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뉴스
영하 11도 속 헌재로 간 30만명 외침…“상식적 판단 믿습니다”
무궁화9719
2024. 12. 25. 16:19
이것이 진짜 ‘국민의 힘’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영하 11도 속 헌재로 간 30만명 외침…“상식적 판단 믿습니다”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상식에 맞는 판단만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24살 이나래씨)
“재판관님들도 국민이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일 거잖아요. 잘 결정하시리라 믿어요.”(65살 김아무개씨)
“빨리 탄핵이 되면 좋겠어요.”(14살 이준호군)
끝이 보이지 않는 행진 인파 사이에서 헌법재판소를 바라보며 각기 다른 일상을 살아 온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기대와 바람을 전했다. “탄핵” “파면”을 외치는 구호가 케이팝과 함께 한겨울 서울의 찬공기를 갈랐다. 교통 체증에 갇힌 버스를 타고 있던 시민들은 창을 열고 손을 흔들었고, 길을 걷던 시민은 멈춰서서 사진을 찍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2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범시민대행진)에 시민 30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여들었다. 국회 앞에서 탄핵안 가결을 이뤄낸 시민들은 1주일만에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걸으며 윤대통령의 조속한 탄핵과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기쁨도 잠시, 지난 한 주 이어진 윤대통령과 여당,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모습에 대한 분노가 거셌다. 다만 다채로운 깃발을 들고 새참을 나누고, 각자 만든 손팻말을 흔들며 “유쾌하게 이기겠다”는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

이날 행진에 앞선 집회 무대에 오른 강솔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윤대통령은 담화와 변호사 기자회견을 통해 끊임없이 갈라치기를 시전하고 있다”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은 더이상 책임회피를 하지 말고 내란 특별법 공포 와 헌법재판관 지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와 압수수색, 헌법재판소의 문서 송달에 전부 불응하고 있는 가운데, 한 대행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내란사태에 대해 국민의힘의 사과 또한 없었다.
행진에 참여한 김아무개(52)씨는 “탄핵안 가결이 된 상황에서도 수사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아 화가 더 난다”고 했다. 박아무개(53)씨는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의 벌인 일에 사과는커녕 아직도 이해득실만 따지는 국민의힘에도 화가 난다”며 “이 기회에 보수 세력이 재정비해서 민주주의를 함께 지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이날도 간식과 먹거리, 방한용품, 공간을 나누며 거리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집회 현장에는 여지없이 ‘방구석 베짱이 연합’, ‘후딱 탄핵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시민 연합’ 등 다채로운 깃발이 나부꼈다. ‘마스크 무료나눔’ 손팻말을 든 김아무개(25)씨는 “춥고 독감이 유행하는 데다 얼굴을 가리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 마스크를 나누러 나왔다”며 “윤 대통령이 서둘러 탄핵 돼 민주주의가 바로잡혔으며 좋겠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교사들은 ‘무지개떡’을 나눴고, 산타 복장을 한 청년 노동자들은 과자가 담긴 선물 꾸러미를 전했다. 이태원 유가족들은 적선현대빌딩 1층에 있는 추모공간 ‘별들의집’을 이날 영유아와 보호자들의 쉼터로 꾸몄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란의 밤 느낀 공포, 그 앞에 함께 싸운 시민 모습을 떠올리며 ‘탄핵 이후’에도 이어져야 할 민주주의 모습을 생각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한국옵티컬 농성장에서 고공 농성을 했던 소현숙씨는 “계엄선포를 보고 당장 끌려내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무서웠다”며 “윤석열을 탄핵하는 건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애인 위유진씨도 집회 무대에 올라 “국가에 의한 갑작스런 폭력은 중증 장애여성인 나에게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날 밤 망설임 없이 국회 앞 달려간 시민들 덕분에 나는 지금 여러분과 함께 여기 살아있다”며 “탄핵은 경유지이지 종착지가 아니다. 모든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싸우자”고 했다.
행진 대열은 저녁 6시께 헌재를 지나 명동에 도착했다. 어느덧 어둑해진 거리에서 집회 참여 시민과 거리를 지나가던 시민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응원봉이나 손팻말을 준비하지 못한 채 행진 대열을 만난 시민들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파이팅해야지’ 등 케이팝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며 윤대통령의 탄핵, 그를 통한 다채로운 민주주의 회복을 함께 요청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탄핵 응원봉’ 손에 쥔 2030 여성들…민주주의 새 상징 되었다 [.txt]
- 수정 2024-12-21 13:06
- 등록 2024-12-21 12:00
지난 14일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집회에 참가한 청년 여성들이 윤석열 탄핵과 즉각 체포를 요구하며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먹고 사는 일만큼 읽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읽고 사는 일만큼 목소리 내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12·3 내란 발생 이후 약 2주간의 숨가쁜 시간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읽던 책을 덮어둔 채 국회 앞 광장으로 뛰쳐나와 한목소리로 계엄 해제와 탄핵을 외쳤다. 시민들의 두려움 없는 지지에 국회는 불법 계엄 선포 3시간여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적법하게 통과시켰다. 나흘 뒤 표결에 부쳐진 내란 수괴(우두머리) 윤석열의 첫 탄핵소추안은 여당의 불참 당론으로 불성립되었지만 일주일 후 상정된 두번째 탄핵소추안은 천만다행으로 재석 300석에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다. “가결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힘차게 세번 내리침으로써 시한폭탄 같았던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는 마침내 정지되었다.
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내내 국회 앞 광장을 지킨 이들 가운데 유난히 도드라진 것은 색색의 응원봉을 손에 쥔 2030 여성이었다. 집회에 다녀온 이들은 입을 모아 광장을 가득 메운 2030 여성의 존재를 증명했다. 비비시(BBC) 코리아는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토대로 첫 탄핵안 표결일인 12월7일 오후 4시 기준 집회 참가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0대 여성(17.7%)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8년 전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케이(K)팝에 맞춰 빛나는 응원봉을 흥겹게 흔드는 청년 여성들의 모습을 기특하다고 상찬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와 ‘2030 여성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고 응수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공존했다. 청년 여성과 응원봉, ‘다시 만난 세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계엄 해제와 탄핵 가결은 의사봉과 응원봉이라는 2개의 봉이 함께 만들어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쾌거다. 그러나 이 2개의 봉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다.
청년 여성들은 당사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계엄으로 만들어진 탄핵 광장 이전에도 늘 광장에 있었다.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살인 추모집회와 2018년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2020년 ‘엔(n)번방 방지법’ 제정 촉구 시위,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피해자 추모집회,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 규탄 집회 등 2030 여성들은 늘 광장에 모여 외쳤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없애야 한다고. 페미니스트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공격을 막아야 한다고.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고, 황당한 집게손가락 마녀사냥을 멈추고, 비동의 강간죄를 제정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불법 성착취물의 온상인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고,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장의 의사봉은 이 외침에 굳게 침묵했다.
청년 여성들이 손에 쥔 소중한 응원봉과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의 권력자 국회의장이 손에 쥔 의사봉이 윤석열 내란이라는 역설적인 계기로 마침내 극적으로 서로를 만난 이 시점에 나는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칼럼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와 여기 수록된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는 글을 생각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9일에 발표된 이 글에서 권김현영은 ‘촛불광장’에 있었던 여성혐오적인 장면과 그 장면을 문제제기하고 바꾸어내는 장면을 묘사하며 “억눌렸던 목소리가 나오고, 그 목소리들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그다음 주에 다시 광장에서 만나는”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가장 힘 있는 정치적 장면”이라고 평가한다.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그런 불완전한 상태를 견뎌내는 능력치가 커지며 ‘불완전함이 지속 가능해지는 것’이 시민의 성숙이자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안타깝다. “하지만 대선이 시작되면서 그토록 다양했던 광장의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주권자는 사라지고 유권자가 남았습니다. 정치가 아니라 전략이 앞자리를 차지했고 표 계산이 남았습니다. 꽤 익숙한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광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목소리들, 이런 장면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라진 목소리는 동등한 주권자로서 여성의 목소리를 뜻한다. 촛불광장의 주역이었던 여성들은 소싯적 돼지발정제 문제에 과도하게 화내는 사람들, 박근혜의 실정에 연대 책임을 지며 ‘향후 100년간 여성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 책 세 권에 걸쳐 룸살롱 출입 경험을 자랑하고도 자리를 보전하는 청와대 행정관을 ‘그래도 되는 선’으로 용인해야 하는 사람들로 주변화된다. “촛불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가 어째서 룸살롱 연대로 바꿔치기된 겁니까. 페미니스트 정권이 되겠다는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이 통렬한 2019년의 물음은 2024년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을 상찬하는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겠습니까?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탄핵의 공은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앞으로도 2030 여성들과 모든 시민들은 변함없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빛나는 응원봉 광장은 광장민주주의를 룸살롱 연대로 바꿔치기 당하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페미니즘 있는 민주주의를 지금의 광장에 분명히 새겨넣어야 한다. 헌재가 윤석열을 심판하는 동안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동등한 주권자로서 여성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개혁에 지금 착수해야 한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진정 한걸음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 20%라는 민망한 현실을 넘어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을 들었던 20대 여성의 손이 그 시대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힘차게 의사봉을 두드리는 그날을.
전 국회의원

분노의 큐시트…성시경이 부릅니다, 넌 감동이었어 [.txt]
- 수정 2024-12-21 11:55
- 등록 2024-12-21 11:00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 손에 쥐어진 응원봉이 반짝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우리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 그날 밤을 보낸 방식도 모두 달랐을 것이다. 명분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초유의 ‘하룻밤 계엄령’ 속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뉴스를 확인하며 밤잠을 설쳤을 테다. 그 와중에 잠이나 자자는 식으로 숙면을 취한 속 편한 분들도 있겠지. 부럽다. 바로 국회로 달려가 몸을 던져 민주주의를 사수한 분들도 수천명이었다. 존경한다. 방송국 피디인 나는 제작진과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며 다음날 아침 방송을 준비하느라 잠을 포기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에 의해 계엄군이 스튜디오를 지키는 상황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는데, 천만다행으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고른 첫 곡은 ‘날스 바클리’의 ‘크레이지’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모든 면에서 불법적이고 비이성적인 계엄령을 제정신으로 선포한 윤석열의 정신 상태가 궁금했다. 레드벨벳의 ‘싸이코’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고른 분노의 선곡이었다. https://youtu.be/-N4jf6rtyuw?si=kjoAjwKhtF8RB5UC
그날 후배 피디들의 선곡을 보면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컬투쇼’에서는 장기하 노래가 나갔다.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이 노래는 제목이 가사의 전부다. 가만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러냐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이 노래의 길이는 무려 6분이 넘는다. 그날 밤 윤석열이 대통령 취임 후 내렸던 수많은 판단 착오 중에서도 가장 머저리 같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노래를 들었어야 했는데. https://youtu.be/pd3eiF3bH38?si=Khs5xjAIZXXJVjRR
바로 이어 나간 싸이의 ‘새’의 노랫말도 새삼스럽다.
‘진짜 밉상진상 꼴배기 싫은 니가 대장.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완전히 새 됐어.’
새가 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일까. 그는 내란죄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교도소에 갇힐 운명에 처했다. 어쩌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아내까지, 커플이 함께 철창에 갇히는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부부가 될지도 모르겠다.
첫 곡만큼 끝 곡도 중요하다. 계엄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던 다음날 아침, 생방송 두 시간 동안 끝 곡을 고민했지만…….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날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청취자분들이 신청한 노래가 있었으니까. 영원한 저항의 송가,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g0erjLdxY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빚보증을 잘못 서서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양희은이 직접 방송에서 공개한 적 있다. 그녀는 먹고살기 위해 호프집에서 노래를 불렀고 처음 무대를 마련해 준 사람이 송창식이라는 에피소드도 꽤 알려져 있다. 그렇게 업소에서 먼저 노래를 시작한 양희은이 19살 나이에 발표한 데뷔 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에 바로 이 노래 ‘아침 이슬’이 들어 있다. 국민의 뜻이 언제나 옳듯 청취자의 신청곡이 최고의 선곡이다.
계엄의 밤이 끝나자 탄핵의 나날이 이어졌다. 매일 수십만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국민의 뜻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나도 아들과 함께 동참했는데 집회 현장은 깃발의 천국이었다.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졌다. ‘전국 급식 연합’, ‘강아지 발 냄새 연구회’,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 본부’, 심지어 ‘깃발 준비 못한 사람 모임’ 깃발도 있었다. 우리 부자는 어쩌다 보니 성적소수자 깃발 아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성적 취향을 묻거나 따지지 않고 공간을 내준 분들에게 뒤늦게나마 감사한다.
재기발랄한 깃발들만큼 놀라웠던 건 집회 현장에 울려 퍼지는 노래들이었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시작으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들리고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도 나왔다. 이게 뭔가? 이래도 되나 싶을 때쯤 우리 세대의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도 섞여 나왔다. 그리고 어둠이 내릴 때쯤 형형색색의 응원봉들이 땅 위의 별자리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찍은 우주의 모습과 닮은 장관이었다.
깃발의 구호도, 선곡 패턴도, 응원봉 종류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신념 외에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만든 곳은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시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펼쳐졌다고.
집회에 다녀온 다음날부터 큐시트에 힘을 뺐다. 굳이 내가 어렵게 선곡하지 않아도 여의도 광장에서 만들어지는 큐시트가 더 훌륭했으니까. 결국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고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장소를 옮겨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그 어떤 집회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그래서 오늘 칼럼은 이 노래로 마무리할까 한다.
성시경이 부릅니다. 넌 감동이었어.

♣️H6s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비상계엄과 죽음의 공포 [.txt]

지난 3일 ‘내란수괴 윤석열’이 ‘뜬금포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기 몇 시간 전, 저는 개인적으로 충격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5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는데, 그날이 결과를 듣는 날이었습니다. 매번 “깨끗합니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날 의사는 “뼈스캔에서 갈비뼈 특정 부위가 까맣게 보이는데, 이것이 염증인지 암 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 펫(PET) 시티(CT)를 다시 찍고 보자”고 말했습니다. 암 진단 때 느꼈던 공포를 느끼던 와중 비상계엄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후 나라 걱정에, 제 생존 걱정에 지옥 같은 2주를 보냈습니다. 좋아하던 책도 손에 들 수 없었지요. 그저 뉴스를 따라가며 분노하고, 마음을 졸이고, 탄핵 가결 소식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또 암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벌벌벌 떨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 6시께, 진료실 앞에서 기도하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안고 의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의사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의사는 “뼈스캔에서는 까맣게 보였는데, 펫 시티는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암 전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저 감사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자, 이번주 새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음이 알려주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변호사 생활을 하다 임종도우미가 된 알루아 아서의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을 담은 책입니다.
가나 출신인 알루아 아서 가족은 1980년대 가나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에게 탄압을 받았고, 미 대사관의 협력을 받아 정치적 난민을 신청해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쿠데타 세력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가족 모두 탈출하던 순간을 저자는 “죽음에서 탈출할 때의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쿠데타 세력 때문에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 했고, 가나의 음식을 먹고 가나의 언어를 말하면서 자랄 수 없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요. 이런 점 때문에 저자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또 낯선 타국에서 큰오빠처럼 따르던 형부 피터가 림프종에 걸려 죽게 되는데, 그의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아서는 함께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피터와 아서는 유머와 유쾌함을 잃지 않습니다. 아서가 “약 드실 시간입니다, 주인님”하며 약통을 내밀면 피터는 약통을 움켜쥐고 고개를 쳐들며 왕 행세를 하며 웃고요.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약했던 피터가 갑자기 인테리어 용품을 보고 싶다고 하면 아서는 전기 카트를 찾아 그를 앉히고 “전진, 앞으로오오오오오!!” 하고 소리를 치고, 피터는 그 순간에도 “네, 선장님!”하며 낄낄대며 웃었지요. 피터를 돌보고, 어린 조카를 돌보고, 각종 행정적 처리를 하며 아서는 피터가 죽어가는 여정을 함께 합니다. 그러나 정작 피터의 생명의 불꽃이 꺼진 날엔 아서는 그 자리엔 없었지요.
아서는 피터의 죽음 이후 “의료 및 사망 관리 시스템 전체에 화염병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힘든데, 피터의 계좌를 해지하고 자동차 소유권 등을 정리하는 절차가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또 죽음의 징후를 몰라서 마지막에 피터와 작별 인사를 제대로 못 한 점을 아쉬워합니다. 아서는 피터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임종 도우미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책에는 그가 쿠바 여행을 갔다가 차에 치여 죽을 뻔한 위기와 쿠바에서 만난 자궁암 환자 이야기, 또 그가 만난 여러 고객 이야기와 그가 임종도우미를 하면서 얻게 된 삶에 대한 통찰 등이 담겨 있습니다.
“당연히 죽음은 무섭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씨앗이다. 그 씨앗을 정성 들여 가꾸면 생명이 그 자리에서 들꽃처럼 자란다”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는 또 “우리가 아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뿐이다. 집단적인 죽음 부정은 우리가 마치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만들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추위와 슬픔을 느끼고, 혀끝에서 설탕을 맛보며 경외감을 느끼고, 햇살 아래 디스코볼의 반짝임을 볼 수 있는 기회. 이것은 중요하다.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 집착하는 동안 우리는 이 세계에서의 경험을 놓칠 수 있다”며 “무언가가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면,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만들어보라. 호기심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의 삶은 소중합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성 들여 가꿔,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생각해보는 연말을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버티기’ 전략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한 마디 조언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요. 당신이 죽은 뒤에 많은 사람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보라고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더는 나라를 혼란과 위기 속으로 몰아넣지 말라고요.
텍스트팀장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