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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by 무궁화9719 2025. 1. 28.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다산콜센터·경찰 신고 전화 분석
“전기 끊나” “피난 가야 하나”
일상에 가해진 위협 크게 느껴

김가윤기자
  • 수정 2025-01-27 21:56
  • 등록 2025-01-27 07:00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뒤 4일 새벽 국회 앞에서 군용차량을 시민들이 둘러싼 채 막아서고 있다. EPA 연합뉴스
 
상상만 했던, 아니 상상조차 못 했던 ‘비상계엄’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시민들이 물었다. “저…지금 밖에 나가도 되나요?”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 위반자를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내려진 12월3일 밤으로부터 50여일이 흘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을 받고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윤 대통령 쪽은 ‘경고용 계엄’이었다거나, ‘고작 2시간짜리 계엄’으로 치부하지만, 그날 시민들은 극도의 두려움에 떨었다. 평범한 일상에 가해진 위협을 느꼈다.
 
한겨레는 설 연휴를 앞두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지난해 12월3∼4일 계엄 관련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상담 내역 179건과 경찰 112신고 내역 2481건을 분석해, 당일의 혼란과 시민들이 빼앗길까 두려웠던 일상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들여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니, 비상계엄이면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예요?”(시민), “비상개업요?”(상담사)
 
120다산콜센터로 걸려온 첫 상담신고는 밤 10시32분께였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마자 전화를 건 이 시민은 “우리가 뭘 해야 할 행동이라든가, 지침이 있을 거 아니냐”며 다급하게 무언가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런 전화는 수차례 이어졌다. 근무하느라 뉴스를 제때 보지 못한 상담사들은 당황했다. “뉴스 안 보셨어요?”(시민) “시민님, 저희 근무 중인데 어떻게 뉴스를 봅니까.”(상담사)
 
“마트를 가도 되나요?”, “아침에 영화 보는 건 상관없나요?”, “가스나 전기가 끊기진 않죠?”
 
시민들이 가장 궁금했던 건 이런 일상들이었다. 특히 밤 11시 또는 자정 이후 밖을 돌아다니면 ‘체포’되는지 궁금해하는 시민이 많았다. 야간배달 사무실에선 “평상시대로 움직여도 되는 거냐”고 문의했고, 지방 출장을 마치고 퇴근하던 직장인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과거 계엄령이 발동되던 시절,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바깥에 있던 시민들은 지하철이 끊기지 않는지, 도로가 통제되지는 않는지도 물었다.
 
수많은 걱정이 수화기 너머로 쏟아졌다. 출국을 앞둔 사업자는 다음날 비행기가 뜰 수 있는지 궁금했다. 버스 기사는 새벽 첫차를 운행하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하면 되는지, ‘시험 기간인데’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로부터 따로 지침을 안내받지 못한 상담사들은 “죄송합니다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공지가 내려온 것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군용차량의 진로를 막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만약 서울에 올라가면 죽나요? 제가 죽을 수도 있나요?”, “조울증이 있는데 너무 불안해서 힘들어요”, “피난 가야 하나요? 비행기 타야 하나요?” 상담사들은 터져 나오는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애썼다. 어디론가 끌려갈까 봐 마음을 졸이며 전화하는 남성도 있었다. “혹시 어디 동원 가야 한다거나, 뭐 해야 하는 게 있나요?” “헬기 뜨고 난리가 났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예요?” 또다른 시민은 6·25 전쟁이나 대형 참사들을 언급하며 대책이 없는지를 간절히 묻기도 했다.
 
상담사들은 점차 실시간 속보와 뉴스 내용을 확인하며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확인되고 있고, 국회 (계엄 해제 표결) 과정이 있는 거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차분한 대응은 자정을 넘자 “이해가 안 되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교과서에서만 봤던 상황이라서” 등 같은 시민으로서 느끼는 갑갑한 마음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도 상담사를 걱정했다. “계엄령인데 계속 근무를 하시는 거예요?”, “전화 받으시는 분도 총을 맞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김건희 특검 투표 결과를 대형 화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저는 정치인이 아니고 일반 국민이고 대학생이니 외부활동 상관없는 거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통원치료를 해야 하는데 혹시라도 밖에 나갔다가 총 맞을까 봐 너무 겁나요.”
 
마치 일상을 국가에 허락받는 듯한 경찰 112신고도 밤새 이어졌다. 편의점이나 피시(PC)방을 가고 싶은데 가도 되는지, 식당을 계속 열어도 되는지, 야간 아르바이트는 해도 되는지, 시민들은 경찰에게 물었다. “내일 송년회가 있는데 인원이 많이 모이는 게 문제가 될까요”,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 군사재판을 받아야 하나요”, “사람 10명이 모여서 대통령을 욕하면 어떻게 되나요”, “(군에 소집되면) 케이(K)2 소총 사용법은 모르는데 어떡하나요” 등의 웃지 못할 질문들도 있었다.
 
가장 큰 걱정은 가족이었다. 시민들은 “가평으로 여행 간 아들을 데리고 와야 하는지”, “정신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가 계엄 선포로 놀라 사라졌다”, “조카가 미성년자이고 시험 기간인데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다급히 물었다. 경찰에는 특히 시민의 편에 서달라는 간절한 요청도 전해졌다. 한 시민은 “경찰들 응원하는데 내일부터 우리랑 부딪치게 될 것 같다. 절대 우리를 놓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국회 앞에 모이는 사람 체포하면 안 된다. 경찰이 따르면 안 된다”는 시민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어느 시민은 다산콜센터와 경찰에 전화를 해본들 특별한 답을 얻지 못할 것을 알았다. 다만 그럼에도 전화를 건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120다산콜센터) 상담사한테 권한이 없는 거 알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시민이 불안을 호소한 사실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요.”
 
누군가는 짧았다지만, 누군가에겐 영원할 것처럼 길었던 내란의 밤은 그렇게 기록으로 남았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포토] 12·3 비상계엄부터 헌재까지…긴박했던 그 순간들

김영원기자
  • 수정 2025-01-29 14:02
  • 등록 2025-01-29 13:00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경찰들이 기자들의 취재를 막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해 12월3일 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밤 10시10분께였다. ‘신문 지면 마감도 다 끝난 시간에 무슨 담화를 할까’ 생각하며 방송 뉴스 생중계를 틀었다. 비상계엄 선포였다. 사진기자 동기들과의 단체대화방에는 물음표가 연달아 올라왔다.
 
4일 자정을 넘겨 회사에 도착했다. 선배들은 이미 국회에서 취재 중이었고, 나는 대통령실 앞으로 가 사진을 찍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회사 선배께 “지금 좀 더 찍겠다고 경찰 말 안 들으면 저 잡혀가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지금은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어떻게 될지 몰라.”라고 하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군인들이 진입하려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가려는 군작전 차량을 시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경찰 기동대에 둘러싸인 전쟁기념관 들머리 너머로 불 켜진 국방부와 대통령실을 바라보며 ‘제발 꿈이어라’라고 생각했다.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새벽 1시1분에 가결했다. 꿈이 아니었다. 호외를 찍느라 새벽 늦게까지 돌아가는 윤전기 소리를 들으며 회사 숙직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간밤에 계엄군의 국회 진입 과정에서 쌓은 바리케이드와 깨진 유리창 등으로 아수라장이 된 국회 비품창고 앞에 지난해 12월4일 오전 출입금지 선이 붙어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비상계엄’ 뒤 국회는 빠르게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착수했다. 12월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뒤 12월14일 일부 여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해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8년 만에 다시 ‘탄핵 정국’을 맞게 됐다. 심각한 정국임에도 파티가 열린 듯 응원봉을 흔들며 즐겁게 뛰어노는 국회 앞 시민들을 사다리 위에서 바라봤다. 마치 내가 단독 콘서트를 연 것 같았다.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14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가 기뻐하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로 가결된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탄핵 가결에 감격해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이 한겨레신문 호외를 집어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unique@hani.co.kr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던 윤 대통령은 관저를 요새로 만들었다. 공수처는 지난 3일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의 저항으로 5시간30분 만에 철수했다. 공조수사본부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에 끝까지 ‘자진 출석 꼼수’를 쓰려던 그는 15일 체포됐다. 그 순간을 찍으려고 건물 옥상에서 구르던 내 외투에 묻은 페인트 자국이 아직 그대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한 지난 3일 아침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들머리로 공수처와 경찰 등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한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도로에서 경찰과 경호처 직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2·3 내란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2차 체포 영장 집행을 시작한 지난 15일 아침 경찰과 공수처 병력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공조수사본부에 체포된 뒤 지난 15일 오전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들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윤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있던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주변과 마포대로 일대를 꽉 채웠다. 경찰에게 길을 열어 달라고 사정을 하며 빠져나왔지만 카메라와 사다리를 들고 회사로 걸어 올라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무섭고 길었다. 19일 새벽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시위대 일부는 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경찰과 기자를 폭행했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가 경찰 차량을 넘으려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기물과 유리창 등을 파손한 지난 19일 오후 건설업자 등 관계자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대통령 관저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제 헌법재판소로 시선을 옮겼다. 현직 대통령 최초로 구속된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나와 보여준 말과 행동이 이번 설 연휴의 가장 큰 얘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이 열려 처음 출석한 윤 대통령이 피청구인쪽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군용차 막아선 김동현씨 “누구든 도와줄 거라 확신했어요” [인터뷰]

[짬]
‘내란의 밤’ 군용차량 맨몸으로 막아서
“다른 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
이재명 대표도 SNS에서 찾아

이유진기자
  • 수정 2024-12-30 20:10
  • 등록 2024-12-30 06:00
 
 
지난 3일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군용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섰던 시민 김동현(33)씨. 김씨 제공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누구든 도와주러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날 밤 국회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나서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꼭 찾아달라”고 했던 시민의 정체가 밝혀졌다. 직장인 김동현(33)씨는 지난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당시 국회 인근을 지나던 군용차량을 홀로 막아섰다. 김씨가 차량의 앞부분을 짚고 운행을 저지하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곧바로 합세해 차량을 막아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이 장면을 포착해 영상을 올린 뒤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됐고 이 대표까지 김씨를 찾아 나섰다.
 
유튜브 갈무리
 
김씨는 영상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밝히는 데까지 고민이 많았다. 김씨는 지난 29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인 데다 자신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까 봐 우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관심을 받은 김에 그날 국회를 지켰던 모든 분을 대신해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김동현씨가 24일 자신의 엑스에 올린 영상. 김씨는 “그날 휴대전화로 영상 이후 상황을 담은 영상입니다. 막자마자 뛰어와 함께 해주신 분들 덕에 안전하다고 느꼈고, 정말 감사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라고 적었다. 김씨 제공
 
영상이 찍힌 시점은 4일 새벽 2시께. 서강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국회 뒷문 방향으로 가려는 군용차량이 김씨의 눈에 띄었다. 이미 새벽 1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계엄 해제를 선언하지 않았을 때였다. 김씨는 “시민들이 순순히 비켜줬을 때 정말로 (국회가) 안전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일단 차량을 향해서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차 안에 있던 군인이 비키라고 계속 손짓을 했다. 내가 처음 차량 앞에 서자 겁을 주려는 듯 슬쩍 앞으로 움직였다”며 “나는 ‘밀 테면 밀어봐라. 너희는 절대 국회 쪽으로 못 간다’는 느낌으로 버텼고 합세한 시민들이 계속 막으니까 시동을 건 채 멈춰있던 차량은 결국 후진해서 서강대교 쪽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김씨는 지하철 첫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5시30분께까지 영상 속 사거리를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김씨는 차량 앞을 막아선 용기의 원천은 동료 시민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수많은 시민들이 맨몸으로 경찰·군인 버스를 막고 계엄군을 붙잡았고 국회 안에서도 바리케이드를 쌓고 소화기를 뿌릴 정도로 절박하게 국회를 지키고 있었다”며 “그런 모습들에서 용기를 얻었고 내가 이 차를 막으면 누구든지 함께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라며 “그날 밤 모두가 절박하게 민주주의와 일상을 지키고 싶어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씨는 4일 0시30분께 강서구 화곡동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여느 날처럼 퇴근을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에서 켠 휴대전화 화면에 ‘계엄’이라는 두 글자가 떴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계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고 한동안은 현실감이 없었어요.”
 
필시 국회에서 무슨 일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 두꺼운 옷부터 챙겼다. 그리고 키우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1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사료와 물을 준비해 뒀다. 가까운 친구 몇 명에게는 예약 문자를 보내놓기도 했다. 혹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고양이를 챙겨줄 수 있도록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
 
‘내란의 밤’은 지났지만 김씨의 일상은 쉽게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회사나 집에 있으면 불안해서 첫 일주일 동안은 날마다 국회 담장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고 한다. 김씨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요 혐의자들이 체포될 때까지는 긴장이 최고 수준이었다. 2차 계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봤다”고 했다.
 
하지만 영상이 화제가 된 뒤 김씨는 댓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댓글에는 “용기 있는 시민의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그대들의 숭고한 애국행동이 대한민국을 살렸다”, “당신이 있어 아직 희망이 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씨는 함께 차량을 막아선 이들을 포함해 국회를 지켰던 모든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내가 믿었던 대로 뛰어와 함께 지켜줘서 감사했다. 정말 많이 든든했다”며 “이름도 모르지만 옆에 있었을 때 서로를 믿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관저에서 버티고 있는 내란죄 피의자 윤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숨지 말고 나와서 책임을 다하라. 당신의 마지막 책임은 회피하지 말고 처벌받는 것뿐이다.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반드시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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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2·3 내란사태의 전모를 집중 취재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내란이 계획·실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과 내란에 연루된 이들의 의심스러운 행위에 대해 아는 내용이 있는 분들은 메일(123@hani.co.kr)로 제보해 주십시오.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공동체의 공익과 시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서만 사용하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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