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시작한 남북 채널 박근혜 정부서 완전 중단
[해설] 개성공단, 이대로 폐쇄 수순 밟나?
이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3-04-29 오후 10:31:36
29일 남북간 실무 협의를 위한 소수 인원만 남기고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43명의 남한 인원들의 귀환이 이뤄지면서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이에 따라 남북이 향후 사소한 오해와 충돌로 전면적인 대결전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폐쇄수순을 밟게 될 경우 북측이 개성공단 인근에 군부대를 재배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27일 남북 간 연락 채널이었던 군 통신선을 차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개성공단을 출입하던 인원이 있어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연락을 주고받는 채널은 존재했다. 그러나 실무 협의가 끝나는 대로 개성공단의 출입 인원이 완전히 없어져 조만간 남북 간 소통할 수 있는 연락 채널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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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개성 주재원 전원 귀환이 이뤄졌다. 이날 기업 주재원들은 저마다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 내려왔다. ⓒAP=연합뉴스 |
남북간 대화채널은 1971년 9월 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의사소통 경로의 필요성에 공감한 남북이 이틀 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전화 2회선을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1971년 박정희 정부 시절에 시작됐던 남북 간 소통 채널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중단되는 셈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후방으로 빠졌던 군부대를 개성 인근으로 다시 배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3년 개성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다.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되면 북한은 대남 압박수단으로 일부 세력이라도 개성과 판문점 일대로 군을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언급할 때 자신들에게 안보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를 내어줬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지난 27일 "그동안 내주었던 개성공업지구의 넓은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다시 차지하고 남진의 진격로가 활짝 열려 조국통일 대전에 더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됐던 1999년부터 남한에 개성을 내주는 것에 대해 반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 물도 끊고 '기 싸움' 이어가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공단에 공급됐던 전기와 수도가 모두 차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현재 단전·단수 조치를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우선 남은 인원들의 무사귀환 이후 상황을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개성공단에는 10만 kW 전기와 6만 톤 규모의 용수가 공급됐었다. 이날 귀환하는 인원 중에는 이를 담당했던 한국전력과 수자원공사 직원들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이 귀환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전기와 수도 공급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는 남한의 파주변전소에서 공급하고 수도는 전기가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전기는 그동안 100% 남한에 의존해왔고 수도는 6만 톤 중 1만 5000 톤 정도가 개성 시내에 생활용수로 공급돼왔다.
공단 운영이 중단되면서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단전·단수가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정부가 막상 이 조치를 실현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단전·단수는 개성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남한이 이를 시행할 경우 개성공단을 놓고 벌이는 이른바 '기 싸움'을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개성공단의 불빛이 꺼지는 것에 대한 개성 주민들의 인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단의 불빛이라는 것이 개성 주민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불빛이 꺼지면 개성 시민들에게도 '남한과 적대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남한 공장의 기계 설비를 최소한으로 유지시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기 공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 어느 쪽도 쉽게 극단적 조치 쓸 수 없어
남측 인원의 귀환 이후 공단이 영구 폐쇄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남북 어느 쪽도 쉽게 폐쇄로 가는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모두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상징성을 쉽게 내려놓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기자와 문답에서 남한의 개성공단 인원 전원 귀환 조치를 비난하면서도 개성공단을 '옥동자'로 표현하며 여전히 중시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대변인은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기지만 덕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에게 은총을 계속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역시 지난 2일 기자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마중물"이라며 공단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류 장관이 지난 26일 남한 인원의 전원 귀환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을 유지·발전시킨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며 개성공단 정상화는 변함없는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의 현 상황이 공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안보 상황에 의해 발생된 문제라는 측면에서도 남북관계가 대화국면으로 접어들면 개성공단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8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북한이 오는 5월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까지는 공단을 폐쇄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기적으로 4월 30일 독수리 훈련이 끝나고 한미 정상회담이 시작되면 남북이 '기 싸움'에서 벗어나 상황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고, 그렇다면 개성공단의 정상화도 논의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국면 전환 시까지 남북이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근식 교수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인 대결상황의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며 대결 국면이 잠잠해지도록 남북이 서로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공단이 폐쇄 국면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서로가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설] 개성공단 폐쇄는 민족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등록 : 2013.04.28 19:07
하지만 기사회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은 어제 개성공단이 완전하게 폐쇄되는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쪽에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폐쇄 조처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지도총국 대변인은 우리 쪽이 철수 명분으로 내세운 식량 문제에 대해서도 “인원 철수 조치가 공업지구에서 식자재가 바닥이 난 것 때문에 취해진 것처럼 떠들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먹을 것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고도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그제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출석해 인원 철수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북 당국 모두 앞장서 개성공단을 폐쇄할 뜻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당국이 진정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할 생각이 없다면, 일단은 냉각기간을 갖고 서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언행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의 운명이라는 큰 사안이 걸려 있는데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아니니, 언제까지 답변을 하라느니 하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사태를 풀어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밑 접촉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은 뒤 실무자 수준이 아닌 더욱 높은 차원의 당국자 회담을 통해 큰 틀에서 문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 당국은 개성공단이 단지 서로 물질적 이익을 꾀하는 합작사업이 아니라, 통일 여정에 큰 디딤돌을 놓는 화해·협력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금강산 관광 중단, 연평도 포격과 같이 남북 사이에 극도의 긴장이 벌어졌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은 사소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개성공단을 제물로 바쳐선 안 된다. 어떤 명분으로건 민족 화합과 통일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건 민족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는 점을 두 지도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 실종된 남북관계, '박근혜 스타일' 탓?
전문가 안 보이는 '개성공단 파국' 과정... "통일부 주도로 가야"
13.05.07 10:55l최종 업데이트 13.05.07 10:55l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고조된 남북간 정치·군사적 갈등이 결국, 개성공단 잠정 중단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에 북한 전문가를 발탁하면서 남북관계가 호전될 거란 기대도 높았지만,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는 북한 전문가의 존재감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북한연구학회장이기도 한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박근혜 정부 첫 통일부장관 후보자로 발표했을 당시에는 새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의 측근이나 외교분야 쪽 인사들을 임명했던 이명박 정부와는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이다.
또 류 장관이 평소 남북간 교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물론, 야당도 그에 대해 별다른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에서 류 장관이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이명박 정부 때 악화된 남북관계를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남북 갈등이 개성공단 잠정 중단 사태로 치닫는 과정에서 통일부 장관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거나 외교·안보 최고위 정책결정 과정에서 이미 설 자리를 잃은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잇따른 정부의 대북 조치에 북한 전문가인 류 장관이나 통일부의 의견이 반영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수용할 리 없는 회담제안... "통일부·안보실 역할 실종"
단적인 예가 지난달 25일 류 장관이 발표한 정부 성명에서 북한에 하루 남짓한 시간을 주며 '실무회담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일이다. 정부의 '최후통첩식 성명'이 발표되자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이런 식의 제안에 응해올 리 없다', '남한이 제시한 시한을 지난 뒤에 북한이 회담제의 내용을 비난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는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당시는 한·미연합 독수리연습이 진행 중이었고, 이런 군사훈련 중에는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에 응한 예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순순히 '그래, 회담하자'고 나선다고 예상하긴 어려웠다. 더구나 하루 남짓한 시간 안에 회담에 응하라는 으름장에 북한의 반응은 불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북한 전문가가 통일부 장관을 맡고 있는 정부에서 이같이 '턱도 없는' 회담 제의가 나온 것이다.
이 회담 제의를 북한이 비난하자 청와대가 나서서 이를 '대화 거부'로 단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남한이 제시한 시한을 2시간 15분 가량 넘겨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실무회담 제안을 "알맹이 없는 껍데기 제안"이라고 비난했다. 또 한편으로는 "개성공단은 6·15의 고귀한 전취물"이라며 자신들이 개성공단을 사업을 위해 노력한 부분도 강조했다.
26일 북한이 반응이 나온 직후 통일부는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좀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날 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나서서 "대통령의 뜻"이라며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내놨다.
남북관계의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조심스레 실무회담 성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던 걸 청와대가 나서서 '북한의 입장은 회담 거부'라고 못 박은 것. 이어 '중대 조치'인 개성공단 내 남한 체류 인원 전원 귀환 결정이 내려지면서 개성공단사업이 잠정 중단되는 사태로 치달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의 주무부처는 통일부인데, 그 역할이 실종된 것 같다"며 "최근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보면 통일부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분석과 판단보다는 모든 상황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일부가 업무를 관장하고 국가안보실이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대통령에게 대응책을 제시하면 대통령은 최종결심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결심하면 국가안보실이나 통일부가 그대로 실행하는 구조로 보인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류길재 장관을 발탁했을 땐 보수적인 시각을 가졌지만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을 잘 아는 분이어서 기대가 높았는데, 지금은 장관이 대통령을 설득을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대통령이 너무 일일이 지시만 해서 그런지 실망스럽다"며 "통일부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는 전문가인 통일부가 주도할 수 있게 해야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군 출신에 고립될까 걱정"... "대북정책은 통일부 주도로"
현재 상황으로 봐선 류길재 장관이나 통일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진다. 다만, 그 원인에 대해 류 장관이 역할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북한 관련 최고위 정책결정구조에서 통일부장관이 배제되고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에 군인 출신이 너무 많다. 밀리터리 마인드(군사적 사고방식)과 시빌리언 마인드(민간 사고방식)가 서로 부딪힐 때 통일부 장관이 너무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 국방부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등 군 출신이 숫자도 많은데다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어서 학자 출신인 류 장관이 고립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류길재 장관은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류 장관이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지금 역할을 못한다고 비난한다면 전투도 벌이기 전에 복장 불량을 이유로 얼차려를 시키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어떻게든 대북정책이 통일부 주도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성공단이 저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국방부에서 '개성공단 인질' 발언이나 '지휘부 원점 타격' 등의 발언이 북한을 자극한 것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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