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뉴스

"장갑차도 철수한 곳, 당신 아들이라도 구명조끼 없이 내몰았겠나" 해병대 비판 쇄도

무궁화9719 2023. 7. 21. 00:34

"장갑차도 철수한 곳, 당신 아들이라도 구명조끼 없이 내몰았겠나" 해병대 비판 쇄도

입력 2023.07.20 16:24 수정 2023.07.20 16:48

예천 해병대 일병 숨진 채 발견
"만원짜리 구명조끼 왜 안줬나"
대민지원 중단 집단 민원도
27년 차 소방대원의 외아들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집중호우로 경북 예천군 하천에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병사들을 투입한 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군인 부모들은 재난시 병사들의 대민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민원을 국방부에 제기하고 있다.

 

20일 오전 해병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동네 마트에도 있는 만 원짜리 구명조끼도 군인은 입을 수 없나, 도대체 국방비는 어디에 쓰는 건가" "당신 아들이었다면 구명조끼도 없이 그 물살에 내몰았겠나"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밧줄 하나에 매달려 두려움에 떨었을 어린 장병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미어진다"는 내용의 비판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사고 발생 하루 전 장갑차도 빠른 유속 때문에 5분 만에 수색을 포기하고 철수했던 곳이었던 만큼 군 지휘부가 사고 위험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최소한의 안전장구를 갖춘 채 군인들을 투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일 해병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19일 경북 예천군 하천에서 구명조끼 없이 수색작업에 나섰다 숨진 채 발견된 A(20)일병 관련, 군에 대한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해병대 홈페이지 캡처

 

군이 '내부규정상 고무보트를 타고 수색할 땐 구명조끼를 입지만, 하천변 수색 시엔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다'고 해명하자 비판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해병대 포병대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심모(23)씨는 "구명조끼 만 원짜리 하나 주는 것도 매뉴얼이 있나, 귀신 잡는 해병대면 귀신 만들지 말고 귀신도 잡을 수 있게 상관들이 똑바로 정신 차려서 대원들 안전부터 챙겨달라"고 비판했다. 해병대 1,172기라고 밝힌 한 작성자는 "얼마나 지능이 떨어져야 대민지원 중 사망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나, 해병대 제대 후 처음으로 해병대가 부끄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군인 아들 부모님 카페(군화모)'에 올라온 대민지원 중단 촉구 민원 인증글. 군화모 캡처

 

군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군인 아들 부모님 카페(군화모)'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병사들의 대민지원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집단 움직임도 일고 있다. 국방부에 대민지원 중단 촉구 민원을 넣었다는 한 작성자는 "아들을 둔 엄마의 이기적인 의견이 아니라, 만만하면 군인을 앞세우고 보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이 글엔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 아들들, 그 아들들의 아들들도 같은 일에 또다시 희생될 것" "이러니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자녀를 군대 안 보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 아닌가, 아이를 군에 보내고 몇 번을 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경북소방본부와 해병대신속기동부대 등이 19일 경북 예천군 호명면 인근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 도중 급류에 휩쓸린 해병대원을 찾기 위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뉴스1

 

경북도소방본부와 해병대 등에 따르면,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20)일병은 19일 오전 9시 10분쯤 내성천에서 실종 주민 수색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종됐다. 사고 당시 A일병을 포함한 해병대원 6명은 하천에 들어가 손을 잡고 일렬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하천 지반이 무너지며 A일병이 급류에 휩쓸렸다.

 

A일병은 이날 오후 11시 8분쯤 예천군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실종 지점인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하류 쪽으로 6㎞가량 떨어진 곳으로 발견 당시 A일병은 심정지 상태였으며 인근 병원에 이송돼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현장에 달려온 부모는 오열했다. A일병은 전북도 소방본부에서 27년 일한 베테랑 소방대원의 외아들이었다. A일병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이렇게 물살이 센데 구명조끼 얼마나 한다고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A일병 어머니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딨어요. 내 아들"이라며 주저앉았다.

 

A일병의 아버지는 아들과 사고 하루 전인 18일 2분간의 짧은 전화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내가 걱정돼서 저녁에 전화했는데 어제. 2분 딱 통화를 했어.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살겠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해병대는 이날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며 "해병대 안전단은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보완 중에 있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0시 47분께 경북 예천스타디움에서 수색 중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구명조끼만 입혔어도"…예천 순직 고 채수근 상병 유가족 오열

20일 포항 해병1사단 김대식관 빈소 마련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빈소가 차려졌다. 사진은 이날 유족들의 동의로 공개된 채 상병의 영정사진. 연합뉴스

해병대가 경북 예천 내성천 민간인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의 분향소가 해병대 1사단에 마련돼 조문을 받고 있다. 
 
해병대 1사단은 20일 오후 2시부터 포항 남구 오천읍 김대식관 내에 차려진 채 상병의 빈소를 유족과 협의를 통해 장병과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동료 장병들이 헌화와 묵념을 한 대 이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조문했다.
 
이철우 지사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 확실히 지원을 하겠다"며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약속했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연합뉴스

분향소로 들어서던 채 상병의 유가족들은 입구의 걸린 채 상병의 사진을 보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우리 애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 "어떡하냐?" 며 한참을 오열했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김계환 사령관에게 "내가 아들을 보내고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살수가 있냐"고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보는 이들에게도 슬픔이 전해졌다.
 
독자 제공

이어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살지 않았냐"며 "어찌 키운 하나뿐인 아들인데 너무 원망스럽다"고 한탄했다. 
 
채 상병 부모는 분향소로 올라가 헌화를 하며, 하늘로 먼저 떠난 아들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채 상병의 조문은 21일 늦은 오후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해병대장으로 치러지며 현충원에 봉안되며, 영결식은 22일 오전 9시 도솔관에서 열린다.

https://youtu.be/WxBqWmypl8Q

장갑차도 못 버틴 물살, 맨몸으로 수색…“군인이 소모품인가”

등록 2023-07-20 11:52수정 2023-07-20 23:36

해병대 누리집·SNS ‘안전불감증’ 질타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1사단 상륙돌격장갑차 KAAV가 18일 오후 경북 문경시 영순면과 예천군 풍양면 경계에 있는 삼강교 주변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유속을 견디지 못하고 5분여 만에 뭍으로 올라왔다. 연합뉴스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얼마나 한다고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수색을 시키냐고. 이건 살인 아닌가요 살인”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숨진 채 발견된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수근(20) 일병의 부모는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연합뉴스>, <영남일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채 일병의 아버지는 부대 관계자에게 “물살이 이렇게 센데 어제 비도 많이 내렸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며 거세게 항의하다 오열했다. 채 일병의 어머니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딨어요, 내 아들”이라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진 ㄱ일병의 아버지가 해병대 관계자들에게 항의하는 모습. <영남일보>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고 당시 채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병대 누리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군 당국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며 장병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해병대 누리집 자유게시판을 보면, 18살 아들을 둔 엄마라는 강아무개씨는 이날 올린 글에서 “아이가 해병대 등에 입대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어이없는 인재로 인해 (채 일병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내 목숨을 걸고 (해병대 입대를) 만류하겠다”고 밝혔다. 강씨는 “우리나라 병사들을 대하는 (군 당국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난다”며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아무개씨는 “장갑차도 유속 때문에 5분만에 철수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며 “운이 나빴다, 단순 사고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소중한 생명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 막중한 책임과 또 다른 희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차아무개씨도 “해병대는 그저 군기 쎄고 악으로 깡으로 뭉친 소모품인가’”라며 “꽃다운 청년을 마치 파리 목숨 다루듯 그렇게 거센 강물에 내몰았나. 같은 전우·동료도 하나 못 지키는, 아니 지킬 생각조차 없는 지휘관들은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군 전역자들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군 당국의 태도를 지적했다. 해병대 전역자라는 이아무개씨는 “운 좋게 살아있는 남은 병사들이 평생 안고갈 마음의 짐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반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무고한 병들 희생시키지 마라”고 했다. 김아무개씨는 “7~8년 전에 해군(을) 전역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군대는 장병을 소모품 취급하는 게 당연시하는 게 느껴진다”고 적었다.
 
19일 오후 경북 예천군 호명면 선몽대 인근 하천에서 수색 드론이 하천을 비추며 실종된 해병 장병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사령부는 이날 오전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을 드린다”며 “현재 해병대 안전단이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 분야에 대해 현장에서 점검하고 보완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에 무리한 수색 작업이었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트위터에는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이라지만 진흙탕 급류에서(의) 구조작업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구명조끼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주검뿐”이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실제로 수색작업을 목격한 주민들은 해병대원들이 ‘인간띠’ 형태로 손을 잡고 늘어서는 방식으로 강을 훑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초 신고자라고 밝힌 미호리 주민은 <한겨레>에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서 보통 강과 다르다. 물 아래 지반이 약해 강가에서 수색을 했어야 한다. 왜 강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20일 0시47분께 경북 예천스타디움에서 수색 중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실종 14시간 만인 19일 밤 11시8분 군복을 입은 채로 발견된 채 일병의 주검은 이날 0시45분께 태극기에 덮여 해병대 헬기로 경북 포항시 해군포항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우들은 채 일병을 태우고 이륙하는 헬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예우를 다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