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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광복절 의미, 통합·통일 다짐에 있어"

무궁화9719 2024. 8. 12. 09:46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광복절 의미, 통합·통일 다짐에 있어"

2019. 8. 14. 06:02

"1945년 8·15 광복은 그냥 남이 준 선물 아냐, 독립운동의 결과"
"일본의 경제침략, 경제자립·기술독립은 새로운 독립운동"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나에게 역사운동은 제2의 독립운동"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2019년 광복절의 의미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뤄온 민주주의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 민족통합, 평화통일 의지를 다짐하는 데 있습니다"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이준식(63) 관장은 14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올해 광복 74주년의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 관장은 "1945년 8월의 해방은 그냥 남이 준 선물이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결과"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자립·기술독립을 외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21세기의 새로운 독립운동"이라고 피력했다.
 
다음은 이 관장과 일문일답.
 
-- 광복 74주년의 의미는.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루려고 했던 조국 광복이란 단순히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광복'이나 '독립'이란 말속에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그 민주공화국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꿈도 담겨 있다.
 
그렇지만 광복과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이 그어지면서 한반도에는 분단체제가 들어섰다. 광복 이전에 우리는 민족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그 꿈이 좌절된 거다.
 
분단은 남북 모두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됐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반공을 앞세운 독재정권 아래 민주주의가 사실상 형해화(形骸化·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해짐)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렇지만 민주공화국에의 꿈이 담긴 독립정신을 이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올해 광복절의 의미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뤄온 민주주의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 민족통합, 평화통일에의 의지를 다짐하는 데 있다.
 
독립기념관 불굴의 한국인 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 광복절을 맞아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걸 민족으로 치면 가장 큰 설움은 '나라 없는 설움'일 것이다.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이 그랬다.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낸 나의 어머니께서 회고록을 남기셨는데 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만주의 동포들은 국치일인 8월 29일이 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루 세끼를 굶었다. 나라 잃은 백성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밥을 굶는 것은 동시에 독립에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떨쳐 일어났다.
 
무능한 정부 대신에 민초들이 의병이라는 이름 아래 총을 들고 일제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의병 전쟁에 지는 바람에 1910년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좌절하지 않았다. 일제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힘들더라도 자유민으로 살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지 그 전모를 알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독립군에 들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된 신흥무관학교라는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독립운동가들은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래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45년 8월의 해방은 그냥 남이 준 선물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만히 있었으면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가 보장된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독립과 해방이라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국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배웠으면 한다.
 
-- 일본이 최근 경제보복으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금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평화공존·평화통일,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위한 꽃이 피기 시작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일본이 마치 한 세기 전의 침략을 되풀이라도 하듯이 경제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일본이다. 과거 사회당과 자민당의 연립정권 시절에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반성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무라야마 담화니 고노 담화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않은 말만의 반성이었지만 아베 정권은 오히려 이전의 반성조차 없는 것으로 돌리고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그에 따른 각종 잘못, 이를테면 수많은 학살 사건과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그런 일이 없었다는 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한 약속을 문재인 정부가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사회당과 자민당 연립정권 시절의 과거사 반성을 먼저 깬 것은 일본 정부다. 아베 정권의 외상으로 대한민국을 안하무인 격으로 대하는 고노 다로 외상의 아버지가 바로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로 당시 내각 관방장관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한 사과를 아들이 뒤집어엎는 셈이다.
 
누가 약속을 먼저 깼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장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한다고 했을 때 전제가 되는 건 가해자가 가해의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가해자가 사죄와 반성도 없이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화해하라고 강요하나? 지금 일본이 하는 게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흔히 독일과 일본을 비교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유대인을 학살한 데 대해 지금도 반성한다. 끊임없는 반성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아시안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아시아 전역에서의 학살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다. 당연히 사죄와 배상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침략과 학살의 역사,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경제침략을 하는 이면에는 군국주의 부활 야욕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막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잃고도 일제에 맞서 싸웠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자립·기술독립을 외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21세기의 새로운 독립운동이다.
 
-- 통일에 대비한 독립기념관의 역할은.
▲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남북 사이에는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등 동질적인 요소도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질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역사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은 동질적인 요소를 찾아냄으로써 이질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도 그렇지만 독립기념관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북한과의 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 독립운동가 후손 개인으로서 광복의 의미는.
▲ 나는 독립기념관장이 되기 전에도 역사연구자로서 친일 청산이나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 등의 사회적 실천에 깊이 관여했다. 그러다 보니 거리의 역사연구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련의 역사운동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 독립운동가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그러니까 독립정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 거다.
 
-- 대한민국 74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 110년 전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목숨을 바쳐가면서 국권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74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민주주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국민의 자유와 평등이 이뤄지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꿈꾸었는데 분단체제는 그 꿈을 실현하는 데 분명히 제약요인이 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남북의 평화공존, 더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조교수)를 지냈다. 2006∼2010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2013∼2017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했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외할아버지다.
jung@yna.co.kr

독립투사 후손 前 독립기념관장 "선열들 무덤 뛰쳐나올 것"

[이준식 제11대 독립기념관장 인터뷰]

기관 설립 취지에 어긋난 역사 인식 비판
金의 '국가 부존재' 해명에 정면 재반박
신임 관장 자격, 전문성 등에 의문 제기
"주권 강탈 후 국가 지키려 '독립운동'"
"일본 국적이었다면 '독립' 개념 불성립"
"독립운동으로 나라 '재건'은 헌법 가치"
"역사 역주행, 선조들 무덤 뛰쳐나올 것"

 

이준식(왼쪽) 전 독립기념관장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 전 관장 제공 및 류영주 기자

"일본의 식민지배 합리화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진 게 독립기념관입니다.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광복의 일반적 의미조차 수용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관장에 임명할 수가 있는지…"
 
최근 '뉴라이트' 인사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해명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2일, 이준식(68) 전 독립기념관장(11대)은 김 관장의 주장을 재반박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 전 관장은 지청천(외조부)과 지복영(모친) 등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다.
 
먼저 이 전 관장은 '일제시대에 나라가 없었다'는 김 관장의 역사적 인식을 정조준했다. 식민지의 국권을 인정하지 않는 친일 논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는 취지다.
 
당시 선조들은 국권이 아닌 '주권'을 강제로 빼앗긴 상황에서 조국을 일본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시키기 위해 싸웠던 것으로, 이를 연구하고 넋을 계승해야 할 기관장으로서 '국가의 부재'를 전제로 삼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게 이 전 관장의 견해다.
 
"독립기념관은 1987년 8월 15일, 일본이 식민지배 역사를 합리화하는 교과서 등을 편찬한 데 대응해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성금으로) 응축돼 만들어졌습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역사를 직시하는 게 핵심이에요. 이런 기관의 대표자가 일본의 역사 인식에 동조하는 언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겁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죠."
 
김 관장의 지속적인 해명에도 독립기념관장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앞선 기자회견과 언론인터뷰에서 김 관장은 "(제가) 독립운동을 폄훼했거나, 식민지배를 동조하는 뉴라이트라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일제시대의 국적은 일본', '건국은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 등의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사퇴는 없다"고 일축했다.
 
김 관장은 취임 일성으로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친일인명사전 오류 재검증 발언을 해 광복회와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그간 독립기념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한국광복군에 몸담았던 안춘생 초대 관장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와 독립유공자의 후손, 또는 관련 연구를 해온 학자가 맡아 왔다.
 
지난 2020년 8월 이준식 당시 독립기념관장이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이 전 관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들은 나라가 '계속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투쟁했는데, 신임 관장의 발언들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그렇다면 독립운동은 '반국가' 활동이라는 말이냐"고 따졌다.
 
이어 "나라가 존재하지 않고 일본과 통합된 국가였다고 여기면 독립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며 "이는 제헌헌법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재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나라가 아닌 자주적인 국가로 다시 세우는 '민주독립국가 재건(再建)'이라는 표현이 제헌헌법에 명시돼, 김 관장의 역사적 시각과는 정면 배치된다는 해석이다.
 
그는 "일제 때 나라가 없었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그런 말을 하는 자는 독립을 논할 자격이 없다"며 "주권을 빼앗겼을 뿐 나라는 늘 존재했다"고 힘줘 말했다. 

자격·전문성에 물음표…"金도 尹도 역사적 역주행"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연합뉴스

특히 임명 직후 김 관장의 발언 내용을 가리켜 '역사를 뒤집어엎는 행위'라고 직격했다.
 
이 전 관장은 "독립운동의 결과로 광복을 이뤄냈다는 게 일반적인 우리 사회의 통념인데, 김 관장은 이와 상반되게 독립운동 가치를 저하시키는 편향된 관념을 보였다"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독립과 친일의 가치를 뒤집으려는 사람 아닌가 싶다"고 의아해했다.
 
독립기념관을 이끌 수장으로서의 전문성에도 의문을 던졌다. 독립운동사에 정통했거나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학술적 성과는 낸 적이 있었느냐는 물음이다.
 
그는 "김 관장은 독립운동사를 전공했거나 이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운동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권위자처럼 등장했다. 국가건립 시점에 대한 이견으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체성의 연결성을 흐리게 만드는 등 상당수 강의와 글은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내용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해서도 '뒤집힌 인사'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전 관장은 "취임하자마자 친일파의 억울함에 관한 공식발언부터 하며 빈축을 샀다"며 "김 관장 본인이 역사의 물결을 뒤집었고, 윤 정부의 인사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 들어 역사적 이념 논란이 반복되는 것에 관해서는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지를 합리화하는 이른바 '현대판 친일 식민사관'을 낳게 된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우린 지배당한 적 없다'는 자기주문을 외며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강제병합이었던 불운한 역사를 합법적인 역사처럼 만들려는 친일 사관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다.
 
윤 정부는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의 외부 이전을 추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조선인 강제동원 문구가 빠진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며 역사·외교적 편향성 논란에 직면해 있다. 

"독립·광복 가치 절하에 분노…제2의 독립운동해야 하나"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

이처럼 독립 역사를 거스르는 것은 전임자이자 독립유공자 집안에서 자란 이 전 관장에게 더욱 뼈아픈 현실이다. 그는 광복을 향한 희생의 역사를 돌이키며 끝내 분을 참지 못했다.
 
이 전 관장은 "참담하다. 지하에 계신 선열들께서 통곡하다 못해 무덤을 뚫고 뛰쳐나올 것만 같다"며 "'우리가 이런 꼴을 보려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느냐'고 분노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세워진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국가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런 인식을 가진 세력이 창궐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100년 전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모든 걸 바친 선조들의 정신을 다시 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제2의 독립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한 김 관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대통령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실현할 사람이라고 봐서 내려 보냈기 때문에 직접 경질할 가능성은 낮다"며 "본인(김 관장)이 관장직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선책"이라는 요구다.
 
이와 함께 이 전 관장은 "독립기념관장뿐만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른 역사 기관장에 김 관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꿰차고 있다"며 "전반적인 문제제기와 재검토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권은 왜 뉴라이트를 편애하는가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 수정 2024-08-13 15:19
  • 등록 2024-08-13 15:04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동북아역사재단. 이 네 기관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윤석열 정권에 의해 뉴라이트 계열의 학계 인사가 기관장에 최근 임명된 것이다. 독립운동을 연구·기념해야 하는 독립기념관 관장까지 독립운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한 정부에 광복회가 강하게 항의한 데에 이어 보수 일간지인 동아일보마저 정부의 이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석열 정권의 뉴라이트 편애는, 상당수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위화감을 줄 정도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번 홍범도 장군 격하에 이어 최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에 찬성했다. 그 전시에 강제 연행과 노역을 명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진보적 색채의 독립운동을 격하·부정하고, 일제 강점기에 노동자와 농민들이 당했던 고통보다 일부 토착 엘리트의 화려한 출세 가도와 ‘조선의 문명화’를 강조하는 것은 뉴라이트 사관의 중요한 요지다. 이런 뉴라이트를, 보수 일간지의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윤 정권이 편애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뉴라이트의 ‘역사 운동’이 결집한 것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4~2006년이었다. 본질상 이 운동은, 다수 시민들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요구에 의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온 친일 진상 규명에 대한 보수 기득권층의 조직적 대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기득권 세력의 물리적 내지 제도적 ‘선조’들의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 총독부에 직접 부역했거나 적어도 식민지 권력과의 갈등을 피하면서 재산 증식이나 권위 구축에 바빴다. 친일 진상 규명은 족벌언론이나 주요 재벌, 종교계, 학계 등에 존재하는 식민지적 ‘뿌리’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한국 기득권 세력의 ‘명분’을 위협했다. 기득권 세력들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친일을 문제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새로운 논리로 한국 사회 전체를 포획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 학자들 중에는 비극적이게도 일부 전향한 과거의 마르크시스트들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극복됐지만, 과거 일부 구미권과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서구 중심주의적 편향에 사로잡혀 서구와 일본 이외의 지역들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정체에 빠져 있어, 식민화가 아니면 스스로 근대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국내의 마르크스주의 경향의 사학자 중에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보기 드물게 조선 시대를 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그가 1990년대 이후 극우파로 전향하면서 과거 그의 마르크스주의적인 서구 중심주의는 아예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더더욱 변질됐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기본적인 사유재산제도조차 확립되지 못한, ‘정체에 빠진’ 노비 왕국 조선에 근대 자본주의를 이식하고 ‘문명화’시킬 수 있었던 세력은 일제 이외에 없었다. 따라서 친일은 “조국 문명화를 위한 애국”으로 쉽게 둔갑한다.
 
한데 이 사관의 세계사판은 윤 정권에 더욱더 이용가치가 높다. 뉴라이트의 일제 합리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근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긍정 일변도의 태도와 직결된다. 일제만 정당화되는 게 아니고 사기업과 사유재산에 뿌리를 박은 근대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인류에게 ‘축복’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유재산을 부정한 혁명에 정권의 유래를 두고, 사기업을 국가에 복속시키는 중국이나 북한은 ‘문명의 적’으로 치부된다. 이런 이분법과 세계 체제의 패권 국가와 그 지역적 동맹 세력들에 대한 무조건적 미화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구상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초강경 대결 노선이나 중국과의 무리하고 다분히 인위적인 탈동조화는 중국과 북한을 악마화하는 사관으로 너무나 잘 합리화된다.
 
나아가 일본과의 사실상 군사 동맹 체결 노선과 대미 맹종 노선은 미국과 일본을 ‘자본주의 문명의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사관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라이트 사관은 윤석열 정권 국정 철학의 ‘기본정신’에 가깝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12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뉴라이트 성향 논란 관련 기자회견 중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일제의 비호 밑에서 재산을 늘린 자본가나 지주가 아닌, 수탈의 대상이었던 농민·노동자를 조상으로 둔 다수의 한국인에게 뉴라이트 사관은 체질적인 거부감만 자극할 뿐이다. 극우들은 이런 거부감을 ‘민족주의’라고 혹평하지만, 이는 결코 민족주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컨대 기후 문제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기후 파괴에 앞장서온 자본주의 열강에 대한 뉴라이트들의 무제한적 찬사는 ‘민족주의’ 이상으로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힘입은 중국이 점차 미국과 같은 비중으로 양극의 세계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현시점에서, 오로지 구미권의 역사적 경험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뉴라이트 사관은 서구 중심주의가 통했던 과거의 낡은 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뉴라이트와 그 세계관을 편애해온 윤석열 정권은, 보수 언론의 비판적인 지적까지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기억의 정치를 펼쳐 나가면서 뉴라이트들을 억지로 역사의 기억을 관리하는 기관의 기관장으로 앉히는 폭거를 저질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본격화된 지정학적인 대립, 그리고 남북한 긴장 속에서 이와 같은 역사 정책이 결국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그래도 믿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믿음이 궁극적으로 허구로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성장과 물가 대란, 실질 임금의 감소, 자영업자들의 도산 속에서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그 어떤 반대급부도 얻어내지 못하면서 오로지 일본 통치자들의 의제만을 챙겨준다는 것은 다수의 국내인들에게 굴종과 치욕으로 다가올 뿐이다. 자본주의가 국내외적으로 다중 복합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순간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그저 비상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뉴라이트들을 편애하고 무분별하게 기용한 것은, 이 정권에서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지뢰’이자, 부메랑이 되어 이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