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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나? 위기의 韓반도체

무궁화9719 2023. 4. 18. 12:15

美·中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나? 위기의 韓반도체

美, 보조금 지원 '유혹'…세부조건은 '기밀 공개' 수준
中에 반도체 장비수출 금지 1년 유예도 10월 만료
中 "전 세계 적대" 美비판…26년 반도체 생산 1위 전망도
우리 기업, 中생산 기지이자 시장…미중 경쟁에 '낀' 상황
이재용·최태원, 중국 이어 미국 방문…돌파구 마련에 관심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표면상으로 '보조금'을 내세운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기업 비밀 수준의 정보 제공과 중국 투자 제한을 조건으로 걸었다. 중국이 대응에 나선 가운데 조만간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 1위에 오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는 중국 수출 비중이 높고, 중국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하지만, 패권 경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눈치보는 상황이다. 

美, 거세지는 보조금 지원 조건…사실상 기밀 요구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 시작에 앞서 최근 세부 조건을 추가로 공개했다.
 
이번에 눈에 띄는 점은 반도체 공장의 수익 예측치를 엑셀 파일로 제출하도록 한 부분이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초과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규정한 만큼 관련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연합뉴스

특히 수익성 지표로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이후 연도별 생산량 △판매 가격 증감, 비용 지표로 △생산 소재 △소모품 △화학제품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입력 항목으로 제시했다.
 
앞서 상무부는 보조금 심사를 위한 회계장부도 요구했다. 여기에는 △주요 생산 제품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및 원료명 등 자료가 요구 목록에 포함됐다. 여기에 국방부 등 안보상 필요에 따라 반도체 생산시설 공개도 보조금 지급 조건에 담겨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에 제시한 조건도 '영업 기밀'에 해당한다. 이번에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과 같은 민감한 기밀 사항을 추가한 셈이다.
 
업계는 난감한 분위기다. 경쟁사와 공정 격차가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기밀 공개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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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10년 동안 중국 내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가 제한된다. 시설투자를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조치가 '1년 유예'인 상황까지 생각하면 10년 안에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조금 신청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 29일 주주총회 이후 취재진과 만나 보조금 신청과 관련해 "엑셀을 요구하는 등 신청서(기준이) 너무 힘들던데 많이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또 올해 10월 만료되는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 유예의 연장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中, 美 겨냥 "전 세계 적대" 비판…26년 1위 전망도

미국의 이 같은 반도체 패권에 중국도 손 놓고 있지 않다. 미국을 향한 노골적으로 경고했다.
 
중국의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자오천신 부주임은 지난 29일 보아오 아시아 포럼 연차총회에서 "어떤 나라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수호하고, 소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제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전 세계 경제와 무역 관계를 교란하고 있다"고 미국을 직격했다.
 
29일 중국 하이난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자오천신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이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이어 "이는 세계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해칠 것이며, 이는 전 세계를 적대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런 발언은 중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뚫고 반도체 생산능력 1위에 오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SEMI(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는 최근 발표한 '300mm(12인치) 팹(Fab‧반도체 공장)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이 정부 차원의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생산능력 점유율이 지난해 22%에서 2026년 25%로 확장해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중국은 의존도가 상당한 생산 기지이자 시장이다. 중국에서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약 40%, SK하이닉스는 D램의 약 40%와 낸드플래시의 약 20%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모양새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이유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서의 추가 투자는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미 중국 내 생산시설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관련 업계의 경우 가동 유지와 출구 전략까지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다음달 미국을 찾을 예정이다. 미중 갈등 속 '메모리 반도체 투톱'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삼성·SK 등 동아시아 반도체 기업들, 美·中사이 선택 기로에"

강건택입력 2023. 3. 29. 06:01
 
WSJ "美반도체법 가드레일에 기업들 큰 부담…말 아끼는 분위기"
美상무 "美첨단기술, 中서 군사목적으로 활용되는 것 좌시못해"
 
반도체법 서명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국의 반도체법 시행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진단했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 세부 규정에서 중국을 포함한 '우려 대상' 국가에서의 생산과 연구를 상당 부분 제한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공표했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미국 내 사업을 확장할지, 아니면 중국 내 사업 역량을 계속 확대해나갈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규제는 이미 중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신문은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칩 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S
 
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칩 제조시설을 가동 중이며, 다롄에서는 인텔의 낸드플래시 메모리칩 공장을 인수했다.
 
[그래픽] 국내기업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서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국내 반도체 업계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minfo@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도 중국 난징과 상하이에서 반도체 제조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중국 공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
 
리서치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16%를,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은 전 세계 D램 생산량의 12%를 각각 차지한다. SK하이닉스의 다롄 공장도 글로벌 낸드플래시 생산의 6%를 담당한다.
 
또 TSMC의 상하이와 난징 공장은 이 회사 전체 반도체 생산 역량의 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린 이들 기업은 미국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에 관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중국 발전포럼 참석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2023 중국발전고위급 포럼에 참석했다. 이 회장이 주최 측이 개최한 외국 기업 관계자 상대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3.3.25 jhcho@yna.co.kr
 
삼성전자는 WSJ에 "한국과 미국의 관련 정부 기관들과 긴밀히 논의 중"이라며 보조금 세부 사항에 관한 검토를 마친 뒤 다음 스텝을 정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최근 삼
 
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서고 텍사스 일대에 향후 최대 2천억달러 투자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미국 내 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TSMC 또한 최근 애리조나주에 400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WSJ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경제 디커플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미국에 제기되는 리스크와 관련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며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중국에서 군사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러몬도 장관은 미중 대화를 이어가고 미국의 기업들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보장받기 위해 올해 가을쯤 중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firstcircle@yna.co.kr

미 “반도체 보조금 줄게, 영업기밀 내놔”…국내 업계 속앓이

등록 2023-03-28 19:05수정 2023-03-29 02:38

이정훈 기자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칩과 과학법’(반도체법)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할 때 전반적인 투자 자금 조달 방안 등 일반적 경영 정보뿐 아니라, 반도체 ‘수율’(무결함 제품 비율) 등 민감한 핵심 영업 기밀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삼성전자 등 투자 기업들의 경영 정보를 자세히 파악해 ‘초과이윤’이 나오면 보조금을 환수하는 근거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각)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정보에 대한 ‘상세 지침’을 내놨다. 이를 보면, 보조금 신청 기업들은 우선 투자 장소, 규모, 자금 조달 방안 등 투자와 관련된 정보를 알려야 한다.
 
상무부는 나아가 ‘재무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생산시설의 상세한 운영 전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분기별 시설 가동률, 웨이퍼 생산량, 수율, 제품 종류별 예상 가격·매출을 써내도록 했다. 또 생산비 측정을 위해 경영자·기술자 등 분기별 직군별 인건비, 회계·마케팅·물류·법무·연구에 들어가는 비용 등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질소·산소·수소·유황산 등 생산에 쓰는 물질, 전기·물·천연가스 사용 비용 등 운영비와 관련된 내용도 모두 보고해야 한다.
 
상무부는 앞서 보조금 지급 대상의 현금흐름과 대차대조표를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일반적 재무제표 수준의 정보를 넘어 생산시설 운영 전반에 관한 기업 내부 정보까지 상세히 공개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상무부는 이런 자료가 “보조금의 규모와 형식, 조건의 평가와 설정뿐 아니라 투자의 성공 가능성, 재무구조, 경제적 이익 평가에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전망치는 일관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추산해야 한다면서 이 정보를 추적·연동·조정할 수 있도록 엑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했다. 기업 안팎의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손익 전망을 시나리오별로 제시하라는 주문도 했다.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390억달러(약 50조6200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투자 보조금과 관련한 투자 의향서 접수를 시작하며, 1억5천만달러(약 1950억원) 이상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경우 이익이 예상치를 초과하면 보조금의 75% 이내에서 환수한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보조금 환수를 위해 기업이 제출한 이익 전망치와 실제 지출·실적 등을 비교·검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반도체 기업들이 최고 기밀로 꼽는 수율까지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상무부는 이와 함께 노동력 개발에 관해 “적절한 투자, 고용, 훈련, 고용 유지, 신기술 교육, 인력 다양성”을 위한 전략을 제출하라며 97페이지짜리 별도 지침을 내놨다. 이 지침을 보면, “빈곤층의 취업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비롯해 노동력을 훈련하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도록 지역 교육·훈련 기관과 약정을 맺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결국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수율 등 영업 기밀을 미국에 자세히 제공하고 생산 인력 교육까지 폭넓게 책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무부는 지난 21일 공개한 ‘가드레일’(투자제한장치)에선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 내 생산 확대 폭을 10년간 5%를 넘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보조금을 받으려는 한국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엉뚱한 혹을 주렁주렁 매달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지으며 보조금을 받으려는 기업은 오는 31일부터, 나머지 반도체 생산시설과 후공정 시설을 지으려는 이들은 6월26일부터 신청서를 낼 수 있다.
 
미국의 요구에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공식적인 입장은 삼가면서도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을 위한 소재, 장비는 물론 수율 역시 회사 안에서도 일부만 공유하는 민감한 정보”라며 “이를 외부에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이정훈 기자 ebon@hani.co.kr

美 "반도체 보조금 받으려면 회사 기밀자료 내라"

정인설/황정수입력 2023. 3. 28. 17:55수정 2023. 3. 29. 01:13
 

상무부, 신청 세부지침 공개
기업 생산능력·판매가격 등
민감한 자료까지 요구 '논란'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반도체 불량률과 핵심 소재 자료 등을 내도록 했다. 기업이 공시하지 않는 영업기밀에 해당해 논란이 예상된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미국 정부와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중국 사업에 제약을 받는 데 이어 민감한 자료까지 제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반도체 보조금 신청 절차의 세부 지침을 공개했다. 상무부는 보조금 신청 기업의 생산원가를 추산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크기별 생산 능력, 가동률,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가격 변화 등을 입력하게 했다. 웨이퍼에서 불량이 없는 최종 반도체 칩을 얼마나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율을 기입할 것도 요구했다. 실리콘과 질소, 산소 등 반도체 소재와 소모품, 인건비도 기재해야 한다. 반도체 사업의 수율과 소재, 판매가격 변화는 기업들이 사업보고서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기밀로 분류된다.

 

상무부는 “기업별 재정 상태는 반도체법 프로그램 심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며 “(제출 자료는) 사업성과 재무구조, 위험을 평가하고 지원금 규모와 조건을 검토하는 데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상무부는 보조금 신청 절차를 밝히면서 보조금 대상 기업은 미국 정부와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경우에 따라 생산시설을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어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통해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10년간 5%까지만 확대할 수 있게 했다.워싱턴=정인 설 특파원/황정수 기자 surisuri@hankyung.com 

[기자수첩] 미국 반도체 지원법은 '반도체 독식법'···한국 반도체 기업 족쇄 채우기

  • 기자명 이화종 기자 
  •  입력 2023.03.23 10:31
  •  수정 2023.03.23 10:32

국내 반도체 산업 쪼그라뜨리고 미국 배불리는 반도체법···우리정부는 뭘 했나

산업부 "기업전략···기업들이 의사결정 내릴 것"···무용한 외교부와 산업부

끔찍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 ‘독소조항’···성일종 "한국의 주요 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2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2022.5.21 /대통령실 제공
 
 

리버티코리아포스트 = 이화종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 규정한 투자 보조금을 받을 경우, 이후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5%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됐다.

 

외견상으로는 중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대중수출 반도체 장비 수출금지는 1년 유예해주면서 우리 기업들에게는 혜택을 적용해주지 않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쪼그라뜨리고 미국이 반도체 산업을 독식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방한 하는 미 반도체지원법 담당 주요 실무진과 이같은 재정 인센티브의 세부 지원계획 및 가드레일 세부규정 등에 대해 협의한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법 지원금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설정한 가드레일 조항의 세부 규정안을 관보 등을 통해 공개했다. 

 

반도체법은 중국이 간접적인 혜택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material expansion)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공개된 규정안에서 ‘실질적인 확장’을 양적인 생산능력 확대로 규정했다.

 

이 법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상무부나 재무부 등의 블랙리스트에 있는 화웨이, YMTC 등 중국 우려 기업과의 공동 연구를 하거나 기술 라이선싱(특허사용계약)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당시 미국 정부의 허가로 올해 10월까지는 중국공장에서 이들 장비를 계속 수입할 수 있지만 그 이후가 문제여서 우리 정부가 미국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사진 = 연합뉴스
 

◆ 국내 반도체 산업 쪼그라뜨리고 미국 배불리는 반도체법···우리정부는 뭘 했나

미 반도체 지원법이 상원과 하원에서 가결한 시점은 2021년 6월과 지난해 2월이다. 법안 병합과정에서 미국의 양대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했기 때문에 반도체 지원법만 별도처리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바이든은 하원 통과 이후 "지난 몇 년간 반도체 제조를 위해 해외로 보내야만 했는데, 이 법안 통과로 차량, 가전제품, 컴퓨터 등 기기를 더 싸게 만들 수 있게 됐다"라면서 "이번 법 통과로 미국 일자리 문제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인텔, AMD 등 펩리스 기업이 자사 반도체생산을 위해 한국이나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했지만 이제 미국 내에서 모두 진행하겠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생명인 대한민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를 더 이상 미국이 수입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EU 등에 미국이 수출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의도가 이렇게 투명하게 드러나는 법안이 美의회에서 다뤄질 동안 구경만하다가 의회를 지난해 8월에 통과하고 6개월도 넘게 지난 다음에서야 협의를 하겠다는 우리정부의 늑장 대처다.

 

이미 법안이 통과되고 발효된 뒤에 협의를 해서 무엇을 얼마나 더 바꿀지 알 수가 없지만 우리 정부는 모호한 표현으로 여론과 기업들 달래기에만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이번 발표된 가드레일 세부 규정을 검토한 결과,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생산 설비의 유지 및 부분적 확장은 물론 기술 업그레이드도 계속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기술 업그레이드 시, 집적도 증가를 통해 웨이퍼당 칩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어, 기업 전략에 따라서는 추가적인 생산 확대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이어 "업계와 계속 소통하면서 세부 규정의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60일간의 의견수렴 기간 동안 미측과 추가적인 협의를 진행해나갈 예정"이라며 "우리 기업은 가드레일 세부규정 등 관련된 제반 여건을 분석, 글로벌 경영 전략 차원에서 대미투자 및 미 인센티브 신청 등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기업전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법안이 몰고올 파급을 기업이 알아서 헤쳐나가라는 소리로 해석된다. 다시한번 우리 외교부와 산업부의 무용함을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 사진 = 연합뉴스
 

◆ 끔찍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 '독소조항'···성일종 "한국의 주요 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 법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심각하게 불리한 조건들이 많다는 지적은 법안의 윤곽이 드러나면서부터 지속됐다.

글로벌경제신문는 지난 8일 보도 '끔찍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일종의 독소조항으로 읽히는 보조금 세부조건은 단순히 미국이 현재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을 넘어, 그동안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현지 투자 등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 등 산업 정책 발전은 물론 일자리 장출에 기여해왔다는 점에서 저의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당시 미국 상무부는 520억 달러(한화 약 64조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소개하면서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조건을 내걸었다. 반도체생산지원금 심사기준에 기술준비성과 사업의 사업성, 재무건전성, 경제 및 국가안보 등 여섯 가지를 내걸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미국의 국방 및 안보 분야에 우선적으로 반도체를 공급해야 하고, 생산 및 연구시설을 공개해야 한다. 게다가 예상 현금흐름은 물론 기대수익 등까지 공개토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라 초과수익이 발생했을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 내외를 미국 정부에 반납해야 하는 부담도 따른다"라며 "모두 유례를 찾기 힘들 뿐더러 불평등 조항 투성이다.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송두리째 자기들 손아귀에 넣겠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 의장마저도 지난 6일 이 법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성 의장은 "사실상 반도체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 경제를 우선시하는 조치"라며 "시장 질서를 침해할 수 있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를 못하게 하는 '가드레일 조항'은 중국과 미국 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성 의장은 "이번 조치는 각 국가 간의 기술 경쟁과 분야별 분업 체제를 약화시키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붕괴시킬 수 있다"며 아울러 "향후 2년간 미국에 130조를 투자하겠다 할 정도로 두터운 경제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의 주요 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대한민국 1월 반도체 재고율이 265.7%로 97년 3월 이후 가장 높게 나왔다"며 "반도체 산업에서의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반등의 기회를 만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VC보다 가혹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

입력 2023.03.11 11:00 
 

지난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오른쪽에서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들 가운데 미국 벤처투자사(VC)에서 투자 받기를 원하는 곳이 많다. 돈 많은 미국 VC들은 투자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에 따르면 국내 투자보다 맨 뒤에 0이 한두 개 더 붙는다.

 

하지만 투자 단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조건도 다르다. 미국 VC 가운데 투자를 하면서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는 플립(flip)을 투자 조건으로 요구하는 곳들이 꽤 많다. 플립을 하면 미국에 세운 회사가 본사가 되고 국내에서 창업한 회사는 미국 본사의 자회사가 된다.

 

미국 VC들이 굳이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에 플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수시로 투자 기업을 들여다보고 상황을 점검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다. 또 VC들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 지분을 팔거나 인수합병(M&A)을 고려할 경우 해외 기업보다 미국에 있는 기업이어야 용이하다.

 

국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투자 받고 더 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플립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플립을 하면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우선 창업자를 포함해 국내 주주들이 뜻하지 않은 주식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국내 주식을 미국 본사 주식으로 바꾸는 주식 교환 행위에 대해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특히 곧잘 매출이 발생하고 국내에서 투자를 많이 받았다면, 내야 할 세액이 껑충 뛴다. 국내에서 100억 원 이상 투자 받은 모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 투자를 제의받고 플립을 할 경우의 양도세를 계산해 보니 투자액의 3분의 1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각종 지원을 받았다면 이것도 대부분 토해내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지원한 만큼의 혜택을 받은 스타트업이 미국으로 옮기면 당연히 국부 유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투자를 받거나 이익이 크다면 플립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연 어떤 실익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의 유명 VC로부터 플립을 조건으로 투자 제의를 받았으나 투자액보다 양도세와 정부 지원금 등 토해내야 할 비용이 더 많아서 투자를 거절했다. 물론 일부 미국 VC들은 투자 가치가 아주 높은 국내 스타트업이라면 각종 세금까지 대신 내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만큼 미국 VC들에서 투자를 받으려면 손익 계산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작은 VC 투자도 이런데 하물며 미국 정부가 나서는 반도체 지원법은 말할 것도 없다. 527억 달러(약 70조 원)가 걸린 반도체 지원법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서 플립 조건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조건을 요구한다. 지원금을 받는 대신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이 발생하면 지원금의 최대 75% 범위 안에서 미국 정부에 토해내야 하고, 생산 장비와 원료 등 기업 비밀도 보고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시설에는 생산 라인별 장비의 설치 내용이 아주 중요한 기밀이다. 특정 장비를 몇 도 각도로 틀어서 설치하느냐에 따라 완성품 생산비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이어서 국내 반도체 업계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우려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장이 10일 미국을 방문해 이런 우려를 전달할 예정이지만 과연 미국이 얼마나 수용할지 의문이다. 미국 VC의 플립을 요구하는 스타트업 투자든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이든 공통적으로 일깨우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연합시론] 당혹스러운 미국 반도체 지원법…기업에만 맡겨둘 일 아니다

송고시간2023-03-02 12:56

 

 

[그래픽] 미국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심사 기준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미국 상무부는 28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확대하고 세계 공급망을 강화하는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minf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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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미국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의 세부 지원 조건을 보면 당혹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생산 지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경제 및 국가 안보,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준비성, 인력 개발, 사회 공헌 등 6개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 전체를 관통하는 목표는 경제와 국가 안보에 대한 기여이다. 미국은 국방부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이나 주요 시설에 필요한 반도체를 얼마나 생산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첨단 반도체에 대한 국방부와 국가안보 기관의 접근, 중국 등 우려국과 공동 연구 또는 기술 라이선스를 할 경우 지원금 전액 반환, 국가 안보 프로그램과의 통합 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반도체 시설 제공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외국인 투자 기업이 아니라 국방 관련 국유 기업에 적용될 만한 내용이다. 반도체 지원법이 향후 5년간 527억 달러(약 69조 원)가 투입되는 대형 재정 사업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자국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해할 만하나 그 정도가 지나쳐 미국에 투자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미국 투자를 계획 중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지원금이 투자 마중물이 아니라 자칫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요소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측 안내에 따르면 지원금 신청 기업은 재무 건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도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조 시설의 세부 사항이나 기술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는 앞선 기업이 기술 격차를 통해 후발 업체를 따돌리는 대표적인 '승자 독식' 산업인데 핵심 기술이 노출되면 차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설계는 미국, 생산은 한국과 대만, 부품·소재는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 분업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중 갈등 속에 생산 부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이 우선은 지원금을 통해 한국 등의 제조 기업을 유치하되 향후 직접 생산까지 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중국 시장도 걱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원금을 받으려면 대중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 통제 유예 조치가 끝나는 오는 10월부터는 10년간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서 생산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전체 낸드플래시의 약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나 D램의 약 48%를 우시 공장에서 생산하는 SK하이닉스는 사실상 중국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수출 감소와 무역 적자의 주원인은 부진한 반도체 업황이다. 따라서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등한시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에 지원금을 1억5천만 달러 이상 받는 기업의 경우 수익 전망치 초과분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다.

 

물론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이런 족쇄를 피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170억 달러를 투자해 짓는 미국 텍사스주의 파운드리 공장과 관련해 직접 보조금 8억5천만∼25억5천만 달러, 대출과 보증까지 포함하면 59억5천만 달러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적잖은 규모인 이런 보조금을 받지 않으면 당연히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면서도 중국과의 디커플링(분리)을 추진하는 미국의 정책에 대놓고 반기를 드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반도체 생산시설 확보에 총력전을 벌인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에게도 지렛대가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 스스로 손익을 냉철히 따져보고, 부당하거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강하게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이미 민간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미국이 한국·미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소위 '칩4'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와 같은 상황이 재연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논리에 밀려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