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안나온 일본 사과'…시민단체 "예상했지만 치욕적"
- CBS노컷뉴스 김정록 기자
- 2023-03-16 22:38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기시다 앞에서 사죄와 배상 없는 해법 약속"
서울청년겨레하나 "강제징용 가해자, 피해자 엄연해…배상 정확히 요구해야"
환경운동연합 "언급도 안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무책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발표한 내용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참담한 굴종 외교'라며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해서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한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일본 측의 직접적 사과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고, 이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협정을 해석해 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발표했다"며 "이로 인한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이것은 모든 문제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 이후 시민단체들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정은주 사무국장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 앞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며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계속 요구했던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담기지 않은 해법을 기시다 총리 앞에서 약속해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윤 대통령이 (일본) 자위대 사열을 받고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이번 행보로 한일 군사협력이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지 않을까 싶다"며 우려했다.
서울청년겨레하나 전지예 대표는 "일본이 사죄를 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회담이었다"며 "그래서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말했다.
양국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의 '미래기금' 창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전 대표는 "그 기금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정확히 일본 정부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라며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을 정확히 요구하면 될 일인데 기금까지 만들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것도 피해국이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비상식적이고 국민으로서는 치욕적이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요 피해국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 정상이 침묵했다는 것은 용납하 수 없는 무책임"이라며 "일본의 국제적 핵테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침묵하면서 국내에서는 '기승전핵'만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강제동원 사과커녕 ‘위안부 합의’ 이행도 요구
등록 :2023-03-16 22:03수정 :2023-03-17 02:41
한일 정상회담
12년 만에 ‘셔틀 외교’ 복원
수출규제 해제·지소미아 정상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12년 만의 ‘셔틀 외교’ 복원 등 양국 관계 회복을 선언했으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안’과 관련한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은 ‘추후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 정부는 (피고 전범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일본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저와 기시다 총리는 그간 얼어붙은 양국 관계로 인해 양국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왔다는 데 공감하고, 한-일 관계를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관해 지난 6일 우리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발표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로서는 이 조치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원론적 답변을 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어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직접적인 사과는 표시하지 않은 채 오히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은 기시다 총리가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2018년의 해상자위대 초계기 갈등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 남은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적한 점도 포함한 과제나 현안에 대해 속내를 감추지 않고 얘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사실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논의 주제는 미래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부분 집중됐다”며 즉답을 피했다.
두 정상은 2011년 12월 이후 중단됐던 두 나라 사이 ‘셔틀 외교’를 재개하기로 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한국 답방 시기에 관한 기자 질문에 “적절한 시기에 앞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며 구체적 시점은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이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다. 또 다른 관심사였던 한국의 수출 품목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관리 우대국) 배제 조처에 관해서는 향후 대화를 이어가기로 정리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쪽 3개 품목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전임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 악화 상황에서 벌어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상황을 “완전 정상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민간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의 경단련(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 유학생 지원 등을 위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양국은 경제·안보를 비롯해 첨단과학, 금융·외환, 문화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외교, 경제 당국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양국의 공동 이익을 논의하는 협의체들을 조속히 복원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을 포함하여 다양한 협의체와 소통을 이어나가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쪽 주장만 통한 일방회담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양국 국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 간 교차방문(셔틀 외교) 재개 △일본의 반도체 첨단 소재 수출규제 완화 △양국 재계 미래파트너십 기금 창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 정부 간 소통 강화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공동 인식에 바탕한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국제질서를 언급하며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최대 관심사였던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한 사죄와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일본 쪽 ‘호응 조치’는 전무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하며 직접적인 ‘사과’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에도 입을 닫았다. 기시다 총리의 “역대 내각의 입장 계승”이라는 표현은 지난 6일 한국 쪽 ‘해법’ 발표 직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조치(한국 쪽 ‘해법’) 실시와 함께 양국 간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교류가 힘차게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면서 양국 관계 개선 여부가 한국 쪽의 ‘해법’ 이행에 있다는 것을 부각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는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이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든 원인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특히, 두 정상은 일본 가해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못박았다. 15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제3자 변제안은)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만한 해결책”이라고 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이 정부 입장과 다른 판결을 했다며 3권 분립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거듭했다. 기시다 총리도 “(한국이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과 세계적 복합위기 대응을 내세워 ‘강제동원 해법’ 발표를 서둘렀던 윤 대통령은 이날도 ‘국익’이란 추상어를 반복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가 ‘이번 회담 결과로 얻은 국익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국 국익은 일본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 발표로 인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한다면 양국이 안보위기 문제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양국 국민 간 문화, 예술, 학술 교류가 왕성해진다면 함께 얻을 이익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국익은 일본 국익과 공동 이익이며 배치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죄와 배상 참여 등 일본 쪽 ‘호응 조치’도 거론하지 않았다. 외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기시다 총리가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께서 다시 강한 지지를 해주셨다”고 언급할 정도로 일본의 요구를 들어줬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와 경제·안보를 맞바꿨던 냉전 시절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회담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쪽의 요구가 거의 수용되지 않았고, 일본 쪽의 주장만 일방통행식으로 반영된 회담 결과”라고 말했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는 “지난 6일 내놓은 ‘해법’이 참사인데, 그에 기초한 정상회담이니 애시당초 기대할 게 없었다”며 “과거 직시라는 대일외교의 대원칙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지금 하는 안보협력·경제협력 등도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
도쿄/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시민사회단체, 전국 곳곳 ‘강제동원 해법’ 반대 집회

2015한일합의 파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과 겨레하나,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청년학생 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강제동원 배상 대신한 ‘한-일 미래청년기금’ 거부 기자회견을 마치고 한일 미래청년기금을 거부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일제 강점과 전범기업 배상 책임에 면죄부 주는 한-일 정상회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진보성향 56개 단체로 구성된 ‘평화나비대전행동’은 이날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 제3자 변제 방침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사법주권을 포기하는 굴욕적 해법이자 전범국가·전범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친일매국 해법”이라며 “17일까지 일본을 방문하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 정상회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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