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아이들아, 절대 서로 총 겨누지 마라”
등록 :2015-07-29 20:30수정 :2015-07-29 22:32

신은미씨 수상 소감
2011년 어느 여름날, 북한이 남한 국적자를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나마 제가 남편을 따라 북한에 여행을 간 것도 ‘그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2011년 10월 첫 북한 관광을 가기 전까지만 해도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단어는 떠올려보지도 않고 살아왔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무엇인지도 북한 여행을 통해서야 알게 됐습니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호기심만 품고 간 북한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와 이토록 똑같을까.’ 첫 북한 여행 때 북녘의 아이들을 품안에 안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던 말을 뚜렷이 기억합니다. “남북의 사랑스런 아이들아, 너희들은 절대로 서로 총을 겨누지 마라. 손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행복의 노래만 부르거라.”
남과 북이 화해하고 서로 협력하여 통일 조국으로 향하는 순간, 우리의 남과 북은 더 이상 서로에게 위협이나 골칫거리 상대가 아닌,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모국에서 강제출국 당했지만, 이를 위해 해외동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사는 이곳 미국에서 해 나갈 것입니다.
신은미씨 수상 소감 전문
안녕하세요.
신은미 입니다.
먼저, 통일에 대해 문외한인 제게 이런 큰 상을 내려주신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임동원 이사장님을 비롯하여 저를 후보자로 추천해 주신 여러 단체와 개인, 뿐만아니라 이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뜻깊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대신하게 된 것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고 저는 ‘두려움’과 함께 ‘과연 제가 이런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쓴 두권의 북한 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그리고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은 ‘통일 이야기’가 아닌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민족의 화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저의 간절한 염원은 북한을 여행하며 북녘의 동포들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 어느 여름날, 인터넷을 통해 다음 여행지를 찾던 남편은 북한이 남한 국적자를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북한도 우리나라 반쪽 땅이니 북한을 한 번 여행에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게 제의했습니다. 북한이라면 달나라보다도 낯설게 느꼈던 저는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났으며 마침내 2011년 10월, 북한여행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호기심만 품고 따라간 북한 여행은 충격 그 자체였으며, 다소 교만하고 냉소적인 마음으로 떠난 북녘땅으로의 여행을 통해 저는 저의 거짓 신앙과 지난 날 조국에 대해 생각없이 살아온 이기적이고도 무심했던 제 삶을 뒤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개신교 목사님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제헌국회의원으로서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킨 대표적인 국회의원이셨으며, 저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육군장교로 참전해 조국의 최북단까지 진군했던 군인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저 역시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그나마 제가 남편을 따라 북한에 여행을 간 것도, ‘그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여러 차례의 여행으로 확인한 것은 오히려, ‘어쩌면 우리와 이토록 똑 같을까’ 라는 동질감이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나, 유적지를 참관할 때나, 인생의 희로애락을 얘기할 때나… 그 무엇 하나 제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또한 동질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조국이 분단되어 있다는 생각에 슬픔은 배가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족의 비극적 운명을 체험하고, 민족애를 느꼈으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게된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녘동포들의 아픔과 힘겨움이 그들만의 아픔과 힘겨움이 아닌,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 우리 모두의 아픔이요, 힘겨움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첫 북한여행때 금강산에서 만난 북녘의 아이들을 품안에 안고 사진을 찍으면서 마음속으로 속삭였던 말을 뚜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사랑스런 아이들아, 너희들은 절대로 서로 총을 겨누지 마라. 손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행복의 노래만 부르거라.”
북한을 여행한지 이틀만에 난생 처음으로 뜨거운 민족애가 가슴을 헤집고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북녘동포, 이들이야말로 분명 제가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줘야 할 내 민족이요, 내 형제자매, 그리고 이웃이었습니다. 보잘것 없고 편협하기 그지없던 마음의 빗장을 부수고 활짝 열어 젖히니, 어두웠던 곳곳을 환히 비춰주는 따사로운 빛줄기가 들어 왔습니다. 진작에 열어 젖히지 못한,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마음에는 아쉬움만이 가득했습니다.
저의 첫번째 기행문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을 통해 뜨게된 마음의 눈으로 써 내려간 글이었습니다. 슬픔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남을 느꼈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니 그 어떤 것도 굴절되거나 삐뚤어짐이 없고 어그러짐 없이 제 모습대로 보였습니다.
지금도 지나간 기억이 되살아나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만난 따뜻한 북녘동포들에 대한 기억에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고, 스쳐 지나는 사이에 비친 그들의 가난에 지금도 가슴이 에이듯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이 제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말입니다.
북한여행을 통해 제게는 수양가족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이산가족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두번째 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는 수양가족과 곧 태어날 수양손주의 선물을 들고 그들의 집을 찾아가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북녘을 여러차례 여행하면서 분명히 확신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남과 북, 우리 겨레는 70년의 분단세월 동안, 생활의 양식만 달라졌을 뿐, 우리의 본질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그대로 공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과북이 화해하고 서로 협력하여 통일조국으로 향하는 순간, 우리의 남과북은 더 이상 서로에게 위협이나 골칫거리 상대가 아닌, 서로에게 축복이 되는 관계가 될것 입니다. 무엇보다도, 민족의 분단으로 인해 잠시 중단된 찬란한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함께 써내려 가는 가슴 벅찬 상황이 실현될 것입니다.
통일조국에서 살아갈 다수의 주인공은 저같은 남과 북의 그리고 해외의 평범한 동포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분단 장벽을 허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쌓여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란 한낯 꿈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인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두려워 말고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미 마음으로는 통일된 조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육체적으로는 나의 모국, 대한민국에 앞으로 5년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저와 한마음으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을 염원하는 모국의 동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녘에도 순박하고 정 많은 나의 형제들이 진정으로 우리겨레가 하나 되기를 저와 한 마음으로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모국에서 강제출국 당했지만, 해외동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사는 이곳 미국에서 해 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이 다시 예전처럼 좋아질때 까지 남과 북의 오작교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조국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해외동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수양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회가 닿는대로 북한을 방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과북 그리고 해외동포 여러분들께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스런 ‘한겨레통일문화상’이 저에게 좀 더 힘을 내어 조국을 사랑하라는 격려라 여기고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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