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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불멸의 독립운동가…이석영 선생 후손 88년만에 찾았다

by 무궁화9719 2022. 9. 17.

불멸의 독립운동가…이석영 선생 후손 88년만에 찾았다

등록 :2022-02-23 15:53수정 :2022-02-23 17:00

권혁철 기자

외손 10명…지난해 <한겨레21> 보도 뒤 호적·유전자 검사로 확인

이석영 선생 사진 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23일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의 초석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이석영(1855-1934) 선생의 직계후손들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석영 선생의 외손 10명이 국내와 대만에 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후손 확인은 지난해 7월 <한겨레21>이 이석영 선생의 외증손녀이자 장남 이규준 선생의 외손녀라고 주장하는 최광희·김용애씨 등을 인터뷰하고 지난해 8월 이들이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이석영 선생 가족들이 일제에 몰살당해 직계 후손이 없다고 알려졌다. 이규준 선생의 세 딸이 이석영 집안의 족보와 국가의 가족관계 기록에서 빠진 것은 당시의 엄혹한 시대 상황과 이규준 선생의 안타까운 가족사 등이 작용했다.
 

이석영 선생의 아들인 이규준 선생이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뒤 세 자매도 뿔뿔이 흩어져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일대를 떠돌았던 첫째와 둘째는 국내에 정착했으나, 막내 딸(이우숙)은 대만에 뿌리를 내렸다. 세 자매가 숨진 뒤 국내 자녀들도 ‘이석영의 후손’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처음 열린 이석영 선생 순국 87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이석영 선생의 증손녀인 김용애(87)씨가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유공자 신청에 나섰다. 당시 언론들이 “선생이 직계후손이 없어 그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고 추모식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김용애씨는 “저승에 가서 어머니(둘째 딸 이숙온)를 만나면 할 도리를 하고 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1929년 중국 상하이에서 있은 이석영 선생의 손녀(이온숙)의 결혼식 사진. 당시 주례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뒷줄 중간) 국가보훈처
 
후손 확인은 쉽지 않았다. 이들이 직계 후손임을 알 수 있는 가족 사진들이 있었지만 가족 관계를 증명할 기록이나 공식 서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공자 신청인의 제적부에 기재된 조부모 이름이 선생의 장남(이규준)과 일치하지 않아 후손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탄압을 피해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석영 선생의 손녀(이우숙)의 대만 호적등기부. 아버지가 이규준, 어머니가 한씨라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처
 
그러던 중 1967년 10월 14일치 한 국내 신문에 보도된 “조국의 혈연을 찾아달라”는 대만 거주 막내딸 이우숙씨 기사가 실마리가 됐다. 대만한인회와 주타이베이 대한민국대표부의 도움으로 이우숙씨의 대만 호적등기부에 아버지가 한자로 이규준이라고 적힌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이우숙씨와 이석영 선생의 외증손녀라고 주장하는 최광희·김용애씨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검사 결과 ‘동일 모계’임이 확인돼 이석영 선생의 후손으로 인정됐다. 보훈처는 확보한 자료와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독립유공자 후손 확인위원회에 상정해 모두 10명을 후손으로 의결했다.
 
이석영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1910년 이시영·이회영 등 6형제와 함께 만주로 망명해 청산리대첩 등 독립전쟁 주역을 배출하고 한국광복군의 초석이 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당대의 손꼽히는 재산가인 이석영 선생은 집안의 전 재산을 처분해 6형제 가족들과 독립운동에 나섰다. 앞서 정부는 1991년 이석영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장남 이규준 선생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국내로 들어와 독립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중국에서 조직된 항일비밀운동단체에서 일제 밀정을 처단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정부는 이규준 선생에게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보훈처는 이날 “정부는 앞으로도 후손 찾기 작업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을 끝까지 기억하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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