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4·3평화재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5·18 민주화운동 등재 계기로 2017년부터 본격 추진
“국가폭력과 그 이후의 과거사 해결 방법 선도적 사례”

제주4·3평화재단이 2021년 상반기 ‘기록이 된 흔적’이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사전 준비로 연 ‘기록이 된 흔적’ 전시회에 공개한 4·3위원회의 ‘4·3희생자 심의·결정 요청서’. 허호준 기자

2021년 제주4·3평화재단이 마련한 전시회에서 선보인, 1만4000여명에 이르는 4·3 희생자 심의·결정 요청서. 허호준 기자
이들 기관은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4·3 기록물의 등재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관은 2017년께부터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4·3 기록물 수집을 위한 국외 조사와 4·3 기록물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학술행사, 민간 기록물 수집 캠페인, 4만9600여건에 이르는 문서와 신문기사, 사진 등 4·3 기록물의 체계적인 정리 작업, 주요 기록물 전시회 등도 그 일환이었다.

제주4·3평화재단이 2021년 상반기 연 4·3 기록물 전시회. 허호준 기자
도는 등재 신청서에서 “4·3 기록물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실질적 피해 회복의 과정을 망라한 과거사 해결의 선도 모델이자 가해자와 피해자 간 화해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은 총체적 기록물”이라며 “세계적으로 분쟁을 겪은 여러 사회에 갈등 해결과 화해의 해법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도 “4·3 기록물은 냉전의 보편사와 분단의 특수사가 담긴 시대의 기록이자, 제주도민들의 자발적인 화해·상생 노력이 국가폭력의 상처 극복과 갈등 해결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총체적 기록물”이라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4·3을 세계가 인정하는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 어떤 비극도 평화적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세계사적 상징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4·3 유족과 각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4·3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제주도 제공
4·3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어떤 절차 밟나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은 까다롭다. 우선 우리나라 문화재청의 심사에서 통과돼야 한다. 국가마다 2건 이내로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재 결정은 격년으로 홀수 해에 이뤄진다.
제주도는 제주4·3평화재단과 함께 등재 필요성이 제기된 지 10여년 만에 준비를 끝내고 지난 2월27일 문화재청에 등재 신청서를 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희망하는 기관·단체는 여럿이다. 녹록지 않은 예선을 거쳐야 한다.
산림녹화 기록물(산림청), 태안 기름유출 피해 극복 기록물(충남), 유생 1만명의 상소문인 만인소(경북 안동시), 3·1운동 기록물(3·1운동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재단) 등이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예선 문턱을 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재청은 심사를 거쳐 이달 안에 2건의 후보 기록물을 선정해 내년 3월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유네스코는 기록물이 정확한 자료임을 보여주는 ‘진정성’과 기록물의 ‘완전성’,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가치와 의미를 보여주는 ‘중요성’과 ‘독창성’ 또는 ‘희귀성’, 기록물의 보존 상태 등을 등재 기준으로 삼아 심사한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발표는 2025년 하반기에 예정됐다.
제주4·3 희생자 1만4660명 가운데 생존 희생자는 116명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도는 희생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청 누리집의 ‘4·3 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온라인 응원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은 “75년이 지난 지금 다시 4·3 흔들기가 지속돼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반목과 갈등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화해와 상생의 역사로 세계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4·3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4·3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올리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4·3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라며 “4·3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기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4·3 시기 통학증명서와 석방증.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대표적인 ‘4·3 기록물’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본다.
4·3 시기 당국은 각종 증명서를 발급했다. 이 증명서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쪽지였다. ‘선량한 백성’이라는 의미가 담긴 ‘양민증’이 없으면 폭도가 됐고, 밖에 나다닐 수가 없었다. 학생은 학교가 발행하는 ‘통학 증명서’가 있어야 했다. 1948년 4월 발급한 이 증명서에는 성명과 나이, 학년과 반, 주소와 함께 통학 구간까지 적혀 있었다. 이 증명서를 기증한 부원휴(93)씨는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검문이 심해 통학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통학 증명서와 학생증을 제시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 석방증·통행증
또 다른 증명서는 ‘석방 증명서’다. 이 증명서에는 ‘서명인은 미국인과 조선인 합동 취조를 1948년 6월23일 종료 석방함’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는 6·23 재선거가 무기 연기된 뒤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작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미군이 함께 심문을 진행한 것은 당시가 미군정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1948년 11월17일자 계엄령 문건.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계엄령 문서

제주4·3 시기인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군사재판 ‘수형인 명부’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수형인 명부

제주4·3 시기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

1960년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국회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제주도의회 4·3피해조사 보고서

2003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이 세운 영모원. 제주4·3평화재단 제공
■ 화해·상생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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