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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임기 절반도 못 참은 초유의 대통령, 윤석열이 가야 할 길

무궁화9719 2024. 6. 17. 17:55

국민이 임기 절반도 못 참은 초유의 대통령, 윤석열이 가야 할 길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38

총선 참패 뒤 쇄신 없는 이벤트만
국회와 충돌 불사…혼란 불가피
‘소수파’ 대통령직 유지하려면
권력 분점하거나 개헌하거나

  • 수정 2024-06-16 15:52
  • 등록 2024-06-16 07:30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월10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중앙아시아 3개국(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순방을 떠나려고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는 눈앞에서 뻔히 펼쳐지는 장면인데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4·10 총선 이후 벌어지는 우리 정치 상황이 바로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직후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두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무엇을 했을까요?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교체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하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게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해주고,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서 맥주를 따르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이벤트에 주력한 것입니다. 국정 쇄신은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의결한 ‘채 상병 특검법’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도 받들지 않은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국정 쇄신을 하지 않고 총선 민심도 받들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그가 거짓말쟁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악당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혹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정치인의 무지는 사악함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윤 대통령 

윤 대통령은 취임 뒤 2년 동안 국정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여소야대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성과를 내려면 국회와 야당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재명 대표와 회담을 정례화하든, 대연정을 제안하든, 임기 단축 개헌을 추진하든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정을 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손을 놓고 있으니 국민의힘도 넋을 놓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6월5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선출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6월10일 11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한 본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외면한 채 속도전에 나섰습니다. 채 상병 특검법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재발의했습니다. 11개 상임위원회를 차례차례 열어 야당 간사를 선출하고 장관 출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몫으로 남겨둔 7개 상임위원장도 머지않아 선출할 기세입니다.
 
국민의힘은 매일 의원총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몇몇 튀는 의원들은 “정부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할 때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다 깎아버리자”거나 “꼭 필요한 입법은 시행령으로 추진하면 된다”는 등 비현실적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라는 사람은 “민주당이 대화와 타협이란 의회 민주주의 본령을 외면하고 힘자랑 일변도의 국회 운영을 고집한다면,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의 명분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허하기 그지없습니다. 야당은 지금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의원 중에는 “아무리 그래도 집권 여당이 국회를 외면할 수는 없다”며 등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 의견인 것 같습니다.
 
국회를 외면하는 것은 민생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국회 보이콧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국민의힘은 15개 당 특별위원회 회의를 열어 정책 당정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지난 12일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교육개혁 추진 관련 당정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서범수·정성국·정점식·김대식·김민전·김재섭·서지영 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주호 장관, 오석환 차관 등 교육부 공무원들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당정은 학교안전법·아동복지법 등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유보통합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늘봄학교 지원 특별법’도 제정하기로 했습니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해 교육발전 특구 지정·운영을 위한 특별법, 지방대 육성법을 제·개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당정회의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모두 다 법률로 뒷받침해야 하는데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6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의회정치 원상복구 의원총회’에 참석해 산업통상자원부의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진행 경과 및 추진계획’ 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선출된 두 권력 ‘의회와 대통령’

자,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국민은 2022년 3월 윤 대통령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2년 뒤 2024년 4월 윤 대통령이 속한 국민의힘에 참혹한 패배를 안겼습니다.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쩌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금 맞닥뜨린 상황은 단순히 그들의 무지와 무능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매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의회 중심의 융합형 권력구조인 의원내각제는 의회에 국정 실패의 책임을 분명히 물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대통령제는 의회와 대통령을 국민이 각각 선출하는 분립형 권력구조입니다.
 
여기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의 안정과 이를 통한 강력한 행정 수행,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통한 졸속 입법 방지와 소수자 이익 보호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치명적 단점도 있습니다. 첫째, 대통령의 독재화 경향, 둘째, 권력분립으로 인한 국정의 혼란, 셋째,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 시 조정 방안 부재 등입니다. 특히 둘째와 셋째가 심각합니다. 대통령제 원조 국가인 미국에서도 종종 의회와 행정부의 극한 대립으로 행정부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독재였기 때문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은 행정·입법·사법부를 지배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총선으로 여소야대 상황을 맞았습니다.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야당 총재들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모든 정치 현안과 국정 과제를 이들과의 회담에서 논의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1월 3당 합당으로 국회 다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디제이피(DJP) 연합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 여당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1당을 뺏기자 이회창 총재와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만들었습니다. 극심한 여소야대 상황에서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편 제안, 대연정 제안,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등 그야말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겨우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뒤 2008년 4월 총선 압승으로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둔 그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3월 대선에서 당선된 뒤 국회 의석 부족으로 고전했지만,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와 야당 대표 및 원내대표들과 회담을 하며 국정을 풀어갔습니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러고 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총선의 역사는 대통령을 무너뜨리는 ‘심판 선거’가 아니라, 대체로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지지 선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22대 총선만이 예외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심판 선거였습니다.

참고할 만한 전례 없지만…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악화일로입니다. 여론조사 수치는 위험수위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전국 유권자 1천명 전화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26%, 부정 평가는 66%였습니다. 2주 전 긍정 21%, 부정 70%에서 다소 개선됐습니다. 북한 오물 풍선과 대북 방송 재개 등 안보 쟁점에 의한 일시적 효과로 보입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임기 중반 총선에서 국민의 강력한 심판을 받아 국회에서 소수 세력으로 전락한 대통령은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할 만한 전례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퇴진입니다. 국회의 협조를 받을 수 없는 대통령은 국정을 끌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다시 뽑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퇴진에는 스스로 물러나는 사퇴가 있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의해 쫓겨나는 탄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 다수는 아직 윤 대통령 사퇴나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둘째, 권력 분점입니다. 권력을 야당과 절반씩 나누어 갖고 국정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 방안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습니다.
 
셋째, 개헌입니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으로 윤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남은 임기 2년의 국정 운용 동력을 확보하는 방안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윤 대통령을 위해서나 국민의힘을 위해서나 민주당을 위해서나 대한민국을 위해서나 개헌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파천황(破天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낸다는 의미입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중반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바로 그래서 ‘협치의 제도화’를 가장 확실하게 해낼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결심만 하면 7공화국을 활짝 열어젖힌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최적기…윤석열-이재명 합의만 하면 된다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37
대선과 총선 선거 주기 맞추고
정치 양극화 악순환 끊을 기회
윤 대통령-이 대표 합의로 가능
‘식물 대통령’ 위기 벗어날 방책

  • 수정 2024-06-10 11:08
  • 등록 2024-06-09 07:30
 
 
윤석열 대통령이 4월2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우리나라 정치는 권력 구조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과 투쟁의 오랜 역사 위에 서 있습니다. 1948년 5·10 총선으로 선출된 200명의 제헌 의원들은 의원내각제 권력 구조를 채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국회의장이 대통령제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절충 끝에 4년 임기 정·부통령을 국회가 뽑도록 했습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도록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가 탄생했습니다. 1950년 5·30 2대 총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대거 낙선했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으면 승산이 별로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했습니다. 1954년에는 자신의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개헌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자 허정 과도내각은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압도적 찬성으로 개헌이 이뤄졌습니다. 장면 총리의 2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는 2년간의 군정을 거친 뒤 1963년 개헌에서 대통령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1972년 유신 개헌에서는 총통제에 가까운 대통령제로 개헌했습니다.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았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군부는 7년 단임 대통령 간선제로 개헌했습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습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에도 거의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시도했습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하면서 내각제 개헌을 합의했지만 파기했습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디제이피(DJP) 연합을 해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개헌하지 못했습니다. 의원내각제 개헌이 실패한 것은 국민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는’ 권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대개 4년 중임제를 제안했습니다. 최근 대통령들의 개헌 시도가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임기 초에는 대통령 자신이 ‘국정 동력 상실’을 우려해서 개헌에 반대하고, 대통령 임기 말에 개헌을 추진하면 이번에는 차기 대선 유력 주자가 ‘상황 변화’를 우려해서 개헌에 반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에너지 자체가 급속히 소진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제도의 문제 뒤섞여

그런데 개헌 동력 소진과는 정반대로 개헌의 당위성은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개헌이 왜 필요할까요?
 
첫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총선은 4년마다 치러집니다. 지방선거는 총선 중간에 4년마다 치러집니다. 총선과 지방선거 주기는 안정적입니다. 5년마다 치르는 대선은 총선 및 지방선거 주기와 불규칙하게 엇갈리며 그 자체가 정국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더구나 대통령 사퇴나 탄핵 사태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불안정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으려면 대통령 임기와 선거 주기를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처럼 말입니다. 미국은 대통령 궐위 시에 부통령이 대통령 직위를 승계해 잔여 임기를 채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둘째, 정치 양극화를 막아야 합니다. 우리 정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는 ‘사람의 문제’와 ‘제도의 문제’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유권자들은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까지 몽땅 ‘대통령 한 사람 탓’을 합니다. 대통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가 불행한 것은 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통령 잘 뽑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야가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적대적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선거에서 이기기 때문입니다. 야당은 다음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현직 대통령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다음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큰 야당의 대선 주자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가히 내전 수준입니다. 개헌으로 대통령제와 정치 양극화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개헌할 수 있을까요? 법률적 요건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에 의한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두 사람만 합의하면 개헌할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여론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여론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적극적, 윤석열 대통령 ‘글쎄…’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 대표는 개헌에 적극적이었습니다. 4년 중임제 도입을 공약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개헌이 이뤄지면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하고 국무총리에게 국무위원 추천권 등 헌법상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대표의 이러한 공약은 대선 패배로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금도 4년 중임제를 비롯한 개헌에 대해 전향적인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4월29일 윤 대통령과 회담할 때 개헌을 제의하려고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6월5일 오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첫 본회의가 산회하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대화하며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야권에서 차기 대선 주자 입지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선을 2027년에 치르나 2026년에 치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법원의 재판이 끝나기 전에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잘하면 4년 임기 대통령을 한번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원내 투쟁과 장외 투쟁을 병행하며 탄핵과 개헌 카드로 윤 대통령을 계속 압박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대체로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대선 전부터 그랬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표의 4년 중임제 개헌 제의에 대해 “개헌은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신중히 판단할 문제”라며 “4년 중임제를 하면 대통령 임기가 5년에서 8년으로 늘어날 수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실지 모르겠다”고 말해 사실상 반대했습니다. 최근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 임기 단축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강한 반발에 부닥친 사건도 윤 대통령의 ‘불쾌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전향적으로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2022년 8월19일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한 21대 후반기 국회 의장단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찬을 하며 “여야가 합의해서 개헌하면 내 임기를 1년 줄일 용의도 있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이 발언은 참석자들이 비보도를 전제로 알려주는 바람에 당시에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진심이 어느 쪽인지 궁금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한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만찬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남은 2년간 개혁 주력한다면

저는 윤 대통령이 개헌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참패로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국회가 정부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야당 주도로 줄줄이 통과시킬 텐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만으로 이를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재의결 무기명 투표에서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찬성표를 찍으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되고 윤 대통령은 ‘거의 식물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식물 대통령’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지 않고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자신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입니다. 이 대표와 정치 회담을 통해 4년 중임제 개헌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협상은 국회에 맡기면 됩니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남은 2년 동안 노동·교육·연금 개혁에 주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탄핵을 피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개헌한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요? 국회 논의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차례 개헌특별위원회와 자문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개헌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자료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2009년 자문위원회 의견, 2014년 자문위원회 조문 시안, 2017년 자문위원회 조문 시안이 있습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헌법 개정안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김진표 국회의장 시절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만든 조문 시안이 있습니다. 모든 헌법 조문의 대안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 임명 절차 개선에 대한 의견은 국회의 복수추천제, 현행 유지, 국회의 단수추천제, 국무총리제 폐지 및 부통령제 도입 등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헌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연구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결단인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 쫓아낸다고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도 개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흐름을 바꾸는 계기는 마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여소야대 정치 지형,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추락,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등 모든 정치적 환경이 개헌에 맞춰져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개헌의 최적기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임기 단축’ 개헌, 윤 대통령이 국민 지지 받을 절호의 기회

[박찬수 칼럼]

기자박찬수
  • 수정 2024-05-30 11:15
  • 등록 2024-05-30 07:00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스물다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 발언에 박수를 치고 있다. 민생토론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대기자
 
 임기 중반을 지나 정치적 위기가 깊어지면 대통령실 참모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대통령은 잠깐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역사와 대화하며 중요한 레거시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기 2년을 지난 윤 대통령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윤석열-이재명 회담을 중재한 것으로 알려진 함성득 교수는 “윤 대통령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들과 ‘역사적 산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과거 청와대의 대통령 관저는 숲속 절간처럼 적막하고 고요해서 ‘마주할 게 역사밖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권력의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청와대를 나왔다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보다 역사적 산책에 집중하는 건 웬일인지 알 수가 없다.
 
역사를 마주하는 게 의미 있으려면 정확한 현실 판단을 전제해야 한다. 과거 여러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를 말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건,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탓이 크다. 지금 윤 대통령에겐 실현 가능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당면 과제를 깨닫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걸 오판하는 순간 대통령의 역사적 산책은 가시밭길로 변할 수 있다.
 
새 국회가 문 열기도 전에 개헌 주장이 쏟아지는 건 의미심장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가장 먼저 ‘대통령 중임제 개헌으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고 제안했다. 우원식 차기 국회의장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 헌법개정특위를 설치해 신속하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선자도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 논의의 모든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87년 체제’의 핵심인 현행 헌법은 시대적 소명을 다했기에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진작부터 있었다.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 원 포인트 개헌을 공개 제안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진전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년은 역설적으로 87년 헌법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지닌 ‘책임지지 않는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대통령에 오르고, 5년 뒤엔 아무런 평가 없이 퇴임해도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87년 헌법에 ‘5년 단임’을 정할 때만 해도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장기 집권 가능성의 배제였다. ‘3김씨가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하려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다수의 지지를 받은 건, 그때의 시대적 과제가 ‘독재를 막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정치적 과제는 달라졌다. 37년 전엔 ‘독재를 막는 헌법’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국정운영 성공을 위한 헌법’을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됐다. 보수 진영에서도 ‘윤 대통령 임기 단축’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건, 앞으로 3년을 이대로 흘려보내선 국가의 미래뿐 아니라 보수 정치세력의 부활에도 위험천만이란 인식이 확산한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각제도 있지만, 다수 국민이 찬성하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좀 더 현실성 있는 대안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 제도에선 연임하지 못하면 ‘실패한 대통령’, 연임하면 ‘성공한 대통령’이란 객관적 평가가 가능해진다. 임기 초부터 훨씬 책임 있는 자세로 국정운영에 나설 수 있다. 연임하면 8년간 국정운영을 이어갈 수 있으니 연금개혁, 저출산·고령화, 기후·에너지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개헌하겠다. 임기 단축도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 개헌 추진뿐 아니라 원활한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경제·기본권·검찰·영토 조항 등의 쟁점이 너무 많아 합의가 쉽지 않다면, ‘순차 개헌’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이번엔 권력구조와 5·18의 헌법 전문 삽입 등만 다루고, 다른 쟁점은 합의가 이뤄지는 대로 차례로 고쳐나가면 된다. 선거와 국민투표를 함께 하면, 개헌의 행정·재정 부담을 한결 줄일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면서 수백년 내려온 ‘관습 헌법’을 내세운 적이 있는데,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헌법을 자주 고치는 건 문제를 그냥 묵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국정운영 결과에 책임지지 않고 오직 당선이 목표인 대통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마지막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