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NSA, 노무현 대통령 의중 감시"… 정부, 미국에 사실 확인 요구
NYT "NSA, 노무현 대통령 의중 감시"… 정부, 미국에 사실 확인 요구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입력시간 : 2013.11.05 21:00:56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을 정보 수집 대상국에 포함시켰다는 보도와 관련,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우려를 전달했다. 외교부는 4일 주미 한국대사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 국무부에 우려를 표시하고 사실 관계 확인과 보도 경위 설명을 요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직 사실 여부에 대한 답을 미국 측으로부터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서 3일(현지시간) NSA의 비밀문건 '미국 시긴트(SIGINTㆍsignal과 intelligence의 합성어로 통신감청 또는 위성감시를 의미) 전략적 임무 리스트_2007년 1월'을 공개하면서 NSA가 한국을 주요 정보 수집 대상국에 포함시키고 한국 대통령의 의중을 감시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또 미국이 한국, 일본, 영국, 호주와 미군 주둔지에서 해외 정보기지인 특별정보수집부(SCS)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는데 이 때문에 주한 미국 대사관과 주한 미군기지가 SCS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비밀문건에 따르면 NSA는 한반도 전면전 대비 작전 계획인 '작계 5027'와 관련한 한국 리더십(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도록 했다. 이 문건에는 약 40개국이 감시대상국에 올라있으나 NSA가 국가 수반의 의중 확인을 적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문서가 작성된 2007년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이 논란 끝에 미국과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2012년 3월)에 합의하고 한국이 주요 현안에서 미국과 엇박자를 내던 시기다. 이에 따라 미국이 노 대통령의 한반도 전면전 작전 계획을 의심하고 해외 주둔 미군의 보호 및 작전을 위한 정보 수집 영역에서 한국 정부의 정확한 의도를 확인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문건에 따르면 NSA는 2007년 1월부터 12~18개월간 주요 국가들을 ▦16개 영역별 감시대상국과 ▦상시감시대상국으로 분류했다. 16개 영역별 감시대상국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의 우방인 일본, 독일, 프랑스와 브라질, 인도, 멕시코, 터키, 이스라엘,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30여개국이 포함됐다. 미국과 정보를 공유한 영국, 캐나다, 호주를 제외한 주요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된 셈이다.
한국은 16개 영역 가운데 ▦신흥전략기술 ▦외교정책 ▦해외 정보활동 ▦해외주둔 미군 보호 및 작전 등 4개 영역에서 '중점지역(focus area)' 그룹으로 분류됐다. 중점지역은 시긴트 등을 활용해 비밀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대상을 말한다. NSA는 시긴트 또는 국토안보부 비밀수사국(USSS)을 이용한 정보 수집이 어려운 경우 '용납된 위험(accepted risks)' 그룹으로 분류해 NSA 국장이 위험을 감수하되 최고 중요 정보대상에 초점을 맞춰 감시하도록 했는데 2007년 한국의 리더십은 여기에 해당했다. 상시감시대상국에는 중국, 북한, 이란, 이라크,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미국이 적성국 또는 분쟁유발국가로 간주한 국가들이 포함됐다.
[단독] 미 NSA 도청, 노무현 ‘대북 작전계획’에 집중등록 : 2013.11.05 07:54수정 : 2013.11.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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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2007년 기밀문서 공개…한국 33개 ‘핵심감시국’에 포함
한국에 ‘주요 국외기지’도 둬…노 대통령 ‘작계 5027’ 의중 파악 나선 듯
미국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이 2007년에 한국의 외교·군사 정책과 정보기관, 전략기술 등을 핵심적인 정보 수집 대상으로 지정했던 사실이 4일 확인됐다. 특히 한국은 적성국·우방국을 포함해 모두 33개 핵심 정보 수집 대상국에 속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뉴욕 타임스>(NYT)가 이날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기밀문서 일부를 인터넷에 공개해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이 문서는 국가안보국이 적성국이나 테러단체 감시뿐만 아니라 외교·경제적 이익을 취하고자 핵심 동맹국들을 광범위하게 감시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구체적인 감시 대상국의 명단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시긴트(SIGINT) 전략 임무 리스트-2007년 1월’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이 문서는 작성일로부터 12~18개월간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초기에 해당한다. 시긴트는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의 약어로 첨단 전자장비를 활용한 정보 수집 활동을 뜻한다.
이 문서는 테러·외교정책 등 16개 임무를 규정하고, 각각의 임무를 미국의 이익에 치명적으로 중요한 ‘초점 지역’(Focus Areas)과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이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인정된 위험’(Accepted Risks) 두 가지로 분류했다. 특히 초점 지역은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하고 있어, 요원들이 정보를 수집하려고 도청·해킹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리라 추정된다. <뉴욕 타임스>는 “국가안보국이 영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한국에 주요 국외 기지를 두고 활동해 왔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이들 16개 임무 중 외교정책과 정보기관 활동, 미군 주둔지역, 전략기술 등 4개 부문에서 초점 지역으로 꼽혔다. 국가안보국은 대상국 외교정책의 목표·태도·프로그램·조처에 관한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있는데, 한국은 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일본·이란·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북한·아프가니스탄·이라크·베네수엘라·시리아·터키·멕시코·인도·파키스탄 등 17개국 및 유엔과 함께 초점 지역으로 지정됐다. 이 문서가 작성될 당시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북핵 6자회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라크전 파병 연장 등 미국과 관련된 민감한 외교 현안이 많았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이 나돌던 때다.
정보기관 활동에선 중국·러시아·쿠바·이스라엘·이란·파키스탄·북한·프랑스·베네수엘라 등 9개국과 함께 한국이 초점 지역으로 지목됐다. 미국 우방국 중에선 한국과 이스라엘·프랑스 3곳뿐이다. 이 문서는 “미국 정부와 군사·과학기술·정보당국에 대한 외국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활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한국 정보당국의 첩보 활동에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 주둔지역 부문에선, 한반도 전면전 대비 작전계획(작계)인 ‘작계 5027’에 대한 한국의 군사계획·작전 지원이 초점 지역으로 지정됐다. 또 작계 5027에 대한 ‘한국 지도자의 의도’는 ‘인정된 위험’으로 분류됐다. 참여정부 땐 북한의 급변사태 때 핵 등 대량파괴무기(WMD) 처리를 미국이 맡는 쪽으로 구체화하는 ‘작계 5029’를 작성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한국이 반대해 갈등이 있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미 양국 정부는 ‘작계 5029’ 작성을 비밀리에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떠오르는 전략기술’ 부문에서 한국은 러시아·중국·인도·일본·독일·프랑스·이스라엘·싱가포르·스웨덴과 함께 초점 지역으로 분류됐다. 이 문서는 전략기술을 “전략적인 군사·경제·정치적 이익을 제공하는 핵심 기술”로 정의하고, 정보기술과 컴퓨팅·스텔스·전자전·나노기술 등을 항목으로 제시했다.
이 문서를 토대로 살펴보면, 앞서 폭로된 국가안보국이 도청한 35개국 정상에 한국 대통령도 들어 있다고 여기는 게 합리적이다. 이 문서의 ‘초점 지역’은 모두 33개국인데,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정상에 대한 도청 사실이 폭로된 독일·멕시코·브라질이 모두 여기에 속해 있다. 앞서 영국 <가디언>은 지난달 24일 스노든이 제공한 기밀문서를 토대로 국가안보국이 35개국 정상의 통신수단을 도청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국은 지금도 국가안보국의 핵심적인 정보 수집 대상국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북한 핵문제 외에도 한-미 원자력협정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한-일 외교 갈등 등 굵직한 외교안보 이슈들이 많은데다 미군 주둔지역, 한국 기업의 첨단기술 능력 등 관심사가 많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의 이런 보도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이번 보도 직후에 이 문건에 대해 깊은 우려 표명과 함께 납득할 만한 설명 및 조처를 신속하게 제공해 달라고 미국 쪽에 요청한 바 있다”며 “정부는 향후 상황 전개에 맞춰 적절한 시점에 좀더 분명하고 엄중한 입장을 밝혀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국가안보국이 수집하는 정보가 미국 행정부 내 다양한 ‘고객’들한테 전파된다고 전했다. 백악관·국방부·국무부·연방수사국(FBI)·중앙정보국·국토안보부 등 국가안보 관련 기관들뿐만 아니라 에너지부·상무부·무역대표부(USTR) 등 일반 행정부서도 이 고객에 해당한다. 특히, 이 신문은 소식통들의 설명을 토대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매일 아침에 브리핑을 받는 ‘데일리 브리프’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정보기관들은 성공의 잣대로 여긴다”며 “국가안보국은 여기에 제공되는 정보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어 어떤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강한 압박감을 받는다”고 전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박병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