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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에게 불가능은 있다

무궁화9719 2024. 6. 21. 07:11

교만한 자에게 불가능은 있다

  • 수정 2024-02-02 09:36
  • 등록 2024-02-02 09:32
나폴레옹. 픽사베이
 
나폴레옹은 전쟁 때마다 승리했고 황제가 된 뒤에 “내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라고 기염을 토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굴복시키려고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그런데 러시아가 이에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1812년에 64만 명을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했다. 참모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그해의 날씨가 예년보다 훨씬 더 추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철새가 다른 해보다 빨리 이동하고 있는 것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증거를 들면서 러시아 원정을 늦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듣지 않았다. 러시아를 깔보았고, 날씨와 상황도 무시했다. 러시아는 절반도 안 되는 23만 명으로 맞섰다. 전선을 후퇴하면서 식량과 도시를 불태우는 청야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안쪽 깊숙한 곳으로 나폴레옹 군대를 유인했다. 그때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모진 한파가 밀려왔다. 한파에 대비하지 못한 나폴레옹 군대는 추위에 떨어야 했고, 너무 멀리 온 탓에 보급이 늦어져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나폴레옹 군대는 퇴각해야 했다. 이때 많은 병사들이 전쟁하다 죽고 실종되고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서, 살아 돌아온 병사는 64만 명 중에 고작 2만 5천명 밖에 없었다. 결국 이 원정의 실패로 나폴레옹의 역사는 끝이 나게 되었다. 나폴레옹을 망하게 한 원인은 마음의 교만이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픽사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만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교만해 보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이나 태도가 공손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교만하지 않으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태도의 교만이 아니라 마음의 교만입니다. 마음속에 교만이 가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교만은 이런 일반적으로 말하는 교만과는 관점이 다릅니다. 더 본질적이고 더 깊은 곳의 교만을 말합니다. 마음의 교만을 넘어서 영적인 교만을 말씀합니다. 영적인 교만은 하나님을 적대시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16:18-19)

글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 

소통이 막힐수록 오해만 커져간다

  • 수정 2023-11-27 05:50
  • 등록 2023-11-27 05:50
픽사베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 동료 세 명이 한집에서 살았다. 그들은 현지인 가정부를 두었다. 가정부는 청소와 요리를 해주었고, 그녀가 해주는 일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들은 집에 있는 술병의 술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가정부가 몰래 홀짝홀짝 마시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를 술병에다 표시를 해 두었다.
 
어느 늦은 밤 그들은 골프 모임을 마치고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자기 전에 한잔 더 할 생각을 하다가 술병에서 술이 자꾸 줄어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취기가 좀 돈 상태라 그들은 가정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이 남은 병 안에 오줌을 눠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선반 위에 도로 갖다 놓고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술병 속의 술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부를 불러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자기들 술을 마셨냐고 물었다. 가정부는 웃으며 말했다.
 

“전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식 만들 때 썼는데요.”

 

픽사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서 풀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오해가 발전하면 편견이 됩니다. 그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믿고 편하게 터놓고 진실하게 대화하면 아주 쉬운 일을 스스로의 생각에 집어넣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