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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무궁화9719 2024. 11. 27. 15:03

천문학적 액수 퍼주면서 주한미군을 붙잡아야 할까?

[정욱식 칼럼]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 들고 돌아온 트럼프

  • 수정 2025-01-13 10:32
  • 등록 2025-01-13 06:46
2019년 6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DMZ 지역인 파주 캠프 보니파스 북쪽의 최북단 오울렛 초소를 찾아 북한쪽을 살펴보고 있다. 파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밸런스 게임. ‘미국에 방위비 분담금 5배 정도 올려주기 VS 주한미군 대폭 감축 수용하기.’ 이 게임은 더 이상 재미의 영역도 상상의 영역도 아니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한국이 피하기 힘든 딜레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물론 선택지가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미 협상력을 발휘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폭을 최대한 낮출 수도 있고, 방위비 대폭 인상의 반대급부로 미국으로부터 자체 핵무장을 용인받거나 주한미군의 대안으로 자체 핵무장을 선호할 수도 있다. 
 
한국의 딜레마가 심해지고 있는 까닭은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는 데에도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그리고 북러 동맹의 재결성은 그 핵심에 해당된다. 이 와중에 조선의 김정은 정권은 ‘불가역적 핵보유국’ 추구와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와 남북관계에 관한 기존 문법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미동맹 강화 및 한미일 군사협력 추구의 핵심적인 동인으로 작용했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한미동맹 브레이커’로 불릴 법한 인물이다. 
 
주한미군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의 선택지는 길게 펼쳐져 있다. 대선 유세 때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백악관에 있으면 그들은 (주한미군 주둔비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터무니없는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다. “언젠가는 미군을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추진할 수도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의 역할을 대북 억제에서 중국 봉쇄로 이동하자고 압박할 수도 있다. ‘안보의 경제성’을 주창한 아이젠하워 행정부처럼,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대신에 핵무기를 한국에 전진 배치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선택지는 매우 좁다. 대규모의 주한미군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기본값’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기본값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의 부당하고 위험한 요구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지를 넓히려면 기본값도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와 관련해 싱가로프 외교부 상임장관을 지낸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 1·2월호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지나간 시대의 상상 속의 공통 가치들을 갈망하기보다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미국의 자연스러운 위치로의 회귀로 간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련이라는 실존적 위협이 사라진 지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냉전 시대와 같은 미국의 개입주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일단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삼아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 받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삼는 것 같다. 10배 정도로 불러놓고 5배 안팎의 인상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가당치 않다. 미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비의 상당 부분은 인건비이다. 약 70%에 달하는 이 비용은 미군이 어디에 있던 들어가는 돈이라는 뜻이다. 또 한국이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남아돌아 불용액이 쌓여 있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막무가내이다. 주한미군을 용병 취급한다는 비판이 나와도 “한국이 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미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따르면, 미군 인건비는 미국 의회가 승인한 국방 예산에서만 지출할 수 있고, 외국 정부나 단체로부터 미군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보수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적용 범위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 지원비로 한정되어 있다. 이는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한국이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면 어디에 쓰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인건비를 제외한 ‘비인적비용(Non-Personal Cost)’을 한국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이 비용은 약 24.3억 달러였고 한국이 39%를 부담했다. 또 하나는 한미연합훈련비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는 것이다. 연합훈련비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한국은 한국군과 관련된 비용을, 미국은 미군 관련 비용을 부담해왔다.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은 미국이 대부분 부담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SMA 개정을 통해 관련 항목을 신설해 한국에 비용 전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선박업의 퇴조로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가 난항을 겪고 있는 만큼, 미국의 전략자산에 해당하는 항공모함 등 대형 함정 및 잠수함의 유지·보수를 한국에 떠넘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인적비용, 연합훈련비, 미국 전략자산 전개 및 유지·보수 비용을 합쳐 대략 50억 달러라고 가정해보자. 또 한국이 이들 비용의 전체를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현재보다 방위비 분담금은 5배 가까이 늘어난다. 대선 유세 때 10배를 부른 트럼프의 요구에 비하면 선방하는 것일까?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주한미군을 붙잡아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까? 만약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쉽게 답을 내놓을 수 없지만,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주한미군 존재 자체에 대한 공론화는 필요하다. ‘창조적 파괴’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딜레마는 줄이면서 한국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는 북미관계에 있다. 트럼프는 한국을 상대로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조선을 상대로는 5년 넘게 단절된 북미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한미(일) 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동맹 강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될 경우 조선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야심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보다 더 근본적인 방향을 향할 개연성도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과 적당한 타협을 이루고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하는 것이다. 
 
여기서 적당한 타협이란 비핵화는 사실상 내려놓고 북핵 동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한을 비롯한 군비통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중재를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트럼프로서는 ‘조선의 ICBM 위협으로부터 미국은 안전해졌다’고 주장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감축, 한미연합훈련 및 미국 전략자산 전개 축소나 중단으로 ‘미국 예산을 대폭 아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조선-중국-러시아-이란의 반미 연대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힘을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게 된다’고도 할 것이다. ‘긴장완화를 통해 한반도 전쟁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며 노벨상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울러 조선의 ICBM 제한으로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이 높아졌다며 한국을 설득하려고도 할 것이다.
 
트럼프가 이렇게 접근해올 경우 김정은이 호응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리고 국내에선 진보와 보수를 초월해 ‘최악의 시나리오’가 다가오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인지는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비핵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표’이고 주한미군은 한국 안보를 지키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시각에 머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도그마에 빠져있을수록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를 자초할 수도, ‘패싱’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는 방위비 분담금은 대폭 인상되고 북미대화의 결렬로 조선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전쟁 위기가 일상화되거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는 점은 앞서 지적한 바 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엔 미국 의회가 방패막이 역할을 했었지만, 2기 때엔 어려워졌다.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엔 주한미군을 2만8천500명으로 유지한다고 하면서도 법적 강제력이 없어져 트럼프의 재량권이 커진 것이다. 또 1기 때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막았지만, 2기엔 트럼프의 ’충성파‘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방법은 있을 수 있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의 성격을 대중국용으로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다. 미국의 초당적인 목표이자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더더욱 의지를 다지고 있는 대중 봉쇄와 견제에 한국이 적극 동참할 테니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말아달라고 미국에 요구할 수 있다. 한국이 이런 입장을 표명할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능한 최악’에 해당된다. 기로에 선 한중관계는 파탄을 면치 못하고, 북중·북중러의 결속을 야기할 것이며, 한국이 동아시아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대만 해협 등에서 미중 무력충돌 시 한국이 원하는 않는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특히 한미·미일동맹과 북중·북러동맹을 고려할 때, 자칫 ‘동맹의 체인’에 엮여 몽유병자처럼 전쟁으로 빠져들어간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한 상황이 한반도와 대만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주한미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주한미군 감축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인 만큼, 우리도 ‘한국 우선주의’의 시각에서 미국과 상호 만족할 만한 논의를 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주한미군이 줄어든 한미동맹’을 설계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주한미군 50% 감축과 확장억제 유지’가 한미동맹의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한 미래라고 본다. 세계 5위 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군사력과 미국의 중장거리 투사 능력을 고려할 때, 이렇게 해도 한미동맹 본연의 임무는 수행할 수 있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미국은 한국 방어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주한미군을 줄이면 한미 모두 관련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수원 등 군공항을 주한미공군 기지로 이전해 관련 지역의 숙원을 해결할 수도 있다. 조선과의 군비통제 및 군축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극심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주한미군 ‘10배 청구서’ 꺼내 든 트럼프…한반도의 위험이자 기회

이제훈기자
  • 수정 2025-01-08 07:39
  • 등록 2025-01-08 06:00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오는 20일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복귀는 한반도에 위기다. ‘시스템 파괴자’를 자임하며 ‘공짜 안보는 없다’를 외치는 트럼프의 귀환이 몰고 올 불확실성은, ‘위기’(危機)라는 한자어 그대로 위험이자 기회라는 뜻에서 위기다. ‘돌아온 트럼프’에 대응해 한국은, 한반도 8천만 시민·인민은 위험을 회피하고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로 갈 기회의 창을 열 수 있을까?

“한국은 현금인출기”

트럼프는 한국을 “현금인출기”(money machine)라 부른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한해에 100억달러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가 2024년 10월4일 합의한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른 한국 분담 몫의 10배 가까운 금액이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올리라는, 대만엔 “방위비용을 (GDP의) 10%는 써야 한다”는 압박과 다르지 않다. ‘안보 무임승차’는 안 되니 미국의 보호를 받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정작 미국의 국방비는 지디피의 2.5~2.9% 선이다. 트럼프식의 ‘비용을 들이지 않는 패권 유지 전략’, ‘약탈적 거래주의’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다시 하겠다는 예고나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주한미군의 지위와 규모에 영향을 끼칠 불씨를 품고 있다.
 
트럼프의 ‘돈’ 중심 세계관은 통상에도 먹구름을 몰고 올 위험이 있다. 2024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557억달러로 역대 최대다. 트럼프 1기 마지막 해인 2020년 227억달러의 두배가 넘는다.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 추어올리는 트럼프가 이를 빌미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압박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은 세계 1위의 대미 투자국(2023년 215억달러)인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배제 공급망 재구성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반도체산업육성법(CHIPS) 등의 영향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탈탄소·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지원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을 “녹색 사기”(Green New Scam)라 폄훼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과 지원책에 이끌려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한국의 자동차·2차전지·전자 업체들은 진퇴양난이다. ‘돌아온 트럼프’에 맞서 한국의 통상·안보 이익을 지켜야 할 정부는 ‘유고’ 상태다.
 

“김정은과 잘 지낼 것

트럼프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의 인연을 강조한다. “나는 김정은을 매우 잘 안다”,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 “핵을 가진 자와는 잘 지내는 게 좋다”는 식이다. 말을 현실화할 포석에도 재빠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실무 준비팀에 참여한 앨릭스 웡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2인자인 부보좌관으로 발탁하고, 핵심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대사를 북한 문제를 포함한 ‘특별임무를 위한 대통령 특사’로 지명했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이 김정은과 직접 대화 추진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를 뒷받침하는 인사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변심’에 상처받은 김정은의 반응은 아직은 싸늘하다. 김정은은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21일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 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 정책”이라며, 짐짓 트럼프의 복귀에 기대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은은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선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천명했다. 아직은 접점이 없다. 트럼프 취임식 직후인 2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2024년 6월19일 평양 금수산영빈관 정원을 함께 걷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푸틴이라는 ‘열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는 2025년 한반도 정세와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 기조를 가늠할 핵심 변수다. 정전 또는 종전을 둘러싼 트럼프-푸틴 전략게임에 북-러 및 북-미 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러 삼각관계가 정세를 결정한다”고,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북-미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푸틴”이라고 짚었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한반도 정세 변화 과정에서 ‘한국 패싱’(한국 따돌리기)을 피하려면 러-우 전쟁과 윤석열식 냉전외교가 겹쳐 망가진 한-러 관계의 복원이 급선무”라고 주문했다.

한국의 선택

한 원로는 “한국의 국가 전략 목표는 한국전쟁 이후 군사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가 무엇이든 현상변경 의지가 강한 트럼프 시기에 평화체제 전환을 가능케 할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시스템 파괴’ 의지가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씨앗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1기’를 상대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다른 문제엔 상대적으로 무관심·관대한 경향이 있다”며 “한국이 ‘내어줄 수밖에 없는 것’과 ‘반드시 얻어내야 할 것’을 나눠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근본적 잣대는 ‘국익’과 대미 자율성의 확장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압박하면, 이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와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아울러 군사주권을 제약해온 한-미 미사일 지침의 사거리·탄두중량 제한을 역대 정부가 집요한 협상으로 2021년 5월 종료시킨 것처럼, 장기적으론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리를 제한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다수 전문가들은 “‘약탈적 거래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를 한국이 효과적으로 상대하려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민주정부의 구성이 선결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한국은 미국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100여개 시민사회, '제12차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국회 비준 동의 반대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입력 2024.11.27 14:42
  •  수정 2024.11.27 14:44
101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은 국회 외통위 법안소위 검토가 이뤄지는 27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시민사회·정당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제12차 SMA 국회 비준 동의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적용될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비준 동의안이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본 회의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첫해 8.3%를 인상하고 이후 매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인상한다는 것이 골자로, 국회 비준이 이뤄지면 한국 정부는 5년간 최소 7조 9,000억원, 연 평균 약 1조 5,800억원에 달하는 방위비분담금을 부담하게 된다.  

 

자주통일평화연대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진보당, 겨레하나를 비롯한 101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은 국회 외통위 법안소위 검토가 이뤄지는 27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시민사회·정당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제12차 SMA 국회 비준 동의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먼저 방위비분담금 미집행금이 무려 1조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업별 세부 항목과 산출기준도 검증하지 않은 채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국회와 국민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고 협정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SMA 자체가 모든 주둔 비용을 미국측이 부담하도록 한 한미주둔군지위에 관한 협정(SOFA) 5조의 취지에 벗어나 1991년 일부 한국 정부가 분담하도록 한 이례적이고 특혜적인 조치인데, 주한미군이 한국방위를 넘어 대중국압박을 목적으로 주둔 목적이 변화한 조건에서 더 이상 특별협정을 연장하며 주둔비용을 부담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 국회 비준 동의 반대의 근본적 이유이다.

 

기자회견 참가 단체와 정당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는 트럼프 후보 당선시 방위비 대폭인상이 우려된다며, 제11차 협정 유효기간이 1년 8개월이나 남은 시점에 이례적으로 협상을 시작해 조기에 종료하였고 대폭 인상을 전제로 한 굴욕적인 제12차 협정안에 합의하여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하였다"고 하면서 이는 "트럼프 당선자의 '100억 달러' 발언에 지레 겁을 먹어 불법적이고 부당한 인상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12차 SMA 협상기간은 5개월, 단 8차례의 협상으로 타결되었으나 그 과정이 국회와 국민에 전혀 공개되지 않아 밀실협상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이 부여한 의무를 무겁게 받아들여 굴욕적이고 부당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 국회는 "형식적인 부대의견 제출이 그칠 것이 아니라 특별협정 비준 동의를 거부함으로써 방위비 분담 관련 제도개선을 강제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하는 교두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12차 SMA 비전 거부는 물론 특별협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통사 평화통일연구소 오미정 연구원은 "제12차 SMA가 통과되면 우리 국민은 2026년부터 30년까지 5년간 최소 8조원의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지게 되는데, 이는 연 평균 약 1조 5천800억원으로 제11차 협정의 연 평균 1조 2,500억원에 비해 매년 3,300억원이 늘어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2026년도 인상률 8.3%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제11차 약정 기간에만 무려 1조 5,000억원의 미집행금이 남아 있다는 건 방위비 분담금이 과도하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다시 8.3%나 올려줄 이유가 없다는 것.

 

정부는 지난 5년간 방위비분담금 평균 증액률이 6.2%였다는 걸 근거로 8.3% 인상률을 설명하지만 이는 최근 물가상승률 2.6%나 국방비 상승률 3.6%보다 훨씬 높은 기준으로, 미국의 증액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새로운 기준을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매년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만큼 자동인상을 보장함으로써 미국이 매년 300억원 이상을 거저 챙길 수 있게 한 것도 또 하나의 굴욕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과 더불어 유일하게 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정을 체결하는 일본의 경우에도 5년 협정을 체결하지만 연간 인상 보장같은 조항은 없다고 덧붙였다.

 

오 연구원은 현재 미국이 글로벌 군사비 절감전략에 한국을 동원하여 추진중인 '권역별 정비거점 구축정책'(RSF)은 동맹국에 미군 장비의 유지·보수 비용을 떠넘기는 것에 불과함으로 이에 대한 협력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위비분담금을 통해 주일미군의 항공기와 장비 등을 정비해주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정부담을 국민에게 지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그 내용이 국회와 국민에게 전혀 공개된 바 없는 졸속 밀실협상 결과를,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명분으로 국회가 검증은 물론 공청회조차 진행하지 않고 비준하려는 것은 국회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직격했다.

 

지난 11차 협상 당시 방위비분담금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국회가 비준에 앞서 제시한 10가지 부대조건이 있었는데, 어떻게 통제, 감시되고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국회가 검증고 공청회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

 

이 총장은 "설사 12차 협상 결과가 비준된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분담금 100억달러 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국회는 협상의 지렛대가 되지 않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지레 12차 협상 결과를 졸속 비준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 시대에 무엇이 우리의 국익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를 세워야 할 때이다. 반드시 비준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충목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는 "군사비를 천정부지로 올리면 과연 평화가 지켜지는가? 전쟁이 평화를 담보하는가?"라고 반문하고는 "남과 북이 함께할 때, 민족이 함께할 때, 주권을 가지고 단단하게 평화를 실현할 때, 남과 북이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은 "주한미군 주둔경비는 소파에 따라 원칙적으로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 방위비분담금은 한국이 미국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돈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국회 비준을 거부하고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91년 특별협정을 맺어 매년 방위비분담금을 한국이 부담해 준 결과 15배나 인상됐고, 쓰지도 못한 1조 5,000억원이 남아 있지만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는 총액 1조 5,000억원을 내년에 지급해야 하는 건 '동맹국간의 평등한 협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는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특별협정을 폐기하고 원천에서 재협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해랑 전국비상시국회의 공동대표는 "남은 금액은 돌려주고 그만큼 깎아야 하는 것이 협상일텐데, 더 올리자는 건 무슨 셈법인가"라며, 한미 당국간 밀실협상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윤석열정부는 물론 민주당을 향해서도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할말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제 국민들이 국민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막대한 방위비분담금이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