2010. 12. 15 

         

 

 

 

 

 

 

 

 

 

 

 

▲ 산성에서 본 행주대교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 (347,670㎡)

 

임진왜란(1592)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  더보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에 있는 산성.

 

사적 제56호. 해발 124.8m의 덕양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해발 70~100m의 능선을 따라 부분적인 토축을 했는데, 그 길이는 약 1km에 이른다. 성의 남쪽은 한강이 인접해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고 있어 자연적인 해자가 조성되어 있다.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 일대는 급경사로 요새로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산성의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90년 12월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생토암반을 정리하여 성 내부 쪽에 2단의 석렬(石列)을 쌓고 성 바깥쪽에는 기둥을 세워 그 사이에 5~10m 두께의 점토와 산흙을 겹겹이 다져 쌓는 판축법(版築法)에 의하여 성이 축조되었다. 시굴·조사의 대상인 대첩비휴게소에서 충장사(忠莊祠)에 이르는 구간의 밑바닥 부분의 너비는 6.26m, 높이 2.8m, 성벽 정상부의 너비는 2.3m가량 된다.

 

건물지의 존재를 시사하는 초석과 문터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 판축토 안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과 기와편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을 통하여 볼 때 성곽의 축조시기는 7~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권율이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행주대첩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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