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전에 인터넷 명의(?)에게 증상을 물어봅니다.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검색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조선 시대로 가볼까요? 지금보다 병원 문턱은 훨씬 높았을 테니 쉽게 갈 수 없었을 거고, 그렇다면 민간요법에 의존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인터넷 명의는 깜냥도 안되는 허준의 동의보감이 있습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동의보감이 등재가 되고, 15년이 흘렸습니다. 개인적으로 훈민정음과 동의보감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이라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의 저자 구암 허준이 태어났고 집필을 했으며 생을 마감한 강서구 가양동으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기리는 허준박물관이 있으니까요.
구암 허준과 동의보감을 만날 수 있는 허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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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 허준로 87에 위치한 허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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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저자는 누구? 이렇게 물었을 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허준이라고 대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허준박물관이 왜 강서구에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라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박물관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니까요.
허준의 자는 청원이고 아호는 구암입니다. 본관은 양천이며,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의 20세손으로 양천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양천은 경기도 김포군 양천현 파릉리로, 현재는 서울시 강서구 등촌2동 능곡(능안)마을입니다. 출생지뿐만 아니라 동의보감 집필에 생을 마감한 곳까지 모두 가양동이었다고 하니, 허준박물관이 없으면 더 이상할 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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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문화관광부에서 허준 표준 영정으로 지정한 한의학 박사 석영 최광수의 그림
허준은 어떻게 내의원에 들어가게 됐을까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미암일기에 의하면 유희춘이 천거에 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내의원 생활을 하면서 3차례 벼슬이 높아지는데, 첫째는 왕자인 광해군의 두창 치료로 정 3품 통정대부의 작위를 받게 됩니다.
둘째는 동궁이 된 광해군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정 2품 정헌대부에 오르고, 셋째는 임진왜란 당시 국왕을 모시고 의주까지 피난을 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양평군 읍호와 종 1품 숭록대부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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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되어 월산대군 저택(현재 덕수궁 내 석어당)에서 선조가 기거하던 중 어의 허준이 선조를 치료하는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선조는 어린 시절부터 잔병이 많고 몸이 약해 스스로 건강과 의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해요. 선조실록을 보면, 허준이 선조를 진료한 첫 기록은 어의 안광익을 도와 선조를 진맥한 것으로 나옵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에서 진료를 했고, 수의 양예수가 사망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지병으로 승하하는 순간까지도 곁에서 최선을 다해 진료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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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승하한 후, 그 책임을 수의인 허준이 지게 되어 귀양을 떠나면서 내의원 생활도 끝이 났습니다. 원래는 끝이 나야 정상인데, 선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의 도움으로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내의원 생활을 하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술을 펼쳐나가게 됩니다. 광해군이 왕자이던 시절, 허준이 그의 두창을 치료해 줬는데, 아마도 그 은혜를 갚은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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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동의는 중국의 의학과 차별되는 동쪽의 의학이라는 의미로 조선의 의학 전통을 뜻하고요. 보감은 보배스러운 거울이란 의미로 귀감이란 뜻을 지녔습니다. 허준은 조선의 의학 전통에 계승해 중국과 조선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는 뜻으로 동의보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동의보감은 과학적 입장에서 당시의 모든 의학 지식을 정리했는데, 국내외 180여 종의 의서를 참고해 내용이 풍부합니다. 또한, 1,212종의 약재에 대한 자료와 4,497종의 처방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산천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의 이름이 한글로 637개나 수록되어 있어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구성은 목차 2권, 내경편 4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등 모두 2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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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으로 동의보감 내경편 4권
내경편은 인체 내부에 관련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이 기초하고 있는 세계관과 인체관에 대한 기술해 인체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를 정(精), 기(氣), 신(神), 혈(血)로 파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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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으로 동의보감 외형편 4권
외형편은 몸의 겉에서 관찰되는 부분들의 의학적인 기능과 각 부분에 생기는 질병에 대해 서술한 것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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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으로 동의보감 잡병편 11권
잡병편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나 증상, 특수한 상황에서 생기는 질병과 특정 연령층에서 생기는 질병 등을 구분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질병의 발생에 관계된 운기를 설명하고 변증과 진맥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밖에서 들어온 사기와 안에서 발생한 속병 등을 다룹니다. 마지막 부분은 부인과와 소아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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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으로 동의보감 탕액편 3권
탕액편은 약물의 채취와 가공, 약 달이는 법, 약리 이론, 오장육부와 경략에 상응하는 약물 등 약물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의 한자 이름 밑에 한글 표기를 나란히 적어 한국산 약재의 이용을 촉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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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으로 동의보감 침구편 1권과 목차 2권
침구편은 침과 뜸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침구의 실제와 침구운용에 가장 필수적인 내용을 가려내어 기록했으며, 침과 뜸을 만드는 방법, 침을 놓는 법, 혈자리를 찾는 법, 뜸 위에 불을 놓는 법, 침을 놓아 좋은 기운을 보충하고 나쁜 기운을 없애는 보사법, 12경맥이 흘러가는 길과 12경맥 이외에 별도로 존재하는 8개의 경맥인 기경팔맥 등 침구학에 대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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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벽온방은 전염병 치료에 관한 전문의서입니다. 허준이 왕명에 의해 광해군 5년에 편찬한 책으로, 전염병이 발생하는 원인과 증상, 처방 및 전염병의 특징과 종류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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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의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존의 의서들과 달리 실용성을 중요시해 지극히 과학적인 입장에서 당시의 거의 모든 의학지식을 정리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나오는 약재들인 향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이용과 보급을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향약 중 637개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쉽게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의학을 부흥시키고자 했다.
셋째, 국내외의 약 180여 종의 의서를 참고했고 실제 환자를 진료하는 의원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넷째,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을 세계에 과시했다.
다섯째, 우리의 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으로 간주하고, 한국 의학이 중국과 대등한 전통과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주장했다.
동의보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5주년 특별전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인류의 소중한 기록 유산을 가장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2년마다 등재 유산이 정해집니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1997),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2001), 고려대장경판과 조선왕조의궤(2007), 동의보감(2009), 일성록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2011),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한국의 유교책판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2015),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 조선통신사 기록물(2017) 그리고 4·19혁명 & 동학농민혁명 기록물(2023) 등 현재 18건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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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등재 증명서
동의보감은 유네스코가 역사적 진정성, 세계사적 중요성, 독창성, 기록정보의 중요성, 관련 인물의 업적 및 문화적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그 가치를 인정해, 2009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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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사고본 동의보감의 한지 영인본
동의보감은 16세기까지 간행된 동아시아 중요 의서 120여 종과 조선의 전통 향약의서들을 총망라했습니다. 동의보감은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되었으며, 시간적으로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역사를 반영하고 공간적으로 문화교류의 현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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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과 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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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현재 초간본 3종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오대산사고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태백산사고본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적상산사고본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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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1610년에 완성되었으며, 3년 후인 1613년 내의원 훈련도감에서 처음 간행되었습니다. 초간본은 나무로 활자를 만들어서 내용에 맞는 글자를 하나하나 맞추어서 찍는 목활자로 제작했으나, 그 이후 수요가 늘자 글자를 나무판에 새겨서 찍는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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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재간행한 목판본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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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첫 장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인체의 장기와 그 특징을 그린 것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관인 하늘과 땅과 인간의 세 가지 요소를 인간의 몸속에 상징화한 도형입니다. 옆으로 그려진 인체의 상반신 그림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머리, 땅을 상징하는 몸,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척추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지닌 선천의 기운과 인체 안의 후천 기운이 인체 내부를 통해 순환하는 자연의 원리를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인체가 바로 대우주와 소우주의 합일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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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처방을 활용한 현대 의약품들
현재까지 우리 일상생활에 꾸준히 활용되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다양한 처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마시는 쌍화탕, 하루에도 천 마디를 외울 수 있는 건망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총명탕 그리고 노인을 젊어지게 하고 온갖 병을 낫게 한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약 경옥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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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영인한 동의보감과 중국 목판본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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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정중간본 동의보감
1613년 처음 내의원에서 훈련도감 활자본으로 간행된 동의보감은 이후 목판본으로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외국에서도 그 우수성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40여 차례 이상 간행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1717년부터 30여 차례 이상으로 <회도 동의보감>, <개랑 동의보감>, <증도 동의보감> 등의 이름으로 편찬됐습니다. 일본에서는 1724년 이후 3차례, 대만에서도 3차례 출판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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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치료해야 할 것이니 반드시 그 마음을 바로잡아야 도에서부터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 생각, 망념, 불평불만, 일체의 다른 사람과 자신 간에 쌓인 후회와 평생 동안의 과오 등을 곧바로 떨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의보감 신형편 중에서.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서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처방을 얻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애민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인체를 우주적 질서에 대입하는 철학관에 기반함을 이해하고 동양의학적 전통이 현재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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