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못믿겠다”…차라리 한국에 반도체 공장 더짓자[비즈360]
2023.03.06 17:37
미국이 또 한번 한국의 뒤통수를 쳤다. 이번엔 반도체다. 앞서 미국은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7500달러)을 쏙 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표했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극비리에 진행해 한국 정부와 현대차그룹은 손쓸 겨를이 없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지만 보조금 지급 대상 상업용 판매 차량에 리스차를 넣는 수준에 그쳤다.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요건이 남아 있지만, 주도권을 쥔 미국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지난주 국내 반도체 산업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상무부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주는 지원금에 대한 기준을 발표하면서다. 미국은 자국내 반도체 제조생산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총 520억달러(약 68조원), 그 중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390억 달러(약 51조7000억원)를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조건이 가혹했다. 그 중 독소조항은 초과수익 공유와 첨단 칩 공정에 대한 접근, 중국 또는 관련 국가에서 10년간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 금지다. 한마디로 보조금을 줄테니 더벌면 이익을 미국에 토해내고, 핵심 공정은 공개하라는 의미다. 기술이 무기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공장 내부를 슬쩍 한번 보는 것만도 철저히 막고 있는데 핵심 공정을 공개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손에 쥔 패를 다 보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울러 중국투자 제한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메모리 생산기지를 가진 한국 기업에 중국사업은 접으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에서 50%를 생산하고 있다. 공정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공장은 폐쇄 수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로선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핵심업종이라는 점에서 메가톤급 악재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 10년 간 유지하는 비용은 대만, 한국, 싱가포르보다 약 30%, 중국보다는 50% 많이 든다고 한다. 미국 정부도 이를 알기때문에 보조금을 통해 투자를 유인한 것이다. 그런데 초과이익은 최대 75%까지 공유하고 핵심기술까지 공개하라는 조건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미국이 이를 먼저 제시했다면 국내기업 어느곳도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이럴 바엔 미국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게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면밀히 따져봐야겠지만 향후 이익과 세계 시장 확장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확정되면 우리로선 득보다는 실이 훨씬 커 보인다.
한국 정부는 아직 세부적인 조건이 나오지 않은 만큼 미국 관계당국에 최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지원법의 세부 지원 조건에 대해 “국내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며 “기업에 부담이 되는 조항들이 상당 부분 완화되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흐름을 바꾸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자국 일자리 유치와,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국 정부도 한·미간 경제안보동맹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쉽사리 미 공장 투자를 철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일본, 대만과의 ‘칩4 동맹’ 이슈까지 맞물려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나친 ‘자국 우선주의’에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마지막 기회는 남아있다. 오는 4월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적으로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서로 간의 이슈에 대한 실무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 이끌어 내야 한다. 협상을 위해선 “이런 조건이면 차라리 한국에 공장을 짓겠다”며 맞받아쳐야 한다. 특히 ‘땡큐’를 외치며 한국 기업들을 치켜세웠던 미국의 반전된 모습에 대해 신뢰성을 언급하며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만, 너무 비싼 값에 점심을 먹을 이유도 없다.
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겸 산업부장
happyday@heraldcorp.com‘계륵’ 반도체 보조금… 美 요구땐 핵심공정도 공개해야
23.03.02 07:15
미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520억달러(약 68조원)를 지원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을 미국 정부에 반납하고, 10년간 중국 내 시설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의 경제 안보를 위해 보조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조치이지만, 초과 이익 공유부터 수익성 지표 제공, 반도체 핵심 공정 접근 허용 등 사실상 경영 기밀 공개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 탓에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美 “반도체 이익 나눠야 보조금” 삼성-SK 압박
‘국가안보 우선’ 지급조건 공개
“일정 기준 넘는 수익 반납하고
생산-연구시설 접근권 제공해야”
국내업계 “美투자 리스크만 커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에 미 정부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기준 이상 초과수익은 반납하도록 했다. 또 반도체 기업의 생산 및 연구시설을 미 정부에 공개할 경우 보조금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첨단기술을 두고 겨루는 반도체 기업의 기밀이 노출될 수도 있어 미국에서도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반도체과학법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을 공개했다. 미 정부는 이 기준에 따라 보조금을 신청한 미국 투자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 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 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상무부는 경제, 국가안보, 투자 계획의 상업적 타당성 등 6가지 보조금 지급 조건을 제시하면서 국가안보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겠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안보 프로그램에 집약될 수 있고 실험·전환·생산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고 명시했다.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을 미 정부에 공개하는 기업에 지급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상무부는 이어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 반도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 일부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보조금을 신청할 때 예상 수익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로부터 일정 기준을 넘어선 수익을 올릴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이익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이날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이 회계장부를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며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blank check)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보조금 신청에 따른 부가 조건이 새로 나오면서 부담이 얼마나 더 커질지와 충족 가능성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까지 나오지만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탈하기도 힘들어 고심도 깊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들이 수익을 올릴 경우 미국 정부가 어차피 법인세를 많이 거둬 갈 텐데 각종 명목으로 이익까지 회수하겠다고 해 보상은 줄고 리스크만 커졌다”고 우려했다.
美, ‘영업기밀’ 반도체 시설 공개까지 요구… 국내업계 “득보다 실”
美, 보조금 75%까지 이익 환수 방침… 초과수익 심사과정 ‘과잉개입’ 우려
돈 무기로 반도체 패권 장악 속내… 韓기업 “美 눈치 안볼수 없어” 한숨
● 보조금 조건으로 시설 접근권 요구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지급 기준을 담은 지원공고(NOFO)를 발표하며 보조금 지급 목적을 “미국 경제와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무부는 특히 “국가안보 프로그램에 집약될 수 있고, 실험·전환·생산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 기업을 찾는다”고 공고했다. 미국의 첨단무기 개발에 도움이 되는 반도체 기업에 우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면서, 이들 기업에 반도체 생산 및 연구시설을 공개해야 한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이와 함께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이 사전에 제출한 전망치를 일정 기준 넘어서는 수익을 거두면 이 중 일부를 미국 정부가 환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원한 자금의 최대 75%까지 되가져갈 수 있다. 또 기업이 계속된 투자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장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지 심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각에선 사실상 기업의 영업기밀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는 반도체 기업들은 수율(투입 대비 양품 비율) 개선 기술에 대한 보안을 위해 제조시설 등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초과이익 심사 과정에서 상세한 투자 현황과 수익성 지표를 요구하는 등 과도한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백악관은 2021년에도 ‘반도체 대책회의’에서 반도체 기업에 재고, 수요, 판매 정보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과 대만 등 주요 생산국에 대한 압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아시아, 유럽 동맹국과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정책 논의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우리는 협력해야지 경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보조금 투명성을 이유로 반도체 수입 쿼터(제한)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최대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나 공장 증설을 못 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의 구체적인 기준도 이달 중 공개된다.
● “보조금, 받으라는 건가” 당혹
삼성전자의 고민이 특히 깊다. 삼성은 2021년 11월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규 공장을 세운다고 발표했고 현재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향후 20년간 11곳의 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도 미 정부에 제출했다.
최근 반도체 업황이 바닥인 데다 각 기업들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미 정부의 지원을 쉽게 포기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별도 기준 현금, 현금성 자산 및 단기금융상품 규모는 3조9217억 원으로 2021년 말보다 79% 줄었다. 무엇보다 삼성은 대만 TSMC와의 경쟁 때문에 미국에서의 공장 설립이 불가피하다.
미국에서 패키징 공장 투자를 추진하는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무작정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계가 문제”라며 “(보조금을) 무턱대고 패싱할 수도 없고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소통 채널을 통해 수시로 협의를 벌이고 있다. 우리 기업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이걸 받으라는건지"…美반도체 보조금 기준에 삼성·SK '당혹'
이 조건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89,400원 ▼600 -0.67%)는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하고 어떤 기준을 넘어선 이익을 내면 그걸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보안이 중요한 반도체공장의 문도 언제든 열어 보여줘야 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을 국가안보와 연결지으면서, 미국의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 우려국과 공동 연구 등을 할 경우 돈을 모두 뱉어내야 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분명히했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라는 압박을 한 셈이어서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선 골머리를 앓게됐다.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신청에 따른 심사 기준을 밝힌 28일(현지시간) 바로 다음날인 1일,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준이 생각보다 과하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세부 조건을 면밀히 해석하고 검토한 뒤 보조금 신청에 나설지 말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확대에 더불어 세금 낭비에 대한 자국 국민들의 우려 여론까지 잠재우기 위해 다소 과한 욕심을 부렸다고 분석했다. 초과이익 공유를 비롯, △지원금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해선 안되는 점 △국방부 등 국가안보기관이 미국 내에서 생산한 첨단 반도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점 등이 논란을 일으킨 조건들이다. 뉴욕타임스도 이를 두고 "새롭게 투자하려는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서 오히려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는 프로그램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 '초과이익'에 대한 정확한 기준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미 상무부에 보조금을 신청하려는 기업들은 재무 계획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초과이익 기준 설정을 위한 협상 자체로 기업들은 경영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만으로 공장을 짓는게 아니지않느냐"며 "우리가 직접 투자한 것도 있을텐데, 그러한 것을 무시하고 이익을 내면 이를 나누라니, 보조금을 받으라는건지 말라는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익 전망치 설정 등 미국 정부가 불가피한 조건을 내걸면서 민간 기업들을 과도하게 간섭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국의 국가안보기관이 첨단반도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두고서도 기업들은 예민해하는 상황이다. '접근권'을 군사용 반도체에 대한 우선권에서 더 나아가 아예 반도체 공장을 공개하라는 요구로 보는 해석까지 나왔다. 국내 기업 관계자는 "공장을 보겠다는 것은 곧 설계를 보겠다는 것인데 말이 안되는 소리"라며 "관련 지침 해석을 두고 미국 정부와 협상을 계속해야 할 듯 싶다. 해석에 따라 지원금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입장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과 중국 사이 외교 파장까지 가져올 수 있는 탓에 국내 기업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보조금 수령 자체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또 중국은 국내 기업들의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다.
국내 기업들은 본격적인 신청서 제출 기간 전까지 지급 조건을 샅샅이 해석해 최대한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겠다는 입장이다. 상무부가 신청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 아니라 지급에 대한 우선순위를 주겠다고 한 것인만큼, 신청 과정에서 수차례 논의하며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들을 직접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큰 금액을 아예 안받는다는 것도 바보같은 일"이라며 면밀한 검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삼성·SK에는 '독이 든 당근'...50조원 규모 미국 반도체 보조금
바이든 행정부, 390억 달러 보조금 신청 28일부터 접수
보조금 받으면 향후 10년 중국 반도체 공장 투자 제한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통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부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4월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 최고경영자 서밋'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28일(현지시간)부터 39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는다.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상이다. 하지만 미국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지원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와 함께 중국 견제 방안을 단단히 준비한 미국의 ‘독이 든 당근’ 때문에 한국 기업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법, 보조금 주되 중국 견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23일 워싱턴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다음 주 화요일(28일)부터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며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발효한 ‘반도체ㆍ과학법’은 반도체 제조ㆍ조립ㆍ시험ㆍ첨단 패키징 및 연구개발(R&D) 시설투자를 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5년간 390억 달러가 투입된다. 또 반도체 제조장비 구매와 시설투자에도 25% 세액공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세액공제 역시 10년간 240억 달러의 지원 효과가 예상된다.
미 상무부는 프로젝트당 최대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텍사스주(州)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삼성과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첨단 패키징 공장 등을 준비 중인 SK가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시찰 후 연설을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문제는 보조금 지급 조건이다. 반도체법에는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담겨 있다. 중국이 미국 보조금으로 혜택을 보는 일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전 범용 반도체 생산 시설은 투자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해당 기업의 중국 내 첨단반도체 제조 길이 막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반도체 출하량 중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전체 D램의 절반 정도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든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 기업의 계획이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 목표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결정될 것”이라며 “다들 인텔이 얼마를 받을지, 삼성전자는 얼마를 받는지 궁금하겠지만 (보조금 액수에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 세부 지침은 3월 초 발표된다.
중국 첨단 반도체 생산 저지가 목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출통제 조치도 부담이다. 삼성과 SK는 지난해 10월 조치 발표 당시 1년 동안 장비 수입이 포괄적으로 허용됐지만 유예 조치가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기술 수준을 제한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 주관 포럼에서 수출통제 1년 유예 후 방향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상한(Cap on level)을 둘 가능성이 크다”라고 답했다. 그는 “중국의 미국 위협 역량 구축 저지 과정에서 우리 동맹 기업들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라면서도 “중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지만 한국 기업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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