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새로 열리는 역사의 길, 광화문·월대 공개 (2023.10.15/뉴스데스크/MBC)
100년 만에 옛 모습 찾은 광화문…월대와 새 현판 공개
한국의 상징적인 장소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이 새 단장을 마치고 오늘(15일) 공개됐습니다.
일제 때 크게 훼손됐던 월대와, 논란이 이어졌던 광화문 현판이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는데요.
백년 만에 옛 모습을 찾게 된 광화문에 김우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미래의 희망을 품은 새빛이, 광화문에 깃듭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거나 사신을 맞이했던 공간으로 임금이 백성과 마주하는 '소통의 장'이었던 광화문 앞 월대.
100년 만에 다시 찾은 그 길 위를 함께 걸어봅니다.
[이한나/월대 공개 행사 참가 시민 : "첫 번째로 걸어봐서 너무 좋고요. 마치 조선시대의 왕, 왕비가 된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도로 아래로 아예 자취를 감췄던 월대 발굴은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일제 때 깔렸던 전차 선로를 걷어내고, 난간석 석재를 경기도 구리 동구릉에서 확인해 복원했습니다.
월대를 지킨 상서로운 동물 서수상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으로부터 기증받기까지.
원형 복원을 바랐던 간절함들이 그 위용을 되찾게 했습니다.
[신희권/서울시립대 교수 : "(월대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 궁궐의 특징입니다. 광화문의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는 의미가…"]
검은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쓴 광화문 현판도 새로 공개됐습니다.
과거 40년 넘게 내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이 2010년에 교체됐지만, 균열이 생기면서 부실 복원 논란이 일었습니다.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또 다시 제작한 현판.
훈민정음체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사진과 이후 일본에서 찾아낸 경복궁 중건 공사 기록 등을 근거로, 당시 현판을 쓴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해 새겨넣었습니다.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 라는 뜻을 갖고 있는 광화문.
우여곡절 끝에 제모습을 찾은 금빛 현판 아래, 새로운 역사의 길이 100년 만에 다시 열렸습니다.
KBS 뉴스 김우준입니다.
촬영기자:문아미 김성현/영상편집:김기곤/화면제공:문화재청
모습 드러낸 '왕의 길'…광화문 월대 100년만에 복원
등록 2023.10.15 19:23:39수정 2023.10.15 21:06:45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앞 광장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된 광화문 월대가 100년 만에 복원을 마쳤다. 월대는 궁궐이나 건물 앞에 놓인 넓은 기단으로 과거 조선시대에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공간이다. 그동안 광화문 월대 일부는 광화문 앞 도로 아래 묻혀 있었다. 한편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교체된 새 광화문 현판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2023.10.15. kmx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100년만에 복원된 광화문 월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쓰며진 광화문(光化門) 현판도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15일 경복궁 광화문 앞 광장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광화문 현판과 월대 복원으로 일제강점기 때 철거와 훼손을 당한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가 100여년 만에 역사성·장소성·상징성을 회복하게 됐다.
이날 오후 5시에 열리는 식전행사에서는 광화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는 '광화문답'이, 오후 6시 본행사에서는 광화문 완성의 의미를 되살리는 '광화등' 점등식이 이뤄졌다. 월대와 현판은 이때 공개됐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 정부 관계자와 오세훈 서울시장, 사전 신청한 국민 500명이 함께 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월대' 앞에서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 행사를 열고 월대 및 주변부 광장을 공개한다. 2023.10.15. kmx1105@newsis.com
월대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전차 철로 설치 등으로 훼손된 뒤 도로로 사용돼왔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집중발굴 작업을 벌여 일제강점기 때 훼철된 옛터를 드러냈다. 발굴조사 당시 월대 전체 규모는 남북으로 48.7m, 동서로 29.7m에 달하며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지 기초시설 너비는 약 7m에 달한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월대' 앞에서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 행사를 열고 월대 및 주변부 광장을 공개한다. 2023.10.15. kmx1105@newsis.com
기존 광화문 옆에 있던 해태(해치)상도 복원된 월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식에서 현판이 공개되고 있다. 2023.10.15. jhope@newsis.com
2010년 광화문이 현재 자리로 옮기며 현판을 새로 만들었지만 복원 석 달 만에 갈라져 부실 복원 논란을 빚었다. 이번 재재작 과정에서는 글씨 색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 기념식에서 현판이 공개되고 있다. 2023.10.15. jhope@newsis.com
월대와 현판이 공개된 후에는 광화문 개문 의식 '새길맞이단'과 광화문 월대 행진, 다양한 영상과 공연, 프로젝션 맵핑이 이어졌다. '연결·소통·창조'를 주제로 한 대형 미디어쇼로, 약 130m 가량의 광화문과 담장을 배경으로 축하공연이 상영됐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앞 광장에서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을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가 마무리 되며 시민들이 월대를 걸어보고 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훼손·철거된 광화문 월대가 100년 만에 복원을 마쳤다. 월대는 궁궐이나 건물 앞에 놓인 넓은 기단으로 과거 조선시대에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공간이다. 그동안 광화문 월대 일부는 광화문 앞 도로 아래 묻혀 있었다. 한편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교체된 새 광화문 현판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2023.10.15. kmx1105@newsis.com
이번 행사는 2006년 '광화문 제 모습 찾기'를 시작으로 그간 추진된 월대와 현판의 복원이 마무리됐음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자리다. 행사 슬로건은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다.
한편, 광화문에서는 오는 18일까지 궁중문화축전이 이어진다. 오는 19일에는 경복궁 흥례문과 근정문 행각에서 18회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이 열린다. 문화재청은 "향후 경복궁을 찾는 관람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월대로 인한 교통과 인파 혼잡, 안전사고 방지 등을 위해 서울시 등 유관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조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광화문 월대,여민동락의 상징,오늘 가슴 벅찬 공개
- 2023.10.15 11:24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왕과 국민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곳,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상징,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가 드디어 15일 복원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6시 복원식을 열고, 월대를 공개한다.
돌아가는 광화문. 국민은 월대복원의 기대감, 뿌듯함으로 불편을 감수했다. |
21세기 월대. |
오후 5시에 열리는 식전행사에서는 광화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광화문답’이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의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고, 오후6시에 본행사가 열린다.
▶미디어아트와 하모니= 복원식에는 ▷‘광화등’ 점등식(월대와 현판 공개), ▷광화문 개문 의식, ▷‘새길맞이단’과 광화문 월대 행진 ▷참신한 연출기법으로 완성된 다양한 영상과 공연, 프로젝션 맵핑(미디어쇼)이 진행된다. 월대 좌우 130m의 담벽이 미디어아트로 수놓아진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가 제 모습을 찾는다고 하니, 국민들은 기존에 직진하던 곳이 바뀌어, 높이 세워진 작업 막이 판넬 옆을 돌아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제가 한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부수고 철길을 놓았으며, 친일부역자들은 해방후에도 나라의 주도권을 잡은채 우리의 정궁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의 행보를 막고 궁의 영역을 축소 은폐해 왔기에, 이제야 제모습을 찾은 것이다.
1923년 사진을 보면 초기 전동차(트램)가 운행모습이 보이고, 1917년 사진을 보면 월대의 계단이 일부 사라진 모습이 나타난다. 이번 복원은 월대자리에 기찻길이 놓인지 100년만이다.
1906~07년 무렵 헤르만산더가 찍은 사진. 월대가 본래 모습에 가깝다. |
1920년대 사진. 전차가 보인다는 것은 월대가 완전히 파괴됐음을 말해준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신희권교수 월대 설명 유튜브 영상캡쳐 |
신희권 교수에 따르면, 경복궁은 1395년 건축되었고, 월대구역에선 임금과 백성이 함께하는 행사가 열렸으며,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방화, 파괴를 한 이후 1867년 고종이 조선전기의 모습으로 중건을 완료할 때까지 30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됐다.
▶일제의 파괴와 제한적 조사= 정치계, 문화유산계, 학계의 친일 잔존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남쪽 광화문에서 북쪽 침전지 까지 경복궁 복원계획은 1990년에대 수립됐다. 해방후 45년 동안이나 일제 모습 그대로였고,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야 근정전을 가리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폭파됐다. 경복궁 복원작업은 2045년까지 이어진다.
2007년 무렵 발굴조사에서 월대 구역에 조선 태조 때의 기초가 확인됐고, 차가 다니는 도로 구역을 조사할 수 없어 당시 월대의 남북 길이는 8.3m만 확인된다. 월대의 돌 울타리가 할수 있는 난간의 존재 정도를 확인하는데 그친다.
이후 국내외에 있는 고종시절 월대관련 사진들을 수집하고, 문헌을 고찰하며, 최근에야 칸막이를 치고 시작된 발굴조사를 통해 원래 월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2022~2023년 발굴조사 결과, 월대 구역은 남북길이 48.7m, 동서너비 29.7m였으며 인부들이 흙 4만짐을 이 곳에 쌓아 다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화문 월대는 난간석(울타리 처럼 설치한 석물)을 두르고 기단을 쌓았다는데, 이런 형태의 월대는 광화문 것이 유일하다.
월대 하부 구조 |
▶뒤늦은 정밀 발굴조사=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지(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이 있던 자취) 기초시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 등도 확인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문화유산 수리 장인 등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했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계단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계단의 좌·우측 양단을 장식하거나 마감하기 위해 놓이는 경사 부재)을 이용하여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어도의 계단은 남쪽으로 더 튀어나왔다.
▶일제의 파괴 전후= 어도지 부근에선 백성과 함께 행사를 하기 위해 궁을 나왔던 임금의 햇빛 가리개를 고정시키려는 차일 쇠고리를 박아둔 흔적도 발견됐다.
일제의 말살 기도로, 월대는 다음과 같이 훼손된다.
일제의 만행 |
원래는 남쪽 방향 3개의 계단(가운데는 어도 및 계단)이 존재했으며,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요철:凹凸의 거꾸로 된 凸자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20세기 초부터 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었고, 이어 전체 월대 구역이 동일한 경사의 완만한 경사지로 훼손됐으며, 끝내 난간석도 모두 파괴돼 통의동방향, 안국동방향 두 개의 전차선로가 놓이고 말았다.
전차(트램)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서라면 급회전을 막기 위해 오히려 월대를 그냥 두었어야 옳은데, 일제는 고의적으로 월대를 파괴하고 우리 문화유산 증거의 인멸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것 지켜준 삼성과 동구릉= 월대 복원 작업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밀반출될 뻔한 월대 남쪽 양 끝을 장식하는 서수석을 기증한 것이다.
삼성가가 지켜낸 월대 서수상 |
어도지 계단 |
또 하나의 다행스런 일은 월대 파괴한 부재의 50% 가량이 동구릉에서 발견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는 장인들에게 힘을 실었다.
그래서, 2023년 10월15일 드디어 광화문 월대는 100년만에 제대로 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복원식은 ‘광화문 제 모습 찾기’를 시작으로 그간 추진된 월대와 현판의 복원이 마무리되었음을 국민들께 알리고, 명실상부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광화문이 완성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라는 슬로건으로 준비했다. 국민참여형 축제다.
이번 행사와 별도로, 다양한 연계행사도 준비되어 궁중문화축전(10월 13~18일, 4대궁), 제4회 문화재기능인 전통기법 진흥대회(10월 15일 9시~17시, 광화문 광장 놀이마당), 제18회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10월 13일~19일, 경복궁 흥례문 및 근정문 행각)도 진행된다. abc@heraldcorp.com
흩어진 부재 찾고, 제보까지…월대 복원에 힘 보탠 '매의 눈'
2023-10-15 09:00
광화문 지키던 난간석·상서로운 동물·현판 3종 완성하기까지
"새로운 경복궁의 얼굴 기대…달라진 광화문, 지금부터가 시작"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5일 복원 기념 행사를 앞둔 서울 광화문 월대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10.15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구한말에서 1920년대 초 사이 서울 광화문 앞을 찍은 사진을 보면 넓은 공간이 눈에 띈다.
궁궐을 벗어난 임금이 백성과 가장 먼저 만나던 장소, 월대(越臺, 月臺)다. 그러나 광화문 앞 월대와 관련한 직접적인 기록은 많지 않다.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 '영건일기'(營建日記)에도 1866년 3월 광화문 앞에 넓은 대(臺)를 만들었다고 짤막하게 전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거친 광화문의 본모습을 찾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1923년경 광화문 모습. 2023.4.25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나나 학예연구사는 월대 좌우에 있었던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조물을 뜻함)에서 힌트를 얻었다.
조선왕릉의 난간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 연구사는 1920년대 광화문 사진을 분석한 결과, 월대의 난간석 일부로 추정되는 석재가 경기 구리 동구릉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수십 차례 동구릉을 오가며 석조물 하나하나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었다.
전 연구사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실마리로 문화재청이 조사한 결과, 동구릉에 모여 있던 난간석과 용두석(龍頭石·용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석조물) 등 40여 점이 원래 광화문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오는 15일 복원공사를 마치고 공개되는 서울 광화문 앞 월대에서 11일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월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로 추정되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지난달부터 광화문 출입을 전면 폐쇄하고 복원 마무리 공사 중이다. 2023.10.11 jjaeck9@yna.co.kr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사라지기 전 모습을 간직한 이른바 '원형 부재'였다.
전 연구사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왕릉과 궁궐은 큰 차이가 있다 보니 연구하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월대 복원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 연구사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의 전신인 궁능문화재과에서 수년 간 일했다. 2014년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이 개관했을 때도 함께한 그에게 궁을 복원한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
전 연구사는 "현재 경복궁 복원은 고종 연간(1863∼1907)을 기준으로 진행 중인데 당시 힘들게 중건했던 광화문의 옛 모습을 찾는 데 일조할 수 있어 연구자로서 뿌듯하다"고 전했다.
[전나나 씨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광화문을 '경복궁의 얼굴'이라고 지칭하며 더 많은 연구가 이어지길 바랐다.
월대 복원과 함께 이뤄진 현판 제작에도 젊은 연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광화문 현판 제작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 '영건일기'를 분석한 내용을 학술지에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연구원은 광화문, 근정전, 경회루 등 경복궁의 주요 전각의 현판 바탕이 검은색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짚으며 "화재에서 무사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글자와 같은 형태의 동판을 덧댄 것으로 보이는데, 광화문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설계 변경 전(왼쪽)과 후(오른쪽)를 비교한 것. 기존에는 구리 동구릉에서 나온 석재들이 앞쪽에 배치돼 있으나 이후 각자 자리를 찾은 점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의 '광화문 월대 복원, 시작과 끝' 복원 자료집 일부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여러 차례 실험과 논의 끝에 광화문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빛 글자로 결정됐다.
김 연구원은 "'영건일기'는 총 9책으로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는데 자료를 접한 뒤 이틀간 4번 읽었었다"며 "다른 기록이 많지 않아 검증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월대가 복원되고 새로운 현판이 걸리는 광화문은 웅장한 모습일 것"이라며 "앞으로 경복궁 복원 사업을 20∼25년 더 할 텐데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광화문 월대 복원의 '마지막 퍼즐'로 여겨진 동물 조각상은 시민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조선시대 석조 미술사 전공)이 광화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서수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이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2023.8.29 ondol@yna.co.kr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소장했던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1쌍은 오랜 기간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관람객이 봤을 법한 이 석상에 주목한 건 한 유튜버였다.
문화유산 관련 이야기를 다루는 그는 2021년 9월 광화문 월대와 해태상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올렸고, 이를 본 시민이 문화재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큰 코와 눈이 돋보이는 서수상은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수상이 놓여 있던 위치도 그렇지만, 월대 복원이 마무리되는 절묘한 시점에 찾게 된 것은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퍼즐'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과거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백성과 만나던 '역사의 길'이 열리고, 광화문을 나타내는 현판도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다시 태어난다. 문화재청은 오는 15일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서 월대(越臺, 月臺·건물 앞에 넓게 설치한 대)와 현판 복원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연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yes@yna.co.kr
광화문 월대 그 아래 숨겨진 조선의 역사 (자막, 수어해설 포함,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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