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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국내여행

경주 불국사 설경(세계문화유산)

by 무궁화9719 2022. 9. 14.

2012. 3. 18

 

 

 

 

 

 

 

 

 

 

 

 

 

   

 

 

 

 

 

 

 

 

 

 

 

 

                

       

 

 

 

 첨성대  

 

첨성대(瞻星臺)는 경주시 반월성 동북쪽에 위치한 신라 중기의 석조 건축물로, 선덕여왕때에 세워진,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문대 알려져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첨성대는 신라의 왕궁이 있었던 월성 북편에 위치하고 있다.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축조하였다. 높이는 9.17미터로 바탕의 지름은 5.17미터, 상층부의 지름은 2.5미터이다. 2미터에서 4미터의 고려 조선시대의 현존 천문대보다 큰 규모이다. 2층의 기단이 있고, 대략 30센티미터 두께의 돌로 27층을 쌓았으며, 꼭대기에는 다시 우물 정(井) 모양의 2층의 천장돌이 있다.

 

13층에서 15층에 이르기까지 정남향의 네모난 문이 있고, 이 문의 아래로 12층이 있고 위로 13층이 있으므로 첨성대 위아래의 중간에 문이 위치한다. 내부에는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고 여기에 사용된 돌의 수는 362개이다.

내부에 19단과 20단, 25단과 26단이 장대석을 이루고 있다.

 

 석굴암

 

경주 석굴암 석굴(慶州 石窟庵 石窟)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중턱(진현동 891)에 있는 석굴(石窟)로서 국보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당시 51세였던 김대성이 만들기 시작했고 20여년 후 완성되었다. 신라의 건축과 조형미술이 반영되어 있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으나, '석굴', '조가절' 등의 이름을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로 석굴암으로 불리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석굴이며, 1913년 이후로 일제 수차례 해체·조립·수리하기 전까지는 원형을 유지하였다. 현재는 부실 복원에 따른 습도 문제로 유리벽으로 막아 보존되고 있다.

 

석굴암은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적인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다보탑

불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2개의 탑 가운데 동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과는 매우 다른 이형 석탑이다.

불국사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2개 탑이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 중 동쪽 탑이다.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하층기단의 4면에는 계단이 있고 양쪽에 난간의 석주로 보이는 유구가 서 있다. 상층기단에는 4개의 우주와 중앙에 탱주가 서 있으며, 우주 위에는 2단의 두공이 십자모양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려놓았다.

 

갑석 위에는 8각형의 신부가 3단 있는데 하단은 4각형의 난간 속에 별석을 돌렸고, 중단은 8각 난간 속에 죽절형의 기둥을 세우고, 상단은 8각 앙련 위에 꽃술형 기둥 8개가 8각의 신부를 돌려싸고 있다.

 

 선덕여왕왕릉

 

 

<선덕여왕>

(1) 신라 27대왕

(2) 재위기간 632-647년

(3) 공헌 : 삼국통일의 기초를 세움

신라 최대 규모의 목탑이 있던 황룡사와 신라 최초의 석탑이 만들어진 분황사를 비롯해 세계 최초의 천문대에 이르기 까지 그 중심에는 강한 추진력으로 한 나라를 이끈 선덕여왕이 있었다. 16년의 재위기간동안,강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로 국력을 다졌던 신라 최초의 여왕 그녀는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기틀을 다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경주 불국사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이다. 신라시대 경덕왕에서 혜공왕 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었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수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왕모(王母)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적고 있다.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石橋)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제5 효선(孝善)9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불교의 윤회설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1963년 3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었다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기준에 따라 「사적」으로 재분류됨에 따라 2009년 12월 21일 이를 해제하고, 동 일자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502호로 재지정되었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다보탑(국보 20호), 불국사삼층석탑(국보 21호), 불국사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학술적·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이라 만날 수 없었다. 조언하기를 불국사 아래 잇는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석사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서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한때 일본 사람에게 팔려갔다가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경주시에서 시가 관리하는 입장료가 있는 유적지(및 박물관)는 경주시의 시민이라는 증거(주민등록증)가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다른 유적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의 재산으로,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징수해 왔다. 2013년 3월부터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주민등록이 경주시로 되어 있는 경우 무료입장이 실시되고 있다. 

 

  • 지난 2007년 한 관광객이 극락전 정면 처마밑의 현판 뒷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센티미터가량 되는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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