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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오염 알면서도 '쉬쉬'…美 이러고도 혈맹인가?

by 무궁화9719 2022. 9. 29.

고엽제 오염 알면서도 '쉬쉬'…美 이러고도 혈맹인가?

2011. 5. 24.

30년간 고엽제로 전전긍긍하면서 우리측에는 안 알려 

 

 

주한미군이 오래전부터 캠프캐럴의 고엽제 오염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우리 측에는 알리지 않아 파문이 커지고 있다. 자기들은 오염때문에 정기적으로 정밀 검사를 하면서 정작 지역 주민들에겐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 안한 것이다. 주한미군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매몰한 물질이 고엽제라는 사실을 사실상 시인했다.

미군측은 1978년에 화학물질을 묻었고 1980년에 화학물질(제초제, 살충제, 솔벤트 등)과 오염된 토양 등 40~60톤을 파서 영외로 반출했다고 23일 밝혔다. 미군측은 문제의 화학물질이 고엽제라는 기록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고엽제로 인지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헤밀턴 공병대장은 이날 민관합동조사단에게 “기지내에서는 지하수 관정을 통해 취수를 하고 있고 음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다이옥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4년마다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옥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음미하면 미군은 기지가 다이옥신으로 오염됐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문제의 물질이 고엽제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굳이 다이옥신 검사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이 오염 여부를 4년마다, 그 것도 13개의 다이옥신 검사 전용 관정을 뚫고 2004년에는 한국의 민간기업인 삼성물산까지 참여시켜 정밀조사를 한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미군은 단 한마디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이옥신이 주변지역으로 쉽게 퍼지는 휘발성 물질이라는 점을 모를 리 없는 미군이 주변의 우리 국민들에게는 철저히 함구해 온 것이다. 1200명의 캠프 캐럴내 미군들의 안전은 중시하면서도 2700명(1980년 당시)이나 되는 왜관읍 주민들이나 11만 여명(1980년 당시)에 이르는 칠곡군 군민들의 안전은 도외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고 있다.

미군은 화학물질을 1980년까지 파낸 뒤 기지 밖에서 처리했다고만 밝혔을 뿐 기지 밖 어디에서 처리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미군의 안전 때문에 캠프 캐럴에서 물질을 반출한 걸 보면 다른 미군기지로 가져갔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또한 우리국민의 안전은 그리 중시하지 않은 걸 보면 우리국민의 안전을 위해 미국본토로 다시 가져간 것 같지도 않다.

미군이 최소 60톤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고엽제를 도대체 어디에 매몰 처분을 했는지 우리국민의 불안감과 배신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11-05-24 03:00 CBS경제부 권민철 기자

  

美軍 "고엽제 언급 없어" 불구 반출 장소·처리 방법에 함구

 입력시간 : 2011/05/23 18:06:41  수정시간 : 2011/05/24 09:24:56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유독물질 매몰기록 확인… 의문점 그대로
총량 베일 속… 시추공 뚫어 조사하고도 '쉬쉬'
국내전문가 "제초제도 다이옥신이 주성분" 지적

 

미군 당국이 23일 캠프 캐럴에 유독물질이 묻힌 사실을 공식 확인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미8군은 92년 미 육군 공병단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당시 매몰한 물질은 화학물질, 살충제, 제초제, 솔벤트 용액"이라고 밝혔다. 미8군은 다만 "보고서에 고엽제라는 말은 없었다"며 "추가 기록을 살펴보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설명은 다르다. 제초제와 고엽제는 본질적으로 같은 물질이라는 것이다. 박용선 건국대 화학과 교수는 "제초제는 대상 식물을 선택적으로 죽이고 고엽제는 식물을 전부 고사시키는 정도의 차이일 뿐 두 물질을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제초제와 고엽제 모두 다이옥신이 주성분이다. 특히 보고서는 "79년부터 80년까지 유독물질들과 주변의 흙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했다"고 적시했다. 옮긴 지역이 어디인지,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는지, 위험한 물질임에도 매몰 후 불과 1년 만에 이 같은 추가작업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증폭되는 대목이다.

 

또한 2004년 미군이 해당 지역에 시추공 13개를 뚫어 추가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한미군이 고엽제의 피해를 염두에 두고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 온 셈이다. 하지만 미군측은 "보고서 외에 추가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며 입을 닫고 있다.

고엽제의 총량도 확실치 않다. 당초 205ℓ짜리 드럼통 250개가 묻힌 것으로 전해졌다가 드럼통이 600개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12만3,000ℓ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렇다면 미군은 고엽제로 추정되는 유독물질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정부 관계자는 "6ㆍ25전쟁 때부터 70년대 초까지 남방한계선 이북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군이 고엽제를 공공연하게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 지역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불로 초목을 태우는 화공작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화재 위험이 커 안전한 고엽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보훈처 확인 결과, 실제 군복무 중 고엽제 피해로 정부 보상을 받은 한국인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10여명에 달한다. 미군과 함께 고엽제를 살포했거나 이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피해를 본 경우다. 미 정부는 그간 휴전선 지역에서 사용하다 남은 고엽제를 60년대 말에 바다에 전량 폐기했다는 입장이었다.

월남전의 부산물일 가능성도 높다. 고엽제 파문을 폭로한 전 미군병사 스티브 하우스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베트남에서도 들어온 것 같다. 드럼통의 일련번호에 베트남이라는 글씨가 써 있었다"고 말했다. 한 군사전문가는 "미국이 74년 월남에서 철수한 후 반전시위가 거셌던 본국으로 고엽제를 가져갈 수 없어 맹방인 한국에서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엽제의 피해가 90년대에 들어서야 부각됐고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가 당시 고엽제 반입 사실을 알았더라도 반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캠프 캐럴에 드럼통 묻은 1978년 美2사단, 고엽제 전량 폐기 명령”
 

■ 前주한미군 잇단 증언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주한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1978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독성 물질인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를 묻었다는 전 주한미군의 폭로에 이어 비슷한 시기에 다이옥신 제초제를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모든 주한미군 부대에 일제히 하달됐다는 전 주한미군의 증언이 나왔다.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미 육군 2사단 사령부에서 복무한 래리 앤더슨 씨는 6·25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코리안 워 프로젝트(Korean War Project)’ 홈페이지에 올린 글(2009년 8월 18일)에서 “1977년에서 1978년에 2사단 IG팀 장군의 명령을 받아 비무장지대(DMZ)에서 특별임무를 수행했다”며 “당시 2사단의 모든 창고에 저장돼 남아 있는 다이옥신 전량을 폐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 명령은 우리 부대뿐 아니라 전 부대에 걸쳐 내려진 것이었다”며 “사용되지 않은 ‘에이전트 오렌지’가 한국에 1977년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적었다.

1978년은 고엽제 드럼통을 묻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 씨가 경북 칠곡군의 캠프 캐럴에 복무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당시 다이옥신 제초제를 전량 폐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1978년은 유독성 화학물질 매립으로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러브 커낼’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켰던 때다. 또 국제사회에서도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가 알려지면서 소송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증폭되는 시기였다.

의무병으로 1968년에도 의정부 미군기지인 캠프 스탠리에 복무했다는 앤더슨 씨는 “당시 캠프 스탠리에 복무하면서 캠프 머서(경기 부천시 오정동에 있던 전 미군기지)에도 파견 근무를 하면서 부대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일을 했으며 쥐를 잡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며 “1968년 봄부터 여름까지 캠프 내 화장실과 막사, 식당 등 모든 건물 주변에 고엽제를 뿌렸다”고 밝혔다. 또 그는 “DMZ뿐 아니라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여러 곳에서도 부대와 함께 고엽제를 살포했다”고 이 웹사이트에 적었다.

앤더슨 씨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여러 지역에 고엽제를 뿌려놓고도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속일 뿐 아니라 고엽제를 살포한 양과 범위도 줄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퇴역미군인 래리 킬고어 씨도 이 사이트에 올린 글(2009년 3월 29일)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비무장지대뿐 아니라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고엽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기사입력 2011-05-26 03:00:00 기사수정 2011-05-26 04:23:37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고엽제묻은 美軍 “부대근처에 江있는 줄도 몰랐다”

 크레이머 씨, 한국민 피해 있을까 뒤늦게 우려

 

1978년 경북 칠곡군 왜관의 주한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든 드럼통을 묻었다고 증언한 전 주한미군 병사 리처드 크레이머(53)씨는 당시 고엽제를 파묻은 작업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이 흐르고 있는 줄은 뒤늦게야 알았다고 25일(현지시간) 밝혔다.

1980년에 전역한 크레이머씨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소도시 디케이터에서 아내, 아들, 그리고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직업은 한국 파견근무시절과 마찬가지로 버킷로우더(bucketloader) 기사지만 귀와 발, 허리 등 아픈 곳이 많이 점점 일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날 한적한 시골마을 자택을 찾아간 기자를 무표정하게 맞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국 근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진 촬영도 허가해줬다.

크레이머씨는 "고엽제 드럼통을 묻을 당시에는 미군 부대에 근무하면서도 근처에 강이 있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이 일이 문제가 되면서 인터넷 위성사진을 통해 당시 지역을 검색해보니 가까이에 강이 흐르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별 생각없이 드럼통을 파묻는 작업에 동원됐지만 이후 이 드럼통에 든 고엽제가 새어나와 강 등으로 흘러들어 인근의 한국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크게 걱정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군부대에서 발간된 앨범을 보여주면서 이번 일을 함께 증언했던 스티브 하우스나 로버트 트래비스 등과 함께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크레이머씨와 일문일답.

--한국 근무 당시 고엽제 드럼통을 파묻었다고 증언했는데..
▲난 당시에도 버킷로우더 오퍼레이터였다. 명령에 따라 드럼통을 묻는 작업을 한 걸 기억한다. 난 이 작업에 한 번 동원됐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250개 가량의 드럼통을 묻었다. 난 주로 중장비로 드럼통 위에 흙을 덮는 역할을 했다. 스티브 등이 땅을 파내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원된 작업인원이 6명으로 보도가 됐는데 맞나?
▲워낙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러번 작업을 한 스티브의 말이 6명이라고 했다. 난 그중 두명은 누구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당시 작업할 때 사병 말고 장교도 있었나?
▲현장에는 없었다. 장교가 항상 작업장에 지켜 서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 공병부대 장교가 운전병과 함께 지프를 타고 작업장을 둘러보러 왔다 간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구체적으로 이 일을 지시했는지 알 수 있나.
▲사병들이야 바로 윗선의 지휘계통 명령을 받고 하는 것이니 그 위에 누가 처음 이런 지시를 했는지는 모른다. 알다시피 군에서는 여러 단계가 있으니까.

--고엽제 드럼통은 모두 새것이었나? 혹시 쓰다 남은 것을 버린 건 아닌가.
▲쓰다 남은 것 같지는 않다. 모두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내용물이 꽉 차 있었다. 나는 증장비를 운전했기 때문에 직접 드럼통을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묵직한 것으로 보였다. 55갤런 들이 드럼통이니까 하나에 200㎏ 넘게 나갈 것이다.

--이 고엽제가 새어나가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나.
▲당시에야 군인이 명령받고 하는 일이니까 별 문제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한참 뒤에 만일 이 고엽제가 새어나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나중에 위성사진 보니까 근처에 강도 흐르고 있더라.(캠프 캐럴 옆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우린 그런 줄도 몰랐는데 지도상에 보니 꽤 가깝게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본인도 몸이 안좋다고 들었다. 어디가 불편한가.
▲귀가 안좋아서 보청기 끼고 살고, 군 복무 시절에도 발이 부어서 군화를 못신고 테니스화를 신고 다녔다. 허리도 안좋다. 각각 장애등급 10% 씩을 받았다.

--정부에서 그런 질환에 대해 보상을 해주었나.
▲군에서는 아프니까 서울로 후송돼 군 병원에 몇 달에 걸쳐 여러차례 진료를 하고 약도 바꿔 가면서 먹어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고엽제를 묻은 이후에 아프게 됐지만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는 병원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방문하기 전에 전화를 계속 해도 안받던데..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번 증언이 지역방송에 나간 이후로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딱히 뭐라 할말도 없고 당시 일이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응하지 않고 있다.

--이번 일로 미 정부와 접촉한 적이 있었나? 스티브 하우스 씨는 당국 관계자와 면담도 했다고 하는데.
▲없다. 워싱턴D.C라며 전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남겨진 것은 있었는데 내가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언론에서도 연락이 많이 오는데 안받고 있다. 직접 찾아온 건 당신이 처음이다.

--군 제대 이후 한국에 가본 적은 있나?
▲없다. 제대후 30년이 넘었는데 한번 가보고 싶기는 하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가보고 싶다. 사진을 보니까 한국은 엄청나게 달라졌더라. 논밭이던 지역에 고층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내가 일했던 당시와는 비교가 안되게 발전한 것 같다.

 

기사입력 2011-05-26 06:58:48 기사수정 2011-05-26 07:54:10

(디케이터<미국 일리노이주>=연합뉴스)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파문]오염 드럼통-흙 60t 어디로, 왜 옮겼나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파문]고엽제 주성분다이옥신 검출… 매립주장 뒷받침 '증거'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파문]美 "반출 화학물질 어디로 갔는지 몰라… 계속 조사중"  

 

 

다량의 고엽제가 묻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주한미군기지 캠프 캐럴 안에 1978년 '특정 물질'이 매몰됐다가 1979, 1980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됐다고 주한 미8군사령부가 23일 밝혔다.  

 

존 존슨 미8군사령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1992년 미 육군 공병단의 연구보고서에 캠프 캐럴에서 1978년 특정 물질이 매몰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미8군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전역한 미군 병사들이 고엽제를 묻었다고 언급한 지역 주변에 화학물질, 살충제, 제초제, 솔벤트 용액이 담긴 많은 양의 드럼통을 매몰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고엽제가 포함됐는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다고 미8군은 전했다.

 

또 보고서에는 1979, 1980년 기지 안에 묻혀 있던 드럼통들과 주변의 40∼60t 정도의 흙을 파내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8군 측은 드럼통이 캠프 캐럴에 묻힌 경위와 이후 처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8군 측은 드럼통을 옮긴 '다른 지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 화학물질이 1년여 만에 왜, 어디로 옮겨져 어떻게 처리됐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면 국민적 불안과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또 미8군은 "2004년 기지 내 지역에 대해 시추공 13개와 지하 투과레이더를 사용해 조사한 결과 시추공 1개에서 미량의 '화학물질 흔적'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미8군 관계자는 "이 화학물질 흔적은 다이옥신이었다"며 "하지만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미량이었다"고 밝혔다.


다이옥신은 청산가리보다 1만 배 이상 독성이 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고엽제 가운데 독성이 강력한 '에이전트 오렌지'의 주성분이어서 캠프 캐럴 내 고엽제 매립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동아일보 | 입력 2011.05.24 03:20 | 수정 2011.05.24 10:03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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