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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기부터 회담까지…‘언론통제’로 얼룩진 동남아 순방

무궁화9719 2022. 11. 18. 07:46

전용기부터 회담까지…‘언론통제’로 얼룩진 동남아 순방

등록 :2022-11-16 05:00수정 :2022-11-16 09:31

배지현 기자

윤 대통령의 공정 팽개친 언론관 도마

동남아 순방 4박6일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밤 인도네시아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 발리/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의 11~16일 동남아시아 순방은 특정 언론사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 주요 양자회담 비공개, 대통령과 특정 기자의 대통령 전용 공간 내 대화 등 ‘언론 통제’, ‘언론 길들이기’ 논란으로 얼룩졌다. 공공성에 대한 윤 대통령의 무딘 인식과 편협한 언론관이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각) 오후 이번 순방의 마지막 방문지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한-중 정상회담을 했다. 2019년 12월 베이징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난 뒤 3년 만에 양국 정상이 머리를 맞댄 기회였지만, 공식 회담 현장은 순방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회담도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진행됐다. 대통령실 전속 취재는 공개 회담의 발언 전체가 아닌 편집된 발언과 영상·사진만 전달된다. 대통령실은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 전부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했고, 언론 질의응답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각국 정상 간의 회담은 동행한 기자단에서 정해진 순서로 ‘풀(대표) 기자 취재’ 형식을 통해 머리발언 등이 언론에 공개된다. 물론 양국이 사전 협의를 통해 언론의 풀 취재를 제한하고 전속 취재로 돌리는 일도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9월 북미 순방에서 방송 카메라에 비속어 사용이 포착돼 커다란 논란을 겪은 터라, 이번 순방에서의 전속 취재를 한국 쪽에서 먼저 제안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양국 간 사전 협의한 것”이라며 “정상 외교 프로토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반박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국제공항에서 14일 오후(현지시각) 민항기를 탄 엠비씨 취재진들이 짐을 찾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발리/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문화방송>(MBC) 기자들 탑승 배제 결정으로 순방 출발 직전 터져나온 ‘전용기 사유화’ 논란은 순방 진행 과정에서 증폭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저녁 전용기를 타고 프놈펜에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로 향했다. 이동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공식 기내간담회를 열지 않았다. 대신 평소 친분이 있던 <시비에스>(CBS)와 <채널에이(A)> 기자 2명만 따로 불러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전용기가 이륙하고 한 시간 뒤 승무원이 이들에게 따로 메시지를 전달해 전용기 앞쪽의 대통령 전용 공간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다수 기자에게 포착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논란이 일자 기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해당 기자들과) 평소 인연이 있어서 이동 중에 편한 대화를 나눴을 뿐 취재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문화방송 탑승 배제에 이어 윤 대통령의 특정 언론에 대한 개인적 선호가 공적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 전용기는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적 공간”이라며 “이를 망각한 대통령의 모습은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그릇된 인식과 편협한 언론관만 확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위선희 정의당 대변인도 “80여명이 넘는 동행 취재진은 배제한 채 단 두명의 기자에게만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대통령의 언론관에 과연 ‘공정’은 어디에 있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15일에도 문화방송 전용기 배제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이 조치에 대해 특별히 사과하거나 그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순방 출발(11일)을 이틀 앞둔 지난 9일 문화방송에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를 통보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익’을 이유로 들었으나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첫 보도 등 비판 보도가 큰 영향을 끼쳤다. <한겨레>는 대통령실의 이 같은 결정이 반민주주의적 언론 통제라고 판단해 민항기를 이용해 윤 대통령의 4박 6일 순방 일정을 취재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귀국한다.
 
발리/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전용기보다 18시간42분 늦게 도착…이래도 ‘취재 제한’이 아니라고요?

입력2022.11.16. 오후 8:5

본지 심진용 기자 ‘민항기 이용’ 순방 취재기

14일 민항기로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말레이시아항공 비행기에서 바라본 공항의 모습. 오른쪽 끝에 전날 먼저 입국한 한국 대통령 전용기의 모습도 보인다. 발리 | 강윤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도착 첫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고 들었다. 현지의 한국 기업 관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고, 오후엔 B20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저녁에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일정을 소화했다고 들었다. ‘들었다’라고밖에 쓸 수가 없다. 그 시간 기자는 기어가듯 움직이는 그랩 택시를 타고 꽉 막힌 캄보디아 프놈펜 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경유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환승 게이트에서는 연신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비행기를 기다렸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이른 오전부터 브리핑에 나서 윤 대통령 일정과 동남아 순방 의미를 설명했다는 소식을 공항에서 카카오톡으로 전해들었다.

경향신문은 현장에 있지 못했다. 캄보디아 시간으로 14일 오전 11시 프놈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 시간으로 오후 6시25분에 발리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1143분에 도착한 윤 대통령보다 18시간42분 늦은 시간이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의 순방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MBC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조치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취재 편의 일부분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지, 취재 제한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전용기가 아니더라도 취재에 제한됨 없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경유편도 많지 않다. 그게 아니면, 대통령의 발리 첫날 일정은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대통령 전용기 자체가 취재 공간이라는 지적도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행(?)인지, 윤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오후 9시 무렵 MBC에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했다.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늦은 밤 통지가 나온 탓에, 경향신문은 출국 하루 전인 다음날 오전에야 탑승 거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서울 종로 외교부를 찾아 여권을 반납받고, 성남공항으로 가서 전용기 탑승을 위해 맡겼던 짐을 되찾은 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프놈펜, 프놈펜에서 발리, 다시 발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전용기를 띄우는 데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기인데, 이런 형태로 특정 언론사 탑승을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전용기 이용료와 순방 취재 비용 일체를 언론사가 부담한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기도 구차스럽다.

순방 내내 언론과의 관계에서 말썽이 일었다. 전용기 탑승 문제로 시비가 일었고, 현지에서는 전속 취재로 일관한 윤 대통령 부부 일정이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전용기 내에서 특정사 기자 2명을 불러 ‘편한 대화’를 나눈 것도 문제가 됐다. 언론 ‘차별’ 논란으로 시작한 대통령 순방이 언론 ‘특혜’ 논란으로 마무리됐다. ‘국익’이 걸린 중대한 순방 일정인데, 외교 행보가 아닌 언론과의 관계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기자들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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