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큰 손' 블랙록마저 "모르겠다"…CS 쇼크에 패닉장
글로벌 금융시장 강타한 CS 위기설
블랙록마저 "위험 전이 규모 모른다"
스위스 당국 지원에 나스닥 소폭 반등
미국채·금 등 안전자산 쏠림 가속화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글로벌 금융시장이 또 패닉에 빠졌다. 스위스계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위기설에 휩싸인 탓에 금융 시스템 리스크 공포가 미국 밖까지 확산하면서다. 이에 유럽 각국 증시가 폭락하고 뉴욕 증시는 약세에 기우는 등 위험자산 선호는 급격하게 쪼그라 들었다. 그 대신 미국 국채, 금 등 안전자산으로 대거 돈이 몰렸다.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에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동결론이 부상했음에도 투심 악화를 막지 못했다.
(사진=AFP 제공)
금융시장 강타한 CS 위기설
15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87% 하락한 3만1874.57에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70% 떨어진 3891.93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장 막판 반등하며 0.05% 오른 채 마감했다. 이외에 중소형주 위주의 러셀 2000 지수는 1.74% 내린 1745.94를 기록했다.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는 10.16% 급등한 26.14를 나타냈다. 장중 29.91까지 치솟았다.
3대 지수는 CS 충격에 장 초반부터 급락했다. CS의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립은행(SNB)이 추가적인 금융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자금 수요가 있으면 CS에 재정 지원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CS는 2021년 파산한 영국 그린실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캐피털 등에 대한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고객 예금도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이 와중에 SNB는 지난해 지분을 9.9%까지 늘리며 위기설이 불거졌던 CS를 사실상 떠받쳤다. SNB마저 CS를 포기한다면 부도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CS는 특히 지난 14일 발표한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서 “재무회계 부문에 대한 내부 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다”며 불안감을 키웠다.
CS 주가는 이날 스위스 증시에서 24.24% 폭락하며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장중 30% 이상 빠지기도 했다. 뉴욕 증시에서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가격은 13.77% 내렸다. CS 외에 은행주 전반이 부진했다. JP모건체이스(-4.70%), 뱅크오브아메리카(BoA·-0.92%), 씨티그룹(-5.36%), 웰스파고(-3.24%) 등 대형은행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고, ‘제2의 SVB’ 위기설이 돌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21.37% 떨어졌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1.63% 내렸다.
핑크 “위험 전이 규모 모른다”
CS 충격이 더 큰 것은 최근 미국에서 은행 파산이 이어지며 시스템 리스크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2대 은행인 CS는 미국 16위 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보다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가 다시 온다면 글로벌 단위에서 벌어질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크리스 보샹 IG그룹 수석시장분석가는 “미국 지역 은행에서 시작한 위기가 갑자기 유럽의 위기로 변질했다”며 “CS가 벼랑 끝에 불안하게 서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투자회사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이라면 누구든 자금 조달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며 “은행권 혼란은 월가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월가 큰 손’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최근 주주 서한을 통해 “금융당국이 SVB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전이 위험을 어느 정도 모면했다”면서도 “피해가 얼마나 확산했는지 알기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고 CNBC는 전했다. 핑크 회장은 “완화적인 유동성과 규제에 따른 결과가 미국 지역은행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아직 알 수 없다”며 “여전히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폭락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83% 급락한 7344.45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는 3.27% 내린 1만4735.26을 기록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3.58% 하락한 6885.71에 마감했다.
이외에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의 FTSE MIB 지수(-4.61%)와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의 IBEX 35 지수(-4.37%) 역시 4%대 폭락했다. 범유럽지수인 유로 Stoxx50 지수는 3.46% 하락한 4034.92에 거래를 마쳤다.
스위스 정책당국은 이날 유럽장 마감 직후 급히 성명을 내고 CS에 대해 “필요하다면 추가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며 불안 심리 차단에 나섰다. 스위스 중앙은행(SNB)과 금융감독청(FINMA)은 “미국 은행권의 혼란이 스위스 금융권으로 번질 위험 징후는 없다”며 “CS가 자본·유동성 요구 사항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미국장 막판 나스닥 지수가 반등하며 상승 전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제유가 역시 폭락하면서 CS 쇼크의 불똥을 맞았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과 비교해 5.22% 하락한 배럴당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21년 12월 초 이후 최저다. 배럴당 60달러대로 떨어진 것은 1년4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시스템 리스크 공포가 불거지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고, 원유 수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다.
미국채·금 등 안전자산 쏠림
주목할 것은 개장 전 나온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을 밑돌면서 국채금리가 급락했음에도 3대 지수는 부진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금융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읽힌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6%를 기록했다. 직전월인 올해 1월(5.7%)보다 낮아졌다. 전월 대비 PPI는 0.1% 하락했다. 올해 1월 0.3%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졌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0.3%)를 밑돌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이어 PPI 역시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둔화하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식료품과 에너지, 무역서비스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4.4% 올랐다. 전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 달 전과 비교한 근원물가는 0.2% 상승했다. 1월 상승률(0.5%)보다 낮다.
PPI와 동시에 나온 소매판매는 감소했다.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판매는 전월과 비교해 0.4% 줄었다. 1월 2.3%보다 오름 폭이 줄었고,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와 일치했다. 인플레이션이 잦아들자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연준이 이번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재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이번달 금리를 4.50~4.75%로 동결할 확률을 44.6%로 봤다. 전날 30.6%보다 높아졌다.
뉴욕채권시장은 연준 금리 동결론이 급부상하면서 강세를 보였다(채권금리 하락). 시장이 대혼돈을 겪으면서 안전한 미국 국채로 급격하게 쏠린 영향 역시 있다.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3.725%까지 떨어졌다. 무려 50bp 이상 빠진 수준이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3.388%까지 내렸다. 주요 6개국 통화 댜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장중 105.10까지 오르며 단박에 105선을 넘어섰다. 그만큼 달러화 가치가 급등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안전자산인 금 선물가격은 4월 인도분 기준으로 온스당 1.1% 오른 1931.30달러에 마감했다. 6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대형은행 CS 파산 현실화?…BNP파리바 등 유럽 은행주 동반 폭락
유럽으로 번진 줄도산 공포
최대주주의 변심 '직격탄'
CS 주가 1스위스프랑대 사상 최저
극심한 변동성에 수차례 거래 중단
"중대한 약점 발견" 보고서도 영향
美은행 급한불 끄나 했더니…
CS쇼크에 美 증시 하락 출발
장단기 국채금리도 급락
"은행 경영환경 급속 악화"
무디스 '부정적'으로 전망 낮춰
○‘방어막’ 사우디 은행의 외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크레디트스위스의 위기설이 심화한 것은 두 차례의 미국 중소 은행 파산 이후 단 며칠 만”이라며 “미국의 지방 은행을 강타한 문제들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이동 중이라는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스위스 취리히 증권거래소에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하루 만에 30% 가까이 폭락해 주당 1.62스위스프랑으로 주저앉았다. 극심한 변동성으로 인해 거래소는 일시적으로 주식 거래를 중단하는 서킷 브레이커를 수차례 발동했다.
이는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국립은행(SNB)이 방어막 역할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대규모 투자 손실로 곤경에 빠진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11월 사우디국립은행에서 자금을 수혈받으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37%를 소유하고 있는 사우디국립은행은 크레디트스위스 지분 9.9%를 15억스위스프랑(약 2조1400억원)에 인수한 후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날 아마르 알쿠다이리 사우디국립은행 회장은 추가 유동성 공급을 거부했다. 그는 블룸버그TV를 통해 “다른 은행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법규정 때문에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추가 증자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를 둘러싼 불안한 움직임은 핵심 인력의 이탈에서도 감지됐다. 이날 인도 매체 머니컨트롤 등에 따르면 20년 넘게 크레디트스위스에 몸담아왔던 아시아태평양 전략 공동책임자인 닐칸스 미슈라는 최근 회사를 떠나 인도 액시스은행으로 적을 옮기기로 했다.
○예견된 위기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겸 투자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SVB 파산에 이어 무너질 가능성이 큰 은행으로 크레디트스위스를 지목한 바 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예고한 인물로 유명하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영국 그린실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 등 각종 금융 스캔들로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고객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부터 1100억스위스프랑(약 156조원) 이상이 인출되는 등 고객들의 계속된 현금 출금에 시달려 왔다.
은행이 고객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을 벌였음에도 이달까지 인출 행렬은 이어졌다. 울리히 쾨르너 크레디트스위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SVB와는 달리 크레디트스위스는 고품질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순자산 유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역전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크레디트스위스는 5개 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영업수익 또한 큰 폭으로 감소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해 4분기 13억2000만스위스프랑의 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기업금융(IB) 사업 부문에서 영업수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73% 급감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자랑하는 자산관리(WM) 사업부문도 고객 자금 이탈 영향으로 영업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한편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전날 미국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고 이날 WSJ는 보도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고객 자금 이탈에 불안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 장 중 30% 이상 하락
최대주주 금융지원 불가 밝히자 하락폭 더해
스위스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주가가 15일 낮 2시 기준(현지시각) 전날 마감가 대비 30% 이상 하락한 주당 1.56스위스프랑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크레디트스위스의 최대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 금융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미친듯 폰으로 돈빼냈다”… 36시간새 56조원 인출 ‘폰 뱅크런’
[SVB 파산 후폭풍]
美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전말
10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앞에서 시민들이 공지문을 읽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폐쇄된 SVB 예금 전액을 보전해준다고 발표했다. 샌타클래라=AP 뉴시스
이들은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자신들의 돈을 빼내려 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 ‘슬랙’을 통해 SVB의 위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 씨도 뒤늦게 SVB 앱에 로그인해 돈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려 했지만 이미 자금이 묶여 인출할 수 없었다.
조 씨의 사례를 전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가 8일 위기설이 불거지자마자 10일 곧바로 파산한 데에는 모바일 뱅킹을 통해 각종 금융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고, 위기설 또한 빛의 속도로 퍼지는 시대적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고 12일 분석했다. 1983년 설립된 SVB의 모기업 ‘SVB파이낸셜그룹’이 실리콘밸리의 주요 금융사로 성장하는 데 40년이 걸렸지만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6시간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 ‘스마트폰 뱅크런’
WSJ는 이날 ‘실리콘밸리가 만든 체계에 실리콘밸리가 당했다’는 기사에서 과거 금융 위기 때는 소셜미디어가 큰 변수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번개 같은 속도로 각종 소식을 전 세계에 퍼뜨려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을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일종의 ‘스마트폰 뱅크런’이 발발했다는 뜻이다.
SVB의 위기가 처음 알려진 날은 8일. 당시 SVB는 약 18억 달러의 손실을 봤으며 자금 조달을 위해 신주 발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슬랙, 와츠앱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곧바로 퍼졌다.
SVB 주가는 9일 나스닥 시장에서 개장과 동시에 급락했고 전일 대비 60.4% 하락 마감했다. 이날 하루 만에 SVB에서 빠져나간 돈은 약 420억 달러(약 56조 원). 하루 뒤인 10일 미 금융당국은 지급 불능 등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리자로 선임했다. 40년 역사의 은행이 파산하는 데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WSJ는 각종 메신저와 소셜미디어에서 “나도 SVB에서 돈을 인출했다” 같은 메시지들이 떠들썩하게 오가면서 공포가 커지고 인출 속도 또한 점점 빨라졌다고 진단했다. 겁에 질린 고객이 스마트폰 화면을 누르고 미는 간단한 방법으로 자금을 빼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온·오프로 얽힌 실리콘밸리 생태계
스타트업, 벤처캐피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회사) 등 실리콘밸리의 각종 이해관계자들이 평소에도 온·오프라인에서 잘 연결돼 있다는 점 역시 스마트폰 뱅크런을 촉진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규제 전문가인 힐러리 앨런 아메리칸대 법학 교수는 블룸버그에 “벤처캐피털들은 SVB의 재무 상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마자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회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들의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진 소식이 현금 인출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SVB가 실리콘밸리의 주요 스타트업과 모두 거래할 정도로 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되레 초고속 붕괴에 불을 붙인 요인이 됐다. 보안업체 ‘엔도랩스’의 바룬 바드와르 최고경영자(CEO)는 WSJ에 “스타트업의 모든 길은 한때 SVB로 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9일 오전 직원이 슬랙에 “SVB 주가가 자유낙하 중”이라고 올렸을 때에도 ‘과잉 반응’이라고 여겼다. 몇 시간 뒤 “빨리 돈을 빼라”는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의 아우성이 들려오자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예치금의 4분의 1만 빼내는 데 성공했다.
스마트폰 뱅크런에 대한 미 금융업계 전반의 대비가 소홀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블룸버그는 “지금처럼 ‘디지털 바이럴(입소문)’을 통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뱅크런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美SVB 파산 후폭풍] 2008년 위기땐 부실채권 도화선… "SVB 파산, 리먼과 달라"
리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리먼-SVB 파산 차이점
파생상품 CDO, 시스템 위기 촉발
SVB는 美 우량 국채 투자했지만
예금 인출 요구에 대규모 매각손
WSJ "2008년 위험과 전혀 달라"
벤처·스타트업 피해 불똥 우려도
리먼-SVB 차이점 분석
지난 주말 미국의 16위 상업은행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영업정지 소식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SVB의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이며, 미 역사상 두번째 규모다. 미 당국이 사태 해결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의 악몽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SVB와 시그니처의 파산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광범위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우려가 커졌지만, 아직까지는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보는 이유로는 첫째 위기의 원인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SVB 사태는 과거 금융위기의 시발점이었던 대출이나 파생상품 부실이 아니라 예금에서 비롯됐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금융 건전성 규제가 강해져 대규모 금융위기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말했다.
2008년 9월 파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세계 4대 투자은행 리먼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파산의 직접적 원인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해 발행해 판매했던 CDO(부채담보부증권)이라는 파생상품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 미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요즘처럼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고,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CDO가 연쇄 부실화되면서 타 금융사로 전이, 금융시스템이 망가졌던 것이다.
반면 SVB는 고객 예금으로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 우량 장기 자산에 투자했으나 돈줄이 마른 실리콘 밸리 벤처기업 등 고객들이 대규모 인출을 요구하면서 큰 손해를 보면서 보유 채권을 팔 수 밖에 없었던 게 주 요인이다. 게다가 금리 상승으로 보유 채권 가격도 크게 평가손실을 입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008년 금융 위기와 현재 은행 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는 불안은 크게 다르다"며 "SVB가 투자한 채권은 만기 시 전액 상환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 시장을 초토화시킨 위험성이 큰 주택담보대출과 연계된 복잡한 신용수단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고 평가했다.
미 플로리다대 재무 전문가인 제이 R.리터 교수는 WP에 "SVB를 둘러싼 우려는 서브프라임모기지, 갚을 능력 이상으로 지출한 사람들의 탐욕으로 초래된 2008년의 상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며 "SVB의 근본 문제는 근래의 금리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분야의 규제가 강화돼 대형 은행들의 체질이 강화된 것도 SVB 파산으로 인한 위기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형은행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일정 수준의 예비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엄격한 자본 요건과 사업 다각화에 대한 규정이 도입됐다"고 지적했다.
미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WP에 "SVB의 붕괴가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이어질지를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면서도 "2008년에 비해 경제가 현저히 강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것이라는 점에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로고프 교수는 그러면서도 근래 들어 가장 큰 은행 파산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며 "불안한 순간이지만, 정부가 관리할 수 있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 연방정부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개입도 위기의 신속한 진화에 한몫 하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아시아 시장이 열리기 전인 12일(현지시간)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고객이 맡긴 돈을 예금보험 대상 한도와 무관하게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미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예금보험 대상에서 제외된 은행 고객을 보호하고 다른 은행들의 뱅크런(대량 인출 사태)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 너무 커서 붕괴 때 위험이 크다는 판단 하에 이뤄진 구제금융이나 공적자금 지원은 이번에 배제했다. 미 정부의 발빠른 조치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부도로 신용 시장에 예상을 뛰어넘는 연쇄적인 충격파가 일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진 기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전 세계에서 부동산과 주가 하락, 소비 위축, 투자·고용 감소로 이어져 전 세계적인 실물경기 침체로 전이된 바 있다.
그러나 리먼 사태 직전까지 시장 참여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계심을 갖고 투자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행 시스템이 견고해진 점은 대형 은행에 국한된 것으로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한 고리, 예컨대 규제에서 벗어난 중소형 은행은 여전히 문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은행의 만기 불일치 구조와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채권 자산, 금리 인상에 따른 미실현 손실 증가는 중소형 은행들이 예상치 못한 유동성 수요에 대응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파급력을 정확하게 가늠할 순 없지만 누적된 통화 긴축 영향으로 인해 금융시장에 전반에 리스크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확실하다"며 "문제는 아직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이 진행중이라는 점으로, 긴축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고착화, 연준의 유동성 긴축으로 위험자산 전반 경계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SVB 사태는 2008년 리만 파산과는 다르지만 장단기 미스매칭 등 구조적 문제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에 연쇄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SVB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중소은행이 한 둘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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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5일만에 美은행 3곳 쓰러졌다…"내 돈부터 찾자" 줄 선 사람들
실버게이트·SVB 이어 시그니처은행 폐쇄…
"다음은 어디?" 중소은행 파산 공포 확산
미 금융당국이 예금자들의 과도한 불안감 확산을 막기 위해 "(SVB·시그니처 등) 파산은행 고객들이 예금 전액을 인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미 은행업계 연쇄부도 사태가 계속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그니처은행이 무너진 건 실버게이트은행이 지난 8일 자진 청산 결정을 한 지 나흘 만,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지난 10일 SVB에 전 지점 폐쇄 명령을 내린 지 이틀 만이다. 닷새 만에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 본사를 둔 중소 은행 3곳이 영업을 중단한 셈이다.
시그니처은행은 미국 내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 지역에서 영업해 온 상업은행이다. 주력 사업 분야는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등이다. 앞서 청산을 선언한 실버게이트은행과 함께 가상통화 거래 주요은행으로 평가받았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 은행의 총 자산은 1104억달러(약 144조원), 예치금은 886억달러(약 116조원) 규모다.
정확한 파산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가상통화 테라USD·루나 붕괴, 가상통화거래소 FTX 파산 등으로 타격을 입었고, 최근 실버게이트와 SVB가 잇따라 파산하면서 그 충격파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은행 이사회의 바니 프랭크는 "지난주 금요일(10일) 마지막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괜찮았다"며 "SVB 파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십억달러의 뱅크런을 겪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SVB와 함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VC) 고객들을 주로 관리해 온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대표적이다. 이 은행 앞에는 지난 주말부터 현금을 인출하려는 고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총 자산은 2126억달러(악 277조원), 총 예금은 1764억달러(약 230조원)로 SVB와 비슷한 규모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측은 "중앙은행과 JP모건 등으로부터 긴금 자금 700억달러(약 91조원)를 수혈받아 현재 유동성이 충분하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한 투자자는 "정부가 예금을 보호해준다고는 하지만 상당수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업체들이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안전한 곳으로 돈을 옮기려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밖에 웨스트얼라이언스뱅코프, 팩웨스트뱅코프 등 위험자산이 많거나 뱅크런 조짐이 있는 은행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들 은행은 지난 10일 시스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과 함께 주가 폭락으로 주식 거래가 중단된 바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래드AI의 독터 거슨 최고경영자(CEO)는 "직원 급여를 어떻게 지급할 지 고민하느라 이틀이 아닌 2년 같은 주말을 보냈다"며 "당국의 조치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정확히 언제 SVB에 맡겨둔 자금을 모두 찾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더 큰 은행의 새 계좌로 돈을 옮기기 전까지는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진단도 있다. 대형 은행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기피하는 가운데 자금줄 역할을 했던 중소 은행들이 흔들리면서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풀이다. 한 벤처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SVB 파산 이전부터 상당수 스타트업들이 감원 등 경기침체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며 "이번 은행 연쇄부도 사태는 스타트업들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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