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4월14일 링컨 암살되다ᆞ
1865년 4월14일 링컨 암살되다ᆞ

#. 아래 내용은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부스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천천히 대통령석으로 갔다. 그는 작은 틈을 통해 링컨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면서 무대와 객석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한 배우가 큰 소리를 내면서 독백을 했고 모든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부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대통령석으로 들어가 링컨의 뒷머리에 총탄을 발사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문을 하면 항상 '에이브러햄 링컨'이 첫 손에 꼽힌다. 이러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무수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정진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간 승리' 스토리에 주목한다. 아울러 '노예 해방'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고 '남북전쟁'과 같은 초유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한 뒤 '국가 통합'의 단초를 마련한 것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일각에서는 링컨을 자신의 사명을 다 완수하고 떠나간 '예수 그리스도'에 비유할 정도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있어 링컨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실제로 링컨의 삶과 시대적 환경은 지극히 어려웠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지도자들을 살펴봐도 링컨만큼 실패와 좌절을 겪은 인물은 극히 드물다. 더욱이 그 당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비상시국이었다. 노예제로 인한 해묵은 갈등이 폭발해 내전까지 발생, 각각의 주로 이뤄졌던 연방 국가 미국이 분단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링컨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남부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끝까지 전쟁을 감수하면서 분단을 막아냈다. 이 와중에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숭고한 가치, 노예 해방도 이뤄냈다. 링컨이 노예제 폐지 과정에서 보여준 집요할 정도의 정치적 노력은 특기할 만하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반역자라 할 수 있는 남부 지도자들을 기꺼이 용서하며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다만 링컨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전후 미국의 재건을 위해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 했지만 뜻하지 않은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격무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과 즐거움을 취하기 위해 방문한 포드 극장에서 암살자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탄에 쓰러졌다. 기본적인 경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쉽게 암살 위험에 노출됐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장례식에 몰려와 링컨의 죽음을 애도했다. 비록 링컨은 떠나갔지만 그가 내세운 자유와 통합의 정신은 후대로 이어져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인종과 지역을 넘어 하나의 국가 아래에서 단결하고 있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올 만큼 국민 의식이 성숙했다. 링컨의 유산은 앞으로도 미국을 지탱하는 커다란 버팀목일 것이다. '위대한 해방자이자 통합자', 링컨의 노예 해방 운동과 국가 통합 노력, 그리고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극장에서의 기괴한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