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전략과 한반도
[기고] 김성만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장
- 기자명 김성만
- 입력 2023.09.07 09:58
- 수정 2023.09.07 12:57
차 례
1. 세계의 변화
2. 미국의 정책 관철의 동력: 한반도 긴장
3. 윤석열 정부의 미국 국가전략 추종
4. 한반도 평화와 주한미군
5. 결어: 한국 시민사회와 한반도 평화
1. 세계의 변화
1) 일극제체가 다극체제로
1991년에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단일 패권국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수립되었다. 30여 년간 지속된 이 팍스 아메리카나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미국 및 서방세계의 단결된 지원에 맞서서 전쟁을 수행하면서 종식되었다.
러시아는 NATO의 동진(東進)에 따른 안보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일극체제가 더는 존속되지 않음을 알렸고, 자국이 다극체제의 일원으로 복귀하였음을 보여주었다.
2) 미중의 전략경쟁: 중국의 도전에 대한 미국의 선제적 대응
단일 패권국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은 러시아를 자국의 패권에 도전할 국가로 여기지 않는다.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2000년대 들어서 경제가 회복되었지만 아직 경제력과 외교력이 기존의 국제질서에 중요한 변동을 가져올 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반면에 중국을 미국에 도전할 유일한 경쟁국이라고 본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경제력, 외교력, 기술력, 군사력을 점차 갖춰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국이 되려는 의지와 국제질서를 재편할 의도를 갖고 있는 국가로 간주한다.
미국 국가전략의 최고 핵심과제는 중국이 패권 도전국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유럽과 세계 각지의 동맹국을 모두 동원하고, 우호국의 협력을 받아서 중국의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팽창을 억제하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독재국가로 규정하고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에게 자유와 개방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연대’를 주창한다.
미국은 향후 10년 동안 모든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서 국제질서의 서열을 확고하게 세우고자 하며 중국을 미국의 패권을 넘보지 못하는 2등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서열에 따라 그 후 수십 년 이상 안정적으로 1등 패권국가의 지위를 누리고자 한다.
군사적 압박을 위해 유럽의 집단안보기구인 NATO에 지리적으로 유럽을 넘어서는 세계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으며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군사적 결속을 추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 세력 확장의 근간이 되는 경제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첨단 신흥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다.
한국을 포함해 핵심 신흥기술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동맹국과 우호국을 묶어서 기술 보호를 강화하고,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저지하고자 한다. 중국의 경제적 강압 행위, 곧 보복 행위로 인한 소재 등의 공급망 불안정에 대비해 서로 돕는 연대를 강화하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그 맹방(盟邦)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그동안 국제자유무역을 보장해온 WTO의 규칙을 초월하는 새로운 무역 규칙을 제정하여 국제 무역에 적용하고자 하며 호환성이 보장되는 국제기술의 새로운 표준화를 추구함으로써 이 흐름에 줄 서지 않는 국가들에 두려움을 주고 있다.
중국의 세력 확장은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이 21세기 지정학의 중심지라고 선언하였고,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국가전략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의 많은 국가가 소리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과 움직임을 살피며 자국에 미치는 손익을 계산하여 독자적인 인도·태평양국가전략을 수립하였다. 우리에게 친숙했던 아시아·태평양 용어는 이제 주변으로 밀려났다.
3) 미중 전략경쟁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미중 전략경쟁은 한반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한국을 충직한 우군으로 만든다면 한국이 대중 첨단기술 규제에 동참할 수 있고, 한미일 결속으로 중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할 수 있고, 대만 등 여타 문제에서 국제정치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미국은 자국의 정책 한 가지로 한국의 이 모든 능력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곧 한국 정부가 비록 얼마간 국익 손상이 있더라도 미국에 편향된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한국 국민이 이를 별 저항 없이 수용하거나 지지하도록 만들 수가 있다.
특효약과도 같은 미국의 정책은 바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위협적으로 자극하는 강도 높은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면 필연적으로 북한의 험악한 언사와 군사적 맞대응을 불러온다.
이에 안보 불안을 느끼는 한국 국민은 한미동맹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편항된 정책을 펼치며 오히려 지지기반을 넓힌다. 이제 미국이 한반도에서 이러한 정책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살펴보자.
2. 미국의 정책 관철의 동력: 한반도 긴장
1) 미국 대북정책의 목표: CVID 원칙에 의한 비핵화
대북정책에서 한국과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다. 북한의 이 핵·미사일 능력은 한국의 안보를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사라지지도 않고 사라질 리도 없는 북한의 이 능력은 미국이 원할 때마다 언제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다.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적 목표는 명백히 사회주의 체제의 종식 곧 ‘백두혈통 정권’의 소멸이다. 하지만 압박으로 북한의 내부 붕괴가 도래하지 않는 현실에서 우선적 목표로 설정한 것이 CVID 원칙에 의한 비핵화이다.
그러면 이 목표는 실현 가능할까? 미 행정부는 외교적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언명한다. 정말 외교적 노력으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다른 의중을 감추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미국의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수단: 채찍과 당근
국제정치에서 외교적 노력은 크게 두 범주로 대별된다. 하나는 채찍 곧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압박이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 조성행위도 무력충돌이 초래되지 않는 한 외교적 노력의 범주에 속한다. 또 하나는 당근 곧 유인책의 제시다. 상황에 따라 이 두 가지를 적절히 배합할 수 있다.
경제적, 외교적 압박은 자력갱생의 체계를 갖춘 북한에 효력이 강한 채찍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효력이 장기간에 걸쳐서 나타난다. 유력한 수단은 군사적 강압이다. 상대의 정책변경을 요구하며 실지로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협과 긴박감을 조성하는 것이 군사적 강압의 핵심이다.
북한은 적의 치명적 공격이 임박하거나 감행되었을 경우 선제적으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고, 법으로까지 명기해 놓았다. 미국이 국제적 비확산체제를 위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비확산체제에 파열구가 나게 될 핵전쟁 가능성을 감수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북한 비핵화를 채찍으로 달성할 마땅한 방법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당근으로는 가능할까? 미국이 국제사회와 함께 제시할 수 있는 당근으로는 종전선언, 평화협정,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등의 외교·안보적 유인책과 남북경협, UN 안보리 제재결의안 폐기나 완화 등의 경제적 유인책이 있다.
미국은 북미합의 이행이 그동안 여러 번 파행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CVID 원칙에 의한 비핵화 실현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당근 제공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전에는 어떠한 당근도 제공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선 비핵화 후 보상’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결의를 한 후 회담장에 나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선 비핵화 후 보상’ 요구를 일축한다. 그러면 비핵화 진전 정도에 맞춰서 단계별로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은 수용할까?
유인책의 효용성 판단에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관점은 유인책의 효용성이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 설득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판단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체제 안전보장 수단인 핵·미사일 능력의 완전한 포기와 맞바꿀 등가물(等價物)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곧 국제사회와 북한이 이미 합의한 바 있는 한반도 비핵화 이전에 북한이 먼저 비핵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강압으로도, 유인책으로도 외교적 방법에 의해 CVID 원칙에 의한 비핵화를 달성할 방도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3) 진정성 없이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우는 이유 (1)
미국은 이러한 정황을 모를까? 모르기에 어제도, 오늘도 똑같이 외교적 노력으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워싱턴의 정책담당자들뿐 아니라 미국의 전문가들 거의 모두가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공언을 하는 것일까? 미국의 목표에서 북한 비핵화를 내려놓는 순간 미국의 이익이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이다.
먼저 NPT(핵확산방지조약) 체제의 이완을 들 수 있다. 이것에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핵보유 강대국들의 이익도 걸려있다. NPT 체제가 핵무기 확산 곧 핵무기의 무분별한 제조와 사용을 방지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NPT 체제는 이미 핵을 보유한 국가들의 우월한 특권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유엔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미, 영, 중, 프, 러)의 절대적 지위를 가진 5개 강대국은 배타적으로 핵무기 보유의 특권을 갖고 있고 국제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느 국가가 이 특권을 놓고 싶어 하겠는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순간 안보 불안을 느끼는 한국에서 핵무장 요구가 크게 분출할 것이다. 이 요구는 일본, 대만에서도 등장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에서도 등장할 것이다.
이 세상의 주역이라고 스스로 믿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자국의 특권이 위협받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5개 상임이사국은 NPT 체제 유지를 위해 이념과 갈등을 떠나서 단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비핵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진심으로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고,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미국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진정성 없이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우는 이유 (2)
미국이 외교적 노력으로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외교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강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외교적 노력의 일환인 군사적 강압이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미연합훈련은 ‘도발’에 대한 방어훈련이자, 핵 비확산(비핵화 결단)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진정성 없는 이 주장이 가져오는 결실은 달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의 여론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서 미국의 정책 관철의 최적 조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숨을 좀 돌리는가 싶으면 다시 반복되는 ‘전례 없는’ 대규모의 한미연합훈련에 북한은 높은 수위의 ‘공세적 도발’로 대응한다. 한국 국민은 불안감 속에서 미국의 ‘철통같은 한국 방어 의지’와 한국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약속과 발걸음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속에서 정책 하나하나를 한국 정부에 요청해서 관철하게 된다.
3. 윤석열 정부의 미국 국가전략 추종
1) 국민의 한미동맹 강화 지지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로드맵을 갖고 있다. 그리고 로드맵은 때때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요구한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정세나 한반도 정세의 맥락을 살피지 않고 단지 필요에 따라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다면 국제사회의 제재와 지탄을 받게 된다.
북한은 ‘도발’적인 한미연합훈련을 로드맵에서 진전을 이룰 기회로 활용한다. 곧 미국과 한국의 안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핵·미사일 능력을 개발하는 것임을 주변국에 주지시키면 최소한 중국과 러시아의 동조를 얻게 되며 UN 안보리 제재결의도 회피할 수 있다. 북한은 트럼프행정부 출범 전후 시기였던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고는 정세를 활용하여 핵·미사일 고도화를 이루는 이 패턴을 수십 년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전략을 번연히 잘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강도 높은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탄생했다. 그리고 미국의 의중과 일치된 행동을 보이는 것이 한미동맹 강화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연합군사훈련은 일 년에 몇 차례 전례 없는 강도로 실시되고 있으며 북한의 반발과 핵무력 고도화의 ‘도발’을 부르고 있다. 북한은 새로운 전략 순항미사일을 개발하여 잠수함에서 직접 발사한 후 예정된 지점의 공중에서 핵폭발시키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또 새롭게 고체연료를 사용함으로써 발사 전 사전탐지를 어렵게 만들면서 ICBM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한국 국민은 북한 핵무력의 놀라운 진전을 목도하면서 ‘도발’에 불안을 느끼게 되고 미국의 확고한 확장억제 공약과 한미 당국의 ‘도발하면 정권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 있는 태도에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행보를 지지하게 된다.
42년 만에 미국의 전략핵잠수함인 캔터키함이 부산에 기항하고 북한이 이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높아져도 국민은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 주장에 안도하고 한미동맹 강화 주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2) 윤석열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의중대로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한미동맹 강화의 길일 뿐 아니라 국익 향상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결속을 염원해온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현 정부는 역사적인 항일의 민족혼을 도외시한 채 식민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과 관계개선을 했다.
그리고 2023년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일본의 소망을 지역 차원에서 일거에 실현시켜 주는 한미일 정상 간 합의를 했다. 합의 내용은 안보, 경제, 첨단기술 문제 등을 다루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국익 실현만 보일 뿐 한국의 국가이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미일 정상은 역내의 도전, 도발이 공동의 문제라고 인정하고 서로 대응을 조율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3자연합 미사일방어망을 가동하면서 주한미군, 주일미군의 투입, 기지 활용 등을 협의하게 된다. 이 협약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첨단기술과 관련된 대중무역을 규제해온 미국은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수출통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AI, 양자컴퓨팅 등 미래의 번영과 안보에 필수적인 신흥기술에서 세계적으로 최전선에 서 있는 국가이며 미국, 일본, 대만 등과 어깨를 겨누고 있다.
한국이 대중 수출통제에 동참하게 되면 한국의 경제발전이 손상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의 경제보복과 희귀 자원 수출통제의 악영향을 같이 겪어야 한다. 이에 대비하여 한미일 정상은 공급망 교란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더 나아가서 한미일 정상은 신흥기술의 기술 표준화를 추구하고 이를 인도·태평양 전역으로 확산하기로 했다.
한국의 국익은 어디에 있는가? 한미일 군사적 결속이 없었다면 북한 ‘도발’에 대비하기 어려웠는가? 한미 연합군사력으로 북한의 위협을 제어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왔다는 말인가? 한미일 정상회담으로 미국은 한미일 군사적 자원을 통합하여 중국에 대비한다는 오랜 외교적 꿈을 실현헸다.
기시다 내각은 방위비 두 배 확대, 적 기지 반격 능력 보유 등을 추진하면서 이미 군사대국화의 길로 방향 전환을 했다.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위협에 근거한 한반도 관여를 넘어서서 대만 해협, 남중국해 등으로 외교적, 군사적 역량을 투사할 기반을 닦은 것을 최고의 성과로 꼽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이번 합의로 한국의 첨단기술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종속되어 운용되면서 경제발전이 손상을 받는 것 외에 국익이 확보된 내용이 딱히 없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한국에 반도체의 핵심시장이자 제조지역인 점을 지적하면서 그동안 대중 무역규제에 동참을 꺼려온 한국이 이번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동참에 합의했으며 공급망 교란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이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3) 윤석열 대통령의 NATO 정상회의 연설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안보 참모들은 국민 중 누구보다 먼저 미국의 국가전략과 미 행정부의 심기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놀라운 속도로 미국의 국가전략과 일치시킨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통령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국내에도 훌륭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미국의 국가전략이 국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평가하거나 국민의 의견이 모아질 틈을 주지 않고 현 정부는 미국, 일본과 정책을 합의해 나간다. 미국 전략자산의 수시 한반도 전개, 일본과의 관계 개선, 한미일 공동 연합훈련, 대중 무역규제 동참 등이 그러했다.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는 윤 대통령은 해외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국가전략과 쌍둥이처럼 닮은 한국의 국가전략에 기초해서 자유, 개방, 가치 연대 등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글로벌 중추국가의 지도자로서 한미동맹을 축으로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윤 대통령이 NATO의 초청을 받아서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 연설에서 북한의 ICBM이 파리, 베를린, 런던을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 위협”이라면서 가치를 연대하는 국가들이 북핵문제에 공동으로 연대해 대응하자고 제안했다.
ICBM은 대도시 한 개를 파괴하고, 순간적으로 몇백만 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핵무기이다. 북한이 ICBM을 장난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을 왜 파리, 베를린, 런던을 향해 발사하겠는가? 윤대통령의 그런 주장을 귀담아들었을 유럽국가 정상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겠는가? 그러면 왜 윤대통령이 그런 주장을 했을까?
중국의 패권 도전에 위협을 느끼는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동맹국들을 묶어 세우는 것만으로 부족하여서 NATO 등 힘 있는 군사동맹이 지역적으로 더 범위를 넓혀서 세계 안보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미 행정부의 심기를 살펴서 NATO를 동아시아로 끌어들이려는 주장이었으나 논리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현 정부는 미국의 전략과 한국의 전략을 일치시키는 것이 한미동맹 강화이자 국익 향상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4. 한반도 평화와 주한미군
1) 주한미군의 존재 의의
강도 높은 한미연합훈련이 한반도 긴장의 시발점 또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이고, 한반도 긴장이 한반도에서 미국이 동북아 정책을 관철시키는 동력이라면 주한미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주한미군이 우리에게 유익한 존재인 것은 맞을까? 아니면 외국 군대의 주둔이 국가의 자주성을 해친다는 견지에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해야 할까?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왜 주한미군의 존속에 동의했을까? 한국에 주한미군이 없는 상황을 가정해 본다. 미국은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세계 각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군사력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군사력을 거두어들이는 것 외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방기하는 의미가 된다.
당시 북한의 통일방안은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방안이었고, 남한과 북한이 외교적, 군사적 권한을 각자 보유하는 것이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언제나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 안에 놓여있는 지역이다.
한국이 미국 세력 부재 상태에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일본이 손을 내밀 것이다. 일본의 추악한 야욕은 언제나 한반도가 첫 번째 대상이었고, 그 야욕은 한반도에서 멈추지 않고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새롭게 성장할 일본의 군사력과 대륙을 향한 일본의 패권 추구는 또다시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불안정의 격랑 속으로 밀어 넣을 수가 있다.
반면에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강대국 간, 남북한 간 세력균형이 이루어져 왔다. 달리 말하면 휴전선 이남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은 안정자(stabilizer)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전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의 성장과 패권 추구보다 주한미군의 안정자 역할을 더 선호했던 것이다.
현 상황에서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힘입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그 한계는 이미 주어져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패권을 유지하는 한 일본은 미국의 대중국 군사력을 보완하기 위해 성장할 수 있을 뿐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을 넘볼 만큼 국제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2) 미국은 한반도 평화 세력인가?
미국이 전쟁 방지의 안정자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 한반도 긴장고조를 통해서 자국의 국가전략을 실현해 간다면 우리는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도대체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한 답은 극히 간단하다. 미국은 한반도 안정 세력이지 한반도 평화 세력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 기운이 증진되면 일각에서 민족자주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는데 미국이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미국이 북한에 꾸준히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하는 것은 그래도 평화를 도모해보려는 미 행정부의 노력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미국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혹시라도 예측을 뛰어넘는 북한의 무력충돌 대응으로 한반도 안정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편으로 대화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도발’의 우려를 덜기 위한 대화 제의이다. 대화를 하는 중에 ‘도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선비핵화’ 요구에서 물러서지 않는 미국의 대화 제의를 일축한다. 미 행정부는 강도 높은 한미연합훈련으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한편으로 북한의 대응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을 안고 있다.
5. 결어: 한국 시민사회와 한반도 평화
우리는 모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한국 국민, 북한 인민, 미 행정부의 공통된 바람이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 이후 한반도는 점점 전쟁 발발 임계점으로 향하고 있다. 이 위태로운 정세는 딱히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실행되는 강도 높은 한미연합훈련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명사회 이후 수십만 건의 전쟁이 있었는데 전쟁의 계기는 전쟁 횟수만큼 있었다고 이야기된다. 달리 말해서 어떤 일이 기폭제가 되어 전쟁이 발발할지 미리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거의 틀림없이 일어나고야 마는 한 가지 사유가 있으며 이것은 수많은 전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유는 불행하게도 한반도에 존재한다. 한 국가의 활로가 차단되어 있고, 그로 인해 그 국가의 구성원이 고통을 받으며, 고통과 좌절의 원인이 외부에 엄존해 있고, 심지어 모독을 당하며, 그 국가의 지도부가 좌절원(挫折原) 타격과 파괴 외에 출로가 없다는 것에 눈뜨게 될 때 전쟁은 발발한다. 어느 지역에서 누가 먼저 불꽃을 튕겼는지에 대한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기고문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평화운동의 전개로 우리나라가 전쟁 위험에서 멀어지도록 해야 한다. 미 행정부는 ‘설마’하는 안이한 자세로 대북적대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주는 좋은 토양으로 여기면서 오히려 이를 반기고 있다. 북한은 수용 불가능한 제안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활로를 열어젖히기가 어렵다. 우리 민족, 국내외 핏줄 외에 이 위기를 헤쳐나갈 세력은 이 세상에 없으며 특히 한국의 시민사회 손에 민족사의 향방이 달려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획기적으로 증진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려면 한국, 북한, 미국의 국가이익이 평화협정 안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필자의 기고문은 한국, 북한, 미국의 어떤 핵심적 국가이익이 평화협정 안에서 보장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국만을 위한 어떤 주관적 욕심이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글이다.
그래서 첫 번째 기고문 ‘북한의 핵무력 강화의 빛과 그림자’에서 북한의 국가전략을 분석했고, 이 기고문에서 미국의 국가전략과 국익, 그리고 한국 정부 입장을 분석했다. 앞으로 기고하게 될 마지막 글에서는 평화협정 내용의 국익 조화의 길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김성만 필자 약력
1981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1983 미국 Columbia University에서 민족민주운동 연구
1983~1984 동유럽 북한대사관 방문, 통일정책 토론
1984 한국사회에 반미민족자주운동을 불러온 지하책자 『예속과 함성』 배포
1985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체포, 대법원 사형 확정판결
1988 사형집행 대기 2년 3개월 만에 무기징역형으로 감형
1998 13년 2개월 복역 후 출소
2011 연세대학교에서 북핵문제 전공하여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2021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대해 재심에서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
2022 (현)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장
(현) 6·15 남측위 정책위원
저서 및 논문
1984년 지하책자 『예속과 함성』
1991년 옥중서한집 『사형수 작곡 양심수 작사』
2022년 논문 “트럼프행정부의 대북 강압외교와 김정은 정권의 대응전략”(세종연구소 『국가전략』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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