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영화 ‘서울의 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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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9시간의 일촉즉발을 그린 영화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계기인 12.12 군사 반란은 노태우, 전두환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 중심이던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 반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후 합동수사본부장이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중심으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면서 군사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김성수 감독은 12.12 군사 반란 이야기를 모티브로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서울의 봄을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는 실제로 자신이 그날 밤 직접 들었던 총성을 꼽았다. 김성수 감독은 "그때 당시 한남동에 살았다. 육군참모총장 공관 건너편에 살던 친구네 집 옥상에서 들었던 총성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이다. 열아홉 살이던 그때 나는 20분간 간헐적인 총성을 들으면서 공포에 떨었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또한 서울의 봄에는 이름만 들어도 신뢰가 가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배우 황정민은 강렬한 존재감과 연기력으로 신군부 핵심 인물 전두광을 연기한다. 전두광은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에 사조직을 동원해서 군사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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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은 "출연을 결심한 이후 그 누구도 엄두 못 낼 만큼 제대로 이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며 영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두광에 대립하는 정우성은 군인 이태신을 맡았다. 그는 "배우로서 지닌 역량을 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쏟아부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로 완성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오픈 더 도어'는 10월 25일 개봉해 상영 중이며 '소년들'은 11월 1일, '서울의 봄'은 11월 22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1979년 12월 12일, 서울을 패닉에 빠뜨린 반란의 전말!
‘서울의 봄’ 1000만 넘었다…올해 두번째 천만영화 등극
12·12 군사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33일째에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24일 0시 누적 관객수 1006만533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v.daum.net
“전두환보다 원망하는건”…‘이태신’ 실존인물 생전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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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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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참군인 쿠데타 이후 삶]
장태완(이태신) 수경사령관, 3대가 비극
정병주(공수혁) 특전사령관, 야산서 숨져
김오랑(오진호) 소령 아내, 실명 후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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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이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부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당시 보안사령관)을 필두로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가 1979년 12월 12일 일으킨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지난달 30일 기준 개봉 6일 만에 관객수 271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에는 반란군에 맞서는 정의로운 군인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과 그를 돕는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과 김준엽(김성균) 육군본부 헌병감이 있고, 죽음을 각오하고 이들을 따랐던 오진호(정해인) 소령과 병사들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12·12 쿠데타 당시 이들의 9시간만 극적으로 다뤄진다. 반란군에 맞섰던 실존 인물들은 쿠데타 이후 신군부가 권력을 잡으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장태완 수경사령관, 부친은 사망·서울대 수석 아들은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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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이태신(왼쪽 사진) 수도경비사령관과 실존 인물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속 이태신의 실존 인물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육군 소장)은 12ㆍ12 쿠데타 이후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끌려가 가혹한 조사를 받았다. 1980년 2월 풀려나면서 강제 전역한 장 소장은 이후 6개월 동안 사실상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고초를 본 후 충격으로 곡기를 끊었고 198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 입학한 장 소장의 아들 성호(당시 20세)씨는 1982년 1월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후 행방불명됐다. 한 달 후인 2월 9일 장 소장의 고향인 경북 칠곡 낙동강 기슭 조부 묘소 옆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 소장은 꽁꽁 언 아들을 끌어안고 “나 때문에 이렇게 됐어. 좀 더 따뜻하게 아들을 감싸 안아줘야 했다”며 오열했다.
장 소장은 1993년 펴낸 회고록 ‘12ㆍ12 쿠데타와 나’에서 “미칠 정도로 아들놈 생각이 나면 밤이고 낮이고 때를 가리지 않은 채 묘지로 달려가 대성통곡을 하고 그러다 지쳐버리면 그놈 옆에 누워 밤을 같이 새워본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문 소리만 나면,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아들놈 생전 모습이 선하게 들어왔다. 그럴 때면 아들놈의 공부방으로 건너가 내 안주머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아들놈 머리털 한 줌을 어루만지다가 다시 볼에 비벼대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절절한 심정을 밝혔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장 소장은 정계에 진출했다. 장 소장은 2002년 3월 "12ㆍ12쿠데타를 진압하지 못해 멸문지화를 입었던 사람으로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을 돕고 600만 재향군인들의 권익을 향상하겠다”며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장 소장은 2010년 7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2년 뒤인 2012년 1월엔 그의 아내가 아파트 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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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30일 한국일보에 장태완 등 12·12 군사반란 당시 소신을 지켰던 군인들의 가족들에 대한 비보가 전해졌다. 한국일보 자료
숨진 정병주 특전사령관 주머니엔 버스 토큰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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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공수혁(왼쪽 사진) 특전사령관과 실존 인물인 정병주 특전사령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에서 반란에 가담한 공수여단에 배신감을 느끼며 유일하게 남은 9공수여단의 반란군 진압을 명령했던 공수혁 특전사령관의 실존 인물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육군 소장)이다. 정 소장은 반란군이 특전사령부로 그를 체포하러 올 때까지 저항했다. 당시 반란군의 무차별 총탄에 비서실장 김오랑(영화에서 오진호) 소령의 도움으로 살았다.
정 소장도 쿠데타 이후 전역했고, 방황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곁을 지켰던 김 소령의 죽음으로 정신적 고통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소장은 1985년 한 인터뷰에서 “내 몸이 성할 때까지는 김 소령의 무덤을 돌보고, 내가 죽고 나서는 자식들이 계속 참배할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서울 근교의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교외를 혼자 산책하며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곤 했다.
12ㆍ12 쿠데타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정 소장은 1988년 10월 행방불명됐고, 실종 139일 만인 이듬해 3월 4일 경기 의정부의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생전 군사정권으로부터 취업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곤궁하게 살았던 그는 주로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그의 주머니엔 버스 토큰 5개가 있었다고 한다.
쓸쓸한 그의 죽음에 당시 장태완 소장은 "자살을 택할 인물도, 정황도 아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 소장은 그에게 “12ㆍ12 진상규명에 조력하겠으며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남아야 하니 서로 몸 조심하자”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묘비에는 비명을 새기지 않았는데, 유족들은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고 사인을 밝힌 뒤에야 비명을 새기겠다고 밝혔다.
김오랑 소령 아내는 실명 이후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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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왼쪽 사진)는 김오랑 소령을 모델로 삼았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중령 추서)은 영화에서처럼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던 반란군의 6발의 흉탄에 맞아 숨졌다. 반란군은 그의 시신을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했고, 김 소령의 가족들에게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특전사로 오래 복무한 김 소령은 후방 지역에서 편한 보직을 마다하고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앓고 있던 아내의 치료를 위해 서울에 남았다. 12·12 쿠데타 발생 9개월 전인 1979년 3월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차출됐다.
김 소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쿠데타 당시 불안한 마음에 여러 차례 사령부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김 소령과 연결되지 않았다. 백씨는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이 내 전화를 받았을 때 사령관실 내 흩뿌려진 김 소령의 피를 청소하고 있었다고 한다”라며 “자신들의 상관의 피를 닦으며, 그 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차마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통곡했다.
영화에서처럼 김 소령 부부와 같은 군인 아파트에 살며 선후배 사이였던 박종규 중령의 배신도 컸다. 정 사령관 체포에 앞장섰던 박 중령은 김 소령을 구하지 않았다. 이후 백씨를 만난 박 중령은 "김 소령은 대세의 흐름을 모르고 반항해 그 같은 변을 당한 것"이라고 되레 언성을 높였다. 김 소령은 암매장된 지 3개월 후 동료들의 항의로 1980년 2월 28일 서울국립현충원 제29묘역에 이장됐다. 그는 논란 끝에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홀로 남은 백씨는 당시 머물던 장교 관사에서 쫓겨났다. 남편의 죽음으로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백씨는 고향 부산에서 전화 상담 봉사를 하며 김 소령 구명 운동을 펼쳤다. 1990년 12월 신군부 세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려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갑자기 소송을 포기했다. 이후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했다. 백씨는 1991년 6월 그가 봉사활동을 하던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백씨가 허리 높이의 난간에서 실족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의문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밝혀지지 않았다. 백씨의 시신은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됐다. 김오랑 소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지난달 30일 YTN라디오에 출연해 "(백씨가) 다른 질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며칠 후 독일에 가서 눈 수술을 하기로 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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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랑 소령의 아내 백영옥씨 생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진기 헌병감은 낙향...무고한 병사들도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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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완 전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전 육군본부 헌병감이 12ㆍ12 군사반란을 다룬 드라마 '제4공화국'과 '코리안게이트'에 대해 인터뷰한 한국일보 1995년 11월 8일 자 기사. 한국일보 자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납치 이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대한 체포를 강력히 요청하고, 노재현 국방장관과 윤성민 육군참모차장 등이 모두 육군본부를 버리고 달아날 때 끝까지 남았던 김진기(영화에서 김준엽) 육군 헌병감은 쿠데타 이후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이듬해 강제 전역당했다. 이후 반란군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보기 싫다며 낙향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토지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6년 1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반란군과의 교전에서 숨진 병사들도 있었다. 국방부 헌병대 소속이던 정선엽 병장은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서 반란군의 공격에 스러졌다. 박윤관 일병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과정에서 발생한 교전에서 희생됐다.
국방장관 도피는 사실
국방장관 오국상(김의성)은 노재현을 바탕으로 했는데, 그는 실제로 육군참모총장 관저에서 총격전이 있자 총소리를 듣고선 가족과 함께 미8군 사령부로 도피했다. 그는 국방부로 돌아왔다가 반란군에 체포됐다. 전두광 일당이 8공수 철수를 위해 신사협정을 제안한 후 역습하는 대목도 사실이다.
‘서울의 봄’ 참군인 정우성·정해인…실제 삶은 더 참혹했다 [영상]
등록 2023-11-27 10:32수정 2023-11-27 17:58
영화 속 사실과 허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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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후 자신을 “수도경비사령관의 책무를 완수하지 못한 죄인”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영화 보다가 화나서 울었다"... '서울의 봄'에 쏟아진 후기
임병도입력 2023. 11. 26. 10:51
<서울의 봄>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 돌파, 챌린지 유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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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챌린지 인증 이미지. 영화를 보는 동안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
ⓒ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
현재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는 "<서울의 봄>에 대한 짧고 명확한 후기"라며 시간별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한 그래프가 올라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급격히 상승한 그래프를 보면, 영화 후반부를 볼 때 이 관객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딱지 나고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 아픔, 타이레놀 먹고 앓아 누웠다. 러닝타임 긴지 모르고 봤는데 몰입력 심해서 긴 시간 동안 스트레스 받음."
"스트레스. 누구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나도 스트레스 받아서 기절할 뻔. 부관참시. 부관참시."
"난 각오하고 갔더니 그나마 나았어. 그래도 ㅂㄷㅂㄷ(부들부들)"
"나도 보고 화나서 집에 와서 타코야끼 씹음."
"나도 '빡빡이' ㅂㄷㅂㄷ하고 왔음."
"끝나고 밥 먹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밥맛 없어짐."
영화 후기와 댓글을 본 한 누리꾼은 "안 봐야겠다. 내 돈 주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다"는 답글을 달기도 했다. 또, "보고 싶은데 보다가 화병 날거 같아서 못보겠다"며 영화 예매를 주저하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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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환을 모델로 한 전두광의 모습. 그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말을 했다.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서울의 봄 챌린지'가 유행하는 것은 12·12 군사반란 주범 전두환과 당시 국방부장관 등 무기력한 군 수뇌부에 대한 분노가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또한 영화이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실화라 결말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원망도 한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한 누리꾼은 "군사반란의 주범인 전두환이 자연사했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난다"고 하기도 했다.
"이거 제발 봐줘 우리나라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같음. 세세하게 잘 나옴."
"나도 OO이랑 같은 생각이야!! 많은 사람들이 봐 주면 좋겠다. 꼭 흥행해라."
"이거 진짜 스트레스 받는데 재밌고 잘 만든 영화라 다들 봤음 좋겠다."
"보고 왔는데 너무 화나서 '전대갈' 부관참시라도 하고 싶음. 그렇지만 많이들 봐줬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 더 많이 봐줘야 계속 나오지. 많이 가서 봐줘. 스트레스 받아도 우리가 기억하고 계속 잊지 않는 게 중요해. 극적으로도 재밌고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더라."
영화를 먼저 본 아들이 기자에게 충고를 했다. "아빠, 영화 보지마. 아빠는 전두광 보면 목 잡고 쓰러질 수도 있어." 하지만 아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나는 '내돈 내산' 스트레스를 선택했다.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탱크로 짓밟은 범죄자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 것은 44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