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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 별명 부른 것뿐인데?…학폭 중 42%가 ‘언어폭력’
무궁화9719
2023. 2. 27. 07:46
"드라마에선 복수라도 하지"…'정순신 사태'에 맘카페 '분노'
신민경 기자기자
입력2023.02.28 20:02 수정2023.02.28 20:25
"더글로리보다 더한 현실…억울하고 분해"
엄마들·교사들 비난 쇄도

28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로 사임했지만, 여론은 갈수록 싸늘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모임인 맘카페들을 위주로 분노가 들끓고 있다.
28일 경기 화성지역 학부모들이 다수 모인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는 '정순신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이젠 무력감이 느껴진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분노를 넘어서서 무력감마저 느낀다"며 "피해자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가해자는 자기 살 길 잘 살아가니, 피해자 부모의 심정은 어떨지…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누구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폭력 가해자는 아예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 게시글엔 "그들만의 무서운 세상 같다", "피해자는 학업 포기하게 만들고, 가해자인 자신의 아들은 로스쿨 거쳐 법조인 만들려고 했나", "학교 폭력이 중범죄임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기록이 평생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등 의견이 달렸다.
경기 용인 수지지역 학부모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도 번듯한 대학과 직장을 가지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 악순환의 반복", "자식이 민사고에 들어갔다고 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했을 부모와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모 힘 없으면 제대로 나설 수도 없는 현실을 한탄해야 하나 싶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서울대에 로스쿨이라니, 다시는 이런 불상사는 없도록 본보기를 만들어야 한다" 등 의견이 올라왔다.

사진=뉴스1
한편 교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비판적 여론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더글로리보다 더하다. 그나마 드라마는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이 통하는데…현실은 더 억울하고 분하다", "제대로 공부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이렇게도 힘들 일이냐", "서울대 입학도 취소했으면 좋겠다", "이 소식에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서 며칠 잠을 못잤다. 피해 학생이 상처를 털어내고 이겨냈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새 국수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정 변호사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 변호사의 국수본부장 임명 직후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17년 한 자립형사립고에 다니던 정 변호사의 아들은 동급생에게 8달 동안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전학 처분을 받았다. 피해 학생은 정신적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친구끼리 별명 부른 것뿐인데?…학폭 중 42%가 ‘언어폭력’
등록 :2023-02-26 15:47수정 :2023-02-27 00:53
고병찬 기자
언어폭력 등 정서적 괴롭힘이 학폭 절반 넘어
“사소한 괴롭힘도 학폭임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교육부가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언어폭력 등 정서적 괴롭힘은 신체폭력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심각한 학폭 유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에 교육계에서는 사소한 언어폭력도 학폭에 해당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북’(2022개정판)에서 “사소한 괴롭힘,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여기는 행위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학폭 기록 강화하자 ‘소송 남발’…피해자는 사과도 못받는다
등록 :2023-02-27 05:00수정 :2023-02-27 07:19
이유진 기자
가해자 학폭위 결정 불복
재심·행정심판 청구 급증
“학폭 확정 땐 대학에 고지
시간 끌일 아니란 인식줘야”

게티이미지뱅크
재심 청구는 2016년 500건에서 2019년 781건, 행정심판 청구는 같은 기간 302건에서 828건으로 늘었다. 재심과 행정심판이 합쳐진 2020년 사례까지 합쳐보면, 가해 학생 주장이 받아들여진 비율(인용률)은 32.4%로 피해 학생(29.2%)에 견줘 3.2%포인트 높았다.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에 따라 학폭위는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교육을 위해 서면 사과부터 퇴학까지 9가지 처분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학은 학교폭력 가해 초·중학생에게 부과되는 최고 수준의 처분이며, 고등학생에겐 이보다 높든 ‘퇴학’ 처분도 가능하지만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실질적인 분리’를 위해 대체로 퇴학보다 전학을 요구하는 편이다.
교육계에서는 학폭위 처분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제도를 전반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1년 대구에서 같은 반 학생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벌어진 이후, 교육당국은 2012년 1학기부터 학생부에 학폭위 처분을 기재하도록 했다. 이후에도 학교폭력 대응 수단으로 ‘학생부 기록 및 졸업 뒤 보존’이 자주 거론됐는데, 상대적으로 피해 학생에 대한 실질적 보호엔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한겨레>에 “학생부 기재가 소송을 부르고, 오히려 피해자 보호에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학생부 기재와 피해·가해 학생의 분리 등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책연구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교사인 한희정 실천교육교사모임 전 회장은 “고교 3학년 2학기에 처분이 확정돼도 이를 (가해 학생이 지원한) 대학에 고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가해 학생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은 시간을 끌 일이 아니라고 여겨 빨리 사과하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1년부터 ‘즉시 분리 제도’(학교장이 학폭을 인지한 경우 피해 학생의 반대 의사가 없으면 최대 3일간 지체 없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분리)가 시행되고 있다”면서도 “여러 우려를 수렴해 다음 달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학폭 피해자에 ‘입막음 소송’ 3년…교사 ‘무고’ 고소까지
등록 :2023-02-27 05:00수정 :2023-02-27 09:21
이우연 기자
학폭 가해자, 처분 집행정지 신청하고 본안소송 ‘시간끌기’
명예훼손과 무고로 ‘입막음 소송’도
소송 끌려다니며 피해자 회복도 더뎌져

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박상수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율)는 <한겨레>에 “담당 변호사 변경과 기일변경 신청 등을 거쳐 3심인 대법원 판결까지 가면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간인 3년이 그냥 흐른다”며 “학교폭력 기록이 없는 학생부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셈”이라고 했다.
피해자와 학교폭력 담당 교사를 상대로 한 ‘입막음 소송’도 벌어진다. 박 변호사는 “소송전이 벌어지는 동안 피해 부모가 그 사실을 알리자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등의 일이 부지기수”라며 “최근에는 학교장의 종결을 거치지 않고 학폭위로 사건을 보냈다고 학교폭력 담당 교사를 무고로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처럼 소송전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피해자의 2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종 소송에 끌려다니게 되며 피해자의 회복과 치료가 더뎌진다는 것이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가해학생 쪽은 법률대리인으로 무장해 각종 증거자료를 준비하는데, 피해학생 쪽은 ‘피해를 받았으니 당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홀로 사건에 임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과와 화해가 아닌 소송전으로 이어지며 가해자도 잘못에 대해 깨닫고 반성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폭력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경우 피해학생에 대한 심문을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학교폭력 처분 취소 소송의 경우에는 사건 특성상 최대한 빠르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힘 있는 부모의 학폭 2차 가해, 근절 대책 시급하다 [사설]
등록 :2023-02-26 18:23수정 :2023-02-27 02:39

게티이미지뱅크.
정 변호사는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서 최종 패소했지만, ‘시간 끌기’라는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 그의 아들은 대법원에서 패소한 뒤인 2019년 2월에야 전학 조처됐으며, 이듬해 정시에서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현직 검사가 법지식을 동원해 장기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자의 1차 전학 처분이 취소된 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등 고통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고 한다.
가해 학생 부모가 소송전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학교폭력 관련 법률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소송의 목적은 자식의 입시에 있다고 한다. 시간을 끌어 입시 전에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록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능력 있는 일부 부모에게만 해당할 테지만, 피해 학생의 끔찍한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빗나간 자식 사랑이 법률 시장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니 개탄스럽기만 하다.
최근에도 유명인의 학교폭력에 대한 뒤늦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가도 피해자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야 한다. 3학년 2학기에 최종심 판결이 나더라도 이를 대학 쪽에 고지하는 방안을 비롯해 제도적 보완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학폭 가해 자녀를 괴물로 만드는 부모 [유레카]
등록 :2023-02-26 14:38수정 :2023-02-27 02:38
유선희 기자

학폭 자식을 괴물로 만드는 부모. 김재욱 화백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보면, 학교폭력은 신체적·언어적·성적 폭력은 물론 명예훼손·따돌림 등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를 포괄한다.
일상회복으로 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학폭은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교육부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된 학폭 실태조사 분석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엔 언어폭력 경험률이 74.4%였는데, 2020년 비대면 수업이 시작될 무렵엔 54.0%로 줄었다가 일상회복이 시작된 2022년 73.2%로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도 2018년 21.4%에서 2020년 12.7%로 낮아졌지만, 2022년에는 25.6%로 다시 상승했다.
학폭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탓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드물게 표면화될 경우, 시도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린다. 학폭위는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를 위해 서면사과, 출석정지, 강제전학 등 다양한 조처를 교육장에게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부모가 보이는 태도다. 자녀의 행위를 꾸짖기는커녕, 감싸고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자식 상처’보단 ‘내 자식 미래’를 더 중히 여기는 까닭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런 부모들의 민낯을 까발린다. 병원장, 변호사, 전직 경찰청장, 교사인 부모들은 부와 직업적 전문성을 활용해 자식의 학폭 사건을 묻어버리려 한다. 영화는 경고한다. ‘자식이 괴물이 되면 부모는 악마가 된다’고.
최근 학폭 관련 이슈가 잇따랐다. 연예인은 물론 방송 출연 비연예인까지 “학폭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대중이 가장 주목한 건 신임 정순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다. 그는 학폭 가해자인 아들의 강제전학을 막기 위해 ‘끝장 소송’까지 벌인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영화 속 문구를 바꿔 말하면 이런 뜻일 게다. ‘자식을 괴물로 만드는 건 결국 부모다.’유선희 산업팀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