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부터 회담까지…‘언론통제’로 얼룩진 동남아 순방
전용기부터 회담까지…‘언론통제’로 얼룩진 동남아 순방
등록 :2022-11-16 05:00수정 :2022-11-16 09:31
윤 대통령의 공정 팽개친 언론관 도마



전용기보다 18시간42분 늦게 도착…이래도 ‘취재 제한’이 아니라고요?
본지 심진용 기자 ‘민항기 이용’ 순방 취재기

14일 민항기로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으로 들어가는 말레이시아항공 비행기에서 바라본 공항의 모습. 오른쪽 끝에 전날 먼저 입국한 한국 대통령 전용기의 모습도 보인다. 발리 | 강윤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 도착 첫날부터 바쁘게 움직였다고 들었다. 현지의 한국 기업 관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고, 오후엔 B20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저녁에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일정을 소화했다고 들었다. ‘들었다’라고밖에 쓸 수가 없다. 그 시간 기자는 기어가듯 움직이는 그랩 택시를 타고 꽉 막힌 캄보디아 프놈펜 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경유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환승 게이트에서는 연신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비행기를 기다렸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이른 오전부터 브리핑에 나서 윤 대통령 일정과 동남아 순방 의미를 설명했다는 소식을 공항에서 카카오톡으로 전해들었다.
경향신문은 현장에 있지 못했다. 캄보디아 시간으로 14일 오전 11시 프놈펜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 시간으로 오후 6시25분에 발리에 도착했다. 전날 오후 11시43분에 도착한 윤 대통령보다 18시간42분 늦은 시간이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의 순방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MBC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 조치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취재 편의 일부분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지, 취재 제한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전용기가 아니더라도 취재에 제한됨 없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프놈펜에서 발리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경유편도 많지 않다. 그게 아니면, 대통령의 발리 첫날 일정은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대통령 전용기 자체가 취재 공간이라는 지적도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행(?)인지, 윤 대통령은 기내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오후 9시 무렵 MBC에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했다.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늦은 밤 통지가 나온 탓에, 경향신문은 출국 하루 전인 다음날 오전에야 탑승 거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서울 종로 외교부를 찾아 여권을 반납받고, 성남공항으로 가서 전용기 탑승을 위해 맡겼던 짐을 되찾은 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프놈펜, 프놈펜에서 발리, 다시 발리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전용기를 띄우는 데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전용기인데, 이런 형태로 특정 언론사 탑승을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전용기 이용료와 순방 취재 비용 일체를 언론사가 부담한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기도 구차스럽다.
순방 내내 언론과의 관계에서 말썽이 일었다. 전용기 탑승 문제로 시비가 일었고, 현지에서는 전속 취재로 일관한 윤 대통령 부부 일정이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전용기 내에서 특정사 기자 2명을 불러 ‘편한 대화’를 나눈 것도 문제가 됐다. 언론 ‘차별’ 논란으로 시작한 대통령 순방이 언론 ‘특혜’ 논란으로 마무리됐다. ‘국익’이 걸린 중대한 순방 일정인데, 외교 행보가 아닌 언론과의 관계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기자들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