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위안부 첫 증언' 김학순 할머니 24년만의 부고기사
송고시간2021-10-26 03:52
강건택 기자기자 페이지
'간과된 여성들' 시리즈로 김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 조명
24년만에 김학순 할머니 부고 기사 실은 뉴욕타임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뉴욕타임스가 25일(현지시간) 지면에 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 2021.10.25 [뉴욕타임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firstcircle@yna.co.kr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국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NYT)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고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NYT는 25일(현지시간)자 지면에서 부고면의 절반을 할애해 '간과된 여성들'(Overlooked) 시리즈의 일환으로 김 할머니의 생애와 증언의 의미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시리즈는 NYT가 1851년 이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주목할 만한 인물의 부고 기사를 통해 늦게나마 그들의 삶을 조명하려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이 기획 연재를 통해 유관순 열사를 추모한 바 있다.
이날 보도는 김 할머니가 1997년 12월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재조명한 것이다.
1991년 8월14일 김 할머니의 첫 기자회견으로 부고 기사를 시작한 NYT는 "그의 강력한 설명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십년간 부인해오던 역사에 생생한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성폭력 피해자라면 수치심 속에 침묵을 지키는 게 일반적이었던 당시 한국 문화에서 용기를 낸 김 할머니의 증언은 세계 각국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추가 증언으로 이어졌다.
지난 1998년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소 운영을 반인류 범죄로 규정한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이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것도 김 할머니의 30년 전 직접 증언이 미친 영향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부고 기사에 포함됐다.
한일 관계를 전공한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도 그의 1991년 회견 덕분에 본격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생전 증언을 통해 그의 기구한 삶을 자세히 조명한 NYT는 2018년 한국이 김 할머니가 처음 회견한 8월14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정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위안부 문제 공개 증언한 김학순과 소녀상
(교토=연합뉴스) 지난 7월 24일 일본 교토부(京都府) 교토시의 한 시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가운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金學順·1924∼1997) 씨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2021.10.25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firstcircle@yna.co.kr
NYT, 24년 늦은 김학순 할머니 부고 "20세기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
'간과된 인물들' 시리즈 일환... "그의 증언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에 나오도록 영감 줬다"
21.10.26 12:00l최종 업데이트 21.10.26 12:48l
![]() |
|
▲ 1991년 8월 14일 자신이 일제시대에 정신대였다고 증언하는 김학순 할머니. | |
ⓒ 연합뉴스 | 관련사진보기 |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고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실었다.
현지시각 25일 NYT는 김 할머니가 1997년 12월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에 뒤늦은 부고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이 창간한 1851년 이후 잘 보도하지 못했던 주목할 만한 인물을 뒤늦게라도 소개하는 '간과된 인물들'(Overlooked) 시리즈의 일환이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유관순 열사가 사망한 1920년 이후 98년 만에 부고 기사를 내고 추모하기도 했다.
"20만 여성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국가 주도의 최대 범죄"
NYT는 김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TV에 나와 자신이 17세 때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서 당했던 경험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고 서술하며 "그의 강력한 설명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부인해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인하고 있는 역사에 생생한 힘을 실어줬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일본이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꾀어내거나 강제로 위안부 시설로 끌고 갔으며, 이는 국가가 주도한 성노예 범죄 사례 중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지적했다.
![]() |
|
▲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최초로 고백한 고 김학순 할머님 생전 모습 1991년 8월 14일 명동 향린교회에서 고 김학순 할머님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음을 최초로 고백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후 여성, 종교단체가 연대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가 탄생했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려 일본 정부의 태도를 규탄했다. | |
ⓒ 정의기억연대 제공 | 관련사진보기 |
그러면서 "김 할머니는 증언 6년 만인 1997년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래 기억되는 유산을 남겼다"라며 "필리핀, 인도네이사, 말레이시아, 중국, 호주, 네덜란드 등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 앞에 나오도록 영감을 주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사는 일본군 위안부를 '반인류 범죄'로 규정했던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이, 관련해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대목도 김 할머니가 직접 증언한 영향력에는 근접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을 전했다.
어렵게 위안부 수용소에서 탈출한 이후 김 할머니의 기구한 삶을 전한 NYT는 "당시에는 성범죄를 당한 여성 피해자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수치와 침묵 속에서 살도록 하는 문화 탓에 많은 피해자가 과거를 숨겨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가 "일본은 위안부를 부정하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견뎌냈으며 그것이 실제였다는 살아있는 증거로서 항의하고 싶었다"라고 증언을 결심한 이유를 소개했다.
"김 할머니,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NYT에 "김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라며 "그의 증언 덕분에 역사학자들이 증거 문헌을 발굴하고, 유엔이 이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게 했다"라고 강조했다.
NYT는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을 지고 보상할 것을 요구하며 지치지 않는 활동을 펼쳤다"라며 "하지만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1997년 7월 생전 마지막 육성 인터뷰가 담긴 유튜브 영상(바로보기)을 소개하며 부고 기사를 끝맺었다.
"100살이든 110살이든, 살아서 내 귀로 일본 정부와 일왕의 사과를 듣고 싶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기에 죽기 전에 증언하고 싶었고, (일본으로부터)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다른 소망이 없다."
"그녀는 겨우 17살이었다"…외신에 24년만에 실린 김학순 할머니 부고기사
NYT, 사망한 인물 재조명하는 기획 시리즈서 다뤄
1991년 최초로 위안부 공개 증언…日, 일부 인정 끌어내
전시 여성 인권유린의 산증인…"오래 지속될 유산 남겨"
"진심어린 사과 받는 것 외에 원하는 것 없다"
등록 2021-10-26 오후 2:53:19
수정 2021-10-26 오후 9:35:15
![]() |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그녀는 겨우 17살이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매일 여러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경위를 소름 끼치게 자세하게 묘사했다.”
역사가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면 기억은 역사를 완성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외신이 24년전에 세상을 떠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크게 실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처음으로 공개 증언을 한 김 할머니를 통해 참혹한 역사를 직시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일 터다.
김 할머니 부고기사 통해 위안부 문제 재조명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자 신문 부고면 절반 가량을 할애해 김학순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다뤘다. 1997년 12월 폐 질환으로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이다.
‘더이상 간과하지 않겠다(Overlooked No More)’는 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김 할머니의 생애와 증언이 이끌어낸 역사적인 의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시리즈는 NYT가 1851년 이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부고 기사를 늦게나마 다룸으로써 그들의 삶을 주목하고 기억하자는 의도로 기획했다. 지난 2018년 3월에는 이 기획을 통해 유관순 열사를 추모했다.
기사는 1991년 8월14일 김 할머니가 위안부 증언을 위해 처음으로 TV 카메라 앞에 섰던 장면으로 시작한다. NYT는 “‘전 위안부 여성’이라는 그녀의 타이틀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십년간 부인해왔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는 역사를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당시 명백한 강압과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심 탓에 숨어 있어야 했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목소리를 처음으로 대변한 것이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 냈을뿐 아니라, 성착취를 당한 세계 각국의 피해자들에게도 오래 남을 유산이 됐다고 NYT는 평가했다.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것도 김 할머니의 30년 전 증언이 미친 영향력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맥두걸은 지난 1998년 특별보고관 시절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 위안소 운영을 반인류 범죄로 규정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 원했지만 소원 못 이뤄
김 할머니의 최초 공개 기자회견 이후 1992년부터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렸고, 쏟아지는 증언과 비난 속에 견디지 못한 일본 정부는 1993년 역사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측은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관여했다”며 위안부 동원에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일부 사실만을 인정했지만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끌어낸 역사의 한 발자국이었다.
한일 관계를 전공한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인물 중 하나”라며 “그녀의 진술은 주장을 뒷받침할 문서 증거를 찾아내도록 유도했고, 이것은 유엔이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기사는 말미에 김 할머니가 생전에 한 마지막 인터뷰를 재조명했다. 김 할머니는 온라인매체인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110살이나 120살까지 살려고 한다”며 “그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지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과 배상금을 요구했으나 생전에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한.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베 전 日 총리, 선거 유세 중 총격 사망...향년67세 (0) | 2022.09.16 |
---|---|
윤석열 취임 앞두고 본토 왜구 야만적인 역사 지우기·독도영토 침탈 나섰다 (0) | 2022.09.16 |
위안부 피해 증언 첫 보도 우에무라 "용기 낸 증언에 떨렸다" (1) | 2022.09.16 |
[단독]일본군 극비문서 입수 "일제는 한반도를 총알받이로 쓰려 했다" (0) | 2022.09.16 |
하버드대 출신 한국학 전문가 "위안부 비하 논문, 다시 고개 드는 일본의 '추한 모습'" (2) | 2022.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