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메모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흔들기에 연일 열을 올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모친상에 조문을 했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국민의힘은 지도부부터 개별 의원까지 헌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데 전력을 쏟아붓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 파면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헌재 결정에 불복할 ‘밑밥’을 깔아 여론몰이를 하는 동시에, 보수 지지층의 결속력을 높여 조기 대선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민주주의 국가의 한 축인 입법부를 구성하는 정당이 권력욕에 사로잡혀 법치의 근간을 훼손하려는 행태여서 비판이 거세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3명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우리법재판소’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형배 권한대행과 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란 점을 꼬투리 잡아 “(헌재의)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권성동 원내대표도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불공정한 재판의 배후에는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진보 성향 판사들의 연구모임) 출신 법관들의 정치·사법 카르텔이 있다”며 “그런 재판관들이 탄핵심판을 했을 경우, 과연 공정성을 담보하고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겠느냐는 차원에서 봤을 때, 이분들이 스스로 회피하는 게 마땅하다”고 요구했다. 문 권한대행과 이·정 재판관이 참여한 탄핵심판에서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불복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연이틀 헌법재판관들의 ‘출신 성분’을 두고 공세를 펴자, 헌재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의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정도가 중대한지 여부”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으로, 재판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앞서 권 원내대표는 2019년 강원랜드 채용 청탁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이순형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였다. 이와 관련해 권 원내대표는 2023년 국회에서 “우리가 흔히 ‘어떤 특정 연구단체에 소속되면 이럴 것이다, 또 어느 지역 출신이면 이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내 1심 재판에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정확하게 판단을 하더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제가 윤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깊은 친분 관계에 있는 건 다 아시지 않냐”(30일 기자 간담회) “개인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제 오랜 친구”(16일 당 의원총회)라며 두 사람의 친분을 여러 차례 강조한 권 원내대표는 이달 들어 두 차례 직접 헌재를 항의 방문했다.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는 1960년생 동갑내기인데, 권 원내대표의 고향인 강원 강릉시에 윤 대통령의 외가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두번째 헌재 방문 때 헌재 쪽이 당일 예정된 권한쟁의심판 준비 등을 이유로 면담을 거절하자, 기자들에게 “(문 권한대행은) 2020년 이 대표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상가에 방문했고, 이를 자랑삼아 헌재 관계자들에게 얘기할 정도로 이 대표와 가까운 사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헌재는 즉각 반박 자료를 내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후 권 원내대표는 ‘조문설’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를 비롯해 국민의힘에선 문 권한대행과 이 대표가 가깝다는 주장은 거듭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힘은 이미선 재판관의 동생 이상희 변호사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윤석열퇴진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점, 정계선 재판관의 남편 황필규 변호사가 탄핵소추 대리인단인 김이수 변호사와 같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활동한다는 점 등도 공격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윤 대통령 쪽이 낸 정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했는데, 국민의힘이 여전히 억지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의 이런 행태를 두고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 대통령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려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탄핵안이 인용되더라도 보수 지지층이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게 하고, 복수심에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떨어뜨리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의힘도 “(헌재 결정에) 불복하기는 어렵다”(신동욱 수석대변인)고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복할 방법도 없다. 이와 관련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장은 “‘메시지가 불리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다”며 “탄핵 인용은 메시지고, 헌재는 메신저다. 헌재 때리기를 통해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조기 대선에서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큰 탓에 “메신저(헌재)를 걸레로 만들어서, 탄핵안을 인용해도 국민의힘에 손실이 없는 정치 여건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채진원 교수는 “헌재 흔들기는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자,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의 헌재 흔들기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합의로 어렵게 만들어진 헌법기관을 흔드는 행태”라며 “헌재 결정이 재판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흔들어대는 정당을 공당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의 ‘정치사법 카르텔’을 주장하며 헌법재판관들의 탄핵심판 회피를 촉구한 가운데, 과거 그가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은 뒤에는 ‘정확하게 판단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해당 판사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발부해 최근 보수세력의 비판을 받은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다. 권 원내대표가 본인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30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을 사법 요직에 앉히고 이들은 ‘좌편향’ 판결로 보답하며 민주당 공천을 통해 입법부로 진출해 왔다”고 주장하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정계선·이미선 헌법재판관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모든 불공정 재판의 배후에는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의 정치·사법 카르텔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는 2023년 9월20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특위에서는 이와 정반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후보자가 보수 엘리트 법관들의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한 발언이었다.
권 원내대표는 당시 “어떤 연구단체나 특정 지역 출신들을 사시의 눈으로 쳐다보고 지레 짐작하고 또 평가를 하고 단정을 짓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며 “어느 단체든지 간에 양질의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또 합리적인 사람이 있고 비합리적인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문재인 정부 때 부당 기소로 재판을 받은 사람인데, 나중에 보니 1심 재판장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며 “그런데 정확하게 판단을 합디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편견은 또 고정관념은 가급적이면 배제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원내대표가 언급한 자신의 재판은, 강원랜드에 고등학교 동창과 자신의 인턴비서 등을 채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일을 말한다. 그는 이 일로 1심-항소심-대법원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1심 재판장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이순형 부장판사였다.
이 부장판사는 최근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데,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 부장판사는 영장 발부 이후, 그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보수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당시 이 판사에 대한 탄핵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며,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현직 대통령을 체포하라는 영장을 발부한 영장전담 판사의 행위는 위법적이고 초법적인 정치 행위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법관은 판결로 말할 뿐이다. (본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때) 우리법연구회는 경외 대상, 지금 우리법연구회는 비난 대상이냐”라고 비판했다.
이미선 동생, 정계선 남편까지 캐는 與…野 "탄핵 불복 속셈"
김민욱, 오현석, 심정보2025. 1. 31. 05:00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를 연일 맹공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불복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반격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30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친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문 대행은 이 대표와 사법연수원 동기 시절부터 호형호제한 사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문 대행과 이 대표는 2011~2013년 SNS에서 최소 7차례 개인 안부 등을 물으며 소통했다. 그 중엔 이 대표가 문 대행에게 아내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자, 문 대행이 이 대표에게 건강에 유의하라고 남긴 글도 있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2일에도 “문 대행이 이 대표의 모친상에 직접 조문했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곧바로 “문 대행은 조의금을 낸 사실도 없었다”고 반박했었다.
권 원내대표는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중 문 대행과 정계선·이미선 재판관이 진보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도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정계선 재판관의 남편은 국회 탄핵 소추 대리인단의 김이수 변호사와 같은 법인에서 활동 중이고, 이미선 재판관의 동생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산하 ‘윤석열 퇴진 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원내대표는 “헌법 재판마저 ‘패밀리 비즈니스’로 전락해서야 되겠느냐”며 “우리법연구회 출신 헌법재판관들은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좌파 세도 정치를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이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이미선 재판관과 동생 관계를 지적하면서 “명절에 만나거나 대화를 통해 예단이 형성될 수 있다”고 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뉴스1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헌 여부를 헌재가 2월 3일 결정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권 원내대표는 “한덕수 (총리) 탄핵 심판은 외면하면서 마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대통령 탄핵 인용 가능성을 높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모든 불공정 재판의 배후에는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의 정치·사법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했다.
차준홍 기자
국민의힘은 문 대행의 과거 SNS도 문제 삼고 있다. 문 대행은 2010년 유엔군 참전용사가 안장된 유엔기념공원에 방문한 뒤 블로그에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을까”라고 썼다. 지난 28일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문 대행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목숨을 바친 6·25 전쟁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모독을 사과하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문 대행은 이튿날 “원문을 읽어보라”며 페이스북에 해당 글을 올렸다. 문 대행은 이 글에 “북한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뜻의 글이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을 기리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 것”이라고 부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전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여권의 헌재 공격을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반국가적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이건태 민주당 법률대변인은 30일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이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을 대비해 불복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이런 식이면 윤석열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인 헌법재판관 7명도 재판에서 손을 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정성호 의원 역시 “(과거 아는 사이였다는)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일반 형사재판이든 헌재 재판이든 판단할 수 있는 재판관이 있겠는가”라며 “결국은 본인(국민의힘)들이 정당성이 없으니 메신저를 공격하는, 탄핵에 불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사법 판단의 수준을 모두 연고주의로 다 환치시키는 퇴행적인 접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