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학살과 피맺힌 투쟁…"미얀마를 기억해주세요"
미얀마 혁명군 점령 도시 88개로 늘어
한국미얀마연대 등 단체 밝혀 ... 곳곳 전투 벌어지며 민간인 피해도 발생
2021년 2월 1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던 미얀마에서 군사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가운데, 소수민족 무장세력과 시민방위대(PDF)이 점령하고 있는 도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연방민주주의승리연합(MFDMC), 한국미얀마연대 등 단체 미얀마 다수 민족군인과 시민방위대가 점령한 도시가 88개에 이른다고 8일 밝혔다.
민주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 시민방위대(PDF)와 카친독립군(KIA),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등 소수민족 무장세력의 '혁명군'이 군사정권과 곳곳에서 전투를 벌여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연방민주주의승리연합, 한국미얀마연대는 소수민족 군대와 시민방위대의 발표를 종합해 점령 도시를 파악하고 있다. 미얀마는 전체 532개 도시가 있으며, 지난 10월 초순에 이들이 점령했던 도시는 84개였다.
미얀마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민간인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라카잉주 똥코트 지역에서는 군부가 군용기로 폭격을 가해 2명 사망, 19명 부상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국미얀마연대가 전했다.
같은 날 마궤주에서는 군부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쀤퓨 지역을 습격해 74세 할머니가 살해를 당하고 가옥 14채가 불태워졌으며, 샨주 북부 타앙민족해방군(TNLA)이 점령한 5개 마을에 공습을 가해 민간인 38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쳤다는 것이다.
또 3일 바고주 쩍찌 지역에서는 마을에 대한 공습으로 승려 1명이 부상을 입었고 수도원과 가옥이 파손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 있는 미얀마 활동가와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주말에도 거리에 나서 피란민 돕기 모금운동과 함께 고국의 봄혁명을 염원하는 활동을 벌였다.
경북 경산에서는 미얀마 출신들이 모여 "반독재·민주화 승리"를 기원하며 '봄혁명'의 상징인 세 손가락과 갖가지 내용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서 있기도 했다.
또 부평역 앞 등지에서는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는 "쿠데타 이후 미얀마 시민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호소했다.
여전한 학살과 피맺힌 투쟁…"미얀마를 기억해주세요"
미얀마 시민혁명 피와 눈물 담은 '포가튼 미얀마'
쿠데타에 맞선 시민혁명 야만적으로 학살한 군부
무장 저항과 내전으로 발전해 3년간 이어진 고난
국제사회의 외면과 망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목숨 걸고 투쟁하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이야기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연결된 우리
얼마 전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많은 이들이 '21세기에 그런 일이'라며 긴가민가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시아의 옆 나라인 미얀마에서는 3년 9개월 전에 계엄령뿐 아니라 군사쿠데타까지 일어났다. <포가튼 미얀마>는 그 쿠데타의 기억과 기록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고 주인공의 이름은 영문 첫 글자로 표기했지만, 모든 것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미얀마에서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2021년 2월 1일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얀마 군부는 원래도 내무, 국방, 치안에 대한 실권을 쥐고 있었지만,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NLD)이 80%의 압도적 지지로 승리하자 선거 결과를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충격과 분노 속에서 처음에 벌어진 '냄비 시위'는 곧 시민혁명으로 발전했다. 미얀마 전국에서 수천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미얀마의 전두환과 같은 쿠데타 수괴 훌라잉과 군부는 2월 9일 첫 발포를 시작으로 민주주의의 요구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외출, 통행금지가 이루어졌지만, 시민들은 무릎 꿇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교사와 공무원들이 시민불복종 운동에 동참했고, 90%가 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등교를 거부했다.
군부는 거리에 나오는 모든 시민을 무차별 발포로 살해했고 수많은 이들을 검거, 투옥, 고문, 사형 집행에 처했다. 시민불복종에 동참한 공무원 12만 명은 정직됐다. 이런 폭압 속에서 시민혁명은 더 이상 비폭력적인 거리 집회나 행진, 시민불복종 등의 방식으로 전개될 수가 없어졌다.
미얀마의 민주 시민과 정치 세력들은 4월 16일 임시정부 '민족통합정부(NUG)' 구성을 선언했고, 5월 5일 '시민방위군(PDF)'을 창설했다. 시민방위군은 소수민족 저항 세력과도 힘을 합쳤고, 9월 7일부터 '총력적인 저항 전쟁'을 선포했다. 이제 미얀마의 반군부 시민혁명은 무장 항쟁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이 속에서 쿠데타 군부는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과 소수민족들을 학살했다. 정당성이 없는 군부는 오로지 피의 학살, 특히 전투기의 폭격을 통해서 권력을 지키려고 했다. <포가튼 미얀마>는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 그 끔찍한 범죄들을 고발한다. 이 장면들은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는 대량학살과 너무나 비슷하다.
"N은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벌어진 뒤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상과 사진을 매일 보아야 했다. 총탄에 맞아 머리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에서 피와 뇌수가 쏟아지는 모습, 팔다리가 잘리고 살갗이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 불에 타 숯처럼 그을린 시신에서 허연 백골이 드러난 모습, 칼에 찔리고, 차에 치이고, 지뢰를 밟아 망가진 인체를 내내 보았다. 괴로웠지만 두 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것 또한 N이 할 수 있는 투쟁이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군부는 저항 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고 '뿌리를 뽑겠다'라고 선언했다. 곳곳에 "들란"(첩자, 프락치)이 침투해서 저항 투사들을 색출했고, 감옥에 끌려간 저항 투사들은 고문과 강간을 당했다. 쿠데타군의 폭격과 학살을 피해서 수많은 이들이 난민이 됐고, 전투기는 난민촌에 폭격을 가했고, 난민들은 산채로 불태워져 살해됐다.
"국경 쪽에서 붙잡혀서 끌려온 남자 두 명이 취조실에서 동성인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짓을 마친 군인들이 항문에 대나무 막대기를 넣고 휘저으며 모욕을 했대. 감옥 안 사정도 마찬가지야. 젊고 예쁘장한 여성 수감자 모두가 희롱과 추행에 시달리고 있어."
주변의 강대국들과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의 야만적 범죄 행위를 방치했다. 그 행태는 이스라엘의 경우와 비슷한데, 다만 여기서는 위치가 좀 바뀌어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이 학살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이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중동의 주변 국가들은 겉으로는 이스라엘을 비판하지만 학살을 방조하고 있다.
반면에 미얀마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가 군부의 편에서 학살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은 겉으로는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군부의 민주주의 말살을 방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동의 석유에 더 관심이 많듯이, 중국은 미얀마의 민주주의보다 군부와 함께하는 송유관, 가스관 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주변 나라들은 자신들이 권위주의적 권력 세습과 독재를 유지하고 있기에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바라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군부를 반대한다면서 포스코 등의 기업이 군부와 협력해 돈벌이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다. 그나마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민주주의보다는 대중국 봉쇄와 견제를 위해서다. 결국 미얀마 민중은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국제사회는 언론의 관심을 끌만한 군부의 잔혹 행위가 있을 때마다 관심을 갖고 비판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일이 생길 때까지 미얀마는 잊힌다. 세계가 망각한 사이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에서 목숨을 잃는다. 부디 우리의 목숨도 소중히 여겨 달라."
<포가튼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도 미얀마 민주주의의 희망을 지켜 온 진정한 힘은 목숨을 걸고 투쟁해 온 이름 없는 미얀마 시민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쿠데타 소식을 듣자마자 분노해서 손에 피물집이 생기면서도 냄비를 두드렸고, 매일같이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를 외쳤고, 총파업과 시민불복종 행동에 나섰고, 곳곳에서 도시 게릴라 투쟁을 벌였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서 저항군에 입대해서 총을 들었다.
<포가튼 미얀마>는 다양한 성별, 세대, 민족으로 구성된 이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전투기도 장갑차도 없는 민족통합정부가 군부 살인마 집단에 맞서서 3년이 넘도록 포기하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던 용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들의 저항 때문에 이제 군부는 미얀마 국토의 절반도 통제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려있다.
<포가튼 미얀마>의 저자인 최진배 활동가는 2017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미얀마에서 일하다가 미얀마 여성과 결혼했고, 이후 한국에 와 있다가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그 후 미얀마 민중의 저항을 돕기 위한 연대 활동을 시작했고, 미얀마 소식을 전하는 페이스북 뉴스 그룹 '미얀마 투데이'도 만들었다.
<포가튼 미얀마>는 바로 이런 두 사람의 경험과 실천에서 나온 이야기들도 채워져 있기에 더욱 생생하면서도 절실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라는 형식은 우리를 미얀마 시민혁명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그리고, 미얀마를 잊고 있었던 이들의 마음속에서 꺼져있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도록 만든다.
우리가 잊고 있는 동안에 미얀마에서는 6천여 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30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돼 있다. 미얀마 땅이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의 피로 물들어 온 지 4년이 다 돼가는 지금,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라는 생각으로 손을 놓고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다시 미얀마를 기억하고 소식을 찾아보고 그것을 알려 나가고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찾아야 한다. <포가튼 미얀마>를 사서 읽는 것은 그것을 위한 좋은 출발일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시대 2년 반을 보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목격해 왔다. 미얀마의 훌라잉 군부가 총칼을 무기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면, 이 나라의 윤석열 사단은 수사 기소권을 무기로 사법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
희미해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요즘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촛불을 들 자유조차 빼앗긴 미얀마 민중의 까맣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떠올리게 된다. <포가튼 미얀마>에 실린, 시위하다 끌려가 고문받고 사망한 켓띠 시인의 시에는 그 마음과 용기가 담겨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그들은 우리를 죽여 땅에 묻으려 한다
허나 그들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새날의 씨앗임을...
그들은 우리의 머리를 쏜다
허나 그들은 모른다
혁명은 우리의 심장 속에 있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